[Opinion] 밴드 '루시(LUCY)' : 당신의 계절을 담아 드려요 - 가을, 겨울 편 [음악]

계절 한 자락에 노래 한 소절
글 입력 2021.03.24 07:32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EuZKDeZUUAQQw7I.jpg

 

 

지난 오피니언에서는 '계절을 노래하는 밴드' 루시의 첫 만남, 그리고 그들의 봄과 여름을 함께했다. 봄의 산뜻한 발걸음으로 한 발짝, 여름의 경쾌한 뜀박질로 한 발짝. 봄과 여름의 앨범이 우리 각자가 보내는 계절을 더 행복하게 만들어 주었다면 가을과 겨울의 앨범은 루시가 노래하는 계절 자체에 몰입하고, 스며들게 만든다.

 

 

 

#AUTUMN : 선잠 (2020.11.12)


 

 

 

앨범 자켓, 뮤직비디오 등 앨범의 모든 부분에서 가을 냄새가 물씬 난다. '선잠' 앨범을 '가을'이라는 단어로 표현할 수 없다면 나는 '기억'으로 표현할 것이다.

 

앨범에 수록된 타이틀곡 '선잠'과 'Farther and Farther'는 속절없이 흐려져 버리고, 붙잡으려 해도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우리의 지난 시간에 대해 이야기한다. 특히, 조금 더 어렸고 철이 없었을지 몰라도 조금 더 행복했고 찬란했던 시절들. 어쩌면 우리가 이 앨범을 사랑하게 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 순간의 기억들을 결코 영원히 남겨 둘 수는 없다는 사실에 대한 슬픈 인정이 아닐까.

 

 

어느새 나도 낮보다

밤을 기다리고 있어

꿈이 없는 잠을 바라며

기대해도 기대 쉴 곳은 없어

 

루시(LUCY) - 선잠


 

타이틀곡 '선잠'은 루시만의 앰비언스 사운드가 가장 인상적인 곡이다. 노래는 우리가 일상 중 흔히 듣게 되는 버스 문이 열리는 소리, 버스 카드를 찍는 소리로 시작한다. 이 생활의 소음은 첫 소절인 '회색빛으로 물든 사람들'을 바로 연상케 한다. '선잠'은 '슈퍼밴드'방송 당시 결선 2라운드 곡으로 처음 선보였던 곡인데, 2020년 가을 우리에게 새로 찾아온 '선잠'은 좀 더 정돈된 톤과 최상엽의 단단한 보컬이 돋보인다.

 

사실 '선잠'의 백미는 알람 소리로 시작되는 브릿지 바이올린 솔로 구간이다. 'Time to sleep'이라는 가사와 함께(잠이 드는 듯한 멤버들의 연기도 인상적인데, 이 장면을 볼 겸 라이브 무대 영상을 보는 것을 추천한다) 멤버들은 모두 도망쳐 가는 어린 날의 기억들을 향해 감정을 쏟아내는 듯 악기를 연주하고, 신예찬의 바이올린 솔로가 시작된다. 이 구간은 처음과 같이 알람 소리로 끝나고 마지막 후렴이 시작된다.

 

우리는 잠깐이나마 찬란했던 날들로 돌아가고자 했던 꿈에서 마음껏 절규했고, 그 꿈에서조차 아침이면 깨어나야 했다. 하지만 기억하자. 그때의 어떤 기억들은, 흐려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과거를 고통 없이 떠올릴 수 있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계속해서 새로운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WINTER : INSIDE (2021.2.16)


 

 

 

세 계절을 보내고, 늦겨울에 따뜻한 겨울 노래로 루시가 돌아왔다. 계절을 노래하는 루시답게, 겨울다우면서 겨울답지 않은 노래 세 곡이 담긴 'INSIDE'가 발매되었다. 타이틀곡은 '히어로'. '겨울' 하면 생각나는 록 발라드나, 잔잔한 느낌의 곡이 아닌 점은 제법 의외였다.

 

그러나 '히어로'는 따뜻하게 기댈 곳이 필요한 겨울에 딱 어울리는 곡이었다. 이외에도 따뜻한 위로를 전하는 '난로'와, 시대극 혹은 애니메이션 느낌이 풍기는 'OUTRO (뒤 돌아보면)'까지 소개를 빼놓을 곡이 없다. 'INSIDE'는 루시의 한 해를 완성하기에 충분한 앨범이었다.

 

2번 트랙 '난로'는 루시가 슈퍼밴드 TOP3 콘서트와 엠넷 '스튜디오 음악당'에서 공개한 미발매 곡이었다. 팬들은 6분 17초라는 긴 노래임에도 불구하고 지루하지 않으며 감성을 자극하는 '난로'의 정식 음원 발매를 1년 동안 기다려 왔다. 루시 멤버들 또한 그만큼 특별하고 소중한 곡인 '난로'를 곡이 어울리는 계절에 발매하고 싶은 마음에 팬들과 함께 계절을 보냈다. 마침내 겨울이 왔고, 난로의 열기가 따뜻하게 올라왔다.

 

 

 

 

눈꽃이 떨어지면 거리는 밝아지고

우리는 그 속에서 춤을 추게 될 거야

불빛이 우릴 비추고 종소리가 들리면

우리는 이 겨울을 날아

 

루시(LUCY) - 난로


 

장작 타는 소리와 신광일의 섬세한 미성이 '난로'의 시작을 연다. 이어지는 바이올린 선율, 따뜻한 가사를 노래하는 최상엽의 목소리. 벅찬 후렴 이후 2절의 시작은 변화한 드럼 비트가 맞이하고, 노래 사이사이 들리는 종소리는 겨울 분위기를 극대화한다.

 

전체적으로 강약이 잘 조절된 곡이다. 조용해졌다가 한 번에 터지는 사운드와 감정은 듣는 사람이 더 곡에 몰입할 수 있게끔 해 준다. '난로'는 유난히 추웠던 겨울, 차갑기만 했던 바람 사이로 불어온 따스한 '너라는 바람'을 노래한다.

 

'너를 혼자 두진 않을 거야'라는 벅찬 고백은 점점 싸늘해져 가는 이 추운 겨울도 따뜻하게 녹일 수 있을 것 같다는 희망을 선물한다.

 

 

부디 너의 맘에

하얗게 내린 눈꽃이

차갑게 얼지 않기를

너라는 이름은

오뉴월의 꿈만 같아

깨고 싶지 않은걸

 

루시(LUCY) - 히어로

 

 

'난로' 가사에 등장하는 '눈꽃'은 '히어로'에서 이어진다. 추운 겨울, 상대의 포근한 위로를 받던 화자는 '히어로'에서 영화의 주인공이 되어 충만한 사랑을 표현한다. '두 손에 빔', '괴력의 힘' 등 솔직하고 귀여운 표현, 상대에게 최선을 다하고 싶다는 마음이 담긴 서툰 고백이 인상적이다. 살짝살짝 리듬을 탈 수 있는 벌스 구간을 지나 신나는 후렴이 찾아오는데, 빠른 템포에도 바이올린 선율이 얹어져 따뜻한 느낌을 준다.

 

'히어로'는 특히 베이스 소리가 두드러진다. 베이스는 드럼과 함께 밴드의 기둥 역할을 해 주고 기타나 다른 멜로디 악기보다 음이 낮아서 음원에서는 명확하게 듣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그러나 루시의 프로듀서이자 베이시스트 조원상의 베이스는 항상 모든 곡에서 노래를 잘 받쳐 주고 튀지 않으면서도, 노래에 특별한 매력을 더 하는 감초 역할을 해 준다.

 

루시의 일 년은 'DEAR.' 앨범의 'INTRO'로 시작했다. 그리고 'INSIDE' 앨범의 'OUTRO (뒤 돌아보면)'으로 막을 내린다. 'OUTRO (뒤 돌아보면)'은 기승전결이 확실하다. 가만히 듣고 있다 보면 한 편의 영화 혹은 드라마를 보는 듯 몰입되기도 한다. 한 곡 안에서 루시의 지난 한 해를 느낄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조선 시대 인물이 첫사랑에 빠지는 봄의 설렘부터, 사랑에 위기를 겪거나 그 위기를 극복하고자 하는 결의가 느껴지는 겨울의 향까지 느낄 수 있었다.

 

*


루시는 아직 데뷔 1년도 채 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이 지금까지 가져 온 수많은 고민, 다져 온 실력은 루시의 앞으로를 더욱 기대하게 만든다. 그들의 음악과 함께 계절을 보낼 수 있음에 감사하며 두 편의 오피니언을 썼다. 부디 많은 사람이 자신의 계절을 멜로디와 함께 기록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건하 tag.jpg

 

 

[이건하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5.08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