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모든 일이 마음처럼 흘러가지 않을지라도: 나의 서른에게 [영화]

글 입력 2021.03.16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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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빨리 서른이 되고 싶다고 생각한다. 이 말을 친구들에게 하면 절반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또 나머지 절반은 알 것 같다는 듯이 끄덕인다. 내가 원한 것은 단지 29번째 생일 초를 부는 것이 아니다. 단지 내가 생각하기에 '그럴듯한' 어른이 되려면 서른 즈음은 되어야 하지 않을까 기대했던 것뿐이다. 정말 어른이 되면 세상과 내가 맞닿는 순간에 지금보다 더 여유롭고, 능숙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그런 막연한 기대.


하지만 사실 알고 있다. 나뿐만 아니라 세상 많은 사람들이 그런 진짜 어른이 되고 싶어 한다는 것. 심지어 내가 진짜 어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마저도 스스로를 불완전하게 느낀다는 것을 말이다.


그럼에도 먼 미래에 대한 기대와 부풀린 희망을 지닌다. 단지 내일 당장은 어렵고, 먼 미래에 대한 상상은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는 이유로 오늘의 책임을 미룬다. 오늘 내가 겪은 일들은 모두 하찮고 의미 없이 느껴지지만, 언젠지는 몰라도 대략 십 년 뒤 쯤엔 제법 모양새를 갖춘 하루를 보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실없고 철없는 상상을 하면서.


서론이 길었다. 어쨌든 내가 <나의 서른에게>라는 제목의 영화에 끌릴 수밖에 없었던 것은 바로 그런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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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에는 두 명의 전혀 상반된 삶의 모습을 가진 두 여성이 등장한다. 임약군과 황천락. 서른을 앞둔 임약군은 모든 것이 완벽해 보이는 여성의 삶을 살고 있지만 왠지 모르게 하루하루가 폭풍처럼 느껴진다.

 

직장에서는 승진을 하면서 업무가 늘고 직원들과의 관계도 이전과는 달라졌으며, 친구들을 만나면 결혼에 대한 저마다의 가치관으로 머리 아픈 설전을 벌인다. 오래 사귄 남자 친구와의 관계도 시들하다. 그렇게 매일 반복되는 일상을 지내던 임약군은 집 안의 누수로 인해 갑작스럽게 거처를 옮겨야만 했고 우연히 여행으로 집을 비우게 된 황천락의 공간에 머무르게 된다.


황천락은 10년 넘게 동네의 레코드 가게에서 일하던 직원이었다. 흔히 말하는 '그 나이쯤 되면 당연히 가지고 있을 법한 것'들에 매여 있지 않은 사람이 바로 황천락이다. 황천락은 좋아하는 물건들로 집을 알록달록 꾸미고, 언젠가 프랑스 파리의 거리를 걷게 되는 꿈을 꾸며 매 순간을 즐기고, 기록으로 남기는 사람이었다.


임약군은 모든 것이 마음 같지 않고, 불안하게 휘청거릴 때 아버지마저 잃게 되면서 크게 낙담한다. 결국 회사도 그만두고, 남자 친구와의 관계도 끝낸 뒤 오롯이 혼자가 된 임약군은 힘든 일이라곤 겪어본 적도 없다는 듯 마냥 즐거워 보이기만 하는 황천락을 못마땅하게 느끼면서도 호기심을 가지며 그의 삶의 기록을 유심히 들여다본다.

 

 

내가 얼마나 의존적인 사람인지 알게 되었다. 평소엔 일에 의존했고, 퇴근 후엔 남자 친구에게 의존했다. 그것도 여의치 않으면 잠에 의존했다. 사람이 할 일이 없어지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내가 혼자 있는 법을 모르는 걸까? 황천락, 넌 집에 혼자 있을 때 뭘 했니?


-임약군 대사 中

 

 

삶에 대한 고민은 누구에게나 있다. 황천락도 마찬가지였다. 임약군의 시선을 따라가 만난 황천락은 슬픔이란 게 무엇인지도 모른 채 그저 마냥 행복하기만 한 철부지로 보였지만 사실 황천락이 그렇게 자유롭게 살 수 있기까지 그 자리에서 견뎌야 했던 시선과 수많은 물음, 그리고 공들여 지은 자신만의 결론과 결정이 있었을 것이다. 당연한 사실들을 하나 둘 발견해가면서, 불편하게 느껴졌었던 그의 긍정 어린 시선이 어느 순간부터는 더욱 궁금해지기 시작한다.


황천락과 임약군의 차이는 어디에 있었을까? 둘 다 각자의 선택을 하고 각자의 몫을 각자만의 방식으로 견디고 있었을 뿐인데 임약군은 황천락을 보면서 무엇을 깨닫게 된 걸까?

 

 

엄마는 돌아가시기 전까지 계속 내 걱정만 하셨다. 나이는 많은데 결혼도 안 하고 직장도 변변치 않다고. ··· 하지만 어떤 때는 내가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자신이 하찮게 느껴질 때가 있는가? 그래서 난 모든 일을 기록하기로 했다. 사소한 일이라도 상관없다. 이 모든 게 내 인생이니까.


- 황천락의 일기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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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천락의 일기장엔 온갖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이 잔뜩 적혀 있었다. 어렸을 적 늘 쳐다만 보던 첫사랑을 다시 만난 이야기라던가, 초등학생 때 썼던 장래희망, 용돈을 모아 산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앨범과 같은 것들. 대단한 목표를 이루기 위한 장황한 계획과 다짐도 아니고, 그것 자체로 대단한 것이 되지도 못하는 그런 사소한 이야기들. 하지만 그런 이야기들이 모여서 내 하루가 되고, 일주일, 한 달, 일 년을 넘어 내 삶이 된다는 것을 황천락은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고민 없는 삶이 어디 있을까. 누구라도 각자의 선택에 따라 책임져야 할 삶의 무게가 따르게 되어 있다. 황천락의 일기와 그의 삶을 보면서 나는 어떤 선택을 하든지 내가 견지해야 할 삶의 태도를 상기한다. 집중하지 않으면 순식간에 지나치게 되는 작지만 소중한 순간들을 알아채고, 감사하고, 충분히 누릴 것. 또 늘 나 자신을 들여다볼 것.


열두 시 종이 치고 서른을 맞이하는 해가 되자마자 내가 원하는 이상적인 어른으로 변모하는 마법이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가 올 때까지 내게 주어진 방황의 시간을 충분히 견디고, 즐긴다면 지금은 상상조차 하지 못할 새로운 환경이 펼쳐지게 될 것이다. 현실의 어떤 일도 영화나 드라마처럼 아름다운 결말을 예고하지는 않겠지만, 내가 있는 지금 이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내가 하는 생각들을 정리해서 기록하면서 현재에 충실하면 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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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이 아니더라도. 오늘이 만족스럽지 않고, 매일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느낀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삶을 충분히 들여다보고 사랑하고자 하는 마음만큼은 충분히 가지고 있다면 더더욱 이 영화가 당신에게 새로운 관점을 제시해 줄 수 있을 것이다.

 

 

[고민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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