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불합격하셨습니다, 이유는 알려드리지 않습니다 [문화 전반]

차고 넘친 내 눈물은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글 입력 2021.03.15 19:41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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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합니다, 대면해서 바라본 당신은 우리에게 부합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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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내가 불합격한 한 면접 자료들

 

 

오늘날 나를 가장 많이 울리는 것은 '귀하의 뛰어난 역량에도 불구하고~'라는 상투적인 위로 문자이다. 소위 말하는 나의 '스펙'이 지원한 집단의 기준에 떨어졌는지는 몰라도, 최소한 나는 어딘가에 존재할 합격 소식을 받은 이들에게 밀렸다는 뜻이다.

 

슬프게도 나는 내가 어떤 부분이 부족해서 불합격했는지 피드백 받을 수 없다. 나를 뽑지 않은 것에 대한 반항이 아니라, 내가 또 다른 취업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서 무엇을 더 노력해야 하는지 알 수 없음이 막막하다는 말이다.


나는 1차 서류 지원까지는 합격하고 면접에서 떨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다면 이는 '서류를 통과할 정도로 우수한 스펙을 갖고는 있지만, 대면해서 바라본 당신의 모습은 우리의 기준에 어떤 이유에서든 부합하지 않습니다'라는 의미가 된다.

 

항상 매사에 모든 노력을 쏟아부었던 나는 합격 발표일만 기다렸다 안내창을 확인하면 무너져내린다. 도대체 왜? 내가 중심으로 잡은 키워드가 잘못되었을까? 아니면 어색했던 미소? 한때 나도 이제는 그곳에 속해있을 수 있다고 기대를 품었던 집단과 한순간에 동떨어지는 느낌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 그것은 마치 나의 노력이 부족했다는 사회의 비난처럼 느껴진다.

 

 

 

불안은 때때로 20대의 어느 순간을 흑백으로 만든다


 

학벌 전쟁이다. 스펙 전쟁이다. 취업 전쟁이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다수와 끝없이 경쟁하며 살아가고 있다. 나는 이 경쟁 사회에 단 한번도 불평한 적 없다.

 

누구나 살아남기 위해서는 타인을 이겨야 하고, 결국 나도 다른 누군가를 뛰어넘기 위해 스펙을 쌓고 있으니 그 제도를 비난할 자격은 없다. 나의 모든 발자취가 의미 있어야 한다는 부담은 화려해야만 할 나의 20대를 때때로 흑백으로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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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빛을 보지 못했던 면접, 서류 발표일 스케줄

 

 

불안감과 자괴감, 죄책감 그 오묘한 곳에서 나는 줄타기를 한다. 이제 자기소개서에 서두를 완성하는 것만으로도 두려움이 앞선다. 떨어지면 다음에는 무슨 점을 더 보완하고 어디에 지원하지? 아직 결과도 나오지 않았는데, 실패에 학습된 나의 머리는 아프게도 돌아간다.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는 취업과 스펙이라는 무게는 전공 강의 하나에도 필사적으로 목숨을 걸게 만든다.

 

 

 

결과가 명확한 노력이었다면


 

사람들은 가장 비참한 상황으로 '나보다 스펙이 적은 사람이 내가 떨어진 집단에 합격했을 때'를 꼽는다. 나 또한 그렇다. 떨려오는 어깨를 붙잡고 '그 사람은 내가 모르는 잠재력이 있을 수 있지'라고 스스로 달래보지만, 결국은 '더 많은 스펙이 의미가 없을 만큼 나의 시간은 무의미했구나'라는 자기비하에 다다른다. 사실상 모든 취준생들이 그럴 것이다.


나는 나를 합격시키지 않았던 모든 집단들을 원망하지 않는다. 다만, 대체 나는 어디로 가야 하는지 그들에게 배우고 싶다.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당신이라면 최소한 나에게 방향성이라고 알려달라고. 분명 나는 면접실에서 모든 것을 불태우고 나와 기대감을 품었었는데,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이냐고.

 

불합격의 이유를 알 수만 있다면 나는 그 점이 무엇이든 고쳐서 반드시 합격이라는 문구를 받아낼 것이다. 결과가 명확한 것이 노력이었다면 내가 흘린 눈물은 그렇게 차고 넘치지 않았을 것이다.

 

 

 

나의 모든 노력으로 이뤄낸 것 같다, 아마도


 

현재 노력파 연반인으로 주목받는 '제제'도 수많은 이력서를 작성했다가 떨어진 경험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것이 자신의 자존감을 갉아먹는 가장 큰 이유가 되었다고 훗날 말했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는 사실에 잠시 안도했지만, 나는 나와 같은 처지에 있던 그녀의 성공을 축하하면서도 과연 나도 그렇게 말할 날이 올까 다시 한번 부정에 잠식된다.

 

 


 

언젠가 나도 만족할 만한 곳에 합격하게 되면, '나의 모든 노력으로 이뤄낸 성과이다'라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불합격과 합격을 단락지었던 기준이 무엇이었는지는 나도 평생 모르리라 장담한다. 끊임없이 도전하면 한 번은 성공할 것이라고 말하지만, 그 하나하나의 도전들이 나에게는 이제 너무 아프다. 내가 상품이 되어 경쟁력이 떨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사춘기가 아닌 나는 속으로 삼키다가 터뜨리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당신에게 묻고 싶다. 당신도 나와 같은 세상에 살고 있는지, 합격 발표 당일이면 하루종일 노트북을 붙잡고 있다가 결과를 보고 눈물을 터뜨리는지. 나와 같은 사람들이 많다면 조금은 덜 외로울 것 같다. 취업이라는 문제는 친구들 사이에서도 예민한 대화 주제라 외동인 나는 마음 털어놓을 곳이 없다. 그저 불합격이라는 글자를 보면 속으로 삼키다가 터뜨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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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아픈 세상인가. 청년들에게 고독하기 그지없는 삶이다. 원하는 대학에 합격했던 과거의 나는 기뻐서 눈물을 흘렸다. 그 눈물 속에는 나의 노력이 인정받았다는 쾌감과 희열이 있었다. 그것이 내가 느낀 처음이자 마지막 보람이다. 그 뒤에는 또 다른 관문이 남아 있다는 것을 그때의 나는 몰랐다. 인생에서의 작은 실수가, 남들보다 늦은시작이 얼마나 큰 부담으로 다가오는지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다.

 

 

 

악착같이 세상에 붙어있어라


 

학생들에게 사춘기가 있다면, 나에게 이 시기는 무엇이라 이름 붙여야 할까. 1년 동안 미친 듯이 달려오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넘어져 헤매고 있다. 강의를 하나 들을 때 대외활동 지원서를 쓰고, 팀플 단톡에 답장을 할 만큼 무감각했던 나는 이제 하나를 완벽하게 끝내는 것도 지친다.

 

그래서 휴학을 고민하기도 했다. 그러나 가슴 깊숙이 그것은 또 다른 멈춤이라는 불안감이 나를 붙잡았다. 바쁘면 고민도 없어질 것이라는 나의 생각과는 다르게 이미 전원이 닳아버린 나는 여전히 불안했다. 쉬고 싶은데 쉴 만한 공간과 시간이 없었다.


 



 

정도는 다르겠지만 내 주변 친구들과 선배들은 나와 같은 고민을 한다. 당신도 그중 하나일지도 모르겠다. 슬프지만 결국 우리는 나아가야 한다. 아픈 것이 청춘이라는 말처럼 도전하고 실패하고 아파하고 이 모든 과정들을 수없이 반복해야 한다.

 

그런 당신들을 응원한다. 각박한 세상 속에서도 나는 언젠가 한 줄기 빛이 내려올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살아간다. 그러니 당신도 악착같이 세상에 붙어있어라. 그래서 일상 속 편안함을 즐길 날이 오는 순간 함께 기뻐하자. 우리는 모두 삶의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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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향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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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
  •  
  • 당근J
    • 같은 취준생으로서 정말 공감이 많이 되는 글이에요. 저도 수없이 면접에 탈락하면서 속으로 많이 울었지만 그래도 오늘도 나아가고 있네요. 이 시기가 지나면 분명 기뻐서 우는 날이 다시 올 것이라 믿습니다. 화이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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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예그리나
    • 2021.03.20 10:3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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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고
    • 당근J공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속으로 많이 울었다는 말에 저도 가슴이 아프고 많이 공감이 되네요 당근J님과 저 모두 이 시기가 얼른 끝나고 기뻐서 우는 날이 오기를 기도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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