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드라마 속 사람들 #1] 달미는 왜 도산에게 갔을까, 드라마 '스타트업' (1) [드라마]

글 입력 2021.03.14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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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드라마 '스타트업'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 이해를 돕기 위해 해당 드라마의 대사 분량이 많습니다.

* 다만 대사 내용은 실제 대본집과 연관이 없으며, 필자가 대사를 옮기고 지문을 임의적으로 추가하여 만들었음을 밝힙니다.

 

 

[크기변환]스타트업 포스터.jpg

 



작년 10월에 방영한 드라마 '스타트업'.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신생 창업기업을 뜻하는 '스타트업'을 시작하려는 등장인물들이 모여 인공지능을 활용한 사업들을 준비하고, 성장해가는 내용을 담은 이야기이다. 드라마 공식 소개에는 '한국의 실리콘 밸리에서 성공을 꿈꾸며 스타트업에 뛰어든 청춘들의 시작(START)과 성장(UP)을 그린 드라마'라고 나와 있다.

 

주요 등장인물은 다음과 같다.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이자 '삼산텍'이라는 작은 스타트업을 창업한 '도산'. 아버지와 언니와 도산의 영향을 받아 창업의 길로 뛰어든 '달미'. 달미의 언니이자 성공한 스타트업의 대표가 된 '인재'. SH 벤처캐피털 수석팀장이자 샌드박스에서 삼산텍의 멘토인 '지평'. 그리고 장르는 로맨스이다.

 

당시 한지평-서달미-남도산의 삼각관계를 둘러싼 사람들의 의견이 굉장히 분분했던 것으로 나는 기억한다. 특히 다른 드라마에 비해서 '서브남주'인 지평에 대한 강한 지지가 실렸다. 그도 그럴 것이, 박혜련 작가님이 서브 캐릭터를 서사와 매력이 있게 너무 잘 쓰셨다. '스타트업'으로 한지평 역의 김선호 배우가 더욱 뜨기도 했다. 한지평을 옹호하던 분들은 이런 생각을 했을 수도 있겠다. '아니 내가 서달미였으면 한지평한테 갔겠다! 돈 많지, 능력 좋지, 도산이 3년간 미국 가 있는 동안 옆에 있어줬지, 무엇보다 과거 편지의 진짜 주인공이지!'

 

나도 '한지평'이라는 캐릭터에 굉장히 애정이 있었다. 사실, 내 성격은 남도산보다는 한지평쪽에 가까워서 한지평이 측은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한편으로는 달미가 결국 도산에게 마음이 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스스로 납득하게 됐다.

 

 

 

#1. 달미가 도움이 필요할 때 먼저 손 내밀었던 도산,

너무 많은 변수들 때문에 후회할 수밖에 없었던 지평.


 

 

도산의 서사

 

 


 

도산     저기, 달미야. 너는 내가 왜 좋아?

달미     어? 뭐야... 갑자기.

도산     대답해 줘, 내가 왜 좋은지.

달미     음... 그거야 넌, 내 첫사랑이고...

도산     (내레이션: 내가 아니다) 그리고?

달미     네 편지가 오랫동안 나 위로해 줬고.

도산     (내레이션: 내가 아니다) 그리고 또?

달미     음...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근사하고 멋지고.

도산     (내레이션: 이것도... 내가 아니다) 그리고 또?

달미     또? (잠시 고민하다가) 음... 손이 크고 멋있어.

 

E04 42:38~44:07

 

 

드라마 초반부의 서사는 확실히 지평에게 쏠려있을 수밖에 없다. 도산과 달미의 대사처럼, 어렸을 적 실제로 달미와 편지를 주고받았던 달미의 첫사랑은 사실 도산이 아니라 지평이다. 지평은 어린 시절, 달미의 할머니인 원덕과의 인연이 있었다. 그리고 원덕의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 '남도산'이라는 이름으로 연애편지를 지어내 달미와 주고받았다.

 

그리고 달미는 15년 전 자신과 편지를 주고받던 도산을 찾기로 한다. 어렸을 적 부모님의 이혼으로 멀어진 엄마와 언니를 만나러 가는 네트워킹 파티 자리에서 기가 눌리지 않기 위해. 그 소식을 들은 원덕의 부탁으로, 편지의 '진짜' 주인공인 지평은 실제 남도산을 찾아 하루만 편지 속 남도산이 되어 달라고 부탁한다. 그 시점부터 달미와 도산, 지평의 인연은 꼬이기 시작한다.

 

드라마에서는 달미가 도산의 '손'을 좋아했음을 자주 강조한다. 나는 이 '손'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과연 달미가 단지 도산의 손이 크고 멋있다는 이유로 도산을 좋아하게 되었을까.

 

 

달미     (술 취해서) 그때처럼 와 주면 안 돼? 왜, 그 네트워킹 파티.

 내 인생에서 가장 초라했던 시간을 지워 줬거든.

그때 넌... 내 트로피였고, 자존심이었고, 내 위로였고, 날개였고, 내 꿈이었어.

 

E10 51:52~53:08

 

 

달미는 도산을 만나려 애쓰지만, 결국 실패한다. 그리고 자신의 언니가 개최한 네트워킹 파티에 참석한다. 달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 때 빼고 광내서 네트워킹 파티에 입장했지만, 주변 사람들은 너무 화려해 보이고, 이미 다 '완성된' 사람들 같아 보이고, 그나마 마지막 자존심을 지켜줄 도산이도 없다.

 

나는 저 느낌을 너무 잘 안다. 다 잘나고 멋있는 사람들 한가운데서 나 혼자 미숙하고 동떨어진 느낌. 내가 발 들인 새로운 세계는 나만 빼고 이미 다들 너무 완벽한 사람들처럼 보인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데.

 

그때 갑자기 등장한 도산이 달미에게는 정말 구원자처럼 보였을 것이다. 낯설고 넓은 외국 땅에서 한국인을 만난 기분이었을 테다. 그게 첫 만남이었는데, 달미가 도산을 어떻게 잊을까. 아마 지평과 1년간 주고받은 편지로 받은 위로를 다 합쳐도 그날만큼은 못 했을 것이다.


 

도산은 삼산텍 팀원들에게 '달미가 내가 좋다고 꼽은 이유 중에 진정 내 것이라 할 만한 건 손밖에 없다'라고 말하며 자신감 없이 풀 죽어 있다.

 

용산     도산아. 인류가 네 발로 걷다가 직립을 하면서 뇌가 발달하기 시작해, 왜? 앞 발이 할 게 없다 보니까 이 손이 된 거지. (메모지를 떼내며) 손을 쓰면서 인간은 뇌가 발달하고 도구를 만들잖냐. 문화, 역사라는 게 생기고. 그렇지?

도산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

철산     아따, 그냥. 공돌이 말을 공돌이가 못 알아먹으면 쓴대? 긍께, 겨우가 아니다.

손이 다다. 손이 장땡이다. 그 말 아니겄냐.

 

E05 2:58~4:28

 

 

도산은 사실 네트워킹 파티 때 달미에게 보여준 모습처럼 잘나가는 회사 대표가 아니었고, 자신의 회사는 스타트업을 지원해 주는 '샌드박스'에 와서 이제 막 시작하려는 단계임을 달미에게 들켜버린다. 그럼에도 달미는 도산에게 화도 내지 않고 고맙다고 한다.

 

 

 

 

도산     많이 실망했지?

달미     아니, 고마워. 내가 대표가 될 자격이 있다는 것도 고맙고.

(도산에게 다가서며) 도산아, 삼산텍 CEO로 날 영입해 줄래?

인재     그래? 음, 나도 비슷한 제안을 할까 하는데. 마침 우리 팀 개발자 자리가 비었거든. 당신들을 영입해 볼까 하는데 어때요? 보니까 경력이 빈약하네. 대표마저 경력이 빈약하면 서로에게 마이너스 아닌가? 선택해요. 납니까, 서달미입니까?


당황한 삼산텍 팀원들이 도산을 끌고 간다.


(중략)


도산     야 니들, 을로 일하기 싫다며. 달미는 우리한테 '대표로 영입해 달라' 그랬고 원인재 씨는 '우리를 영입한다' 그랬어. 아, 무슨 차이인지 알겠어?

 

(중략)

 

도산     (손을 내밀며) 우리 삼산텍 CEO가 돼 줄래?

달미     (도산의 손을 물끄러미 쳐다보다 도산의 손을 잡는다) 기꺼이.

 

E04 1:09:55~1:14:40

 



이후 달미는 할머니와 통화하는 장면에서 이렇게 말한다. 다음 대사를 살펴보면 도산이 달미에게 손을 내민 행동이, 달미에게 얼마나 큰 의미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달미     어~! 내 손을 잡았다고, 내 손을.

원덕     뭔 소리야? 손잡은 게 뭐.

달미     아니, 언니가 도산이 앞에 딱 버티고 서서 그러는 거야. '선택해요, 납니까 서달미입니까?' 그랬더니 도산이가 뭐랬는지 알아? '우리 삼산텍 CEO가 돼 줄래?'

(기뻐서 소리 지른다) 아~~~!! 그러면서, 언니 말고 나한테 손을 탁! 내미는데!

할머니... 그 손이, 그 손이... 세상 멋진 거야.

원덕     별나라... 손이 멋있어 봤자지.

달미     멋지더라고. 내가 뭐라고. 내가 뭐라고 언니 말고 내 손을 잡냐고.

 

E05 2:58~4:28

 

 

달미와 도산은 그렇게 손 내밀어 서로를 선택한 관계가 된다.

 

*

 

 

지평의 서사

 

 

 

(어린 지평의 편지) 늘 곁에 있을 줄 알았어. 함께 있는 시간이 당연해서, 귀한 줄 몰랐어.

모든 순간이 선물이었는데, 있을 때 더 잘해 줄걸...

요즘 난 1분 1초가 온통 후회뿐이야. 그러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

지금 이 1분 1초도 선물 같은 시간인데 이러다 또 후회하겠지...

겨울엔 푸르렀던 여름을, 여름엔 새하얗던 겨울을 그리워하며.

그래서 난 결심했어. 더 이상 후회로 나의 지금을 채우지 않기로...

 

E01 31:35~32:35

 

 

아무리 가상의 이름으로 지어내 쓰는 편지라 해도, 편지의 내용에는 글을 쓰는 이의 진심이 담길 수밖에 없다. 이때 지평의 편지는 달미에게도 큰 위로가 됐겠지만, 동시에 어린 지평에게도 익명으로나마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가 아니었을까. 여기에서 어린 지평은 털어놓는다. 더 이상 후회할 일로 지금을 채우지 않기로 결심했다고.


그러나 지평이 나중에 달미를 만나게 됐을 때, 그는 달미에게 먼저 다가가지 못해 후회할 일로 가득 찰 것이다.

 

 

원덕     얘기 많이 들었어요. 우리 달미한테 그렇게 잘해 준다고. 아주 귀인이야, 귀인.

지평     (멋쩍게) 아하, 그게...

달미     엄밀히 말해서 도산이한테 귀인이지. 나는 그냥 덤으로 챙겨 주시는 거고.

지평     덤 아닌데. 누굴 덤으로 도와줄 만큼 나 인심 좋은 사람 아닙니다. 한가한 사람도 아니고.

달미     그럼 왜 저까지 챙겨 주시는데요?

지평     (테이블에 묘한 긴장감이 생긴다. 달미를 잠깐 바라보다) ...회수하려고. 나 투자자입니다. 공짜로 도와주는 거 아니니까 나중에 열 배로 갚아요.

 

E07 17:06~18:04


 

달미     근데 진짜, 이 근처에는 무슨 일이에요?

지평     뭐, 여기... 여기 워낙 자주 와요.

달미     가평에 자주 올 일이 뭐가 있어요?

지평     있어요, 저, 저기... (운전하다가 창문 밖 '잣칼국수' 간판이 눈에 띈다.) 잣칼국수. 아, 내가 잣칼국수를 워낙 좋아하거든요. 매주 와요, 매주. (주절주절) 가평 하면 잣칼국수거든요. (멋쩍게 숨을 후 내뱉는다)

달미     (그런 지평을 보며 그런가...? 의아하게 쳐다본다.) 아...

 

E08 33:45~35:34

 

 

어쩌면 지평의 서사를 탄탄하게 해 준 그 '편지'들이, 지평 본인에게는 걸림돌이 되었을 수도 있다. 지평이 처음 거짓말을 하게 된 이유는 자신의 은인인 달미 할머니의 부탁을 지키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드라마 초반부의 지평은, 자신이 달미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계속 인정하지 못한다. 인정할 수가 없다. 할머니의 소원을 지켜드려야 했으니까.

 

한 번의 거짓말은 계속해서 거짓말을 낳게 된다. 스타트를 잘못 끊은 지평은, 이 이후에도 그저 '남도산의 친한 형', '삼산텍 멘토'로서만 달미 곁에 남게 된다. 달미가 왜 자신을 챙겨주냐고 묻자 자신은 '투자자'라고 둘러댄다. 투자 설득을 위해 가평까지 가서 고생을 한 달미를 데리러 가서도 '가평 잣칼국수를 좋아해서' 우연히 이 근처에 있었다고 거짓말한다.

 

드라마 초반 부분에서, 지평도 실제 남도산을 찾아준 뒤 달미가 계속 마음에 걸려서 네트워킹 파티로 발걸음을 돌린다. 만약 그때 달미가 만난 게 도산이 아니라 지평이었다면 어땠을까? 지평이 사실 남도산 이름으로 편지를 쓴 건 나였다고 밝혔으면 어떻게 됐을까? 도산이 달미를 먼저 좋아했든 달미가 편지 주인을 도산으로 오해하고 있든 상관없이 지평이 조금만 더 일찍 달미를 좋아한다고 솔직하게 인정하고 털어놨으면 결말이 조금은 달라질 수 있었을까? 멘토로서, 가평에 자주 오는 김에 데리러 온 게 아니라 달미가 좋아서, 달미가 신경 쓰여서 왔다고 했다면? 이 드라마 같은 연출과 타이밍이 과연 현실에서는 정말 일어나지 않는 일인 걸까?

 

그러나 지평이 자신의 마음을 깨닫고 진실을 털어놓으려 할 때쯤엔, 그에겐 이미 변수가 너무 많았다. 극 후반부에 달미에게 솔직하게 고백하는 지평의 모습을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지평은 자신의 성격이 소심해서 달미에게 솔직하게 말하지 못한 게 아니라, 타인을 너무 많이 배려해서 진실을 말하지 못했던 거라고. 달미와 할머니가 얼마나 상처받을지 알기에 자신의 마음을 쉽사리 인정하고 밝힐 수가 없었다. 그냥 '나만 양보하면 되겠지, 나만 포기하면 되겠지.'라고 생각하고 지평은 자꾸 자신의 마음을 숨기게 된다.

 

 


 

원덕이 선주시 편지함에 있는 편지를 아예 도산이한테 줘서 확실하게 달미를 속이자고 얘기한다.


지평     왜 그렇게까지 해야 되는데요?

원덕     그래야... 도산이랑 달미랑 안 다치니까.

지평     저는요?

원덕     네가 왜?

지평     제가 싫어요. 저 더 이상 달미 속이고 싶지 않아요.

원덕     뭔 소리야, 그게?

지평     (싫증 난다는 듯이) 아 그만할래요. 가서 도산이 가짜다, 속여서 미안하다 얘기할 겁니다.

원덕     야 너 저번에 분명히 달미 실망시키기 싫다고...

지평     예, 싫어요! 근데 지금 이대로는 더 싫어요.

원덕     (당황하며) 지평아...

지평     죄송해요, 할머니. 그때 제가 거짓말했어요. 저, 달미 좋아합니다.


천둥이 우르르 울리고, 비가 후드득 떨어진다.

지평의 신발 옆에 떨어지는 빗줄기가 화면에 잡힌다.


원덕     네가 이러면 안 되지...

지평     왜 안 되는데요?

원덕     왜라니. 달미랑 도산이랑 지금 멀쩡하게 잘 사귀고 있는데...

지평     제가 안 멀쩡해요! 신경 쓰이고, 욕심나고, 억울하고. 나 이게 지금 뭐 하는 짓인지...

원덕     그럼 그때 얘기하지 그랬냐.


(중략)


(지평의 문자)     화내서 죄송해요. 제가 선주시에 다녀올게요. 가서 달미 편지 찾아다가 도산이에게 전달하겠습니다.

 

E09 1:02:43~1:03:59





그렇게 본인의 마음을 인정하고 밝히고 나서도, 지평은 할머니와 달미를 위해 한 번 더 자신의 마음을 양보하게 된다. 선주시에 있는 편지함에 가서 달미가 써놓은 마지막 편지를 읽는다. 달미는 만약 지평의 편지가 없었다면, 자신에게 봄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한다 말도 전하지 못한 채 떠나보내는 후회란 계절'로 남았을 것이라고 적었다. 그 말이 마치 그 편지를 읽고 있는 지평을 의미하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지평이 할머니에게 보낸 문자를 우연히 잘못 전달받게 된 달미도, 편지함이 있는 곳에 가서 편지의 주인이 지평이었음을 마침내 깨닫는다.


 

(달미의 편지)     많은 것을 잃어가기만 했던 그 해 봄, 네 편지가 없었다면 나에게 봄은 어떤 계절이었을까. 피는 꽃보다 져버린 꽃들을 아쉬워하는 쓸쓸한 계절이었을 거야.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한다 말도 전하지 못한 채 떠나보내는 후회란 계절로 남았을 거야.

 

E09 1:13:21


 

(지평 내레이션) 언젠가 나를 알아주길 바랐고, 나를 봐 주길 바랐는데, 이런 눈은 아니었다. 후회는 늘 뒤늦게 찾아온다.

 

E10 0:55~2:18

 

 

단 한 번의 거짓말. 도산도, 지평도. 도산은 편지의 주인이 본인이라는 거짓말, 지평은 자신이 달미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거짓말. 그 하나의 거짓말이... 계속 거짓말을 낳고, 관계를 바꾸고, 운명을 바꾼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이다. 좋아하는 걸 좋아한다고 하지 못하는 거짓말. 그건 어떻게든 우리를 불행하게 만든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좋아한다고 하지 못하는 거짓말.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좋아한다고 할 수 없는 거짓말. 그러나 좋아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스스로 인정하고, 밖으로 공표하는 것은 그리 쉽지가 않다. 지평은 그 말을 하기까지 드라마로 9화가 걸렸다. 그리고 무언가를 좋아하는 마음을 직접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더 어렵다. 나는 지평이 '저 달미 좋아합니다'라는 한마디를 하기까지 얼마나 힘들었을지 잘 안다. 그래서 내가 지평에게 더 이입을 했던 걸까?

 

현실적인 사람은 현실의 벽에 가로막혀 무턱대고 좋아하는 것에 뛰어들지 못한다. 이건 이래서 안 되고, 저건 저래서 안 되고. 항상 지평을 가로막는 벽이 있었다. 그 벽에도 불구하고 지평이 조금만 더 먼저 솔직하게 자신의 진심을 털어놨더라면. 지평도 조금은 덜 후회하지 않았을까?

 

반면, 도산은 행동부터 시작했다. 심지어 편지가 자기 것이 아님에도, 연애가 자신이 잘하는 분야가 아님에도. 그래서 속으로는 계속 자신감이 없고 달미를 잃을까 봐 불안해했지만, 도산은 달미가 진실을 깨닫고 본인에게 실망하게 되는 그 순간들에도 항상 달미에게 먼저 다가가 사과하고 손 내민다. 삼산텍이 그렇게 대단한 회사가 아님을 들켰을 때도, 편지의 주인이 자신이 아님을 들켰을 때도 도산은 그랬다.

 

 

드라마 4화 무렵 삼산텍과 서달미, 원인재가 샌드박스에 입주한 후부터, 달미와 도산의 관계는 '동업자'가 되었고, 달미와 지평의 관계는 '멘토와 멘티'가 되었다. 이때부터 지평은 달미와 한 발짝 더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글이 너무 길어진 관계로 이 부분의 서사에 대해서는 다음 글을 기약하며, 이만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다.

 

 


아트인사이트 명함.jpg

 

 

[이채이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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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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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곰람끼
    • 안녕하세요! 에디터 고연주입니다.

      드라마를 챙겨보지 못하는 편인데, 이렇게 정리해주신 것을 보니 전반적인 내용이 잘 이해되었습니다.

      저는 이 드라마를 보지 못했지만 친구가 ‘지평앓이’ 하며 불만을 털어놓던 기억이 납니다. 글을 읽으니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알겠네요.

      지평의 서사가 안타까움을 불러일으키는 데는 그가 반복되는 후회를 함으로써 가상의 상황을 떠올리게 만드는 인물이라는 점이 크게 작용할 것 같습니다.

      글을 읽으며 채이님의 시선을 따라 지평이 안타깝다가도 결국 달미의 선택이 이해되었고, 이어질 이야기가 궁금해졌습니다. 그래서 써주신 다음 얘기들도 자연스레 읽어보았습니다.

      동업자로서 어떤 일이든 함께해주는 도산과
      늘 미안하고, 감사하게 만드는 지평.

      실패하더라도 진실했던 도산과
      달미가 상처받을까 진실을 숨겼던 지평.

      모두의 입장이 이해되기에 더욱 몰입과 공감이 되는 것 같습니다.


      좋아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하기 어렵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사소한 취향이나 물건조차 선호를 확실히 드러내기 어려운데, 듣는 이가 사람이라면 그 단순한 말 한마디가 더 어렵게 되죠.

      하지만 좋아하는 일에 대해서는 솔직해야 하는 것 같습니다. 설사 나중에 싫어지더라도 현재 느끼는 감정에 최선을 다하는 것, 지평의 후회는 이것을 하지 못함에서 온 거겠죠.

      좋은 글 감사합니다. 덕분에 재밌는 드라마 한 편을 다 본 기분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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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leechae_lope_da
    • 2021.04.19 23:25:33
    • |
    • 신고
    • 곰람끼안녕하세요, 에디터 이채이입니다.

      이어지는 다음 얘기까지 읽어주셨다니 정말 감사합니다.
      이 부분은 사실 제가 분량 조절을 잘 했어야 하는 부분인데 그러질 못해서
      의도치 않게 3회 분량의 글이 나왔습니다 ^^;

      재밌는 드라마 한 편을 다 본 것 같다는 칭찬이 가장 기분이 좋았습니다.
      독자분들로 하여금 느끼게 해드리고 싶었던 부분이 바로 그 부분이었거든요.
      가독성 있고 흥미롭게 글을 진행하면서도
      최대한 드라마를 시청하지 않은 분들도 이해하실 수 있도록 글을 쓰고 싶었습니다.

      또한 인물들의 서사가 잘 느껴질 수 있도록,
      그리고 지평과 도산 두 입장이 모두 이해가 되도록 글을 쓰고 싶었습니다.
      고민하던 이런 부분들이 다 잘 전달되었다니 글을 쓴 사람의 입장으로서 정말 뿌듯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모두 좋아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더 솔직하게 말하고
      그로 인해 더 행복한 나날들을 보낼 수 있기를 고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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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그라미
    • 안녕하세요 컬쳐리스트 서지유입니다.

      재미있게 봤던 드라마를 글로 다시 볼 수 있어서 좋았어요.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한다 말도 전하지 못한 채 떠나보내는 후회란 계절로 남았을 거야. 후회는 늘 뒤늦게 찾아온다."

      곱씹을수록 좋은 대사인 것 같아요. 지평이의 짝사랑에 '차라리 고백하고 차이는 게 낫지, 어떡한담ㅜ.' 이러면서 봤던 기억이 나요. 애닳는 그 마음을 참고, 가지고 있기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기도요.

      저의 모습을 반추해보면, 행동부터 했던 도산이 같을 때도 있었고, 때로는 마음앓이하는 지평이 일때도 있었어요. 달미를 향한 두 사람의 감정은, 결국 어느 누구든 가지고 있는 모습인 것 같아요.
       
      단지,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만은 참으로 아름답고 예쁘다는 사실은 변치않을테니, 그 소중한 감정만으로도 기분이 몽글해집니다.
      말하고, 솔직하게 드러내는 게 용기를 필요로하는 일이기에 지평을 응원했고, 표현하는 짜릿함을 전해줬던 도산이가 그립네요.

      몇 번의 생각이 이어졌는데, 결국 용기있게 시도하는 것만큼 후련하고 좋은 건 없더란 생각이 듭니다.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을가질 수 있는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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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leechae_lope_da
    • 2021.04.19 23:28:21
    • |
    • 신고
    • 동그라미안녕하세요, 에디터 이채이입니다.

      서지유님께서도 스타트업이라는 드라마를 재미있게 보셨군요!^^
      저도 달미의 편지 부분 대사를 정말 좋아합니다.

      그렇죠, 우리 모두 도산이도 될 수 있고 지평이도 될 수 있습니다.
      특히 도산이에게도 초점을 맞춰주시고 표현하는 짜릿함을 전해줬던 도산이를 기억해 주셔서
      왠지 저도 덩달아 기쁜 마음이 듭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내일은 더 용기 있게 시도할 수 있는 하루가 되시기를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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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마
    • 안녕하세요 에디터 박정민입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스타트업’드라마는 본적이 없었는데 에디터님의 글로 좋은 드라마를 알게 되었네요!

      남들을 배려하다가 달미를 잃는 지평이에게 사람들이 많은 공감을 한 것이 이해가 가는 것 같아요.

      많은 사람들이 지평과 같은 경험을 해봤을 것 같아요. 저 또한, 용기를 내서 상대에게 진심을 전해야하는 순간에, 혹은 어떤 일에 결단을 내야하는 순간에 내가 이럴 자격이 있을까? 내가 말을 걸어서 싫어하면 어떡하지? 하는 우려, 걱정 등으로 마음을 접는 순간들이 많았는데,

      그런 경험의 결론은 후회밖에 안 남았던 거 같아요. 결국에 나보다 더 모자라더라도 그 순간 한번 용기를 내본 사람이, 비록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그 경험으로 더욱 성숙해지고 단련이 되는 것 같더라구요.
       
      어차피 모든 변수를 내가 통제할 수 없고, 그 결과도 내 손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면, 조금 엉망진창이더라도, 한번 저질러 보는게 좋다는 생각을 해봤어요.

      더불어 아트 인사이트에서 보내주셨던 ‘단호한 행복’의 지침이 생각나네요.

      우리가 바꿀 수 없는 것들에 마음을 쏟지 말고, 우리가 바꿀 수 있는 우리의 내면(의지, 집중)에 집중을 하라는 구절이었습니다.

       일의 결과가 결국 행운의 여신 뜻이라면, 우리는 결과가 아니라 일의 실행, 실행에 필요한 의지를 갖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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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eechae_lope_da
    • 2021.04.19 23:3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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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마안녕하세요, 에디터 이채이입니다.

      댓글들을 읽다 보니 많은 분들이 지평의 서사에 공감하고 안타까워했다는 것도 알게 되고,
      왜 지평에게 더 공감이 가는지 그 이유도 점점 더 선명해지는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도산이처럼 바로 행동으로 이어지기는 쉽지가 않죠.^^

      '우리가 바꿀 수 없는 것들에 마음을 쏟지 말고, 우리가 바꿀 수 있는 우리의 내면에 집중을 하라'
      정말 좋은 말이네요. 비슷하게 저는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는 말도 좋아합니다.
      인간으로서 해야 할 일을 다하고 나서 하늘의 명을 기다린다는 뜻이죠.
      반대로 말하면 하늘의 명을 바란다면 인간도 그만큼의 도리를 해야 한다는 뜻 아닐까 짐작해봅니다.

      단호한 행복이라는 책도 꼭 한번 읽어보고 싶네요.
      드라마와 관련해서 또 다른 콘텐츠를 공유해 주셔서 제 세계가 한 번 더 확장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아울러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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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코빵
    • 안녕하세요, 에디터 조민영입니다.

      이 드라마를 항상 제때 못 보고 띄엄띄엄 봤었는데, 이렇게 대사와 함께 정리해서 올려주시니 너무 재밌게 잘 봤던 것 같습니다.

      저도 이때  서브 주인공이었던 김선호한테 빠지고 이입했어서 그런지 , 마지막 결말이 조금 아쉽게 느껴졌기도 했었는데 그럼에도 이 글을 보면서 도산에게 갈 수 밖에 없었겠구나 싶은 감정이 들었습니다.

      글을 읽으면서 '단 한번의 거짓말이 거짓말을 낳고 관계를 바꾸고 운명을 바꾼다.'는 표현이 굉장히 인상깊었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머릿속에 계속 맴돌아 생각하면 할수록 서브 남주가 안타까워졌던 것 같습니다. 분명 달마를 위해 뒤에서 늘 최선을 다했었지만 이루어지지 못한 게 마음이 아팠는데 그럼에도 달미가 도산에게 갈 수 밖에 없었던 이유도 문득 이해가 갔던 것 같습니다. 어찌됐든 거짓말을 했지만, 진심을 담아 용기있게 용서를 구하고 계속해서 손 내밀고 행동으로 보여주는 도산을 나라도 뿌리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에디터님이 공감하신 부분들과 전체적인 드라마 속 대사, 대략적인 줄거리를 함께 읽으니 더더욱 즐겁게 이입해서 보게되었는데, 에디터님의 다른 글들도 궁금해지게끔 좋은 글을 써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에디터님의 다양한 글들도 즐겁게 향유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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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eechae_lope_da
    • 2021.04.19 23:3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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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코빵안녕하세요, 에디터 이채이입니다.

      우선 드라마를 띄엄띄엄 보시고 지평에게 이입했음에도 불구하고 (저도 매우 이입했었습니다^^;)
      글을 읽고 달미가 도산에게 갈 수밖에 없던 이유를 공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 의도가 정확히 전달된 것 같습니다!

      인상 깊었던 표현도 말씀해 주시니
      여러 번 고민하고 다듬었던 부분들이 잘 전달된 것 같아 보람을 느낍니다.
      저의 다른 글들도 궁금해지셨다니 감사드리고 앞으로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저도 에디터님의 '나의 아저씨' 글을 읽고 에디터님의 다른 글들도 매우 궁금해졌습니다.
      특히 영화에 대한 글이 많아서 흥미가 갔습니다. 저 또한 앞으로도 에디터님의 글을 기대하고 응원하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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