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자유분방한 멋을 담아낸 - 스트릿 노이즈 STREET NOISE

정해진 법칙은 없어
글 입력 2021.03.14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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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219_[Street-Noise]포스터-닉워커.jpg

 

 

 

P.O.S.T


 

전시를 보기 위해 잠실로 향했다. 그동안 롯데월드몰에 자주 갔지만, 전시장이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검색해보니 요근래에 새로 생긴 것 같았다. 남녀노소 수많은 사람이 오고가는 복합 쇼핑센터에 그래피티를 주제로 전시가 열리니 과연 어떨지 궁금했다.


주로 길거리를 거닐다 벽면에 그려진 그래피티를 봤지 전시장에서 본격적으로 그래피티를 감상한 적은 처음이었다. 그래서 거리의 예술, 그래피티를 어떤 식으로 전시해 놓았을지 기대가 되었다. 평일 저녁 전시가 끝나기 전에 서둘러 간 곳은 힙한 거리의 모습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 했다.


복합 쇼핑센터에 그래피티가 있을 법한 공간으로 꾸며 놓은 전시장은 앞으로 보게될 전시에 대한 기대감을 고조시켰다. 스트릿 노이즈 전시에서 가장 특이하게 느꼈던 점은 전시장 이외에 아트숍처럼 꾸며놓은 공간이 따로 마련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 공간은 자유로운 구경과 입장이 가능하며 아이돌 굿즈, 문구류, 인테리어 용품 등 꽤 다양한 굿즈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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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이 공간이 전시장인줄 알고 티켓을 어디서 받아야 하는지 직원에게 물어본 일도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티켓을 수령하고 전시를 보러 들어갔다. 귓가에 들리는 힙한 음악과 그래피티의 거리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전시장에 들어선 순간 그 시간만큼은 그래피티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 수 밖에 없었다.

 

 

 

내 맘대로 그리는 거야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익숙한 고양이 펠릭스는 전시가 시작됨을 알리는 마스코트였다.

 

<고양이 펠릭스>가 인기를 얻은 가장 큰 이유는 그 내용이 교육적이거나 교훈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도덕적인 잣대로 펠릭스의 행동을 규제하거나 규정 짓지 않는다. 펠릭스는 어디든 갈 수 있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 그 영역이 상상의 영역이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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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그래피티의 모토와 일치한다. 그래피티 또한 아무런 제약과 규제없이 자유로운 예술 세계를 그려낸다. 그래피티는 누군가를 가르치려는 그림이 아니다. 그저 자신을 표출하고 표현하는 그림이다. 그 세계만큼은 그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것이다.


작품은 전체적으로 익숙하고 눈이 즐거웠다. 고양이 펠릭스, 오바마, 샤넬, 오드리 헵번, 메릴린 먼로 등등, 받아들이기 어렵지 않았다. 공부를 위한 작품이 아니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된다. 즉 작가가 표출한 작품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이해하면 된다. 그것이 그래피티다.


전시장에서 본 그래피티는 크고 화려했다. 그래서 좋았다. 어울리지 않는 색의 조합으로 만들어낸 작품은 멋있었다. 거리의 예술이 그러하다. 전혀 어울리지 않는 조합으로 획기적인 작품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림을 공부한 사람의 눈으로 봤을 땐 이해가 되지 않을 수 있더라도 그래피티는 누군가의 이해를 바라고 그린 것이 아니다. 자신의 신념을 가지고 그것을 그려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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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작품 중 명품 브랜드가 흘러내리게 표현한 작품이 기억에 남는다. 이 그림을 그린 작가 제우스는 비가 많이 내리던 밤, 창밖의 수많은 광고판 로고가 비를 맞아 빗줄기에 흘러내리는 것 같은 모습을 보고 영감을 받아 만들었다고 한다. 명품 브랜드라는 이름뿐인 허울에 사로잡힌 물질 만능주의와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있다.


그래피티의 매력은 작품에 제약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피티의 세계에선 주류를 비판하고 사회를 풍자한다. 아니면 나만의 예술을 만들거나 정치 선전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사회를 비판하기도 하지만 사회를 사랑하기도 한다. 규정된 것이 없다. 그래서 그라피티의 세계는 무궁무진하다.


마지막으로 그래피티는 반항적이다. 반항은 청춘, 젊음이 따라온다. 그래서일까? 그래피티는 청춘의 전유물이다. 작품은 눈에 띄게 화려하고 그림을 그리는데 정해진 방식은 없다. 사회를 비판하기도 하고 사회를 사랑하기도 한다. 거리의 예술 그래피티는 그렇게 청춘과 함께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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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NG


 

이번 전시는 힙하고 영한 기운이 가득했다. 그래서 전시를 보는 동안 자유로운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는 삶을 살다가  사회의 규정과 제약을 신경쓰지 않고 자신을 마음대로 표출하는 그래피티를 보는 것 만으로도 해소가 되었다.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 속 사회가 정한 규칙과 약속을 지키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이러한 규칙과 약속이 어느 순간 자기 자신의 개성을 없앤다. 나를 우선하기 보단 사회에 맞춰 살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자신의 개성을 죽이고 살게 된다면 그것은 인생의 색을 빼앗기게 된다.

 

이번 전시를 보는 동안 잠시 잊고 있었던 나 자신의 개성에 대해 생각해 볼 수있었다. 가지각색 다양한 색깔이 가득찼던 그 순간을 말이다. 그래피티는 자신만의 규칙과 약속이 있다. 그리고 그것을 자유분방하게 표출한다.

 

그것이 어떤 색으로 만들어질지, 어떤 방식, 어떤 도구로 그려질 지는 모른다. 그러나 남들의 시선을 신경쓰지 않고 나만의 것을 만드는 것, 그래피티의 모토로 나도 나만의 그래피티를 만들어보고 싶다.

 

 

[나시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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