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소년 아메드(2019) [영화]

글 입력 2021.03.11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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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드는 절박하다. 절박하게 믿는다.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일까.

 

종교적 극단주의에 빠진 아메드의 믿음은 그만큼 열성적이다. 정해진 시간마다 깔개를 깔아 정성스레 기도를 드리고 율법에 따라 반팔도 입지 않으며, 여자와 코란을 논하지 않고 유대교와 기독교 등의 타 종교는 적으로 규정한다.

 

아메드의 열성적인 믿음은 다섯 살 때 자신의 난독증을 낫게 해준 이네스 선생을 향해 삐뚤게 드러난다. 분명 고마운 은인과도 같은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아메드는 자신이 따르는 이맘의 말에 따라 그녀를 배교자라고 지칭한다.

 

이네스가 배교자이기 때문에 아메드는 그녀에게 인사도 건네지 않으며, 신의 이름으로 이네스를 살해하고자 칼을 들고 덮치기까지 해 살인미수로 소년원에 들어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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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는 아메드의 급작스러운 변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컴퓨터 게임을 즐기던 아이가 갑작스레 모든 포스터를 없애고 종교에 집착하게 된 것이다. 이는 최근 아메드의 사촌이 이슬람 극단주의 자살 테러로 유추되는 행위로 목숨을 잃은 데서 기인한 것으로 보이는데, 자신이 따라야 하는 어떤 우상적 존재가 존재하지 않고 그릇된 곳을 향하게 될 때, 그동안의 결핍은 자신의 정체성을 종교에서 찾으려는 노력으로 이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소년원에 들어가 있는 아메드를 찾아와 사역활동을 하기로 했냐는 엄마의 물음에 아메드가 이렇게 말하는 장면이 있다. 그곳의 사람들이 너무 잘해 주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말, 그들이 오히려 쌀쌀맞은 게 더 낫다는 말. 이러한 아메드의 말은 타인과 따뜻한 교감이 잘 이루어지지 않아 온 것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으며 아메드에게 분명 결핍이 있음을 암시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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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영화는 아메드가 왜 광적으로 이슬람을 믿는지 밝혀내지는 않는다. 이제는 다르덴 스타일로 불릴 만큼 시그니처가 된 핸드헬드로 그의 발자취를 꾸준히 뒤따라갈 뿐이다.

 

물론 아메드 가족 간의 친밀도가 낮아 보이는 점, 사촌이 종교를 극성으로 믿어 자살을 감행했다는 점, 타인과의 유대가 원활히 이루어지지 않아 온 것으로 보인다는 지점들 모두 아메드가 이슬람이란 종교를 극단적으로 믿는 데 자리할 수 있는 원인이 될 수 있겠지만 어떤 현상을 두고 우리가 파악할 수 있는 원인이라는 것은 아주 미미하듯 영화 자신도 구체적인 원인을 지명하지 않고 지나간다.


영화의 결말에는 다소 순진한 구석이 자리한다. 다시금 이네스를 해하고자 담을 넘고 창틀에 매달려 이네스의 집 안으로 침입하려던 아메드가 발을 헛디뎌 떨어지고 몸을 움직일 수 없게 된다. 피를 흘리며 누워있는 아메드를 향해 다가오는 이네스에게 아메드는 죄송하다고 연신 얘기한다. 추상적인 종교적 믿음으로 인해 결국 자신이 훼손된 현실에서 자신을 돌보아 주는 것은 이네스와 같은 인물들이 되고 여기서 아메드는 어떠한 깨달음을 가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여기서 의문이 든다. 마침내 아메드가 자신의 몸을 상해가며 얻은 깨달음 혹은 교정됨은 과연 이토록 순진하게 이어져도 되는 것일까? 한 종교에 관한 비이성적인 믿음을 쉽게 변화될 무언가로 여긴다는 점에서 다소 낙관적인 시선이 자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물론 영화는 아메드가 열세 살이라는 나이, 성장기에 있는 소년이라는 점을 강력하게 인식하고 있다. 순진해 보이는 결말은 소년이라는 성장기에 있는 어린아이를 향한 영화적 희망일 것이다. 그럼에도 돌연한 아메드의 태도에는 이러한 결말을 맺기 위한 부차적인 과정이 필요해 보인다. 영화의 대부분의 시간을 차지하는 열성적인 아메드의 믿음이 다소 성급하게 마무리되며 이슬람 종교를 향한 아메드의 믿음 자체가 마치 쉽게 변할 수 있는 것처럼 여겨지는 듯하기 때문이다.

 

믿음에는 그보다 더 근본적이며 본질적인 사람의 결핍이 존재한다. 그 결핍에 대한 단서가 존재하지 않고,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자신의 과오를 성급하게 인정하는 아메드의 모습에서 영화가 이를 해결하지 않은 채 이슬람 극단주의 청소년을 향해 낙관적 시선을 부여하는 것처럼 느껴져 아쉬움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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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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