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레퍼토리를 향해, 서울시향의 도전

21.02.18 서울시향 & 임동혁 연주회 리뷰
글 입력 2021.02.21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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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기변환]서울.jpg

 

 

미술계에는 이름만 들으면 알 만한 화가들이 있다. 고흐, 피카소... 이들의 작품을 다룬 전시회는 흥행이 안정적으로 보장된다. <별이 빛나는 밤>, <아비뇽의 처녀들>같이 대표작이라면 더욱 그렇다. 클래식도 그렇지 않을까.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 모차르트의 클라리넷 협주곡처럼 흔하지만 매우 인기 있는 곡들을 연주하면 호평을 유도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렇지만 여러 미술관에서 계속해 실험적인 작품들을 전시하듯이, 서울시향 또한 쉽기만 한 길을 바라보지 않았다. 이번 2월의 서울시향의 프로그램은 블라허, 스크랴빈, 힌데미트였다. 같은 책만 읽는 독자보다 새로운 책에 도전하는 독자가 독서의 즐거움을 더 크게 알아가듯이, 추위가 매서웠던 2월 18일의 서울시향 공연은 블라허와 힌데미트라는 새로운 음악가를 알아가는 나의 따뜻한 기쁨으로 가득 찼다.


1부는 블라허의 <파가니니 주제에 대한 교향악적 변주곡>으로 시작했다. 이 곡은 악장(樂長)의 파가니니 카프리스 24번 주제선율 연주로 시작한다. 인상 깊었던 점은 주제선율이 존재하고 이에 맞추어 크게 변형되지 않고 변주가 이어지는 일반적인 변주곡과는 달리, 블라허의 변주곡은 뚜렷하게 주제선율을 느끼기 힘들다는 점이었다. 이에 변주곡을 뜻하는 variation을 다시 한번 찾아보았는데, variation은 vary(변하다)가 어원인 단어였다.


어원 vary를 생각하자 지금까지 내가 생각했던 변주곡의 개념과는 달리, 주제와 크게 벗어났다고 들릴지라도 ‘변하다’라는 의미에서 블라허의 변주곡은 완벽한 ‘변주’의 개념을 완성시키는 음악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블라허의 다른 곡에 비해서는 매우 전위적이거나 실험적인 색채를 띠지는 않지만, 초기 낭만파와는 확연히 다르게 재즈풍이 느껴지며 그의 코스모폴리탄적인 성향과 곳곳의 재치있는 선율이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지휘봉을 잡은 윌슨 응의 해석은 오케스트라 악기들의 독자적인 소리를 돋보이게 하면서도 동시에 조합이 필요할 때는 하나로 단원들을 모아 매우 깔끔했다.


블라허의 곡이 끝나자, 임동혁이 들어오고 스크랴빈 피아노 협주곡이 시작되었다. 1악장은 스크랴빈 특유의 화성 진행이 돋보였다. 스크랴빈의 초기 작품인지라 후기만큼의 급진적인 화성 사용은 없었지만, 미래의 작품색채를 예고하는 듯한 말 그대로 ‘스크랴빈적’인 악장이었다. 2악장과 3악장은 1악장과는 달리 쇼팽의 색채가 뚜렷하게 드러났다. 마치 2, 3악장을 먼저 작곡하고 1악장을 훨씬 뒤에 작곡했다고 할 정도로 스크랴빈만의 특징은 적었지만, 그만큼 듣기에 편안하고 처음 스크랴빈을 접하는 사람이라도 부담스럽지 않게 입문할 수 있으리라 생각되었다. 협연자 임동혁의 피아노 연주는 2악장에서 가장 빛을 발하였는데, 섬세하고 낭만적인 선율을 극대화하는 터치는 2005년 쇼팽 콩쿠르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의 2악장 연주가 떠오를 정도로 섬세함 속의 강인함이 느껴졌다.

 

1부가 마무리되자 뜨거운 커튼콜이 이어졌고, 스크랴빈 에튀드 Op.8-No.12가 앙코르곡으로 연주됐다. 에튀드 Op.42-No.5와 더불어 가장 유명한 스크랴빈의 피아노 작품인 만큼 예상했던 앙코르곡이었는데,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훌륭한 해석이었다. 호로비츠는 페달링을 최소화하고 특유의 강렬한 터치를 통해 비애감을 나타내었다면, 임동혁은 충분히 페달을 사용하며 중반의 환상적인 부분과 비통함에 젖은 후반부를 대비시켜 ‘비통함patetico’을 극대화한 연주였다.


인터미션이 끝난 뒤, 윌슨 응의 힌데미트의 화가 마티스 교향곡이 시작되었다. 1악장은 독일의 성당에서 성가대의 노래를 감상하는 듯한 웅장함이 돋보였다. 2악장은 ‘매장’이라는 슬픔과 동시에 처형 이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예고하는 듯한 희망의 기운으로 끝을 맺는 짧지만 강렬한 느낌을 주었다. 3악장의 피날레와 윌슨 응의 지휘는 가장 강렬한 기억을 남긴 연주였다. 성 안토니우스가 악마와의 유혹과 싸워 이겨 승리를 확신하는 힘 있는 지휘가 필요했는데, 지휘에 열중한 나머지 지휘봉이 부러져 관객석으로 날아가는 작은 해프닝이 발생했다. 지휘자가 곡에 심취한 나머지 지휘봉을 부러뜨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들었지만 직접 음악회에서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지휘봉이 부러질 정도로 18일의 윌슨 응의 지휘는 열정적이고,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2월 18일의 서울시향 음악회는 블라허와 힌데미트처럼 한국에서 자주 연주되지 않았던 작곡가들의 음악을 알 수 있어 나에게는 보석과도 같은 귀중한 시간으로 느껴졌다. 서울시향 도전의 끝은 오늘이 끝이 아니다. 3월에는 최수열이 지휘하는 브리튼의 ‘일뤼미나시옹’이 있고, 4월에는 타악기 연주자 마르틴 그루빙거와 함께 하는 아브너 돌먼의 ‘얼어붙은 시간’이 있다. 계속해서 새롭게 레퍼토리를 넓혀나가는 서울시향의 전진(前進)을 기다려 본다.

 

 

[김현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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