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간헐적 전문가 되어보기 - 좋은 에디터란 무엇인가

좋은 에디터란 무엇인가에 대한 나의 답
글 입력 2021.02.18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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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인사이트에서 질문을 받았다. 에디터 활동을 시작한 지 4개월 만에 에디터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어 감회가 새로웠다. “좋은 에디터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지난 수개월 간 매주 칼같이 돌아오던 마감 날짜에 머리 싸매며 고민하던 문장 중 하나였기에, 머리에 부유하던 생각을 정리해보기로 했다.

 

 

 

에디터는 단순히 글 쓰는 사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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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 따르면, 에디터(Editor)는 취재 담당자인 리포터와 구별된 편집 및 평론 담당자를 지칭한다. 사실적 내용을 전달하는 기자와 달리 주관적 평가를 하는 논평 위원이라 할 수 있겠다. 이는 신문방송영역에서의 에디터를 정의하는 방식으로, 우리에게는 책이나 잡지를 편집하는 ‘편집자’로서 더 익숙하다.


편집은 실재하는 것들을 수집하여 이를 의도와 목적에 맞게 다듬어 보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에디터는 일정한 의도에 따라 글이나 사진, 경험 등을 수집하고 이를 주관적 시선으로 다듬어 대중에게 제시하는 사람일 테다.


즉, 어느 정의를 따른다 해도 에디터에겐 그만의 ‘주관성’이 일종의 무기라 할 수 있겠다.


실제로 아트인사이트에서 에디터로 활동하며 위에서 정의한 에디터의 편집 활동을 경험했다. 글의 ‘독자’가 존재하기 때문에, 글이 가닿을 독자에게 무엇을 전달할지 고민하며 매번 선택의 과정을 반복해야 했기 때문이다.

 

 

 

에디터로 글쓰기



글을 쓰기 위해 지나온 과거의 경험을 뒤져 특정 부분을 찾아내거나, 사전이나 책을 찾아보고, 전시를 관람하고, 특정 인물과 대화를 나누며 내가 전달하려는 궁극적 가치를 향해 독자를 이끌 단서를 수집했다.


수집한 조각들은 각각 꼭짓점처럼 글이 나아갈 이정표 역할을 하고, 나는 그 점들을 이어가며 계속해서 다듬는 과정을 반복했다. 하나의 형태가 나올 때까지.


그렇게 글이 완성되면 마지막으로 소리 내 읽으며 막히는 부분은 없는지, 글의 구조가 어색하진 않은지, 처음과 끝이 일정한 형식을 유지하는지 확인한다. 무엇보다 내가 전하고자 하는 핵심 문장이 잘 정리되어 있는지 확인하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위에서 언급했듯, 에디터에게는 독자가 있다. 그들을 알진 못하지만, 분명히 누군가의 눈과 마음에 가서 닿을 문장들이기에 문장과 내용을 정돈하는 과정은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완성된 글마다 각자의 형태를 띤다. 때론 날카롭게 다듬어져 있기도 하고, 유연하고 무디게 흘러가기도 한다. 이는 글을 쓰기 위해 수집하고 고민하는 과정에서 나의 주관적 시선이 더듬는 형태와 비슷하다. 여러 번 수정된다고 하더라도 처음 느꼈던 그 감정과 형태는 쉽게 바뀌지 않으며, 이는 나만이 가질 수 있는 시선이라고 생각한다.

 

 

 

간헐적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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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에디터란 ‘간헐적 전문가’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는 에디터가 일정한 시간마다 특정 주제에 관해 누구보다 깊게 빠져들어 그 주제로부터 하고 싶은 이야기를 끌어내는 과정이 마치 전문가가 한 분야에 관해 오랜 시간 연구하고, 그로부터 자신의 의견을 피력할 수 있는 전문성을 획득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물론 실제 전문가만큼의 깊이를 지닐 순 없겠으나, 한정된 시간 내에 특정 주제나 대상에 집중한다는 건 에디터만의 역량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제까지 내가 썼던 글들을 톺아보면 편지쓰기, 산책하기에 관한 글을 쓸 때는 독자들이 글을 읽은 후 펜을 들어 누군가에게 마음을 전해본다던가 볕이 좋으면 당장 신을 신고 정처 없이 걸어보길 바라는 마음을 간절히 담았고, 국립현대무용단의 공연 관람 후기나 전후 미술과 관련된 글을 쓸 때는 사회적 현상, 혹은 역사적 아픔에 대해 공감하고 이와 관련한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경험이 중요하다는 것을 전하려 애썼다.


특정 인물, 장소 등에 관해 글을 쓸 때면 그 사람이나 장소에 깊이 빠져 덕후가 되어보기도 했다. 그래서 나의 경험과 대상을 ‘덕질’하며 얻은 통찰을 나만의 언어로 소화-라고 쓰고 짬뽕이라고 이해한다-해냈을 땐, 피부에 생생하게 와닿는 문장이 문득 튀어나와 찌릿한 쾌감을 느끼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그렇게 완성한 나만의 콘텐츠를 누군가가 봐주고, 때론 피드백을 받으며 글이 혼자 던져지는 게 아닌 누군가에게 닿아 또 다른 감정, 혹은 생각이 되어 살아있다는 것을 느꼈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경험이었다.


간헐적으로 전문가가 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대상을 진심으로 대하며, 그 대상으로부터 느낀 무형의 감정 혹은 생각과 경험을 적확한 언어로 표현해내야 하므로 그 텐션과 주관성을 유지하기 힘들어 굉장히 지칠 때도 있다.


나 또한 에디터 활동을 시작한 지 (고작) 3주 만에 글의 소재를 찾지 못해 절망한 경험, 한창 글을 쓰다 방향을 잘못 잡았다는 것을 느끼고는 처음부터 다시 썼던 기억, 관심 분야가 너무 한정적이라는 자괴감과 마감을 겨우 맞춘 탓에 제대로 퇴고를 하지 못한 뼈아픈 실수가 있었다.


서툰 발걸음에 실수가 잦았지만, 그 경험이 조금 쌓여 이젠 ‘어떤 주제를 가지고 어떻게 방향을 잡아 어떤 자료를 수집해서 어떻게 구성할지’ 머릿속에 어렴풋이 그려볼 수는 있게 되었다.




그래서, 좋은 에디터란 무엇인가?



그렇다면, 좋은 에디터는 무엇일까.


길지 않은 경험으로 생각할 수 있는 지점은


**다양한 주제에 관심을 두고 풍덩 빠질 용기

**경험한 것으로부터 자기만의 그물로 필요한 것을 건져낼 수 있는 사람

**건져낸 조각들을 다듬어 자신만의 ‘주관성’을 관철할 수 있는 역량

을 지닌 사람이다.


위의 지점은 이 글을 쓰며 내가 되고 싶은 에디터의 모습을 그려본 것이기도 하다. 앞으로도 많은 글을 쓰며 조금씩 바뀌겠지만, 어떤 주제에도 겁내지 않고 빠져들어 나만의 언어로 조각을 잇는 에디터가 되기 위해 ‘나의 주관성’을 다듬어갈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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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로 지낸 지난 4개월이, 내겐 하고 싶은 일을 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막상 해보니 상상하던 것과 다른 부분도 있었고 기대 이상으로 즐거운 경험을 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지난여름 ‘일단 해보자’며 막연한 용기를 낸 덕에 그 모든 시간을 보내고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다고 믿는다. 그때의 작은 용기가 새로운 경험에 눈 뜨게 해준 것이다.

 

글을 쓰며 "좋은 에디터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전하고 싶은 나만의 주관성이 무엇일지 생각해 보았다. '일단 해보라'는 응원이다. 무언가에 진심이라면, 전달하고픈 가치가 있다면 주저 말고 시작해보기를 바란다. 그 시도를 더 좋은 것으로 만들기 위한 고민이 이어진다면 역량은 따라올 것이다.

 

여러분의 일상에도 '간헐적 전문가'가 되어 볼 작은 용기가 깃들기를 바라며, 글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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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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