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언젠가 찾아낼 씨앗들 - 고궁의 옛 물건

글 입력 2021.02.15 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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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교양으로 중국문학 수업을 배운 적이 있었다.

 

첫 수업 날 교수님께서 항아리 하나를 가져오셨다. 그러고는 상기된 표정으로 이번에 중국에 다녀오서 가져온 물건이라고 소개하셨다. 수많은 문명이 피고 진 중국답게 장터에 있는 물건만 집어와도 역사가 새겨져있다고 한다.

 

그게 무슨 말인가 하고 계속 들어보니, 항아리에 새겨진 문양이 옛 문명의 흔적이라고 하셨지만... 사실 흥미는 없었다. 그저 저런 열정을 가져야 교수를 하는구나 생각했을 뿐이다.


이 책은 이런 열정 넘치는 사람이 나처럼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일반인에게 전하는 편지이다. 저자는 북경 고궁박물원 시청각연구소 소장이며, 예술학 박사. 다큐멘터리까지 감독한 대단한 사람이다.

 

그는 박물관에 전시된 물건을 시대 흐름에 맞게 소개하며 해당 물건에 담긴 스토리를 풀어준다.

 


표지 평면_고궁의 옛물건.jpg

기존의 전시 방식이 지루한 이유는 흥미의 부재라고 말할 수 있다. 전시품과 이름, 간단한 설명은 적혀있지만 관람객이 이를 보고 상상하기에는 제한이 있다. 큐레이터와 함께 이동하며 시대 배경을 듣고 관련된 이야기를 들으며 관람할 때와 혼자 둘러볼 때의 감동이 다른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전시품도 결국 목적에 의해 만들어진 누군가의 물건이기 때문에 역사적 가치를 인지하기 어려운 일반인들에게는 그냥 '물건'일뿐이다. 수많은 문명이 피고 진 중국 대륙을 단 18개로 설명하기란 매우 부족하다. 그럼에도 뚜렷한 테마를 가지고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역사의 시작인 하나라를 모래와 연결 지었고, 청동기시대를 관통하여 피바람이 부는 전국시대, 안정된 왕조가 들어서 예술이 꽃피운 명, 청 시대까지 짧은 문장으로 시대를 간략하게 설명하고 대표하였다.


이뿐만 아니라 '고궁'이라는 키워드에서 마치 사극을 보는듯한 이미지를 떠올리게 해 준다.

 

웅장하게 시대를 아우른 왕조의 설립과 몰락, 그 안에서 수십 번은 넘게 일어났을 부흥과 피바람, 이 모든 것을 꼭 끌어안고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 바로 '고궁'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웃고 떠들었을까. 반대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을까. 생과 사가 공존하는 고귀한 공간이기도 하다.


아쉽게도 역사를 대변하는 유물들은 많이 남아있지 않다. 왕조가 교체되면서 이전 왕조의 역사는 모두 불태워버린 사례가 몇 번 있었기 때문이다. 땅 속에 묻힌 물건을 모으고 모아 조각나 있는 역사를 붙여 모은 것이 지금 우리가 인지하고 있는 역사이다. 분명 땅 속 어딘가에 그때 그 시절을 추억하며 묻혀있는 물건들이 있을 것이다.

 

땅 속에 있는 씨앗처럼 그들을 찾아낼 순간에 더 재미있고 풍부한 역사이야기를 들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
 
<책 소개>
 
 
북경 자금성 안에 위치한 고궁박물원은 우선 그 방대한 소장품 숫자에서 방문객을 압도한다. 소장품은 186만 점이 넘는다. 한 연구자가 하루에 5점씩 본다고 가정했을 때 전부 보는 데 1,000년이 걸리는 양이며, 매년 바꾼다 해도 전체 소장품의 0.6%밖에 전시하지 못하는 숫자이기도 한다.
 
베이징 고궁박물원에 근무하는 저자가 수많은 고궁의 소장품 중 가장 대표적인 옛 물건을 고르고 골라 18주제로 요약했다. 저자의 설명을 들으면 박물관 전시실에서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있던 그릇과 그림, 가구와 옷들이 '후!' 하고 멈췄던 숨을 쉬고 먼지를 털고 일어나는 것처럼 느껴진다.
 
엄정한 학자이면서 다큐멘터리 예술 감독이기도 한 작가의 설명을 듣고 있노라면 더 이상 박물관이라는 곳이 옛 물건들이 무표정하게 서 있는 곳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색과 소리를 회복한 옛 물건들이 시끄럽게 뛰어다니고, 칼과 검을 휘두르고, 이야기를 하고, 손뼉을 치고, 큰 소리로 웃는 것이 보인다.
 
고궁의 소장품을 '유물'이라 부르지 않고 '옛 물건'이라고 부르는 것은 저자가 유물이 품은 시간에 주목했기 때문이다. 모든 소장품에는 여러 왕조의 비바람이 수렴되어 있고, 시간의 힘이 응축되어 있다. 그 광대한 물질의 세계에 들어선다는 것은 모래 한 알이 사막에 파묻히듯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행위일지도 모르겠다.
 
장자는 아침 버섯이 그믐과 초하루를 모르고, 매미가 봄과 가을을 모른다고 했다. 궁전의 옛 물건도 그와 같은 가르침을 준다. 이 책은 중국에서 발간된 '주용의 고궁 시리즈' 9권 중 한 권으로 탁월한 이야기성과 시각적 묘사와 시적 문장으로 유물에 담긴 내밀한 아름다움을 발견해서 들려준다.

 
 

 

컬쳐리스트 명함.jpg

 

 

[김상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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