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일간 이슬아의 온도 [도서/문학]

글 입력 2021.02.12 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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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하루를 맞이하는 내 메일함에는 수많은 글들이 유성우처럼 쏟아진다. 저마다의 굳은 사명을 갖고 찾아드는 모든 글들이 좋을 것을 알지만 미처 다 잡을 수는 없더라. 욕심이 많았나 보다.


분명히 구독할 때는 궁금해서 신청했던 것 같은데. 약간의 미안함과 귀찮음을 갖고 버튼을 꾹 누른다. 수신거부. 읽을 수 있는 사람이 될 때 다시 찾아올게요. 구독이라는 이름에 사로잡혀 섣불리 공간을 내주지 말자고 다시 다짐한다. 구독자가 되지 않았으면 몰라도, 기대감을 갖고 찾아오는 글을 열어보지도 않는 실망감을 더하고 싶지는 않으니까.


그런 나에게도 기다리는 메일이 하나 있다. 오늘로 9번째 메일을 받아보았다. 늦게까지 깨어있기에 자정 전후로 메일이 도착하면 나는 곧바로 읽어본다. 그의 손끝을 떠나자마자 받아읽었을 시간의 간극이 짜릿하게 느껴진다.


보낸 사람 : 이슬아

제목 : [일간 이슬아 / 이야기] 2021.02.11. 木


오늘 글은 이슬아의 하마씨와 미용실 어시스턴트의 두피 마사지에 대해 쓴 글이었다. 미용실은 머리 감을 때 마사지 받으러 가는 거지 역시.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하루를 기다려 받은 오늘의 글이 벌써 이렇게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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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간 이슬아는 작가 이슬아가 매일 한 편의 글을 적어 보내는 메일링 서비스이다. 주말은 쉰다. 2018년 3월호에 처음 발간되었고 2월 현재 2021년 겨울호가 연재 중이다.


처음 이슬아가 돈을 받고 글을 보내준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만 해도 재미있는 시도라고 생각했다. 그때는 이렇게 많은 뉴스레터가 존재하지 않았다. 심지어 한 달 동안 쓰는 20번의 메일에 만 원의 구독료를 선입금 받는다. 그러니까, 계산해보면 500원씩 그날의 글을 사는 것이다.


무료로 된 콘텐츠가 넘쳐나는 세상에 어떤 글이 올지 장담할 수 없는데도 사람들이 돈을 낼까. 이슬아가 매일 글을 쓰는 성실함을 보여주겠다는 것만큼 이 서비스가 성공할지 궁금했다. 그 결과는, 정말 많은 사람들이 흥미를 보였다. 이슬아는 그렇게 글쓰기의 하나의 아이콘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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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간 이슬아 2021 겨울호 | Photographer : 한다솜 @dasomhahn

 

 

이슬아는 스스로를 작가라 부르기도 하지만, 연재 노동자라는 호칭을 쓰기도 한다. 연재 노동자. 글을 연재하는 것으로 돈을 벌겠다는 다짐이 단어 사이를 빼곡히 채운다. 이 말은 글쓰기를 하나의 노동으로 본다.

 

일한 만큼 보수를 얻고 싶은 것은 누구에게나 마찬가지다. 작가가 꼭 가난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좋아하는 글을 쓰는 것으로 돈을 벌 것이라고. 글을 쓰는 것으로 돈을 벌기 쉽지 않다는 말을 들으며 커온 나는 이 단어가 참 마음에 들었다.


이슬아는 말 그대로 성실한 연재 노동자이다. 매일 같이 보여주기 위한 하나의 글을 완성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도착한 한 편의 메일을 읽은 다음에는, 그 나름의 하루를 살고 메일을 발송하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을 조금 전의 이슬아를 상상해본다.

 

회사에 가기 싫은 것처럼 이슬아에게도 글을 쓰기 싫은 날이 분명 있을 것이다. 아픈 날도 있을 것이고, 자정을 넘겨 촉박한 마음으로 글을 완성하는 날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구독자에게 돈을 받았으니, 보수에 대한 노동으로 그는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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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12까지 받은 메일들

 


이슬아가 주로 쓰는 글은 수필이다. 그의 글에는 항상 사람이 있다. 자기 자신일 때도 있고, 그를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일 때도 있다. 나는 메일로 이슬아의 하루 일부분을 글로써 공유 받게 된다. 메일을 읽는 십여 분의 시간 동안 나는 잠시 이슬아의 세상으로 빨려 들어간다.


두 번째 메일이었나, 그가 집에서 일하는 만큼 가족에 대한 이야기가 종종 등장하는데 부모님을 이름 두 글자로 서술하는 낯섦에 눈이 흔들렸다. 차츰 익숙해지니 이내 그들을 이슬아의 부모로서가 아니라 한 명의 인물로 읽게 된다. 호칭에 갇히지 않은 인물들은 더 다채로운 색깔로 빛난다. 그 이름들은 어딘가 멋있고, 엉뚱하고, 귀엽고, 행복하고, 아련한 감정들이 함께 한다. 새삼 이름을 불러주는 것에 대해 의미를 생각했다.


받아보는 메일에는 이슬아의 동료 작가가 쓴 글도 있으며, 이슬아가 만난 사람들에 대한 인터뷰도 있다. 처음에는 이슬아의 글을 읽고 싶었던 터라 내심 의아한 마음이었는데, 한 편씩 쌓이는 글들을 읽고 나니 이 글들 역시 일간 이슬아를 구성하는 요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 받아본 메일에는 한 명의 배우와 한 명의 감독, 한 명의 작가가 도란도란 나누는 이야기들이 담겨 있었다. 이야기를 이끌어내는 이슬아에 이 사람은 글만 잘 쓰는 게 아니라 말도 잘하는구나 생각하다가도, 그만큼 잘 들어주고 보려고 하니 가능하겠구나 싶었다.

 

자신의 이야기만큼이나 남의 이야기를 잘 쓸 수 있는 사람. 내 마음 속 이슬아에게 그런 수식어를 하나 더 붙여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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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간 이슬아 2021 겨울호 | Photographer : 한다솜 @dasomhahn

 

 

이슬아는 그의 글을 가끔 징그럽다고 표현한다. 자기 글에 대해 어떻게 징그럽다는 말을 할 수 있을까 놀랐다. 스스로를 그렇게 어마무시하게 비판할 수 있다니.

 

그런데 내가 이슬아의 글을 좋아하는 이유가 바로 이 징그러움에 있었다. 자기 글을 가감 없이 징그럽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의 글. 이슬아의 글에는 어떤 연민이나 과시가 보이지 않는다. 잔잔한 물결이 치는 것처럼 평평할 뿐이다.


하지만 연대는 있다. 이슬아는 건조한 목소리로 따뜻한 이야기를 한다. 수많은 할머니의 이름에 새겨진 '자(子)'에서부터, 좋은 동물이 되고 싶다고 생각한 어떤 날의 다짐, 언어를 배우며 천진한 용기를 얻게 되는 일*과 주인공이 되어 주인의 마음을 터득할 수 있었다던 배우의 이야기까지.

* [일간 이슬아 / 친구들] 코너의 이훤 작가가 쓴 글에서


무해한 마음들이 밀려온다. 퍽퍽할 정도로 건조하게 시작한 이야기는 뜨겁다고 느낄 수 없는 온도로 밀려온다. 이 글이 내 코 끝까지 물결쳐왔을 때는 이미 온몸이 데여있다. 그래서 나는 이불 속에 누워 낄낄거리기도 하고, 갑자기 왜 쏟아지는지 모르겠는 눈물을 베개로 흘려보내며 이슬아의 글들을 읽고 있는 것이다.


나는 도통 0도가 어떤 온도인지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0도의 날씨는 분명 춥지만 영하도 아니고 영상이라고 하기도 뭐 한 것이. 차가움과 뜨거움을 나누는 어떤 경계에 서있는 것 같다. 나에게 이슬아의 글이 그렇다. 그는 0도의 글쓰기를 한다.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글은 메일의 마지막의


- 끝 - 


일간 이슬아

日刊 李瑟娥


에 도달하고 나서야 내 체온을 닮아있을 뿐이다.

 

 

[최주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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