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하고 싶은거, 하고 삽시다 [사람]

졸업과 취업의 기로에서 더는 나를 미워하지 않으려 한다.
글 입력 2021.01.21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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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 직업?



‘직업’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무엇을 떠올리는가?


본인이 종사하는 분야? 속한 집단의 직책? 사람들에게 불리고 싶은 이름이나 설명하기 번거롭지 않은 표현이 떠오를 수도 있겠다.


나는 꿈과 직업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어릴 때 수없이 들었던 ‘꿈이 뭐니?’라는 질문에 매번 외교관이나 만화가 같은 직업의 이름을 멋모르고 부르며 다녔다. 내게 꿈은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할 수 있는 권리 같은 것이었고, 나는 어떤 직업을 가지면 비로소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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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관심사가 바뀔 때마다 꿈이 바뀌었고, 그 변덕스러운 마음에도 부담감보다는 근거 없는 희망과 기대만이 가득할 뿐이었다. 뭐든 될 수 있을거라 생각했고, 뭐든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대학 입시라는 전쟁에 던져졌을 때, ‘무언갈 하고 싶다’는 곧 ‘무언가 되어야 한다’는 부담감으로 전환되어 어깨를 짓누르기 시작했다. 내 앞에 놓인 ‘문과’, ‘이과’, ‘예체능’의 선택지 중 하나를 반드시 골라야만 했고, 나는 특출나게 잘하거나 특별히 못하는 게 없는 애매한 상황에서 미술을 택했다.

 

 

 

전공이라는 수식어는 직업이라는 부담에 무게를 더한다.



대학교에 진학하며 ‘전공’이라는 새로운 수식어가 생겼다. 한번 정해지면 웬만한 용기로는 학부 4년의 세월을 뒤엎기 힘든 만큼, 마음대로 꿈의 방향을 바꿨던 지난 시간은 이제 정말 과거의 일부로 남겨두어야 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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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알고 가면 너무도 아름다운 숲은, 길을 잃는 순간 두려움의 대상이 된다.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 상상한 직업이나 꿈과 달리, 현실은 숲에서 길을 잃은 것처럼  그저 막막하고 두려운 것이었다.

 

 

‘시각디자인 전공’이라는 한 줄이 어떤 힘을 가질지 진즉에 예상했지만, 막상 졸업이 다가오니 앞서 졸업한 선배들의 성취를 보며 같은 과를 졸업한 내 자리는 어디쯤 있을지, 있긴 한 건지, 어디서 일할 수 있을지, 디자이너라는 직업을 갖지 못한다면 나를 증명할 수 없을 것이란 생각에 괴로웠다.

 

 

 

도망간 곳에서 새로운 통찰력을 얻는 건 큰 행운이다.



그러다 큰 변화를 한번 겪었다. 전공을 건축으로 바꾸려는 시도였다.


내가 경험한 시각디자인은 너무 좁은 세상으로 느껴졌는데, 그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너무 많은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었다. 일러스트레이터나 포토샵 프로그램으로 할 수 있는 작업이 충분히 많지만, 이제는 시각디자이너에게 모션 그래픽은 기본이며 코딩과 3D 프로그램을 다루는 능력까지 요구되었고, 이를 다 할 수 있는 사람이 돋보이기 마련이었다.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는 시장에 맞춰 가랑이 찢어지게 따라가다가는 창작자로서의 정체성을 잃고 그저 도구로 전락할 것이라는 두려움을 느끼자,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다양한 프로그램을 다루며 본인의 개성이나 전달하려는 가치를 잃지 않는 이들도 있겠지만, 나는 그렇게 영민하게 작업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기에 자연스레 ‘더 보수적이고’, ‘쉽게 바뀌지 않는 것’을 찾아 이제까지 해왔던 작업과 생각을 돌아보며 내가 ‘건축’이라는 분야에 흥미를 느끼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로부터 몇 달 후,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무작정 도서관에 있는 책을 찾아 공부하고 현업에 종사하는 건축가의 이야기를 들으러 다니며 내린 결론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이 건물을 세우는 일은 아니라는 판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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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간 말 그대로 '무작정' 공부했다. 공부를 할 수록 완벽한 분야는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막상 발 들여본 건축이라는 분야는 결코 내가 예상하고 기대한 모습이 아니었고, 어떤 부분은 내 노력으로도 해결할 수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결정적으로 내가 디자인을 하며 느낀 회의감이 그로부터 자유로워 보이는 건축을 향한 부러움(혹은 동경)으로 전이되어 충동적으로 도망친 것이라는 쓰라린 인정의 순간을 경험해야 했다. 남의 떡이 더 커 보이는 당연한 이치지만, 직접 부딪혀보지 않았다면 나는 내가 속했던 디자인 분야에 끝없는 회의감과 반발감을 느끼며 계속 나를 갉아 먹었을 게 뻔하다.


다른 곳으로 도망치려는 시도가 오히려 멀찍이 떨어져 내가 속했던 분야를 바라볼 기회를 제공했다. 이제까지 나를 감싸고 있던 부정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다시 바라본 시각디자인은 정말 괜찮은 전공이었다. 아니, 전공이라기보다 멋진 ‘방법’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여전히 유행은 빠르게 바뀌고, 새로운 것이 속속 등장하지만, ‘디자이너’라는 직업 자체가 내 인생의 목표가 되지 않는다면 그 속에서 굳이 같은 속도로 달리지 않고 나만의 길을 가되, 디자인이라는 문제 해결 과정을 통해 체득한 방법론이 내가 원하는 곳으로 가는데 훌륭한 동반자가 될 것이라는 새로운 지점을 발견한 것이다.

 

 

 

불안은 부러움을 먹고 자란다.



최근에 오빠가 국가고시를 치렀다. 나와는 다르게 의사라는 하나의 직업이자 목표를 향해 6년을 묵묵히 공부해온 시간을 옆에서 지켜봤기에, 나는 그 인내가 대단하게 느껴지면서도 직업의 선택지에 고민할 필요가 없는 게 순간 부러웠다. 직업의 미래가 보장되어 있다는 명료한 인식. 그것과 비교해 어디로 가야 할 지, 무엇을 해야 할 지 선택지를 찾아 갈팡질팡하는 내 모습이 한없이 초라해 보였다.


그러나, 그 생각 또한 현재의 불확실성에 의해 예민해진 심리에 기인한 착각이었음을 이제는 조금 더 빨리 깨닫는다. 나보다 한 뼘 앞선 누군가, 나보다 조금 더 나아 보이는 대상을 향한 부러움은 나를 꾸준히 나아가게 하는 동력이 되지만, 그것이 과해지거나 심리가 불안정할 때는 나를 한없이 초라하게 만들고 도망치도록 부추긴다는 것을 여러 곳으로 도망 다니며 인정하는 과정을 겪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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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지웅쇼의 오프닝에서 뜻밖의 위로를 받았다. 포기하지 않고 나를 살아내는 것이야말로 대단한 일이다.

 

 

그래서 그 부러움이 과해지지 않도록 부지런히 경계해 나를 지키고, 깊게 침잠해 생각할 수 있도록 내게 집중하는 게 요즘의 목표다.


 

 

어디서 일할 지는 모르겠지만, 하고 싶은 일을 찾는건 내 자유니까!



자, 다시 직업 이야기로 돌아와 보자.


건축과로의 전향 시도만큼 큰 사건은 아니었으나 학부 과정에서 이곳저곳 눈 돌리며 지내긴 했다. 그러다 보니 내가 속한 과에 대한 회의감이 더 커졌던 것 같다. 다만, 그렇게 눈 돌리고 도망갔다 몇 번 데인 후 다시 돌아오는 과정을 반복했던 적지 않은 시간이 모여 어느새 한 인간으로서 내 생각과 가치관을 형성하고, 예술을 대하는 나름의 미적 감각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최근에서야 느끼는 중이다.


그래서 ‘직업’에 대한 고민을 내려놓고 ‘꿈’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직업과 꿈을 구분하지 못하고 지냈으나 이제는 적어도 나에게 직업이 곧 꿈을 뜻하는 것은 아니라는 확신을 얻었고, 그렇다면 질문을 바꿔 ‘내가 지키고 싶은 것은?’, ‘이루고 싶은 가치는?’, ‘그리고 싶은 삶의 형태는?’에 대한 나만의 대답을 만들어가며, 이를 실현하는 과정에 직업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생각하는 게 -적어도 지금은 -어느 기업에서 무슨 작업을 하는 디자이너가 될지 고민하는 것보다 설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최근 청년 세대 사이에서 자주 공유되는 생각처럼, 지금까지 쌓아온 경험과 앞으로 거쳐 갈 무수한 시간 앞에 ‘직업’만으로 나를 규정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다. 마음을 설레게 하는 일을 찾아 부딪히며 그 경험의 축적으로 나를 만들어가려 한다.


이런 맥락에서, 지금은 건축 작업에 디자이너로 참여하고 있으며 이 작업이 끝나고 나면 내 마음을 움직이는 곳을 찾아 일을 잔뜩 벌이고 이를 수습하며, 또 어디론가 성큼 나아갈 것이다. 틈틈이 글을 쓰고, 미학과 미술사를 공부하며 발걸음에 힘을 싣는다면 더할 나위 없지 않을까? 어릴 때와는 사뭇 다르지만, 나는 여전히 ‘무엇이든 할 수 있다’. 그리고 무엇이든 하려는 나 자신을 열렬히 응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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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학과 지도교수님이 졸업을 앞둔 학생들을 위한 온라인 강연에서 이런 ppt를 띄우셨다. 괄호 안에 무엇이 들어가든 멋진 문장이 될 것이다.

 

 

정해진 길을 잘 닦아 나가는 이들보다 더 부지런히 움직여야겠지만, 생각해보니 내가 선택하고 책임지며 그려가는 이 인생이 그리 밉게 느껴지진 않는다. 포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러니 지금 어떤 직업도 가지지 못한 내 모습이 초라하게 느껴질 때마다 그게 다가 아니라고, 진심으로, 내가 나를 끌어 안아줄 것이다.

 

나를 지독히 괴롭히던 직업에 대한 고민으로부터 한 발짝, 걸음을 내디뎠다.

 

 

[김현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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