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마음이 힘들 때 찾게 되는 나만의 공간 [공간]

글 입력 2021.01.18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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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발을 벗고, 조심스럽게 대웅전의 문을 연다.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황금빛 불상이 저절로 내 마음을 경건하게 만든다. 그윽한 불상의 눈빛을 바라보고 있으면, 마치 나에게 말을 건네는 것만 같다. 오늘은 또 무슨 일로 왔느냐.


법당의 구석에는 방석이 내 키 높이만큼 가득 쌓아 올려져 있다. 조심스럽게 방석을 하나 꺼내고, 아무도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자리를 잡는다. 가부좌 자세로 앉아, 손을 다리 사이 가운데로 모아준다. 왼 손바닥 위에 오른손등을 가볍게 올린다. 그리고 천천히 눈을 감는다.


거칠고 차가운 방석의 촉감, 법당의 나무 냄새, 스님의 목탁 소리, 불상 앞에서 조용히 타들어 가는 향의 연기가 나를 감싸 안는다.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내 몸에 느껴지는 감각에 집중한다. 호흡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에 집중한다. 조용히 내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그간 있었던 일들을 하나씩 꺼내 본다.


그러면 불안했던 마음도, 초조했던 마음도, 상처 입은 마음도, 분노와 짜증으로 가득했던 마음도, 조금씩 가라앉기 시작한다.


왜 그럴까, 법당에서 하는 명상은 집에서 하는 것보다 훨씬 더 집중이 잘 된다. 단순히 상징물에 불과하지만, 불상이 앞에 있기 때문일까. 불교 신자나 종교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곳에 오면 행동거지를 조심하고, 마음을 경건하게 하지 않을 수 없다. 집에서 공부하는 것보다 도서관에서 공부할 때 더 잘 되는 것처럼, 절에서 눈을 감고 명상을 할 때 훨씬 더 집중이 잘 된다. 그래서 마음의 안식이 필요할 때, 생각이 많아 머릿속이 복잡할 때, 나는 절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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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은 의외로 가까운 곳에 있다.



우리나라에는 아름다운 절이 정말 많다. 경주의 불국사, 대구의 동화사, 서울 도심 속에 자리 잡은 조계사 등.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부터 그 지역의 대표적인 관광지로 자리 잡은 곳까지, 대자연과 어우러져 아름답고 웅장한 절의 모습은 유럽의 대성당 못지않은 감동을 선물한다. 하지만 이 글에서 이야기하고 싶은 절은 전국적으로 유명하고 멋진 관광지 같은 절이 아닌, 관심을 갖고 살펴보지 않으면 놓치기 쉬운 절, 집에서 걸어서 갈 수 있는 '일상 속의 작은 절'이다. 평범한 일반인의 입장에서 어떻게 하면 쉽게 절을 접하고, 즐길 수 있는지에 관하여 글에 담아보고자 한다.


보통 절이라고 하면, 특별한 날에 방문하는 관광지 같은 절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그런 대규모의 절을 방문하는 것이 볼 것도 많고 즐길 것도 많지만, 바쁜 일상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겐 소중한 주말과 연차를 사용하여 먼 곳에 있는 절에 가기란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다. 특히나 '절'을 자주 접해 보지 못한 밀레니얼 세대들에겐 낯설고 생소한 곳이라, 그다지 매력적인 여행지가 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므로 나는 절의 매력에 입문해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무조건 가까운 절을 추천하고 있다. 비록 크기가 작더라도 절 특유의 운치와 분위기가 살아 있으니, 그 매력과 감성을 느끼기엔 충분하다.

 

생각보다 절은 우리의 일상과 가까운 곳에 자리 잡고 있다. 불과 몇십 년 전만 해도 흔하지 않았던 '카페'가 지금은 어딜 가나 보이는 일상의 쉼터로 자리 잡은 것처럼, 의외로 작은 규모의 절은 도심 속에 그리고 우리의 생활 반경 곳곳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지금 당장 스마트폰을 손에 들고 네이버 지도 혹은 구글 지도를 켜보자. 내가 있는 위치에서 '절'을 검색해보면 수많은 절이 지도에 표시된다. 관심을 두고 찾아보면, 이렇게 많은 절이 우리 가까이에 있었나 깜짝 놀랄 수도 있다. 마치 당신이 관심을 두고 살펴보기 전까지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겠다고 약속이라도 한 듯, 절은 일상의 풍경 속에 조용히 녹아서 그대의 시선이 향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집과 가장 가까운 곳에 절이 있다는 걸 확인했다면, 다음으로 네이버 지도 앱의 거리뷰와 같은 기능을 활용해서 외관을 미리 살펴보고 가길 바란다. 되도록 목조 건물 형태가 갖춰진 곳을 추천한다. 지도를 통해 이름만 보고 무작정 찾아가면, 가끔 사이비 종교 사무실이나 점집인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또 완전히 회원제로 운영되는 곳도 있어서, 일반적인 절과는 달리 사람들의 출입이 자유롭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런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절은 출입이 자유롭고, 다른 이의 간섭 없이 법당에 앉아 조용히 자신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

 

 

 

대웅전의 문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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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불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법당의 회원이나 불교 수업을 듣는 학생이 아니더라도, 황금빛 불상이 있는 대웅전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규모가 큰 절은 새벽부터 예불을 하므로 오전 4~5시부터 열려있는 경우도 있고, 작은 절의 경우에는 오전 6시 혹은 9시 이후로 개방하는 편이다. 절마다 개방 시간은 제각각인데, 보통 저녁 8시에 문을 닫고 늦게까지 하는 경우는 밤 10시, 12시까지도 문을 열어놓는 경우가 있다. 그 시간 내에는 누구나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다.


다만, 기본적인 예의는 꼭 지키자. 사찰마다 예절과 규칙이 조금씩 다르고,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가짓수도 꽤 많다. 이제 막 처음 절을 접하는 사람이 그걸 모두 기억할 필요는 없다. 그저 가장 기본적인 공공 예절, 다른 사람에게 손해를 끼치지 않는 것만 주의 깊게 지키면 무리 없이 법당을 즐길 수 있다.


가장 기본적인 법당 예절을 몇 가지 소개하자면, 복장은 될 수 있으면 노출이 심하지 않은 편안한 옷으로 꼭 양말을 신고 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법당에 들어가기 전에는 꼭 신발을 벗어 가지런히 놓아야 하며, 법당 안에서는 기도와 수행을 하는 다른 사람들과 스님께 피해가 가지 않도록 정숙해야 한다. 자리를 잡을 때는 되도록 불상 가까이에 앉기보다 적절한 거리가 있는 것이 좋고, 스님께서 수행하시는 가운데 자리는 되도록 비우는 것이 좋다. 당연히 법당 내에서 음식물 섭취를 하지 말아야 하고, 개인적인 기도나 수행이 끝난 후에는 방석을 꼭 제 자리에 갖다 놓아야 한다. 이와 같은 가장 기초적이고 기본적인 예절만 지켜도 큰 문제 없이 자유롭게 법당에 드나들 수 있다.


그 외에도 법당에 들어서면 문 입구에서 부처님을 향해 합장하고 고개 숙여 반 배를 올리고, 불상 앞으로 가서 향을 피우고 공양물을 올리는 등, 다양한 예절과 규칙이 있지만, 처음부터 모두 지키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 가장 기본적인 예절을 지키면서 절에 가는 것이 편안해지는 것이 먼저고, 점차 관심이 깊어지면 그때 차근차근 알아가도 충분하다.

 



카페에 가듯, 절에 가다.



어느덧 카페는 우리 일상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쉼터이자 여러 사람과 소통하고 교류하는 생활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이번에 사회적 거리 두기 2.5단계로 격상하고 카페를 이용할 수 없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새삼 그 소중함을 몸소 실감했다. 잠깐 누군가를 만날 때,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을 때, 좋아하는 커피와 함께 조용히 책을 읽고 싶을 때, 중요한 업무를 해야 할 때, 분주한 발걸음을 잠시 멈추고 지친 몸과 마음을 쉬고 싶을 때, 우리는 카페를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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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활용하는가에 따라 '절'도 카페와 비슷한 공간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모두에게 열려 있는 자유로운 공간이며, 의외로 우리 주변에 많이 있다는 점은 카페와 비슷한 요소가 될 수 있다. 또한, 자신만의 시간을 갖고 휴식을 취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카페만큼이나 소중한 공간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 적어도 나에겐, 그랬다.


나는 선천적으로 불안과 긴장을 쉽게 느끼는 성향이 있다. 그래서 사소한 일에서도 쉽게 불안감을 느끼고 지나치게 긴장하다 보니, 20대 초반에는 그런 성향으로 오랫동안 힘든 시간을 보냈다. 거기다 우울증이 겹치면서 공황장애로 이어질 뻔했다. 절망의 문턱에서 나를 붙잡아, 마음의 안정을 되찾게 해준 것은 가만히 눈을 감고 내 마음을 살피는 시간, 차분하고 고요하게 명상하는 시간이었다.


황금빛 불상이 내뿜는 기운으로 신성함이 가득하고, 엄숙하고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목탁을 두드리는 스님, 각자 조용히 자기 자리에 앉아 자신만의 수행과 기도를 하는 사람들, 나무와 향 내음으로 가득한 법당은 자연스럽게 내가 온전히 명상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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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28년의 세월을 살아오면서,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 크고 작은 역경을 맞이할 때마다, 거친 파도처럼 몰아치는 삶의 고난 속에서 내 마음이 다치고 절망에 빠질 때마다, 나는 눈을 감았다. 밖을 향한 눈을 안으로 향하기 위함이다. 한 번씩 삶의 거대한 쓰나미가 나를 덮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내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에 온전히 몰입하고 침잠할 수 있도록 도와준 것은 절이라는 공간이었다. 그래서 나에게 절은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 주고, 모든 시련과 역경으로부터 직면할 수 있도록 용기를 주는 공간이다.


학생이라면 학교와 집을 오가고, 직장인이라면 회사와 집을 오가며, 오늘도 우리는 정신없이 바쁜 일상을 분주하게 살아간다. 학교와 직장에서 있었던 괴로운 일, 상처받는 일, 화가 나는 일, 그 수많은 일에 시달린 내 마음을 돌볼 겨를도 없이, 지친 몸을 달래기도 부족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마음도 몸과 같다. 소중히 돌보지 않으면, 언젠가 망가지기 마련이다. 일상의 작은 마음의 상처를 외면하고 방치하다 보면, 계속해서 누적되어 나중에는 깊고 커다란 상처가 될 수 있다. 잠시 쉬면 회복될 상처가 병원에 가지 않으면 안 될 상처로 커져서, 우리의 삶을 뿌리째 흔들 수 있다.


그러니 잠깐이라도 좋다. 고단한 하루의 끝에서, 오늘 하루 있었던 일을 되짚어보며 지친 마음을 달래는 시간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 마음이 불안하거나 괴롭고 힘든 일이 있을 때, 잠시 눈을 감고 차분히 마음을 살피는 시간을 갖는 건 어떨까. 만약 그러기 위한 공간이 필요하다면, 절 만큼 좋은 곳은 없을 거라 생각한다.


법당의 문은 당신에게도 열려 있다. 그리고 그곳은 어쩌면 당신이 수십 수백 번도 걸어 다녔던 길목에 있을지도 모른다. 관심을 두고 살피기 전까지, 조용히 고요하게 일상의 풍경 속에 녹아들어 묵묵히 기다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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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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