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아직 나오지 않은 작품을 표절하다. [문학]

예상 표절과 탈연대기적 관점
글 입력 2021.01.13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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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르 바야르는 선형적인 시간 위에 위치하는 역사적·문학적 연대기에 대해 비판적인 의식을 가졌다. 그는 문학이나 예술작품이 (선형적) 시간이라는 ‘거짓된 경계’로 인해 오히려 작품 자체가 아닌 부차적인 사실들에 관심이 편중된다고 주장한다.


가령 우리가 호메로스나 셰익스피어의 개인적인 이야기에 대해 알지 못해도 그들의 작품을 충분히 즐기고 분석할 수 있다는 사실처럼 말이다. 따라서 폴 발레리의 얘기에 따르면 “저자들과 그들 이력에 대한 역사나 혹은 그들 작품들의 역사”를 이해하는 방식이 아니어도 문학적 해석과 연구가 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예상 표절의 요소



피에르 바야르는 논의를 확장하여 “미래의 작가들을 만나서 교류하며” 지금까지 존재했던, 과거의 작품에 영향을 받는 관계를 전복하여 과거의 작가들이 말 그대로 미래 작품들에서 영감의 지점을 가져온다고 얘기한다. 그러면서 사용하는 용어는 다름 아닌 “예상 표절”이다. 예상 표절에는 그 주장을 논증하기 위한 몇 가지 요소가 있다. 닮음, 은폐, 시간적 도치, 부조화가 그것이다.


닮음과 은폐는 기존의 ‘표절’이라는 단어의 형성 조건과 상통한다. 작품의 일부나 전반적인 흐름이 다른 작품과 유사성을 지니고 있고, 그 사실이 미묘하게 숨겨져 있는 것이다. 은폐는 이런 차용이 “감춰져”있다. 시간적 도치의 경우 우리가 일반적으로 한 작가는 미래의 작가로부터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예상 표절의 한 가지 원인이다.


부조화는 예상 표절의 혐의를 지닌 (작품의) 특정 부분을 읽어보면 다른 텍스트와 어우러지지 않고 “시대착오”적인 느낌을 준다. 여기서 ‘시대착오’적인 텍스트는-주(主) 텍스트에서 파생된 부(副) 텍스트는-원천이 되는 텍스트를 인지할 때 그 맥락을 이해하게 된다는 특징이 있다. 하지만 동시에 “모든 표절은 항소를 낳는다”는 얘기로 주 텍스트와 부 텍스트의 구분이 이뤄짐에도 쌍방 표절의 혐의가 일부 존재한다는 여지를 남기기도 한다.


사실 이런 부분이 독자들에게 예상 표절에 대한 명확한 개념적 이해를 다소 저해하는 경향이 있다. 피에르 바야르는 이 지점에 대해 차용에 대한 흔적을 발견할 때의 감정을 독자들로 하여금 감각할 수 있도록 “표절자의 이름만 독자에게 제공하고 (…) 표절당한 사람의 이름은 알려주지 않”는 방법을 택했다.


“예상 표절의 식별은 확실한 사실보다는 대개 개인적인 확신에 토대를 두며, 그 확신이 이끄는 대로 받아들여야”한다는 게 그가 말하는 예상 표절에 대한 접근법이자 이해의 실마리다.

 

 

 

탈연대기의 시선에서



문학사나 예술사적 연대기를 파악할 때 피에르 바야르가 지닌 시간에 대한 인식이 우리가 통상적으로 받아들이는 시간 개념과는 어떤 식으로 차이가 있는지는 이 대목에서 알 수 있다.

 

 
“쌍방 표절의 경우에는 시간의 거짓된 경계에 의해 분리된 저자들이-또는 저자 그룹들이-마치 함께 작업하는 방법을 찾은 것처럼 이루어진다.”
 


이를 통해 단순히 선형적 시간 좌표 우측에 위치하는 작품들이 좌측에 자리하는 작품들을 표절하는 것이 아니라는 시선을 제기하며 문학사가 “시간에 대한 고전적 개념에 지나치게” 갇혀있다고 지적한다.


위대한 작가들이 출현하는 논리는 “단절”인데, 그들이 단계적인 작품 세계를 만드는 “연속성”을 지녔다기보다는 “탐험되지 않은 잠재성들 가운데 일부를 탐험함으로써” 아예 다른 무언가를 시도한다고 보는 것이다. 이는 위대한 작가들이 “자기 시대의 한계에서 벗어나기 위해 어둠 속에서 더듬으며 미래의 거주자들과의 대화를 열려고 애쓰는” 행위다.


이런 작가들의 작품을 전통적인 역사의 관점에서 벗어나 그들이 가진 “문학적 삶의 독자성”을 발견하는 게 피에르 바야르가 지향하는 문학사이자 시선이다. “탈연대기”가 부여하는 풍요로움이 우리가 그동안에 써왔던 문학사뿐만 아니라 예술사까지 바꿔놓을 수 있다는 그의 제언에는 단순한 참신성 이상의 갱신의 서사가 있다.


‘연대기적 허상’이라는 표상의 형태가 본질과 지식을 떼어놓는다고 생각한 발레리가 시에서 깊이의 확증을 지연시킨 것은 어쩌면 자신의 시가 가진 순수성에 나란히 놓일 수밖에 없는 당대성을 끊임없이 부정하고 그로부터 벗어나려는 움직임 아니었을까. 그럼으로써 그의 시는 시간의 연결고리에서 자유로워지고 그간 우리가 생각해 보지 못한 차원의 순수성에 도달할 테니 말이다. 순수는 모른다는 사실을 아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무지의 어둠에 손 내미는 것에서부터 모든 의미는 도정 위에 놓인다.

 

 

 

조원용 컬처리스트.jpg

 

 

[조원용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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