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눈을 감아야 볼 수 있는 사랑 - 블라인드 [영화]

글 입력 2021.01.11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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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유튜브의 영화 소개 채널을 통해 짧게나마 요약본으로 접한 적이 있는 영화였다. 인상적인 스토리와 영상미, 그리고 많은 사람들의 리뷰를 통해 직접 보고 싶다고 생각만 하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좋은 기회가 생겨 감사하게도 영화관에서 관람할 수 있었다.


1월 14일부터 극장에서 만날 수 있는 영화 ‘블라인드’는 2007년 작이나, 국내 팬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에 힘입어 15년 만에 국내 첫 공식 개봉하게 되었다. 모든 것을 보고 싶은 루벤과 모든 것을 감추고 싶은 마리, 눈을 감으면 보이는 애절한 사랑의 이야기를 그린 감성 멜로로 안데르센의 동화 ‘눈의 여왕’을 모티브로 한 작품이다.


탄탄한 스토리를 기반으로 한 극적인 전개와 겨울 북유럽 감성이 돋보이는 몽환적인 화면, 진실된 사랑의 본질을 말하는 메시지와 더불어 눈의 왕과 소년 카이, 소녀 게르다의 관계가 점철되어 다양한 해석이 존재하는 캐릭터를 비롯해 여운을 더하는 놀라운 결말을 만나볼 수 있다.

 

영화를 보면서도, 보고 나서도 여러 생각이 드는 영화였다.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 사랑의 본질 : 사랑하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


 

루벤은 후천적 시각 장애로 앞을 볼 수 없다. 앞이 안 보이니 자신의 몸을 씻고, 밥을 먹고, 옷을 입는 것조차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다. 막막한 상황 속에서 루벤은 쉽게 화를 내고 극도의 불안함을 겪는다. 물건을 던지고 물고,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입히며 감정을 표출한다. 어느새 시녀들마저 루벤을 피하며 그는 자택에서 완전히 고립되고 만다.

 

그나마 엄마 캐서린의 말은 듣지만, 그녀 역시 루벤을 완전히 말리지는 못한다. 진정제를 맞아야만 흥분을 가라앉힐 수 있다. 결국, 하루 대부분을 어두운 방안에서 혼자 지새우는 루벤. 제대로 된 감정의 교류 없이 생명만을 영위했던 그의 생활은 사람다운 삶이라 말하기 어렵다.


그런 와중에 책을 읽어주는 가정교사 마리가 찾아온다. 캐서린이 마리를 소개하자 루벤은 언제나 그랬듯이 필요하지 않다며 찻잔을 던진다. 자연스럽게 피하는 캐서린. 하지만 마리는 움직이지도 않은 채 그 찻잔을 손으로 잡는다. 깨지는 소리도 아파하는 소리도 나지 않자 당황한 루벤. 아마 루벤이 던진 물건을 잡은 것은 마리가 처음일 것이다.

 

다른 사람과는 다른 반응에 루벤은 마리에게 호기심을 품고 둘의 수업이 시작된다. 루벤의 거친 행동을 두려워하지 않고 제대로 교육하는 마리 덕분에 점차 그는 안정을 찾는다. 그리고 자신을 피하지 않는 마리에게 점점 마음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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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했던 루벤이 감정을 표출하는 방법은 거친 행동이었다. 아무것도 볼 수 없고 할 수도 없는 세상 속에서 외롭고 불안한 마음을 알아달라는 간절한 신호였다. 다른 사람들은 자신이 상처를 입을까 두려워 도망쳤지만, 마리는 달랐다. 루벤이 보낸 신호에 화답한 첫 번째 사람이었다.

 

너의 감정을, 너라는 존재를 인정한다는 사람에게 어떻게 빠지지 않을 수 있을까. 어릴 때 당한 학대와 폭력으로 흉측한 외모를 갖게 된 마리 역시 처음 받아보는 사랑에 가슴이 설렌다. 자연스럽게 둘은 연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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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벤은 이렇듯 마리의 강인한 내면에 반해, 보이지 않는 그녀의 모습은 아주 아름다울 것이라 상상한다. 머리색은, 나이는. 자신에 대해 묻는 루벤에게 거짓말을 하고 마는 마리. 흉측한 자신의 외모를 알면 떠나갈까 두렵기 때문이다. 네 분수를 알라며 루벤과의 사이를 경고하는 캐서린 역시 마리의 두려움을 증폭시킨다. 결국, 루벤이 시력을 찾게 되자 마리는 편지 한 장을 놓고 사라지고 만다. 자신의 외모에 충격을 받고 더는 사랑하지 않을까 봐.


자취를 감춘 마리를 찾아 헤매던 루벤은 결국 그녀를 찾아내고 만다. 직접 보게 된 외모에 놀라긴 했어도, 루벤은 마리를 간절히 원한다. 루벤이 마음을 연 것은 자신을 받아주고 사랑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리는 그의 사랑을 믿지 않는다. 흉측한 외모로 겪은 수모와 모욕은 마리로 하여금 자신마저 사랑할 수 없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마음의 상처 때문에 진실한 사랑마저 의심하게 된 마리가 안타까우면서도 이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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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우리 주변에는 마리 같은 사람들이 많다. 나 역시 거울을 보고 종종 자괴감이 들 때도 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사회가 변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름다운 외모에 끌리는 것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더는 외모의 우열이 나의 가치를 결정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영화 ‘아이 필 프리티’나 웹툰 ‘내 ID는 강남미인!’ 등 다양한 작품이 이를 증명한다. 사랑의 본질은 외면에 있는 것이 아니다. 아름다워서 사랑하는 게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임을.


 

 

2. Love is bli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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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변치 않은 사랑을 호소했지만, 마리가 믿지 않자 결국 혼자서 집에 들어오게 된 루벤. 그제야 마리가 놓고 간 편지를 읽는다. 편지에는 루벤을 통해 순수한 사랑을 알게 되었다며 진실한 사랑은 보이지 않는 것이라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잠시 먼 곳을 바라보는 루벤. 이윽고 저택 밖의 정원에 나온다. 무언가를 결심한 것 같은 결연한 표정이다.

 

새하얗게 쌓인 눈과 높디높은 저택, 주위의 꽃과 나무를 찬찬히 둘러보고는 분수대에 고드름 두 개를 놓는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자신의 눈을 그 위로 갖다 댄다. 무언가를 찌르는 듯한 소리와 함께 나무 위에 앉아있던 새들이 놀라 날아가는 장면이 보인다. 아마도 눈을 찔렀을 것이다.


그 다음 장면에서는 지금까지 영화에서 나오지 않던 화사하고 푸릇한 배경이 보인다. 이 장면이 실제인지, 루벤의 상상 속 장면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영화의 주요 배경이었던 새하얀 설경, 꽁꽁 언 연못과 두꺼운 털옷, 북유럽 특유의 쓸쓸하고 고요한 분위기와는 대조적인 장면이다. 따사로운 햇살이 내리쬐는 정원 가운데 꽃잎이 흐드러진 나무 아래 앉아 있는 루벤. 눈은 헝겊으로 가려져 있지만 입은 은은한 미소를 띠고 있다.

 

영화는 이렇게 끝난다.

 

실제로 이 날씨가 찾아온 것인지, 루벤이 시력을 잃고 혼자 상상하는 배경인지. 장면 속에서 루벤은 혼자 있는데, 마리가 루벤에게 돌아온 건지 혹은 아예 다른 곳으로 떠나버린 것인지.


진실한 사랑은 보이지 않는 것이라는 마리의 편지에 눈을 찌르고 제 발로 암흑으로 돌아간 루벤. 그런 행동이 미련해 보이다가도 어쩐지 조금은 알 것도 같다. 마리가 떠난 현실이 앞이 보이지 않는 적막보다 더 두려웠던 것이다. 차라리 눈을 가려 가혹한 현실에서 벗어나 자신의 마음대로 꿈을 꿀 수 있게. 보이지 않기 때문에 더욱 견고한 상상 속에서 살 수 있도록. 만약 마리가 돌아오지 않았더라면 이곳이 현실보다 더 아름답지 않을까.


영화는 마리가 돌아왔는지 돌아오지 않았는지 알려주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루벤이 눈을 찌르지 않았다면 마리는 아마 돌아오지 않았을 것 같다. 이미 평생을 외모로 상처받은 마음이었기 때문에 루벤의 말 몇 마디로 당장 다친 마음이 치유되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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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영화 스틸컷에 보면 마지막 장면의 배경인 푸른 정원에서 루벤과 마리가 함께 서있는 사진이 한 장 있다.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이 사진은 감독판의 결말로, 마리가 돌아왔음을 알려주는 거라고 한다.

 

좀처럼 관련 정보를 찾기가 어려워 이 해석이 진실인지 확실하게 말하기는 어렵지만, 정말 감독판의 결말이 이렇다면 루벤은 시력을 잃고, 진정한 블라인드 상태가 되어서야 더 아름다운 세상을 얻게 되는 것이다. 정말로 눈이 멀어서야 사랑을 얻을 수 있었다면, 이것은 진정한 사랑일지. 그렇게 얻은 사랑이 후에도 행복했을지.


흔히들 사랑은 눈먼 것이라는 말이 있다. 사랑에 빠지면 상대방이 뭘 해도 좋고, 그 사람 외에는 무엇에도 마음이 가지 않는. 나쁜 의미로 정말 그 사람이 옳지 못한 행동을 해도 눈먼 사람처럼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그렇게 맹목적인 일면에서 사랑은 눈먼 것이라는 말이 비롯되었을 것이다. 맹목적이기에 진실하지만 그만큼 위험한 사랑의 단면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3. 안데르센 동화와 현실의 두 남녀



영화 속에서 마리가 루벤에게 읽어주던 책은 안데르센의 동화 ‘눈의 여왕’이다. 영화가 진행될수록 동화 속 주인공들과 현실의 두 남녀의 상황이 묘하게 어우러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연스럽게 동화 속의 소녀 게르다와 소년 카이, 눈의 여왕을 영화 속 인물과 비교하게 되었다.

 

눈의 여왕의 줄거리는 이렇다.

 

 

모든 것을 형편없게 비추는 거울의 파편에 눈과 심장을 찔린 소년 카이는 감정을 잃고 차갑게 변하고 만다.


이후 눈의 여왕이 카이를 데리고 떠나 게르다는 카이를 찾아 떠난다.


사람들의 도움으로 겨우 카이를 찾은 게르다. 카이를 끌어안고 울자 카이의 몸에 있던 거울 파편이 게르다의 눈물에 녹아 카이는 감정을 되찾고 둘은 손잡고 집으로 돌아간다.

 


영화 초반에는 루벤이 카이, 마리가 게르다, 캐서린이 눈의 여왕을 의미한다고 생각했었다. 루벤은 앞이 보이지 않는 세상에 홀로 살고 있었고, 마리가 그런 루벤을 정상적으로 사람과 교류할 수 있도록 도왔기 때문에. 그리고 캐서린의 분수를 알라는 말이 마리로 하여금 루벤을 떠나게 하는데 결정적인 말이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의 후반부로 갈수록, 그리고 영화가 끝나고서는 생각이 바뀌었다. 마리가 카이, 루벤이 게르다이지 않았을까하는.


앞서 말했듯 마리는 어렸을 때부터 외모 때문에 심한 말을 듣고 자란 탓에 마음속에 단단한 벽이 세워져 있었다. 루벤은 앞을 못 보기 때문에 이 벽을 쉽게 넘어올 수 있었지만, 시력을 되찾자 마리의 벽은 루벤을 튕겨냈다. 그런 마리의 마음을 열기 위해 루벤은 여러 번 호소하고, 자신의 눈을 찔러 사랑을 증명한다. 루벤의 피눈물이 마리의 마음을 녹인 것이다(마리가 돌아왔다면). 결국, 두 사람의 사랑을 방해한 눈의 여왕은 마리 내면의 상처, 그리고 세상의 시선이 아니었을까.

 

+

영화를 본 후의 느낀 점을 길게 적어놓았지만, 또 한 가지 강조하고 싶었던 것은 사운드다. ‘매드맥스’, ‘데드풀’, ‘배트맨 대 슈퍼맨’, ‘툼레이더’ 등 이미 다수 영화로 자신의 실력을 입증한 바 있는 정키 XL이 음악을 맡았다. 인물의 감정선에 따라 고조되는 음악이나, 긴장감을 증폭시키는 사운드 등 영화의 묘미를 한층 더해주었다. 혹시 영화를 볼 기회가 생긴다면 사운드에 집중해서 감상하길 권한다.

 

 

제   목 : 블라인드

영   제 : Blind

감   독 : 타마르 반 덴 도프

주   연 : 요런 셀데슬라흐츠, 핼리너 레인

장   르 : 감성 멜로 드라마

개   봉 : 2021년 1월 14일

 

 

[최예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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