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당신] '경계인'이었고 '물'이며 '사랑'이고픈 사람

나의 과거, 현재, 미래를 설명하는 단어들
글 입력 2021.01.07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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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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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bastian Bieniek (B1EN1EK), "Doublefaced No. 24". Berlin, 2013.

From the “Doublefaced 2013” series. Oeuvre: Bieniek-Face.

 

 

학창시절 가장 싫었던 건 토론이었다. A와 B, 둘 중 하나의 입장을 정해 논리적인 주장을 펼쳐 상대방의 설득을 이끌어 내는 토론. 나는 항상 A와 B 중 하나의 의견을 정하는 것부터 애를 먹었다. 한 쪽의 주장을 읽어보면 분명 일리가 있는데 다른 쪽의 주장을 읽고 나면 또 그 논리에 설득 당했다. 그런 내게 흔들리지 않고 올곧게 하나의 주장을 펼쳐야 하는 토론은 고역이었다.

 

중학교 때 반드시 참여해야 했던 토론에선 금세 상대방의 말에 설득되어 논거를 정리한 조그만 수첩에 얼굴을 파묻고 이 시간이 어서 끝났으면 바랐던 기억이 난다. 고등학생 때 했던 역사 토론에서도 비슷했다. 어떤 입장에 놓이느냐에 따라 다 일리가 있는데, 어느 한 쪽을 골라야만 했던 그 상황이 혼란스럽기만 했다.

 

그 혼란스러움은 내가 성인이 되고 나서도 계속됐다. 학교라는 제한된 공간을 벗어나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과 자유롭게 만나고 새로운 것들을 접하며 즐거웠지만 혼란스러웠다. 이 사람의 이야기도 맞는 것 같고 저 사람의 이야기도 맞는 것 같은데 그럼 도대체 뭐가 맞는 걸까, 나는 그 사이에서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하나 늘 고민했다.

 

그래서 나는 대화에서 주로 듣는 편이었다. 망설임 없이 자기 의견을 펼치는 사람들 틈에서 아무 말도 못하고 줏대 없이 휘둘리는 내가 바보 같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자기 색이 분명하고 주장이 확실한 사람들이 늘 부러웠다. 강단 있고 멋있어 보였다.

 

나의 이런 고민을 옆에서 본 H언니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지금 너의 그런 성향이 단기간에 결정해야 하는 상황에선 답답할 수 있지만 너는 양쪽의 시각을 가지고 있는 거야. 줏대 없는 게 아니라 더 넓은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 거야. 교과서에서 배운 내용과 충돌하는 일이 실제 삶에서 빈번히 일어나는 것처럼 삶은 A와 B로 간단히 나눠지지 않아. 그 두 가지를 모두 선택하지 않는 회색분자라고 해서 나쁜 게 아니야.”

 

당시엔 그 말이 위로가 되면서도 이해되지 않았다. 물렁한 나 자신이 싫었으니까. 나는 이도 저도 아닌 경계에 서 있는 사람이 아니라 뭐 하나라도 확실하게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이길 바랐다. 내가 바라는 이상적인 나는 자기 주장을 분명히 할 수 있는 단단한 사람이었고 그건 현실의 나와 한참은 거리가 멀었다. 나는 그 간극에 스스로를 자주 탓했다.

 

 

 


 

생각이 바뀌게 된 것은 시간이 꽤 지나고 나서였다. 하루는 물, 불, 흙, 나무 네 가지 요소로 각자를 정의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타인이 보는 나와 내가 생각하는 나의 이미지를 공유했다. 그리고 내게 주어진 단어는 ‘물’이었다. 투명하고, 더해지는 것에 따라 색이 변하며, 그릇의 형태에 따라 모양을 달리하고, 공기와 얼음으로 상태변화를 하는 물. 물의 특징들은 왠지 익숙했다. ‘이거 내 얘긴데’ 하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경험이란 거, 그 자체로는 별 의미 없어. 그걸 받아들이는 너 자신이 중요한 거지."

 

경험 대신 나의 성향을 집어넣어도 문장은 유효하다. 단점도 관점이나 상황에 따라 장점이 된다. 줏대 없다는 말은 타인의 의견을 잘 수용한다는 말로, 주변 환경에 유독 휘둘리는 건 그만큼 필요에 따라 적절한 환경을 만들어내면 그만이었다.

 

물이 가지는 이미지가 좋았다. 때에 따라 자유자재로 바뀌는 색, 투명하고 자연스럽게 흐르는 성질까지. '경계인' 대신 '물'이라는 단어로 나를 정의하고 나니 예전처럼 부정적인 모습만 보이지 않았다. 결국 중요한 건 받아들이는 나 자신이었다. H언니가 내게 해준 말이 그제서야 이해가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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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으로 가득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작년 여름에는 유서를 썼다. 유서를 써야겠다는 준비를 하고 쓴 것이 아니어서 꽤나 즉흥적으로 써야 했다. 그리 길지 않은 생을 살아온 지금의 내 앞에 죽음이 놓여있다면 나는 무엇을 남겨야 할까. 고민 끝에 떠오르는 것은 삶에 대한 미련 대신 내가 죽고 난 후 남겨질 사람들에 대한 걱정이었다.

 

이상하게 나는 인복이 많았다. 고등학교 때, 엄마가 내가 모르는 새에 이름의 한 글자를 음은 같고 뜻이 다른 한자로 바꿔버리셨다. 이름 자체는 바뀌지 않았지만 이름의 뜻이 달라진 이후로 신기하게 셀 수 없이 많은 좋은 사람들을 만났다. 전혀 인과관계가 없을지도 모르겠지만, 샤머니즘의 국가에서 나고 자란 나로서는 이 바꾼 이름 덕을 본 게 아닐까 농담처럼 이야기한다.

 

평생을 함께 하고픈 친구들을 대학에서 만났고, 여행지에선 여행의 기억을 더욱 빛나게 할 좋은 동행들을 만났다. 서로 만나지 않은 기간보다 만난 기간이 더 많은 단짝 같은 친구도 생겼다. 정말 이상한 사람과 위험한 사람은 만난 적이 없는 것 같다.

 

그 덕에 낯선 사람을 만나도 크게 두려움이 없다. 내가 모르는 이 사람의 세계를 알아갈 생각에 오히려 신이 난다. 우연이 가져다 줄 인연을 기대하며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에 선뜻 발을 디딘다. 그렇게 만난 소중한 인연들과 보내는 시간들이 내겐 가장 중요하다. 나 자신의 성공보다도 더. 그러니 유서에 나보다 남겨질 이의 안위를 걱정하는 내용으로 가득했던 건 당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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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 두 살이 되었을 때 했던 다짐은 이랬다.

 

‘사랑으로 가득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연인 간의 사랑 뿐만 아니라 가족들, 친구들, 내가 아끼는 사람들, 그리고 나 자신에게 따뜻한 사람이고 싶었다. 그리고 지난 여름에 적은 유서에 삶에 대한 반추 대신 남은 이들을 다독이는 말들 뿐이었던 걸 보면 조금은 그 다짐에 가까워지고 있는 것 같다.

 

그럼에도 내가 그들에게 받은 온기와 호의들을 다 갚아나가려면 아직 한참 멀었다. 특히나 나 자신에게 따뜻해지기는 좀처럼 쉽지 않다. 그러니 이 마음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스물 두 살의 나의 다짐이 지금의 나를 만든 것처럼, 미래의 나를 사랑으로 가득한 사람이라 소개할 날을 꿈꾸며 다시금 이 문장을 곱씹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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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소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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