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단면만 보고는 아무것도 판단할 수 없다 - 더 테이블 [영화]

글 입력 2021.01.04 12:13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포맷변환][크기변환]movie_image.jpg


 

한 카페의 테이블. 이곳에서 4팀의 사람들이 머물다 떠난다. 우리가 그들의 이야기를 엿들을 수 있는 건 고작 20분 남짓. 조금은 범상치 않은 대화들이 이어진다. 우리는 그 짧은 시간에도 이들이 살아온 삶을 유추해 볼 수가 있겠다.

 

내가 운 좋게도 이 테이블 건너편에 앉은 사람이라 가정해보자. 귀를 뗄 수 없는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이 커피 향기처럼 풍겨온다. 외면할 수 없어 귀를 기울일 것이다. 동시에 마음은 조금 무거울 것이다.


이토록 사적이고 내밀한 이야기가 대낮에 라디오처럼 남의 귀에까지 흘러든다. 그렇게 흘러든 어떤 이야기들은 듣는 사람 마음대로 편집되어 아무렇게나 SNS에 떠다닐지도 모른다. 인터넷 세계를 조금만 떠돌아도 흔히 마주치는 장면이다. 그런 광경이 무서워 밖에서는 내 얘기를 굉장히 조심히 떠들던 때도 있었다. 비록 내 이야기는 영화처럼 비밀스럽고 재밌는 것도 아니지마는.


우리가 등장인물들을 만나는 순간은 아주 짧다. 이들의 이야기를 실제로 어느 카페에서, 길거리에서 지나치다 듣게 되지 않았음에 감사한다. 타인에 대한 섣부른 판단은 집중력 부족에서 오는지도 모른다. 단 십오 분, 이십 분이라도 이야기에 집중한다면 한참 상대를 손가락 잘 하다가, 아니 다시 이해했다가, 결국은 판단을 포기하게 될 것이다.




#1. 연예인이 되더니 변한 전 여자친구



[크기변환]movie_image.jpg

 

 

연예인을 신기해하고 궁금해하는 것이 촌스럽다 여기면서도, 막상 아무렇지 않은 척은 어려운가 보다. 이 영화의 남자 주인공도 그렇다. 연예인인 전 여자친구가 창가 자리에 앉아 다른 사람들에게 노출되는 걸 걱정하고, 가게까지 쫓아 들어와 사진을 요구하는 사람들을 말리면서도 그의 궁금증 역시 무례하고 불쾌하긴 마찬가지다.

연예인이 대중에게 내어놓은 건 연예인으로서 이미지와 그들의 재능 정도.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연예인 자체를 소비해도 좋다고 여기는 것 같다. 사람 자체를 소비해도 좋은 권리나 자격 같은 건 없다. 어쩌면 다 알고 있으면서도 남자는 전 애인에게 자신이 주워들은 증권가 찌라시 속 소문들을 캐묻고, 남들에게 자랑할 인증사진을 요구한다.


그가 자기 회사 동료들을 먼발치에 세워 두고 자신과의 만남을 ‘인증’하는 걸 보고, 그녀는 끝내 불쾌함을 숨기지 못한다. 굳은 표정으로 자리를 뜨는 그녀를 그와 그의 회사 동료들이 지켜본다. 오늘의 행보는 어디에서 누구에 의해 어떤 평가를 받을까. 가혹해 보이지만 그녀에게는 지겹게도 평범한 하루였을 것이다.




#2. 썸만 타다 여행 간다고 연락 끊어버린 남자


 

[포맷변환][크기변환]movie_image (1).jpg

 

 

연애에서 누구의 잘못인지를 묻는 고민 글들을 자주 본다. 다들 연애에 대해서도 정형화된 틀과 규칙을 바라는지도 모르겠다. 서운할 만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 화내도 되는 것과 안되는 것. 모든 게 기준이 있다면 쓸데없는 감정낭비로 속을 썩이지 않아도 될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은 항상 규칙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비슷비슷한 고민 글도 끊이지 않는다.

만난 지 3번 된 남자가 멀리 여행을 떠나버렸다면, 떠난 여행지에서 연락 한 통 없었다면, 나라도 화가 났을 것 같다. 그리고 여자는 정말로 화가 났다. 남자는 정작 연락해도 될까 싶은 마음에 연락을 못 했다. 여자를 완전히 잊었다고 오해받았던 시간 동안, 그는 태엽으로 가는 손목시계를 선물로 사서 매일 매일 태엽을 돌렸다. 덕분에 시계는 멈추지 않고 여자에게 도착했다.


사람마다 표현의 방법이 다르기 마련이건만, 어떤 정형화된 방법이 아니라면 틀렸다고 이야기한다. 매일 메시지를 보내는 게 아니라, 태엽을 감는 시계를 사는 게 표현의 방법인 사람도 있다. 사람 간의 관계에서 우리는 기준을 좀 더 넉넉히 주어도 되지 않을까. 다행히 행복한 결말이라서 마음이 놓이는 에피소드였다.




#3. 가짜 신분, 가짜 부모님, 가짜 하객, 진짜 결혼


 

[포맷변환][크기변환]movie_image (2).jpg

 

 

거짓으로 결혼하고 돈을 챙겨 헤어지는 사기꾼이 있다. 그녀는 그러다가 정말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다. 가진 것도 없고 집안이 대단하지도 않은 사람이었다. 그런데도 그녀는 솔직하게 그를 만나지 못했다. 정말 사랑해서 하는 결혼인데, 여전히 그녀의 신분은 모두 거짓이다.

이 결혼에 그녀의 부모 역할을 맡을 또 한 명의 배우가 등장한다. 그녀는 섭외된 것뿐이지만, 죽은 딸의 결혼과 이 결혼이 자꾸 겹쳐 보인다. 그래서 그녀는 이전처럼 결혼식에 입을 새 옷을 요구하지 않고, 딸의 결혼을 위해 준비했던 좋은 옷을 입고 가겠다고 한다.


거짓 결혼을 해도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도 거짓말로 자기 자신을 속였던 그녀의 행동은 당연히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 형식은 거짓이지만 임하는 그들의 마음은 진심이다. 여자는 남편이 될 사람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가짜 부모는 가짜 자녀의 결혼이 진심으로 애틋하다.

 

그들이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서로밖에 이해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겪어보지 않은 삶을 속속들이 알 수는 없기 때문이다.




#4. 결혼을 앞두고 바람 피우자고 요구하는 전 애인


  

[포맷변환][크기변환]movie_image (3).jpg

 

 

남자의 헤어진 전 여자친구는 사회적 조건이 좋은 새 남자친구를 만났다. 그들은 결혼을 앞두고 있다. 그런데도 여자친구는 언제든 돌아오라면 돌아오겠다고 말하며, 결혼 전까지 만나자고 조른다. 정말 바람을 피우자는 건지는 알 수 없다. 적어도 여자는 남자의 마음이 남아있는지 알고 싶었을 것이다.

마음 가는 곳과 사람 가는 곳이 다르다고 말한다. 그들이 헤어진 건 서로의 조건 때문이었지만 마음은 그대로 남아있다. 그래도 그들은 그렇게 하기로 선택을 한 것이다. 그리고 선택에 대해 책임을 지기로 했다. 그들은 다시는 만나지 말자고 다짐하며 헤어진다. 아마도 정말로 그렇게 할 것이다.


조건에 따라 누군가를 만나고, 결혼을 앞두고 전 남자친구를 만나는 게 옳은 일은 아닐 것 같다. 그래도 그런 감정이 있을 수도 있다는 건 이해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감정에 선악을 나누긴 어렵지만, 행동에는 선악이 분명하니까. 그들이 마음과 사람 가는 길을 나누어 걷는 건 아마도 그것 때문일 것이다.


*

 

내가 믿는 도덕과 신념이 별것 아니게 느껴질 때가 있다. 남들이 옳다고 말하는 대로 판단해도 다 설명하지 못한 무언가가 남기도 한다. 주로 구체적인 사연을 접할 때 그렇다. 처음부터 끝까지 읽지 않고서는 내릴 수 없는 판단들이 세상에 많다. 그러나 사람의 인생은 처음과 끝에 표시를 해두고 읽을 수 있는 책 같은 것이 아니니 종종 우리는 일부를 읽고 전부를 안다고 착각한다.


그러니 어쩌면 우리는 타인에 대한 많은 이분법적인 판단을, 옳고 그름에 대한 확신을 포기하는 게 나은지도 모른다. 때때로 최선은 그저 감상하는 것이다. 지금처럼 타인의 삶을 있는 그대로. 그럴 수밖에 없었던 각자의 드러나지 않은 이유에 귀 기울이면서.

 

 

 

박경원.jpg

 

 

[박경원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5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