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on] 표류하는 노동자들의 기록 [영화]

<유망어선(Drifters, 1929)> - 존 그리어슨
글 입력 2021.01.03 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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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중반, '다큐멘터리'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사람으로 알려진 '존 그리어슨(John Grierson)'. 그는 영국의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기록영화 이론의 창시자이다.

 

다큐멘터리 영화사에서 존 그리어슨을 빼놓고 말하면 섭할 정도. 그는 단순 미적 욕구 충족이 아닌, 사회의 이익을 위한 다큐멘터리의 제작 활동을 펼쳐 나가며 영국의 공공 다큐멘터리 산업 발달에 크게 기여했다.

 

 

솔직하고 명료하며 깊이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을 통해 시민으로서 최상의 목적을 완수하면, 그 주제의 표현 속에 언젠가는 아름다움이 깃들 것이라는 사실을 확신한다. 그들은 예술을 해야 할 일을 수행했을 때 따라오는 부산물로 이해하는 분별력을 가졌다.

 

- <현실을 상상하다(다큐멘터리의 철학과 작업), 마크 커즌스ㆍ케빈 맥도널드> 중에서

 

 

공공선에 대한 열망과 사명감이 물씬 느껴지는 문장이다. 공익을 위한 기록 영화를 추구했던 존 그리어슨의 예술관은 위의 문장에서도 추측해 볼 수 있다. 오늘은 그의 대표작인 <유망어선(Drifters, 1929)>를 살펴보며 그리어슨 특유의 다큐멘터리적 특징을 살펴 보도록 하자.

 

*

 

<유망어선>은 북해의 청어잡이 노동자들의 하루를 담고 있다. 어선 위에서 고기를 잡는 것부터, 고기를 장에 내다 파는 것까지의 고된 하루가 작품 내러티브의 전반을 구성한다. 때문에 당연히 이 영화의 주인공은 그 노동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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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들의 모습은 매우 지쳐 보인다. 그러나 종종 인서트로 삽입되는 세밀한 클로즈업 샷들과 빠른 템포의 편집 때문인지, '사회 비판적인 영화'라는 느낌은 크게 들지 않는다.

 

감상 중에 '비판'을 할 만한 - 그런 관조적인 시선에서 보기 어려운 작품이었다. 오히려, 관객인 내가 노동자들의 분주한 삶에 직접 참여하게 된 것만 같아서 어떠한 분석도 할 수 없이 깊게 몰입하고 감상했다.

 

나도 모르게 그들의 삶에 공감하고 있었다. 그리고 감상이 전부 다 끝나고 나서야, 작품 속 노동자 계층의 이야기와 사회의 단면, 그리고 그 문제점을 돌아볼 수 있었다.

 

이렇듯 <유망어선>은 단순한 사실주의적 재현보다, 촬영 대상에 감수성을 부여하는 연출을 통해 독특한 효과를 이끌어낸다.

 

 

[크기변환]!drifters_pic_2-large.jpg

 

 

제작된지 100년 가까이 된 이 작품을 보고 나서 유일하게 느낀 아쉬운 점은, 원제의 번역에 대한 것이었다. Drifters는 <유망어선>으로보다, <표류자들>로 번역되는 것이 영화 분위기에 더 적합하다고 느꼈다. 물론 북해 청어 잡이 어선을 다루고 있는 영화이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어선 위 '노동자들' 개개인의 관점에서 기록된 영화이기 때문이다.

 

자연 속 인간의 생존과 사투를 다루었던 당대 영국의 또 다른 대표 다큐멘터리 감독 '로버트 플래허티'의 영화 <북극의 나누크(1922)>처럼, 이 영화는 정처 없이 떠도는 어부들의 삶과 그 쓸쓸함의 정서에 집중하고 있다. 흔들리는 배에서의 노동, 마침내 잡은 각종 생선들, 고기잡이를 마치고 시장에서 내다 파는 모습까지... 오늘날에도 주위에서 볼 수 있을 법한 노동자들의 하루가 그대로 담겨 있는 영화이다.

 

그렇기에 이 작품의 서사를 깊이 파고드는 것은 크게 의미가 없다. 페이드아웃에 따라 네 파트 정도로 서사를 구분할 수 있기는 하지만, 끊어서 공부하듯이 감상하기보다는 온전하게 연결하여 받아들이는 것이 이 영화의 본목적에 더욱 적합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고전 기록 영화라고 해서 겁먹지 말자.)

 

*


이렇듯 존 그리어슨 감독은 사실주의 다큐멘터리에 몰두한 감독이다. 그는 소위 '예술'적인 목적(마치 낭만주의 시인과 같은 목적)을 위해서가 아니라, 노동자 개개인의 정서를 담고 결과적으로 사회ㆍ공익적인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기록 영화 운동을 전개하였다.

 

영화인으로서의 사회적 책무를 다하고, 다큐멘터리의 개념을 확고히 정립한 존 그리어슨 감독께, 이 자리를 빌어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한지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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