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우리는 우수한 예술을 만날 준비가 되었을까 [문화 전반]

백희나 작가의 <구름빵>을 둘러싼 씁쓸한 이야기
글 입력 2020.12.30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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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백희나 작가는 동화 <구름빵>으로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상’을 수상했다.

 

해당 상은 아동문학계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만큼 높은 가치를 가지고 있다. 더불어 한국인 최초 수상이라는 결과는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하지만 이와 함께 출판사와의 불공정 계약 사실이 드러났고 국내 문학계의 잘못된 관행이 알려지게 되었다.

 

대외적으로 문화예술계에 큰 방점을 찍는 일임에도 작가 개인은 손쓸 수 없는 불합리함과 맞서 싸우고 있었다. 내게 백희나 작가의 <구름빵> 수상은 많은 생각이 들게 했다. 그리하여 이번 오피니언에서는, <구름빵>과 관련된 크고 작은 이야기들을 자유롭게 기고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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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 아침, 작은 구름 하나가 나뭇가지에 걸려있어요. 아이들은 하도 신기해서 조심조심 엄마한테 갖다주지요. 엄마는 작은 구름을 반죽하여 빵을 굽습니다.

 

잘 구워진 빵을 만들어 먹고 구름처럼 떠오른다는 얘기는, 아이들의 마음을 담은 아름다운 판타지입니다. 또한 회사에 늦을세라 아침도 못 먹고 헐레벌떡 나간 아빠한테 빵을 갖다주는 아이들의 따뜻한 마음도 느낄 수 있습니다.


아동문학가 최인학 추천사

 

 

<구름빵>은 작품성과 예술성 모두 갖춘 아동문학으로 평가받는다.

 

작품의 스토리는 아이들의 상상력을 이끌어내고, 꿈꾸는 모든 것을 실현시켜 준다. 이와 함께 종이 질감의 주인공과 배경은 감각을 일깨우고, 입체적인 형태는 완전한 몰입을 가능케 한다. 섬세함에서 애정과 정성이 듬뿍 담겨있음을 느낄 수 있다. 이는 백희나 작가의 작품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특징이다.

 

포슬포슬한 구름의 모습, 그리고 먹음직스러운 둥그스름한 구름빵, 잘 구워진 구름빵을 먹고 두둥실 하늘을 나는 모습은 정말인지, 작품 속 주인공이 된 듯한 기분이 든다. 어렸을 적 한번쯤 꿈꿨던 구름을 타고 날고 싶다는 상상을 이룬 것 만 같다. 지금도 하늘을 올려다보며 꿈꾸고 있을 세상의 모든 아이들에겐 최고의 동화책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뿐만 아니라 작가는 주인공에게 ‘사람’과 ‘성별’을 정해두지 않는다. 고양이가 책의 주인공이고,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 수 있는 요소가 없다. 제한을 열어둠으로써 책을 읽는 모든 독자가 구름빵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모두가 구름빵을 맛있게 먹고 아빠에게 구름빵을 전해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백희나 작가의 작품에 대한 리뷰는 주로 이렇다. “아이가 너무 좋아해요. 그런데 제가 아이에게 읽어주다 울었네요.” 어른에게도 따뜻한 위로를 건네는 이 책에 무한한 감동을 느낀다. 마음 속 깊은 곳 어딘가에 숨겨두었던 환상과 순수함 그리고 해방감을 다시 꺼내어본 기분이다. 팍팍한 일상에 따뜻한 햇살을 잔뜩 맞은 것만 같다. 문득 이야말로 문학이 가진 저력, 예술이 가진 영향력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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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포터〉는 영국의 어떤 부분을 세계적으로 만들었지만, 우리는 〈구름빵〉으로 한국의 어떤 부분을 세계적으로 만드는 데 실패했다. 백희나 작가의 수상 소식은 기쁨 끝에 찌르는 통증을 부른다. 작가들은 무엇을 꿈꾸며 무슨 힘으로 나아갈 수 있는가?


동화작가·평론가 김서정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상은 스웨덴 정부가 2002년에 만들었다.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은 <내 이름은 삐삐롱스타킹>의 작가로 현대 아동문학의 기틀을 마련했다. 스웨덴은 린드그렌의 목소리를 이어가고 어린이·청소년 문학의 중요성을 알리고자 국제적인 상을 제정했다. 수상자에겐 국민의 세금으로 약 6억이 넘는 상금을 부여하며 어린이·청소년 작가들의 활동 동기를 지속시키고자 한다.

 

국민의 세금, 국가의 염원으로 제정된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상. 시상식을 보다보니 어디선가 씁쓸함이 밀려왔다. 문학은 삶을 지속시키는 힘이 있고, 작가는 국가의 위신을 높일 수 있으며, 넓고 깊게 사람과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마련되어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반면 <구름빵>은 불공정 계약, 소송, 패소의 길을 걸으며 긍정적인 기사보다 부정적인 기사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구름빵>은 약 40여만 부가 팔려 애니메이션, 뮤지컬 등 다양한 2차 상품으로 만들어졌다. 금액으로 환산하자면 약 4400억원의 가치를 창출했다. 하지만 작가에게는 1850만원만 돌아갔다고 한다. 이는 작가가 출판사에게 저작권을 일괄양도하는 ‘매절계약’ 때문이다. 문학계에서는 이와 같은 일이 빈번하게 일어난다. 신진 작가들은 출판사의 갑질로, 계약에 대한 미숙함으로 의도와 다른 계약을 체결하게 된다.

 

불공정 계약으로 작가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2차 상품들이 만들어졌고, 본래의 이미지를 잃은 캐릭터들이 생산됐다. 작가는 소외된 채, 수익 추구가 이루어졌다. 하지만 대법원은 심리불속행 기각 결정을 내렸고 결국 올해 6월 최종 패소라는 결과를 가져왔다.

 

우리의 법, 시장 그리고 사회는 그저 이를 개인의 부주의, 바꾸기 힘든 문화계 관례쯤으로 여기는 것이 아닐까? 백희나 작가의 권리와 더불어 작가를 꿈꾸는 모든 이들의 의지를 꺾지 않기 위해선, 인식의 변화와 더불어 실질적인 해결책이 마련되어야만 한다. 그래야만 우리는 우수한 작가와 작품을 만날 준비를 마쳤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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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지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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