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투명한 실체 뒤에 뚜렷이 실재하는 권력: '인비저블 맨' [영화]

투명인간, 그리고 보이지 않음의 공포
글 입력 2020.12.27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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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인간은 수많은 SF 장르의 영화와 소설에서 흔하게 다뤄지는 소재다.

 

<해리포터>의 해리는 투명망토를 쓰고 밤늦게 도서관에 몰래 들어가거나 학교를 돌아다니며 비밀단서를 찾는다. <공각기동대>에서 주인공 메이저는 광학 기술로 만든 슈트를 입고 신체를 투명하게 숨겨 임무를 수행한다. 대부분 투명인간으로 변신한 주인공이 현실에서 불가능한 일을 해내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투명인간이 되는 것은 곧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철저하게 익명이 되어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않으며 원하는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투명인간은 모든 법과 질서, 그리고 자신의 양심까지도 거스를 수 있는 막강한 힘을 쥐고 있다. 그래서 투명인간이 된 누군가와 맞서서 이긴다는 것은 시작부터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이 영화 <인비저블 맨>에서 투명인간이 되는 것은 주인공 세실리아가 아닌, 그녀의 남편 애드리안이다. 그는 아내에게 정신적, 신체적 폭력을 가하며 광적으로 집착하는 인물이다. 광학 기술 전문가라는 애드리안은 아내가 저택에서 탈출하자 신체를 투명하게 만들어주는 ‘클로킹 수트’를 입고 그녀를 뒤쫓는다. 그리고 세실리아는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며 그가 남기는 단서들을 하나씩 발견하고, 따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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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킹 수트의 기능은 투명한 상태가 될 수 있다는 것 이외에도 한 가지가 더 있다. 전신에 탑재돼있는 수많은 소형 카메라들은 세실리아의 자는 모습을 찍는 등 사생활 감시에 활용된다. 자신이 찍힌 사진을 본 세실리아는 공포를 느끼는데 이는 마치 과거 벤담이 구상한 원형감옥인 판옵티콘을 연상케 한다.


판옵티콘의 중앙 통제탑에 위치한 간수는 독방에 갇힌 죄수들을 항상 감시할 수 있지만, 반대로 죄수들은 어둠 속에 가려진 간수를 볼 수 없다. 권력을 가진 사람이 시선을 독점하는 것이다. 이로 인해 죄수들은 간수가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늘 그의 시선을 의식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세실리아 역시 투명 인간으로 분한 그가 언제 나타나 자신을 공격할지 극도로 불안해한다.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상대와의 싸움, 마치 애드리안의 시선을 대변하듯 멀찍이 떨어져 세실리아를 찍는 카메라 앵글, 그리고 둘의 거리가 가까워질 때마다 깔리는 음산한 분위기의 배경음악. 이것들이 합쳐져 서스펜스를 조성할 때,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계속해서 가슴을 졸이면서도 언제 전면전이 펼쳐질지 기다리게 된다.


그전에 이 투명인간이 세실리아를 어떻게 사회적으로 고립시키는지 볼 필요가 있다. 세실리아의 언니에게 “언니는 나를 질식시켜. 언니를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아”라는 메일을 대신 보내는 것은 그나마 유치한 장난으로 봐줄 수 있다.


그러나 그녀 주변인들을 다치게 하고 살인하는 등 물리적으로 위해를 가하며 현실을 침범할 때 이야기는 심각해진다. 세실리아의 가족과 친구들은 투명인간이 자신을 감시한다는 터무니없는 말에도 주인공을 믿으려 노력하며 도움이 되어줬다. 애드리안은 이를 방해하기 위해 그녀의 가까운 지인들을 공격하며 인질로 삼고, 그들은 보이지도 않는 사람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그녀에게 서서히 등을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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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에 체포되고 정신건강센터에 들어간 세실리아. 주변 사람들은 더이상 그녀에게 집중하지 않으며 그녀의 말은 믿음의 효력을 잃는다. 애드리안이 보이지 않음에도 섬뜩함을 주며 분명히 실재하는 인비저블 맨이라면, 사회적으로 고립된 세실리아는 현실에 존재하지만 잘 보이지 않는 인비저블 우먼이다.


그렇지만 완벽한 사람은 없듯이 투명인간 역시 언제까지나 투명할 수는 없다. 주인공은 단순한 공포감을 넘어 일상을 파괴하고 삶을 옥죄는 그의 끈질긴 위협에도 쉽게 항복하지 앖는다.

 

자신을 괴롭히는 그의 실체를 마주하기 위해 고투하는 그녀는, 마침내 보이지 않는 그를 향해 일격을 가하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데미지를 입은 남자의 투명슈트는 더이상 예전처럼 온전하게 기능하지 않는다.

 


[포맷변환][크기변환]서프라이즈.jpg

 

 

기나긴 싸움 끝에, 마침내 전세는 역전됐다. 그렇지만 동생에게 죄를 뒤집어씌우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태연히 모습을 드러낸 그의 집착은 여전하다. 다행히 영리한 주인공 세실리아는 남편을 확실하게 처단할 방법을 마련해 두었다. 이전에 그의 집에서 발견한 뒤 몰래 숨겨두었던 슈트를 입고 투명인간이 되어 그를 사살한다.

 

구급대에 전화한 뒤 순간 싸늘히 변화하는 그녀의 표정. 그리고 천천히 뒷걸음질치며 CCTV의 시야에서 벗어나 죽어가는 남편을 응시하는 시선. 그리고 나직이 내뱉는 “서프라이즈.” 이 영화의 압권은 2시간 동안 이어진 권력 관계를 간단히 뒤집는 결말에 있다.

 

 

 

오영은 태그.jpg

 

 

[오영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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