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고소한 결론내기, 이언의 철학 여행 [도서]

글 입력 2020.12.26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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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는, 내가 궁금해하는 진리(사람, 인생, 사회)가 철학으로 해소될 수 있다고 여겼다.

 

철학에 대해 깊게 생각한 건 아니나, 단지 고등학교 3학년 때, 수능 앞에 일명 ‘현실 자각 타임’이 온 내게, 친구가 철학과를 가라며 일러준 탓이었다. 철학에 대해 잘 알지는 못했으니 얄팍한 지식을 갖고, 서로 너스레를 떠는 것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또 언젠가 한 번은, 타 대학 철학과 수업을 듣더니 인생의 큰 깨우침이라도 얻은 듯 철학을 찬양하는 누군가를 보며 궁금해하기도 하며, 질투하기도 했다. 질투의 이유는, 그와 달리 내가 대학교의 타 전공이나 교양 수업으로 철학을 배운 건, 그저 겉핥기였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외우기 식으로 시험을 위한 것에 포커스를 맞추는 교수에게서 내가 배울 수 있었던 건 몇 명의 철학자의 이름과, 다수를 위해 소수를 희생하는 것이 타당한지 아닌지 등 몇 가지에 대한 열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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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기 전까지 내가 정의한 철학은, ‘이건 뭔가요?’ 하면 ‘이건 이겁니다.’라 바로 말해주는 사이다 같은 것으로 생각했기에, 대학교 수업에서는 사이다가 아닌 고구마를 얻어왔다 여기며 실망해 했고, 타 대학과 우리 대학의 수준 차이라며 자격지심을 속에 두고 괜한 행동을 했었던 것이다. 그러나 내가 큰 착각을 하고 있었고, 오해하고 있었다는 걸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철학은, 학문(學問) 그 자체로서의 철학 哲學이자, 다양한 철학자들의 생각과 자칫 고구마라 여겨질 수 있는 난투극 같은 수 없는 물음과 항변을 되뇌고 곱씹으며 그 안에 고소함을 느끼고, ‘본인만의 가치와 길잡이를 깨닫는’ 쉽지 않은 학문임을.

 

어쩌면 나는 철학을 너스레로 떨던 사람에 불과했고, 내가 질투한 그는 해답을 깨달았던, ‘난 사람’이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었으니 말이다.


이제껏 내가 착각 속에 살며 사이다가 아니라며 부정했었던 몇 수업은, 사실 모두 제대로 된 철학 수업이었다고, 철학은 복잡하고 쉽지 않으며(모든 학문이 그렇듯), 지름길을 좋아하는 나와는 조금 거리가 있는 학문이었단 걸 깨닫는다. 단편적인 모습으로 사진 찍힌 듯 고정해놓고, 더 알려고 하지 않았던 수많은 오해 중에, 철학도 그 하나였음을 알게 된 독서 시간이었다.

 

*

 

도서 <이언의 철학 여행>은 소설임과 동시에 지식, 신, 이기심, 사회 등에 관한 철학을 담은 철학 수업 길잡이 도서다. 이언과 함께한 모험, 이언이 부모님과 토론한 내용, 친구 제프와 산책하며 나누는 대화로 이루어진 책은 질문과 해답을 녹여냄과 동시에, 곳곳에 톡톡 튀는 분홍색을 배열해 눈의 즐거움과 산뜻함이 함께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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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 깊었던 문장 혹은 생각



1장 지식, Q. 내 눈앞에 보이는 것이 실제라고 믿을 수 있을까? A. 그 시절에 인용되었던 것들, 즉 시대의 믿음이 ‘그때’의 지식이다. 내가 아는 것이 전부는 아니며, ‘때’와 ‘시간’의 단면들이다.


2장 자아, Q.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나인가, 내 뇌만 있다면 그 자체로 내 이름으로 불릴 수 있나? 이름(지칭)의 범위는 어디까지일까.


3장 과학, Q. 내일도 태양이 뜰 거라 확신할 수 있을까? A. 과학자들이 규칙성을 찾을 때 자기 주관에 따라 실험 대상을 고를 수도 있을 것이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말이다. 그를 우리는 확신 할 수 있나.


5장 신, Q. 신은 전지전능할까? A. 뛰어난 연주자는 서투른 연주를 할 수 없다. 신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기에 모든 것의 원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저 자유의지를 주고 바라볼 수 있는 것이다.


6장 악, Q. 악을 허용하는 신도 신인가? A. 신은 처음에 세상을 창조할 때 갈등했을 것이다.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부여하고 동시에 악도 만드느냐, 인간에게 자유의지도 주지 않고 악도 만들지 않느냐. 후자의 꼭두각시 같은 세상은 의미가 없다. 자유의지를 갖기 위해서는 악이 있어야 한다. 고로, 같이 존재하는 것이다.


9장 자유의지, Q. 모든 것이 결정된 세계에서 나는 자유로울까? A. ‘온전하고 완전한’ 자유의지는 가질 수 없다. 유전자나 환경, 규칙과 규율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결국 ‘결정’된 세계 아래서 자유롭게 행동하는 것이 가능한 것이다.


10장 이기심, “인간은 이기적으로 행동할 수밖에 없어. 그런 현실을 받아들이려고 노력해봐. 옳고 그른 것을 판단할 때도 우리는 어느 것이 나의 자아를 진작할지 따져보잖아.”


11장 논리, ‘완벽’은 없다. 어느 정도의 불확실성은 모두 갖고 있으며, 환경이나 유전자의 결합이 앞으로도 계속 변하기 때문이다. 애초에 완벽한 환경도 없다. [확신하기란 쉽다. 오히려 인간은 충분히 모호할 필요가 있다 - C.S. 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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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하지만 응집된 결론 내보기



책은 알려준다. 완벽은 없으며 개인은 이기적이기에 정치, 사회, 인종, 의무, 덕 등의 생성과 복잡함은 응당 당연한 것이라고. 설명하기 모호한 것들과 서로의 다른 시선에 대한 이해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이렇게 느꼈다. 끊임없는 이론과 다양성, 대립 속에서 결국, 본인의 가치를 따라 사는 것이 인생이며, 다들 맞는 게 맞다 생각하며 살아간다고. 두꺼운 철학책을 열심히도 읽은 나는, 마지막 장의 한 문장을 보며 ‘이제야 어렴풋이’란 말보단 확실히 뚜렷하게, 고소한 나만의 대답을 찍는다.


 

Q. 각각의 경우는 당신의 삶의 의미와 목적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553p)

 

A. 결국 개개인의 생활과 가치에 있어 삶의 의미와 목적으로 가는데 “필요하면 더하고, 필요 없으면 제거하며 ‘변화’하면 되고, 그대로가 좋다면 ‘유지’를 하며 사는 것이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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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유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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