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한국미술을 사랑하고 싶어질 때, 방구석 미술관 2 : 한국 [도서]

글 입력 2020.12.23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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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사랑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그 사람에 대해 잘 아는 것이다.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고 뭘 좋아하는지. 그렇게 여러 감정을 담은 반짝이는 눈동자와 마주치면, 우리는 단숨에 사랑에 빠지게 된다.


한 작품을 사랑하는 방법도 이와 다르지 않다. 흐리고 불투명하게만 보이던 작품들이 도슨트가 설명해주는 순간 선명한 색을 갖게 되는 것을 경험해 본 사람은 분명 알 것이다. 작품의 매력은 단순히 프레임 속에만 고여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생각을 해보았다.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1889)>을 고흐가 그린 것을 몰랐을 때도 이렇게 좋아했을까? 물론 이 작품이 보여주는 에너지 자체가 너무도 매력적이기 때문에 좋아했을 것 같다.

 

하지만 고흐가 살아온 삶, 이 작품이 그려졌던 시기, 그리고 고흐에게 밤하늘이 어떤 의미였는지 몰랐다면 작품을 볼 때마다 이렇게 사무치지는 않았을 것이다. 작품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작품을 차가운 미술관 벽이 아니라 내 기억 속 미술관의 깊숙한 곳으로 옮겨 오는 일 같다. 이야기가 마음에 들었다면, 한 사랑이 시작하는 지점이기도 하고.


어쩌면 한 작가의 마스터피스는 자신의 전 생애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보고 있는 작품들은 그 시간들을 똘똘 뭉쳐놓은 한 점들일지도.

 

긴 서두였지만, 그래서 나는 예술가라는 한 사람에 대해 말하는 이야기들을 좋아한다. 낯설어 보이는 작품들과 사랑에 빠지고 싶다는 생각으로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조심스레 펼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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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이야기를 담은 책 중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아마 '방구석 미술관'이 아닐까 싶다. 이 시리즈의 첫번째 책이 처음 베스트셀러가 되고 쭉 자리를 지켜 10만 부에 이르는 과정을 보며 한국에 정말 미술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사이에 많은 일들이 생겼다는 것을 체감한다. 미술관에서 지금처럼 도슨트 열풍이 불지 상상할 수 있었을까. 이 책 하나로 미술 속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아졌다고 단정할 수 없지만, 적어도 어느 정도 기여했음을 부정할 수 없을 것 같다.


'방구석 미술관'은 톡 튀는 호기심으로 관심을 사로잡고 예술가가 살아간 삶과 그 흔적들이 작품에 남은 자리들을 되짚어간다. 이불 속에서 편히 읽다 보면 작가가 어떻게 살았고, 그래서 왜 이 작품이 만들어졌으며, 이게 어떤 의미이기에 거장이라는 것인지 이해할 수 있다. 쉽게 읽히는 글이지만 이 글을 쓰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이 있었을지 상상이 되지 않는다.


서양미술에 이어 이번에는 한국미술을 다루겠다고 했을 때 기대를 많이 했다. 책이 소개하는 것처럼 우리나라 근현대 작가들에 대한 인지도는 낮으니 더 많은 사람들이 이들에 관심을 갖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한국의 격변하는 역사 속에서도 미술을 놓지 않았던 사람들이 있었고 세계적으로 그 가치를 평가받는 거장들이 우리나라에도 있었다. 나름 전시회도 열심히 다니고 최근 몇 년 동안 한국 근현대 작가를 다룬 미술관들이 많아서인지 책에서 만나게 될 10명의 작가가 익숙한 분들이라 좋았다.


이 책에서 다루는 거장 중 김환기를 가장 좋아한다. 김환기의 작품은 이상하게 나를 울게 한다. 특히 그의 푸른빛의 점화를 사랑하는데, 아직도 푸른빛으로 일렁이는 거대한 물결 앞에 선 순간을 잊을 수 없다. 처음으로 소리가 파란색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때다. 그 평안함과 다정한 온도를 쫓아 지금도 환기 미술관을 자주 들린다. 참을 수 없이 울적해지면 그곳을 찾아가곤 했다.


그런 나였던 만큼 김환기를 소개하는 챕터부터 펼쳐보았다. 부제목으로 이런 말들이 쓰여 있었다.

 

'한국에서 가장 비싼 화가', '한국 미술품 경매 사상 최고가'

 

조금 속상했다. 비단 이 책뿐만 아니라 김환기를 설명하는 글의 초입에는 항상 그런 수식어가 등장한다. 칭찬하려는 수식어지만 나는 어쩐지 이 말이 작품을 졸졸 따라다니는 유쾌하지 않은 꼬리표처럼 느껴진다.


'아, 이게 그 몇 억짜리 작가라며?' 전시장에서도 몇몇 사람들은 이게 그 정도로 가치 있는 그림인지 흥정하듯 흠, 하고 작품 양옆을 걸어 다녔다. 결국 옆에 있는 지인을 툭 건드리며 '이게 왜? 그정도까지야?' 하며 시시하다는 듯 떠난다.


크리스티 경매에서 얼마, 가장 비싼 화가, 미술사적 가치-- 쓰여진 글자들을 읽자니 가격만으로 작품을 평가하는 사람 앞에서 외롭게 반짝이는 작품을 본 그때 같았다.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이미 익숙한 화제로 이야기를 시작하고 그의 작품의 가치를 알려주려는 것뿐이니까. 그냥 비싼 화가 이상의 이야기가 담겨 있길 바라던 개인적인 감정이었다.


조금 외로워진 기분으로 다음 장을 넘겼을 때, 나는 이 책이 너무 좋아졌다.

 

 
"하지만, 저는 김환기의 경우 이 이유가 가장 크다고 생각합니다. 그저 작품이 너무 좋습니다. 그저 그의 그림이 너무 좋습니다. 경이로움을 느낄 정도로 좋습니다. 작품이 가진 미술사적 가치도 가치지만, 환기가 그린 그림 속에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사실 표현할 필요도 없는) 에너지가 있습니다.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오직 그의 그림에서만 뿜어 나오는 순수한 에너지죠."(228)
 

 

그리고 이어지는 김환기, 김향안 부부에 대한 올곧은 이야기는 나를 다시 그의 그림에 빠지게 했다. 마지막 부분에도 나오는데 김향안 여사는 김환기 사후 부암동에 환기미술관을 만들었다. 환기미술관에 가본 사람은 알겠지만, 비트라유(유리에 그림을 그린 장식)가 하나 있다. (건물 내 모든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어 공유할 수 없는 것이 아쉽다.) 색유리에 김환기 작품을 그린 것이다. 김환기가 그리고, 김향안이 완성했다.

 

 

사람들이, 특히 작가들이 비트라유가 참으로 좋다고 감탄을 한다. 나도 바라보고 섰으면 그 아름다운 선들이 울려오는 것을 느낀다. 그 걸려진 상태를 보고 싶어했는데 나의 게으름으로 그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보여주지 못한 것을 사과한다. 수화는 "내가 죽고 나서라도 눈 있는 사람이 와서 내 그림을 볼 때 인정할 거라고" 자신만만했다. 그 눈 있는 사람은 실로 늦게야 왔다.


- 김향안. 1992년, 비트라유 옆에서 (미술관에서 한참을 읽으며 적어왔다.)

 

 

비트라유는 김환기의 예술에 대한 열정과 김향안의 사랑을 느낄 수 있어 사랑해마지 않는 작품이었다. 그런데 김환기 챕터를 다 읽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순서대로 다른 작가들의 이야기를 함께하면서 이 책이 나에게 또 다른 비트라유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최초', '선구자', '거장'처럼 차가운 수식어 뒤에 있는 한 사람에 대해 애정을 갖고 따뜻한 마음으로 존중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자유롭고 싶었던 한 명의 사람으로서 나혜석의 사랑과 삶에 대해서, 한국으로 돌아오지 못했지만 쭉 한국을 그리워했던 이응노의 작품들, 고통으로써만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천경자에 대해서. 이중섭, 나혜석, 이응노, 유영국, 장욱진, 김환기, 박수근, 천경자, 백남준, 이우환이라는 10명의 작가의 삶이 고스란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모든 작품이 우리에게 의미를 가질 수는 없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작품을 좋아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한장 한장 종이를 넘길 때마다, 그들이 그렸다는 작품들이 내 가슴 속에 묻히는 것이 느껴진다. 제목 하나에 의미가 담기고 그가 고민했다는 주제를 나도 같이 고민하며 어떻게 구현했는지 세밀하게 살피게 된다. 김향안 여사의 말을 빌리자면 '눈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책이 그들을 비추어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술사적 가치도, 거장이라는 평가도 중요하지만 이들을 바라보는 근저에 좋아함을 담았기에 편하고 따뜻한 온기로 읽히는 것 같다. 그 덕에 읽는 나도 덩달아 좋아하는 마음에 좋아하는 마음을 더하게 되었다. 코로나로 올해 미술관에 거의 가지 못했는데 너무너무 작품들이 보고 싶어졌다.


책을 읽다보니 사랑을 하고 싶어졌다. 이제 나는 사랑할 준비를 끝냈으니 사랑하러 미술관에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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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신.


마지막으로 표지를 언급하고 싶은데, 표지에 그려진 건물은 서울시립미술관이다. 이 건물 역시 일제 때 지어진 역사적인 공간으로 그때부터 지금까지의 서울을 쭉 지켜보았던 곳이다. 공교롭게도 책에서 소개되었던 대부분의 작가를 시립미술관에서 만났던 터라 반가웠다.

 

다시 안전하게 미술관에 갈 수 있는 날을 기다리며 이 글을 마친다.



[최주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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