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포장'의 철학 [사람]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에도 섬세한 결은 필요하니까
글 입력 2020.12.14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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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매와도 같은 편안한 엄마와 대화를 하는 시간이 굉장히 많다. 그러다 보니 해가 지날수록 대화의 스펙트럼은 가지각색으로 펼쳐진다. 대화를 하다 보면 신기한 점은 한 행위의 관점에 대해 어딘가에 묻혀 있던 생각의 사실들을 내가 내뱉는 말을 통해 알게 된다는 점이다. 그중 하나는 ‘선물 포장’에 시간과 돈을 투자하는 사람들을 보며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강도의 세기가 생각보다 강했다는 것을 인지한 날이다.

 

백화점에서 구경하고 싶은 브랜드 매장으로 걷는 도중, 우리는 소규모의 포장을 전문적으로 운영하는 매장을 보았다. 그래서 무심코 엄마에게 이런 말을 던졌다. “엄마, 나는 포장 전문 매장이 있다는 게 이해가 안 돼. 뭐 물론, 가벼운 비닐 포장 같은 건 나도 많이 했지만 선물보다 포장에 더 정성을 쏟는 거는 조금 오버 아니야?” 내 말을 듣고 나서 엄마는 이렇게 답하셨다.

 

“<이해가 안 돼.>라는 말은 쉽게 쓰는 말이 아니야. 선물에 더 큰 의미를 두는 사람이 많긴 하지만, 포장에 의미를 두고 싶어 하는 사람은 실용도가 사라지는 물건일지언정 상대가 그 순간 기대하고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는 것을 좋아하고 원하는 사람일 거야. 예쁜 포장이 순식간에 구겨지고, 옆으로 치워지는 것을 보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어. 그래도 그 사람은 상대를 위해서 순간의 행복이 이렇게나 중요하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어 하는 사람일 확률이 높아.”

 

가치관이라는 것은 오랫동안 한 사람에게 정답인 마냥 굳게 심어져 있는 것이다 보니, 옆에서 논리정연하게 이해하도록 만들어도 하루아침에 동의하기는 쉽지 않다. 엄마의 이야기를 듣고 머리로는 정확히 이해했지만 마음 한 편에서는 ‘포장’에 대해 고민하고 신경을 쓰는 사람들에 대해 영혼 없는 대단함과 신기함을 표현할 뿐이었다.

 

중학교 때까지만 하더라도 오프라인으로 선물을 받는 것이 일반적이었기 때문에 포장을 하지 않았다면 꽃 스티커라도 붙여서 주는 친구들이 있었다. 아니면, 포스트잇에 작은 글씨로 포장 대신 아기자기한 마음을 대신 전해주었다. 그리고 조금 더 가깝거나 애정이 묻어 나오는 친구들은 나와 어울리는 캐릭터 포장지에 투명 스카치테이프를 덕지덕지 붙여 선물과 함께 이런 말을 공통적으로 건넸다. 선물은 크지 않다고 미리 넌지시 던지며, 그 대신 이 포장지를 선택한 이유를 알려주고 쑥스러워 하는 표정까지 덤으로 보여주었다.

 

이렇게 주고받는 축하 인사도 시대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많이 변했다. 가까운 가족과 친구들에게도 <카카오톡 선물하기>로 간편하게 주는 것이 익숙한 선물의 형식이 만들어졌다. 그러다 보니, 선물의 이해도와 정성의 마음은 한결같이 일률적이지만 ‘포장’의 개념은 나에게도 점차 사라지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러던 나에게도 선물 포장에 대한 개념이 크게 뒤바뀌게 되는 한 사건이 있었다.

 

한때, 바짝 가깝게 지낼 수밖에 없었던 관계에 놓여있었던 친구에게 선물을 받았다. 그 친구는 깜짝 선물이라며 나를 놀래 주려고 했지만, 사실 내 표정만큼 마음도 똑같은 비례로 웃고 있지는 않았다. 그 친구는 나에게 어울리는 선물을 오랫동안 고민하고 선택했었을 것이다. 그런데 선물을 받는 짧은 순간에 나는 물질적인 사물보다 쉽게 알아차릴 수 없는 표면의 섬세함이 깊은 애정일 수 있지 않을까.라는 강렬하게 박힌 그 감정이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그 이후, 나는 그 친구가 준 선물에 대한 고마운 감정의 가식을 마음 한 편에 품고 있었다는 것에 미안함을 느꼈다. 그래서 이 시점부터 나는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전달해 줄 때 ‘포장’이라는 겉치레를 세심하게 신경을 쓰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했고 이 과정이 중요한 행위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지나가는 바람 같은 시간 안에, 그동안 내 말이 정답이라고 착각했던 행위의 가치관이 180도로 바뀌었던 순간이었다.

 

그 친구와 나는 ‘포장하다’라는 의미를 똑같이 받아들였던 것 같지 않다. 예전에 내가 포장의 의미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했던 경지에 있던 것처럼, 상대방은 현재 그 자리에 서 있었을 수도 있다. 혹은 상대는 거추장스럽고 몇 초 뒷면 쓰레기가 되기에 포장에 의미를 담지 않았었을 수 있다.

 

그러나 사물로도, 글로도 축하와 감사의 의미를 담지 못하는 것을 ‘포장’으로 보여주는 것은 또 다른 언어가 될 수 있다.

 

요새 내가 너무 한 행위에 대해 복잡하게 생각하는 건 아닐까 겁이 났다. 좋게 말하면, 나에 대한 행동의 줏대와 가치관이 잘 성립되고 있는 것이고 그 반대로 말하면 예민해질 수 있는 성향이 만들어져 스스로가 피곤해질 수 있겠다고 웃으며 생각한 적도 있다.

 

그러나 나만 ‘포장’에 대해 넘치는 의미를 첨가하고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꼈다. 다행이라고 생각되었던 그 안도감은 김이나 작사가의 책 <보통의 언어들>에서 얻게 되었다.

 

 

"포장하다" - 주는 이의 마음이 담긴 그 무엇 (77p)

 

선물의 통상적인 완성은 포장이다. 거추장스럽고 어차피 쓰레기가 되기에 받는 사람 입장에서 번거로울 때가 있지만, 선물이 선물인 이유는 바로 이 포장에 있는지도 모른다. 물건의 정체성은 그저 쓰임에 있다. 그러나 포장이 됨으로써 비로소 물건은 단지 물건이 아닌, 주는 이의 마음이 담긴 무언가로 탄생한다.

 

 

그저 얻어걸려 나온 단어나 언어가 많지 않듯이, ‘포장하다’라는 행위가 나올 수 있었던 배경에도 많은 스토리가 담겨 있을 것이다. 짐작할 수 있는 많은 배경 중 하나에는 마음을 사물로 전달하며 조금 더 애틋한 마음을 전하고 싶은 도중, 포장이라는 행위가 최적이라고 받아들여지지 않았을까 싶다. 100년 전에도, 1000년 전에도, 숫자로도 가늠이 안 되는 연도에 산 사람들에게도 현재와 생활 형태는 무수히 다르지만 교류의 ‘감정’이라는 것은 동일했었을 테니까 말이다.

 

어느덧, 2020년의 끝이 보인다. 멈춰있고 싶은 우리와 달리 시간은 조용하고 또 꾸준한 장거리 달리기를 통해 모두가 거절하고 싶은 나이를 선물해 주려고 준비 중이다. 그 반대편에 놓여 있는 우리는 몽글몽글 해질 수 있는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며 표현하고 싶은 사람에게 전달하기 위해 작은 선물을 구경하면서 준비한다.

 

 

[포맷변환]포장.jpg

 

 

혹시, 이 글을 내려 읽고 있는 당신에게도 작은 선물을 주며 진심을 표현하고 싶은 누군가가 올해 있다면 상대와 어울리는 ‘포장’에도 공을 들이며 연말의 시간을 보내보는 건 어떨까. 아마 그 상대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을 느끼며 큰 애정을 받고 있다고 느낄 것이다.

 

***

 

아! 그리고 이건 팁 중에 팁인데,

편지에 자신이 사용하는 향수를 2번 뿌려주어 건네면

마음의 완성도는 더더욱 올라갈 것이다.

 

 

[조우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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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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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따뜻한 글이에요.
      선물에 포장을 함으로써 내 마음까지 함께 담기는 것. 포장의 의미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봤어요-
      잘 읽었어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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