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만의 일상루틴을 찾아서 : 을 [문학]

무기력한 일상을 회복하는 힘, 일상루틴을 만들기
글 입력 2020.12.14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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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치고는 따뜻한 날이 계속되고 있다. 집 밖을 잘 나가지 않기 때문에 느끼는 감상일지도 모르겠지만 올해 겨울은 춥지 않아서, 간혹 나갈 때마다 살이 아려오는 추위가 아니라 차가운 바람을 즐길 수 있을 정도라서 좋다고 생각하고 있다.

 

오전이 사라진 나날들을 보내고 있고 이를 고쳐야겠다고 다짐한 지도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밤의 시간을 잘 보내지 못하고 있다고 스스로 생각한다. 그래도 밤에 주로 글을 쓰고 어떤 음악을 듣고 일기를 쓰고 이렇게 꽤 오랜 시간을 보내자 나름 일정한 루틴이 생겼다.

 

일상루틴

 

이 단어를 의식하게 된 지 오래되지 않았다.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진 만큼 집이라는 공간은 예전처럼 단순히 휴식과 잠의 공간이 될 수 없었다. 하지만 원래 집은 그런 의미를 가진 공간이었으므로 자연스레 일상이 끝없는 휴식을 넘어 나태의 끝으로 몰려갔다. 낮잠도 모자라 저녁잠을 자다가 정작 자야 할 시간에 침대 위에서 뒤척였다. 아침은 사라진 지 오래. 점심과 저녁 사이 배가 고프다는 생각이 들면 그때 무엇인가를 주워 먹었다.

 

잠들기 직전에 하루를 돌이켜보면 기억하고 싶은 순간이 없었다. 그 무렵 박솔뫼의 소설 『을』을 만났다.

 

 

 

낯선 곳의 낯선 사람들


 

소설_을_표지이미지.jpg

 

   

이 소설에는 다소 낯선 이름을 가진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소설 제목이자 주요 인물인 ‘을’과 그와 함께 살고 있는 민주, 그들이 머무는 호텔의 하우스키퍼인 씨안, 씨안과 같은 하우스키퍼이자 사촌이자 연인인 프레디와 주디, 민주의 과거 인연인 바원과 윤.

 

‘이곳의 사람들은 이곳을, 흰색 벽과 오래된 햇살의 도시로 정의했다.’

 

이 소설은 인물들이 사는 도시와 그들에 대한 정보를 최소한의 것만 남기고 있다. 문장 사이의 공백을 채우며 읽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 낯선 도시에 완전히 정착하지 않은 채 머무르고 있는 그들의 하루하루 일상과 그 안에서 발화되는 생각들이 이야기를 이어 붙여나가고, 그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힘이 이 소설만의 매력이다.

   

등장인물들은 장기 투숙자들을 위한 호텔에 머무르며 서로만을 바라보거나, 혼자이거나, 스치며 지나가거나, 잠시의 인연이 된다. 우리가 평소 명명하는 관계의 이름에서 벗어난 관계들이 이어지거나 깨진다. 주류 사회의 관계와 소통에서 벗어나 각자 자신만의 방법으로 소통하고 관계를 맺는 이야기 속의 인물들은 각자의 매력을 가진 채 글 속에서 유영한다.

 

호텔에서 하우스키퍼로 일하는 씨안이라는 인물이 있다. 그가 가진 단단함은 지금 무너진 일상을 회복하기 위한 힘이 되어준다. 여행으로 온 이곳에 조금 더 머무르고 싶어서 하우스키퍼로 일하게 된 씨안은 주급을 받으며 최소한의 일상을 꾸릴 수 있을 만큼 일한다. 그가 말하는 그의 일과는 다음과 같다.

 

 

지금처럼 태국에서 산 얇은 스커트 같은 것을 입고 가볍게 아침을 먹고 간단한 일을 하고 느린 걸음으로 걷고 식사로 사과나 베이글 같은 것을 먹고 맥주는 한 병만 사고 잠들기 전 청소를 하고 반성할 것도 없고 부끄러워할 것은 더더욱 없는 가벼운 마음으로 잠드는 생활을 사랑하고 있었다.

 

-90쪽

 

 

씨안은 자신의 일상을 사랑한다고 말하며 그에 대한 감상을 덧붙여 남긴다.

 

 

지금의 생활에 감사하고 연보라색 구름 앞에 겸손하기 때문에 꼭 그렇게 될 것이라고 믿었다. 덧붙여 꼭 말하고 싶었다. 만약 무엇인가를 믿어야 한다면 바로 지금으로 하겠다. 내일이 오늘이 되고 오늘이 어제가 되고 하는 식으로 구름을 맞는 지금을 말하는 것이다. 바로 그 지금으로 하겠다. 요즘의 간편한 아침 식사로 하겠다. 다정하고 유쾌한 룸메이트 프레니와 주이로 하겠다. 오늘의 영화 티켓으로 하겠다.

 

-90쪽

 

 

약간의 변주가 있겠지만 씨안이 보여주는 일과는 일정한 루틴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루틴은 단순하고 사소한 순간들로 이루어져 있지만, 씨안은 그 사소한 순간을 두고 감사하다고 느낀다. 씨안이 아침에 자주 만들어 먹는다는 계란 야채 볶음을 만드는 장면을 따라 읽다 보면 자신을 위해 간단한 요리를 만드는 순간이 특별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아침을 먹었다’라는 무미건조한 한 문장으로 끝나지 않는다. 아침으로 무얼 먹을 지 고민하고, 재료를 찾아보며 만지고, 주변 아침의 풍경을 살피고, 완성되어가는 요리의 냄새를 맡고, 나만을 위해 아침을 먹는 시간을 오롯이 즐긴다. 이렇게 아침의 순간이 자세하게 표현되는 순간 무채색이었던 아침을 먹는 순간은 스쳐 지나가지 않고 색을 입은 하나의 장면으로 남는다. 씨안은 이렇게 자신의 일상을 다채롭게 물들이며 살아간다.

 

씨안 뿐만 아니라 다른 인물들도 각자가 이룬 일상과 관계를 소중히 여긴다. 그들 각자가 자신의 일상을 보내는 일정한 온도. 이 온도가 주는 안온한 분위기를 이 소설의 또 다른 매력으로 꼽고 싶다. 비록 이들은 소설 속 인물이고 이들이 있는 곳은 영원히 현실 세계에서 갈 수 없는 공간이지만,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실제 나의 일상을 다시 돌아보개 된다. 누군가의 단단한 일상을 읽는 일이 내 일상의 단단함을 확인해보도록 이끄는 일이 될 수 있었다.

 

 

 

일상의 순간을 기억하고, 그 순간을 복기하고



하루의 끝에서 기억하고 싶은 순간이 없는 사람과 지금 순간을 사랑하고 믿는 사람의 간극은 얼마나 클까.

 

소설 『을』 안의 인물들이 자신들의 일상을 덤덤하게 보내면서도 그 순간을 좋아하는 마음으로 보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의 순간을 소중히 여기고 싶어졌다. 그래서 씨안이 자신의 단순한 하루를 사랑하듯, 스스로 일상루틴을 만들어서 그 순간들을 소중하게 여기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해보았다.

 

햇살이 잘 들어오지 않는 방에서 알람 소리를 여전히 못 들은 채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난다(다행히도 꼭 일어나야 하는 날에 맞춘 알람 소리는 못 들은 적이 없다). 비몽사몽한 정신으로 아무 음악 플레이리스트를 재생하고 다시 잠들거나, 발을 까딱거리다가 번쩍 일어나 바로 씻는다.

 

씻고 나면 꼭 녹차 향이 나는 바디로션이나 은은한 향의 바디오일을 챙겨 바른다. 향기가 주는 안정의 힘을 믿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겁지 않은 점심을 챙겨 먹고, 햇빛을 쐴 겸 커피를 사러 나가서 고양이를 만나면 그날은 운이 좋을 거라고 믿는다.

 

 

낮의 고양이[크기변환].jpg

낮 산책 중 만난 고양이

 

 

해가 지는 동안 커피와 함께 해야 할 일을 한다. 힘들면 낮잠이나 저녁잠을 자고, 그러다 늦은 밤이 찾아온다. 책상을 놔두고 침대 맡에 기대어 글을 쓴다. 딱 이 시간과 이 자리에서 그나마 글을 집중해서 쓸 수 있다는 걸 최근에 알아냈다.

 

집중이 잘 안 되면 찬물에 세수하고 얼굴에 로션을 바른다. 다시 노래를 틀어놓고(요즘은 백예린의 산책 커버 노래를 듣고 있다), 낮의 시간에 못다 한 것을 하다가 마음의 여유가 있다면 밤 요가를, 없다면 일기를 쓰고 잠자리에 든다.

 

오전에 일어나지 못하는 것에 자신을 스스로 너무 자책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일어난 이후의 시간을 흘려보내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하루의 끝에 오늘 먹은 것을, 오늘 한 일을 떠올려보면 더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라는 무력감은 사라지고 오늘도 나름 괜찮은 하루를 보냈다고 자신에게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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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 이 모든 날 하루하루를 어떻게든 보내고 있다. 이 하루들은 특별하기는커녕 대부분 비슷한 하루들이기에 이러한 반복에 권태를 느끼기도 한다. 권태감으로 무기력해지는 하루를 특별하게 바꾸기 위해 내가 좋아하는 순간을 찾아보는 일이 필요하다.

 

일상을 소중하게 만들어가는 일은 내가 생각하기에 달려있고, 그 힘을 만들어내기 위해 나만의 일상루틴을 만들어보기를 혹은 찾아보기를 권한다. 분명 박솔뫼의 소설 『을』은 그 순간을 발견하는 힘을 찾도록 도와줄 것이다.

 

 



[전지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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