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불한당 : 나쁜 놈들의 사랑 ① [영화]

글 입력 2020.12.13 19:00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common-6.jpg

 

 

유아인 주연의 영화 베테랑(2015)의 히트 이후 남성 배우들이 떼로 등장해 돈, 명예, 권력을 다루는 범죄 액션 장르의 영화들이 쏟아졌다. 검사외전(2016), 프리즌(2017), 더 킹(2017)과 같은 일련의 영화들(이하 암청색 영화)에 대한 피로도가 누적된 상태에서 접한 <불한당>의 첫인상은 흐릿했다.


영화 불한당 : 나쁜 놈들의 세상(2017)은 신입 경찰 현수(임시완 역)가 교도소에 들어가 재호(설경구 역)에게 접근해 마약 밀수 조직에 잠입하는 언더커버 물이다. 기존의 암청색 영화와 다를 것 없이 보이는 이 영화는 개봉 당시 흥행에 성공하지 못했으나, 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꾸준히 마니아층을 형성하고 있다.

 

뻔한 카피 문구, 식상해 보이는 줄거리와 달리 <불한당>은 기존의 범죄 액션물과는 다른 길을 걷는다. 이러한 장르에서 대표적 레퍼런스로 꼽히는 영화 무간도(2003), 한국 누아르 영화에 한 획을 그은 박훈정 감독의 신세계(2013)와 비교해보면 그 차이를 분명히 알 수 있다.

 

 

common-3.jpg


 

영화 무간도는 삼합회의 마약 밀수 거래 현장에서 시작하여 두 조직의 스파이 색출을 중심 사건으로 한다. 진짜 경찰인 진영인(양조위 역)은 10년째 조직 폭력배로 살아가며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고 혼란을 겪는 인물이며, 유건명(유덕화 역)은 인정 받는 경찰로 안정적인 삶을 살면서 이제는 진짜 경찰이 되고 싶어 한다.


<무간도>를 모티프로 둔 <신세계>는 골드문의 후계자 자리를 두고 벌어지는 사건을 중심으로 한다. 잠입 수사를 하게 된 신입 경찰인 이자성(이정재 역)이 8년의 시간이 흘러 정청(황정민 역)의 오른팔 자리까지 오르게 되고, 자신을 의리로 대하는 정청과 작전의 성공만을 쫓는 경찰 조직 사이에서 심리적 갈등을 겪는다.

 

이처럼 언더커버 물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혼란 그리고 주인공을 둘러싼 사건을 중심으로 서사가 진행된다. <불한당> 역시 현수의 정체성에 대한 혼란과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마약 소탕 작전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불한당>은 플롯의 변주로 이전 언더커버 물이 가지는 관습성을 부순다.

 

 

common-4.jpg

 

 

<무간도>와 <신세계> 속에서 주인공의 진짜 정체는 서스펜스를 이끌어내는 하나의 요소로 작용한다. 진실이 밝혀지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는 이전 주인공들과 달리 현수는 함께 일해 볼 것을 제안하는 재호에게 ‘형 나 경찰이야.’라며 스스로 정체를 밝힌다.

 

교도소에서 신으로 군림하고 있는 재호에게 접근해 가까워진 현수가 사실 잠입 경찰이었다는 것은 누구나 유추할 수 있는 레퍼토리지만 관객이 그 사실을 알게 되고 고작 20분 만에 현수가 자신의 정체를 재호에게 고백하면서 장르의 관습성을 비껴간다. 이처럼 <불한당>은 언더커버 물의 핵심 요소 중 하나인 ‘정체의 탄로’를 서사에서 배제하고 있다.


그럼 대체 남은 러닝타임은 어떤 걸로 채우려는 걸까? 그렇게 의구심에 차 있을 때 또 한 번의 변주가 등장한다. 재호가 이미 현수의 정체를 알고 있었던 것이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사실 이 자체는 그리 신선한 반전은 아니다.

 

<무간도>와 <신세계> 역시 주인공의 정체를 아는 누군가가 등장하고, 특히 <신세계>에서는 자신의 목숨까지 내놓으며 형제의 정체를 숨겨준 정청과 이자성의 관계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그렇기에 이러한 반전은 오히려 기존 누아르 장르의 문법을 그대로 따랐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 변주에서 우리가 집중해야 하는 것은 따로 있다. 재호가 현수의 정체를 알게 된 시점에서 벌어진 현수 어머니의 교통사고를 둘러싼 내막이다. 재호는 경찰인 현수를 자신의 쪽으로 ‘감기 위해’ 현수 어머니의 교통사고를 사주했고, 천팀장은 사고 당일 블랙박스로 범인을 확인했음에도 작전을 위해 이를 묵인해왔다는 사실이다.

 

 

common-5.jpg

 

 

<무간도>와 <신세계>에서 ‘진실을 알고 있다’는 반전은 조력자의 역할이다. 진영인에게는 아강이, 이자성에게는 정청이 그러했다. 조력자는 주인공에게 감정적 동기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주인공의 비밀을 위해 희생되는 역할로 등장한다.

 

<불한당> 속 재호와 현수 역시 서로에게 조력자처럼 비치지만 사실 재호는 현수가 쫓던 사건의 범인으로 필연적으로 적대적 관계에 있을 수밖에 없는 인물이다. 하지만 이 사실을 알지 못하는 현수는 재호를 끝없는 믿음으로 대하며 그의 곁에서 새로운 세계를 구축해간다. 결국 모든 진실을 알고 있는 재호와 천팀장, 관객과 달리 현수는 영화의 후반부에 이르기까지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그렇게 <불한당> 속에서 희생자는 현수가 된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관객은 재호가 가진 비밀이 언제 어떻게 드러날 것인지에 대해 불안을 느낀다. 즉 ‘정체의 탄로’ 대신 ‘배신의 서사’를 통해 서스펜스를 이끌어내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느끼는 서스펜스는 장르적인 것보다는 사적 영역에 가깝다. 어디서, 어떻게 배신이 밝혀지는가보다는 믿고 있던 재호에게 배신당한 현수의 감정과 예정된 관계의 종말에서 긴장감을 느끼는 것이다.

 

이는 서사의 개연성이 인물들의 개인적인 감정과 관계성에서 기인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을 사랑이라고 정의해볼 수 있다.

 

 

 

이다솜.jpg

 

 

[이다솜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7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