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사람을 변화시키는 건 사람입니다 - 나의 아저씨 [TV/드라마]

글 입력 2020.12.04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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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일주일에 최소 일곱 번 술을 마신다.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일주일에 두세 번 정도였던 것 같은데, 직장을 옮긴 후부터는 집에 돌아오면 마시는 소주 한 병이 당연한 관례가 되어버렸다. 몸에도 좋지 않은데 왜 그리 마시나 했는데. 나이가 들어 알았다. 고단함을 털기에 가장 쉬운 방법이 술이었던 거다.

 

어느덧 대학생이 되어, 어디에다 말하기엔 뭐하지만 혼자서 감내하기 힘들 때 자연스레 주류 판매대 앞에서 서성이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아빠도 이런 마음이었나. 그리고 여기에 아빠 같은, 나 같은, 우리네 인생을 살아가는 후계동 사람들이 있다. 훌륭한 연기와 심금을 울리는 대사, 몰입도를 높여주는 OST가 합쳐져 가감 없이 보여주는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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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람을 변화시키는 건 사람


 

대기업 부장으로 한 달 월급은 500-600, 직장에서 해고당해도 잘 먹고 살아갈 수 있는 구조기술사. 변호사 아내와 미국으로 유학 보낸 소중한 아들까지. 누가 봐도 부러워할 삶을 살아가는 동훈은 사실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백수 형제들 사이에서 가장 노릇을 하는 터라 받는 경제적 부담감과, 가족들이 그에게 거는 기대감은 부담감으로 그의 어깨를 짓누른다. 소원해진 부부 사이와 자주 볼 수 없는 아들, 사이가 안 좋은 대학 후배가 직장 상사로 올라와 은근히 자신을 무시하는 것도, 그를 지치게 한다.


동훈이 근무하는 사무실 한쪽에 파견직 이지안이 있다. 출근했는지도 모를 정도로 희미한 존재감을 가지고 있던 이지안과 뇌물 사건으로 엮이게 되며 차츰 그녀를 알아간다. 사실 그녀는 빚만 남기고 떠난 엄마 때문에 어릴 때부터 사회에 뛰어들어 죽기 살기로 돈을 벌어야 했다. 일하는 음식점의 남은 잔반으로 몰래 끼니를 해결한다. 녹초가 된 몸을 이끌고 높은 언덕의 단칸방으로 올라와, 스탠드를 켜고 마시는 맥심 커피 한 잔이 유일한 삶의 낙이다.


어느 날 권력 다툼의 결과로 다른 사람에게 가야 할 뇌물을 동훈이 받게 되면서 두 사람은 얽히기 시작한다. 서로의 사정을 알게 되고, 이해하게 되면서 둘은 차츰 변하게 된다.


일상에서 벗어나려는 시도조차 없이 가족들이, 사회가 원하는 틀을 벗어나지 않으려 했던 동훈. 자신만 참으면 힘든 일은 지나갈 것이고, 다른 사람들도 실망하지 않을 테니까. 속에 고독함을 안고 살았던 동훈이, 자신을 진심으로 인정하고 아껴주는 지안을 통해 주체적으로 삶을 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


지안 역시 동훈을 통해 인간에 대한, 세상에 대한 신뢰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동훈은 살인 때문에 지안이 홀로 감내해야 했던 죄책감을 부정해준다. 가족을 건드리면 누구라도 그럴 것이라며 이해한 건넨 첫 어른이었다. 또한, 할머니가 요양원에 무료로 들어갈 수 있도록 알려주거나, 지안의 빚을 대신 갚으려고 광일을 찾아간 것. 그리고 도청을 통해 접한 동훈의 삶과 사고방식은 지안이 그동안 받지 못했던 배려와 위로가 되었으며, 나아가 평범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실질적인 도움을 주었다.


지안을 통해 삶을 꾸려갈 용기와 확신을 얻은 동훈. 엄마 때문에 지옥 같은 삶을 살았지만 동훈을 통해 평범한 사회인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된 지안. 그 과정에서 그들에게 힘이 되었던 수많은 사람. 사람에게 받은 상처로 주저앉기도 하지만, 동시에 나아가는 힘이 된 것도 결국 사람이었다.

 

 


2. 사람 사이의 다양한 감정들



회사든 집이든 한 공간에서 지내게 되면 자연스레 관계가 진전된다. 동시에 말로는 표현하기 힘든 다양한 감정들도 생겨난다.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이 너무나 미우면서 눈앞에서 사라지지 않기를 바라고, 하나도 닮지 않은 것 같은 사람에게 괜히 자신을 투영하기도 하고.


동훈은 부하 직원이 자신의 뒷말을 했다는 사실을 지안에게 전해 듣는다. 잠깐의 면박으로 끝내고 그 일은 눈감아준다. 바람을 핀 자신의 아내를 용서하고, 자신을 곤경에 빠뜨리기도 했던 지안을 위해 돈을 대신 갚겠다 말하기도 한다. 지안이 살인을 했다는 사실이 알려져도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을 거라고. 그녀를 탓하지 않고 포용한다.


춘배 역시 마찬가지다. 가족은 아니지만 딱한 사정의 지안을 도와주고 챙긴다. 자신도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않아 일용직을 전전하는 처지이지만 지안이 아플 때 동훈을 불러 챙기게 하는 등 표정과 말은 무뚝뚝해도 지안을 향한 마음이 느껴진다.


후계동 사람들이 모이는 감성주점 ‘정희네’를 운영하는 정희. 그녀는 벌써 20여 년도 더 전에 자신을 혼자 두고 승려가 된 연인을 원망하면서도 기다린다.


지안과 광일은 채무자와 채권자다. 하지만 둘 사이에는 그보다 더한 어둠이 있다. 돈을 받기 위해 지안과 지안의 할머니에게 주먹을 휘두르던 광일의 아버지를 지안이 죽였기 때문이다. 그전까지 아버지를 말리다 대신 맞고, 지안을 챙겨주기도 했던 광일은 이 일을 계기로 아버지처럼 변모해 지안에게 폭력도 마다치 않는다. 과거의 좋았던 기억과 대조되는 현재에 갈피를 못 잡고 힘들어하던 둘이지만, 예전의 모습을 기억하고 광일은 지안을 용서한다.


미움과 용서, 애증과 포용이 공존하는 모습을 섬세하게 전달한다.

 

덕분에 많은 위로를 받았다.

 

 


3. 형제애, 가족애, ‘후계’ 공동체


  

동훈과 지안이 몸담은 회사는 권력 다툼과 과장된 소문이 난무하는 곳이다. 임원들은 지위와 명예를 위해서라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뒤를 캐고 거짓 소문을 만들어내서라도 경쟁자를 깎아내리는 것이 당연해졌다. 사원들 사이에서는 ‘정보’라는 이름으로 온갖 소문과 뒷말이 가득하다.


이곳과 대조적으로, 드라마 속 ‘후계동’은 공동체의 가치가 살아있는 곳이다.


상훈, 동훈, 기훈. 이 삼형제는 서로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이해한다. 상훈의 일솜씨가 좋지 않아 화가 나도 동업을 그만두지는 않는다. 동훈 아내의 불륜을 알게 되자 본인보다 더 화를 내며 우울해하는. 보기만 해도 든든해지는 형제이자 친구 같은 존재다.


지안과 할머니, 지안과 춘배 할아버지, 동훈의 가족 등 다양한 가족의 애정도 느낄 수 있다.


마지막으로 후계조기축구회, 정희네로 대표되는 후계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모두 가슴속에 하나씩은 걱정과 고민거리를 안고 있다. 그럼에도, 주변인을 내치지 않고 서로 위로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지안의 집 근처에 살아 이상한 사람이 오지는 않는지 살펴주는 철용. 동훈이 맞고 돌아오자 가만히 있을 수 없다며 순식간에 모여든 조기축구회 회원들. 지안 할머니의 장례식에 와준 후계 사람들. 첫째 형 상훈은 그 장례식을 위해 열심히 모아왔던 돈을 장례비용으로 쾌척한다. 텅텅 비었던 장례식장은 화환과 꽃, 음식으로 가득 찬다. 돈보다도 그 마음이 더욱 값지다.


감당하기 버거운 삶 때문에 자신의 본 모습을 죽이고 사는 사람들이 많다. 동훈과 상훈, 지안이 그러했듯, ‘가장’을 맡고 있는 사람은 더욱 무거운 하루하루를 살아낼 것이다. 아빠의 부담과 그 무게를 덜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히 들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타인을 용서하고 포용하는 모습이었다. 나는 누군가에게 동훈 같은, 지안 같은 사람이었는지 돌아볼 기회였다.

 

그 사람 알아버리면 그 사람이 무슨 짓을 해도 상관없어.

내가 널 알아.


주변의 힘듦을 외면하지 않는 내가, 모두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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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예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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