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지구 탈출 -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 [문학]

글 입력 2020.12.03 2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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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란한 복장과 동그란 선글라스가 트레이드마크인 작가 ‘박민규’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무규칙 이종 소설가’라는 별명답게 그의 소설은 감각적이다. 시적인 표현과 짧은 호흡의 문장은 살아 있어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공처럼 이리저리 튀긴다. 그가 서사를 이끌어가는 방식도 예측할 수 없다. 처음에는 늘 그렇듯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평범한 곳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러나, 작품이 끝날 때쯤엔 평범했던 공간은 특별한 곳으로 변한다.

 

지하철, 목욕탕, 고시원, 자취방 등 평범한 공간에서 기이한 일이 벌어진다. 양복을 입은 기린이 역사에 나타나고, 어떤 때는 목욕탕에 너구리가 등을 닦아주는 기이하고 환상적인 장면이 연출된다. 평범한 공간 속 결계를 쳐 그 안에서 환상을 보여주는 이야기는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환상으로 넘어가기 직전 작가는 서사의 끈을 놓아버리며 급작스럽게 이야기를 끝내버린다. 환상이 시작하기도 전에 이야기를 끝내며 독자는 현실과 환상 사이에서 길을 잃는다. 박민규가 놓아버린 끈에 무수히 많은 공들이 튕겨지며 독자는 그 공에 머리를 세게 얻어맞는다.

 

*

 

단편집 『카스테라』의 수록작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는 자본주의 체제 속에서 소외된 계층을 드러내 자본주의의 모순을 가볍고 유쾌한 문체로 고발한다. 가난에 허덕이는 고등학생인 ‘승일’은 여러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다 우연히 아는 형에게 소개받은 푸시맨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다. 푸시맨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매일 아침 인류의 참상을 정면으로 마주하며 느끼는 감정을 담담하게 기술한다.

 

가볍고 구어체 같은 문체가 ‘승일’의 일기를 보듯 생생하게 그려지는데, “승객 여러분들은 안전선 밖으로 물러나주셔야겠지만, 그게 될 리가 없는 것이다.”(p.74), “감독의 말은 곧 빛이자 생명, 까지는 아니고 아, 예예 였다.”(p.77) 등 시니컬하면서 위트있는 문체는 답답하고 무거운 배경임에도 불구하고 가볍고 경쾌한 느낌이 들게 한다. 게다가 “무사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중략…) 우연히 길에서 만났는데, 내가 알던 코치형과 유사한 인물이란 느낌만 간간이 들 뿐이었다. 유사한 것을 무사하다고 말할 순 없는 거니까, 즉 그런 거니까. 감독은 여전했지만, 그 역시도 무사한 것은 아니었다.” (p.89) 등 박민규만의 감각적인 단어와 언어유희는 소설 속 재미 요소 중 하나다.

 

소설 형식의 특징 중 주목해야 할 점은 인물의 말이 따옴표나 이탤릭체로 구분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주인공 ‘나’의 서술과 인물 간의 대화는 분리되지 않고 같은 단락에 위치시킨다. 인물의 말을 분리하는 것 대신 한 문장, 또는 문장조차 완성되지 않은 단어를 따로 분리한다. 홀로 존재하는 문장은 그럼에도 강한 힘을 발휘한다. 예를 들어, “누구나 자신의 산수를 가지고 살아가는 거겠지. 그러니까 // 나의, 산수”(p.74), “정작 어려운 문제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물론, // 돈도 좋지만”(p.80) ” 등 시처럼 연의 구분으로 보이는 곳이 종종 등장한다. 말과 서술이 분리되지 않는 것, 단락을 구분하는 소설의 형식은 산문시를 연상시킨다.

 

 

 

나의 ‘산수(算數)’ : 내 머릿속의 계산기


 

 

“인간에겐 누구나 자신만의 산수가 있다. 그리고 언젠가는 그것을 발견하게 마련이다. 물론 세상엔 수학(數學) 정도가 필요한 인생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삶은 산수에서 끝장이다. 즉, 높은 가지의 잎을 따먹듯- 균등하고 소소한 돈을 가까스로 더하고 빼다보면 어느새 삶은 저물기 마련이다.”

 

(p.73)

 

 

세상은 숫자로 이루어져 있다. 태어난 사람에게 번호를 부여하고, 학교나 사회에서도 간편하게 숫자로 사회 속 인원을 구분한다.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그 숫자를 이용해 값을 매긴다. 물건, 시간, 부동산… 모든 것들에 값을 매기는데, 여기서 사람도 예외는 아니다. 모든 것에 숫자로 가치를 매기는 것, 이것이 바로 자본주의 논리다. 자본주의의 논리에 놓여 있다는 것을 몰랐던 ‘승일’은 아버지의 회사에 다녀온 후 자신도 자본주의 속에 있음을 깨닫는다. 아버지의 산수를 목격한 순간 자신도 어쩌면 아버지처럼 ‘균등하고 소소한 돈을 가까스로 더하고 빼다보는’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날 이후 승일은 말수 없는 조용한 아이가 되었고, 대신 숫자와 사투를 벌이게 된다.

 

수학이라고 하기에는 자그마한 산수를 연산하는 삶이지만, 이 산수가 개인의 생존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지하철의 안전선에서 물러나지 않는다. 매일같이 전쟁을 치르며 산수를 지켜냄에도 불구하고, 작고 소소한 탓에 개인의 삶은 더 나아지기 어렵다. 하지만, 작고 소소한 산수는 없을 때 티가 나기 마련이다. 아침마다 지하철 역사로 모이는 사람들도 각자의 산수를 위해 조용히 싸우고 있다. 이는 노예의 삶과 비슷하다. 아무리 힘들고 고된 일에도 그만두지 못하고, ‘억울함’을 삶의 원동력으로 삼아 하루를 해쳐나가는 삶. 각자의 산수를 가진 채로 모두가 아침마다 지하철로 집결한다. 출근을 하기 위해서는 지하철에 꼭 타야만 하고, 신체가 숨을 쉬지 못할 정도로 구겨지더라도 지하철이라는 삶의 안전선으로 안착해야 한다.

 

 

 

왜 세상은 온통 푸시인가


 

 

“때로 새벽의 전철에 지친 몸을 실으면, 그래서 나는 저 어둠 속의 누군가에게 몸을 떠밀리는 기분이었다. 밀지 마, 그만 밀라니까. 왜 세상은 온통 푸시인가.”

 

(p.91)

 

 

푸시맨들은 매일 아침 지하철 속으로 사람들을 밀어버린다. 사람을 화물이라 생각하고 밀어 넣지만, 매일같이 인류의 참상을 목격하는 일은 결코 유쾌하지 않다. 푸시는 삶의 안전선으로 들어가도록 돕는 자들이지만, 사람들을 자본주의 사회 속으로 들어가도록 동조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물이 새는 둑을 막은 ‘네델란드 소년’처럼 숭고함으로 표현되기를 거부한다. 애초에 푸시는 사회, 자본주의라는 사회로 사람들은 밀어 넣는 폭력이며, 그 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만드는 압력이다. 여기서 아버지도 예외는 아니다.

 

처음에는 아버지를 지하철 안으로 밀어넣기를 머뭇거리나, 점차 그 일에 익숙해진다. 아버지가 실종될 그 때도, 실종된 그 후도 승일은 푸시를 계속한다. 승객들도 지하철로 자신들을 밀어넣는 폭력에 불만을 갖고 있었던지, 푸시맨 하나가 열차 안으로 딸려 들어왔을 때 집단 구타라는 물리적인 폭력을 행하기도 한다. ‘수학’을 하는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산물인 지하철 플랫폼에서는 ‘산수’를 가지고 있는 ‘을’들의 싸움터이다.

 

지하철 안에서만 자행되는 푸시는 이제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편의점 사장이 자신의 돈을 떼 먹으려고 할 때도 승일은 ‘자본주의’의 이름으로 사장을 푸시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승일은 사람들에게 푸시를 가하지만, 세상에서 ‘당겨지기’를 기대한다. 그럼에도 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승일도 알고 있다. 화성이나 금성으로 가지 않는 한, 지구가 누르고 있는 중력의 압박감을 견뎌야 한다는 것을. 승일은 푸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환상으로 아버지를 소환한다.

 

 

 

나의 ‘산수(山獸)’ : 지하철에 타지 못하는 기린


 

아버지가 기린으로 변신을 한 이유는 아버지의 ‘생존’의 욕망이 형상화되었기 때문이다. 기린은 목이 길어 높은 곳의 열매를 따 먹을 수 있고, 시야가 넓어 생존에 유리하다. 초식동물임에도 거대한 몸집과 긴 목을 이용해 자연에서 생존이 가장 유리한 동물이 바로 기린이다. 반대로 거대한 몸과 긴 목이 있기 때문에 인간 사회에는 들어가지 못한다. 게다가 긴 목으로 역사(사회)에 들어가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는다.

 

기린은 드넓은 초원에서는 생존에 유리한 동물이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생존이 불가능하다. 아버지는 앞으로도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존을 할 수 없음을 깨닫고, 자연에서 살아남기를 택한 것이다. 낮은 곳에서 산수를 안고 사는 것보다 높은 곳에서 무해한 초식동물의 삶이 더 낫다는 판단을 한 아버지다. 승일이 짜디짠 지구에서 화성을 부러워하고, 혹한의 지구에서 금성을 부러워한 것처럼 아버지는 자본이 무력한 자연을 동경했고, 기린이 되었다.

 

기린이 아버지라 확신할 수 없는 어떤 것도 없음에도 승일은 기린을 아버지라 확신한다. 자본주의에서 튕겨진 아버지에게 승일은 자본주의의 희망찬 가치를 들어 돌아오라고 회유한다. 그러나, 기린은 무심한 표정과 눈빛으로 말을 하며, 승일의 ‘당겨지는’ 소망은 거절된다.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

 

(p.93)

 

 

푸시만 있는 세상에서 자신을 당겨줄 사람을 찾기 위해 환상을 이용한다. 아마, 현실에서는 ‘풀’이 불가능함을 아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환상에서조차 승일의 소망은 거절되면서 승일이 바라던 지구의 탈출이 불가능함을 말하고 있다.

 

*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 속 마지막 부분은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의 마지막 장면과 겹친다. 거대 주택의 지하실에서 기생하는 아버지에게 아들은 편지를 쓴다. 자신이 곧 아버지가 있는 그 집을 살 것이니 그러니까, 돌아오라는 내용의 편지다. 승일은 역사에서 만난 기린에게 말한다. 우리의 신용등급이 한 계단 올라갔고, 부동산 일을 배울 수도 있다고. 그리고 앞으로 경제도 차차 좋아질 것이라며 희망찬 미래를 이야기한다. 그러니까, 돌아오세요. 기린의 말과 행동에서 알 수 있듯, 아버지는 다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경제도 차차 좋아질 거라는 미래는 결국은 낙관에 기대한 희망일 뿐이다.

 

2004년, 지금으로부터 약 십여 년이 지난 2020년에도 여전히 각자의 ‘산수’를 안고 살아가고 있다. 게다가 부모와 사회에서 물려받은 ‘수’가 ‘수저’로 바뀌었을 뿐 여전히 돈에 좌우되는 ‘수’가 존재한다. 경제도 좋아질 거라는 것도. 단순히 경제가 좋아질 거라는 낙관적인 말을 나는 믿지 않는다. 경제가 나아진다는 말을 부적 삼아 열심히 견딘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 시대 속 인물들은 그대로 영화 <기생충> 속 인물이 되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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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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