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예술작가를 꿈꾸는 여성으로서 본 연극 - 작가

글 입력 2020.12.01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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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연극을 보고 난 후, 여운이 굉장히 오래 남았다.

 

이 연극은 여성 작가로서 갖게 되는 고민과 불만에 대해 담고 있었는데, 여성이며 미래에 순수미술 작가로 활동하는 것을 목표하고 있는 나로서 너무나도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으며, 내가 평소에 불만을 품고 있던 부분에 대해 등장인물이 대신 화를 내주고 대신 논쟁을 벌여주어 약간은 후련한 느낌도 있었다. 하지만 이 연극의 주제가 ‘치유’가 아니라 ‘자기성찰’, 사회에 던지는 ‘폭탄’에 가까우므로 등장인물은 화를 내면서도 계속해서 현실에 휘둘리게 되는 모습을 보여 결국 마지막에는 조금 가라앉은 기분으로 극장을 나올 수밖에 없었다.



작가 포스터.jpg

 

 

 

여성 “작가”로서의 고민



첫 장면은 어딘가 불만이 가득해 보이는 젊은 여자가 가방을 두고 와 극장의 연출가에게 붙잡히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커다랗고 무거워 보이는 백팩에 운동화를 신은 여자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20대 중반의 대학생처럼 보이고, 극장의 연출가는 약간은 훈훈한 외모에 적어도 여자와 10살 정도는 차이가 날 것 같은 남자이다.

 

가방만 가지고 빨리 나가려는 여자를 붙잡은 남자는 여자에게 연극이 어땠냐고 물어본다. 여자는 대답하고 싶지 않은 기색이지만 남자는 끈질기게 붙잡고 늘어져 결국 신랄한 비판의 평을 듣게 된다. 남자는 왜 좋은 평을 듣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여자에게 끈질기게 연극에 대한 감상을 물어봤을까? 여자의 불만 가득한 표정과 불친절한 말투만 보아도 이 연극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는 것은 예상하였을 것이다. 자신의 연극에 대한 관객의 주관적인 의견을 들어보고 싶어서였을까? 혹은 우연히 마주친 젊은 여자와 연극에 대한 토론을 하는 척 술 한잔하고 싶어서였을까?

 

남자의 의도가 무엇이었든 간에 한번 물꼬가 트인 대화는 언쟁으로 계속 이어졌다. 여자는 여성의 캐릭터를 단지 흥미와 쾌락을 유도하는 예쁜 장식품으로밖에 취급하지 않으며 부조리한 세상을 비판하는 것이 아닌, 외면하고 도피하게 만드는 연출에 대해 화를 내고 비판하지만 능글맞은 남자에게 계속 말리게 된다. 여자가 한을 가득 품은 폭탄을 던지면 남자가 마치 아무것도 아닌 놀이에 불과하다는 듯이 테니스 라켓으로 폭탄을 받아쳐 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것이 마치 지금 우리나라의 젊은 페미니스트 여성들이 사회와 싸우며 보이는 모습처럼 느껴졌다. 하고 싶은 말은 너무 많고, 불만은 쌓일 대로 쌓였고, 화는 너무 나서 폭탄을 던지면, 사회는 그것이 뭐가 그렇게 중요하냐는 표정으로 가볍게 폭탄을 도로 쳐 내 버린다. 도로 쳐 낸 폭탄은 폭탄을 던진 젊은 페미니스트들에게 돌아오게 되고, 젊은 페미니스트의 코트는 본인들이 던진 폭탄으로 엉망진창이 되어 버린다.


그 순간 극장에 불이 켜지며 극장 스태프로 보이는 사람들이 들어온다. 방금까지 언쟁을 벌였던 여자와 남자 연출가는 여자배우와 남자배우로 바뀌고, 작가가 방금 우리가 본 것은 지금 쓰고 있는 연극의 앞부분이었다고 밝힌다. 지금까지 보여졌던 것이 실제가 아닌 연극이었다니, 방금까지 젊은 여성이 무력하게 무시되고 있던 상황이 연극 속 상황일 뿐이라는 말을 들은 것 같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 상황은 현실로 나와서도 계속 이어졌다. 방금의 연극을 쓴 여성 작가에게 연출가는 사람들에게 팔릴 만한 결말을 만들라 독촉하고, 그 연극에서 연기한 배우는 이리저리 눈치를 보며 그저 ‘재미있었다’라는 바람 빠진 말만 하고, 관객은 연극의 주제와는 벗어난 질문을 던진다.

 

 

 

“여성” 작가로서의 고민



두 번째 장면에서는 장소가 남자친구와 동거하는 작가의 집으로 바뀐다. 첫 장을 관람하며 여성으로서, 작가로서의 외침을 들어주지 않는 사회와 사람들에게 화가 났었다면 두 번째 장을 관람하면서는 작가와 작가의 주변 인물들이 나와 내 주변 인물들에게 오버랩되며 연민 비슷한 감정이 느껴졌다. 작가를 사랑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더 나은 삶을 살고 싶어하는 작가의 남자친구는 작가에게 큰돈을 벌 기회를 꼭 잡으라고 말한다.

 

하지만 작가는 그 기회를 잡으려면 자신의 소중한 작품을 스폰서와 대중이 원하는 대로 바꿔야 하는데, 그것이 마치 “나의 아이를 강간하기 쉽게 성형시키는 것과 같다”라며 싫다고 한다. 그리고 남자친구가 자신들의 아기에 대한 말을 꺼내며 아이 울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는데, 작가는 포대기에 싸인 어린아이를 보며 행복한 웃음을 짓다가도 머릿속에서 메아리치는 아이 울음소리에 숨이 막히는 감정을 느끼는 듯해 보인다.

 

작가가 자신의 작품이 원치 않는 방향으로 변형되는 것을 ‘자신의 아이가 강간당하기 쉽게 성형시키는’ 것으로 비유한 것, 그리고 가부장제 사회에서 언젠가 엄마가 될지도 모르는 여성의 몸으로 아이를 보고 웃기도 하고 숨 막혀 하기도 하는 것이 인상 깊게 다가왔다. 작가인데 그저 성별이 여자인 사람의 고민이 아닌, 작가이기도 하면서 여성이기까지 한 사람의 인생과 창작에 대한 고민으로 다가왔다.




작가로서의 고민



심해에 가라앉는 기분으로 작가는 담담히 글을 쓴다. 세멜레(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등장하는 한 인간 여성의 이름. 신화에서는 제우스에게 진짜 모습을 보여달라고 했다가 광채에 타 죽고 아들 디오니소스를 남겼지만, 본 연극에서는 광채를 보았지만 간단히 살아남아 딸 디오니소스를 찾아 나섰다고 하였다.)라는 이름을 가진 여성과 어딘가로 떠나는 이야기이다. 어쩐지 슬프고, 평온한 느낌의 글이다.

 

이 글은 아마 작가가 정말로 쓰고 싶은 글인 것 같다. 하지만 연출가는 이것이 팔리지 않을 것이라며 작가와 대립한다. 작가는 연출가에게 ‘작가가 자신이 원하는 글을 쓸 수 있게 지켜주는 것이 연출가의 일’이라고 하지만 연출가는 그것이 자신이 이미 하고 있는 일이라며, 자본주의 사회에서 작가를 지켜주는 방법은 ‘작가가 글을 쓰는 것을 계속할 수 있게 돈을 벌게 해 주는 것’이라고 한다. 작가의 입장도 이해가 되고, 연출가의 입장도 이해가 되는 장면이었다. 작가가 이 사회에 살아가는 인간인 이상, 살아남기 위해서는 반드시 돈이 필요하다. 하지만 대중들은 어려운 연극에 돈을 쓰고 싶어하지 않는다. 결국 돈을 벌기 위해선 작가로서 어느 정도 타협점을 찾아야 하는데, 예술에서 타협한다는 것은 곧 작품을 훼손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두 번째 장에서 작가는 남자친구와 동거하고 있었지만, 다섯 번째 장인 마지막 장면에서 작가는 여자친구와 동거하며 두 번째 장과 비슷한 상황을 반복하게 된다. 여자친구는 두 번째 장면에서의 남자친구와 같이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작가에게 차려 줄 음식을 준비해 놓고, 섹스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아이를 갖고 싶다는 말을 한다. 하지만 남자친구와의 상황과는 달리 여자친구와의 상황에선 ‘가부장제 사회 속 여성’으로서 생기는 부담이 없다. 여기서 작가는 여성‘작가’도 아니고 ‘여성’ 작가도 아닌, 그저 ‘작가’로서 생기는 일상과 창작 사이의 틈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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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인터뷰에서 원작자 엘라 힉슨은 이 연극을 쓰게 된 경위에 대해 “자기 자신을 위해 글을 쓰고 싶었다.”라고 말한다. 확실히, 연극을 보며 작가의 내면세계에 이 연극을 쓴 작가 본인이 되어 들어갔다 나온 기분이 들었다. 동시에 작가가 하고 있는 고민은 이 세상 모든 여성 작가가 하고 있는 고민이어서 연극이 끝나 현실 세계로 나온 후에도 이 연극이 아직 끝나지 않은 상태인 것처럼 느껴졌다. 이 연극의 마지막 장면은 피카소가 자신 때문에 여성들이 싸우고 있는 와중에 홀로 사다리에 올라 그리고 있었다는 그림 베로니카를 보는 작가의 뒷모습으로 끝나는데, 아름다운 작품의 완성 속에 들어 있는 혼란과 쓸쓸한 작가의 뒷모습이 오래 기억에 남았다.

 

 

 

유지호.jpg

 

 



[유지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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