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스님의 기도는 무엇이 다를까? [도서]

책, 법륜스님의 기도
글 입력 2020.11.29 17:20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beach-1867017_1920.jpg

 

 

어린 날의 나는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했다. "하느님, 부처님, 산신령님, 조상님, 세상 모든 신이시여..! 제발, 이번 시험에서 100점 맞게 해주세요. 제발, 저 게임기가 너무 갖고 싶어요. 제발, 그 친구가 나를 좋아하게 해주세요. 제발.. 제발.."


그리고 초등학교 4학년 어느 날, 수학 시험을 앞두고 나는 여느 때와 같이 손바닥을 뜨겁게 문지르며 기도를 시작했다. "제발 수학시험에서 100점 맞게 해주세요! 이거 100점 못 맞으면 끝장이에요!! 다른 과목 다 망쳤단 말이에요!!!"


비록 공부도 열심히 안 했고 신앙심은커녕 교회에도 절에도 안 가는 나였지만, 그저 100점을 맞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했다. 그런데 문득 옆을 보니 나보다 공부를 더 안 한 친구 녀석이 100점 맞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저 녀석은 하느님께 뭐 맡겨놨나? 공부는 하나도 안 했으면서 왜 저렇게 당당하게 해달라고하는 거야?' 괘씸한 마음을 간신히 진정시키고 다시 기도에 집중하려는데, '어라? 저 꼴이 딱 내 모습이잖아?'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라는 꼴이었다.


그날 이후 기도를 할 때마다 이상한 죄책감이 들었다. '세상에는 나처럼 이렇게 노력은 하지 않고 받기만을 바라는 욕심쟁이들이 얼마나 많을까? 하느님, 부처님은 참 피곤하시겠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절박한 순간에는 어김없이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신을 찾아 손이 닳도록 기도를 했다. 이건 어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였다. 바라는 것이 조금 달라졌을 뿐, 나는 여전히 손을 뜨겁게 문지르며 '제발.. 제발..' 중얼거리며 기도했다.


"제발, 수능 대박 나게 해주세요!! 제발, 이번 학기 장학금 받을 수 있게 해주세요. 제발, 저 나쁜 선임 다른 곳으로 전출 가게 해주세요. 제발, 그 회사에 취업할 수 있게 해주세요!" 어릴 때 그 모습은 여전하다.

 

그러다 어느 날 법륜스님께서 쓰신 책 <기도>를 읽게 되면서, 나의 기도는 점차 다른 색을 띠기 시작했다. 스님께서 말씀하시는 '기도'는 내가 알고 있던 기도와 매우 달랐다.

 

 

법륜스님 기도 표지.jpg

 

 

먼저 기도의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면, '(신에게) 빌다, 기원하다, 구하다'라는 의미의 祈(기)와 '기도하다, 소망하다'라는 의미의 禱(도)가 합쳐진 말이다. 어떠한 절대적 존재에게 나의 소망을 구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런데 스님은 책의 첫 장에서부터 기도를 조금 다른 관점으로 바라보신다.

 

 

1980년대 대학생들을 지도할 때의 일입니다. 어느 대학생이 민주화 시위에 참가했다가 집시법 위반으로 감옥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 학생의 어머니는 날마다 절에 와서 기도했습니다.


"우리 아들이 빨리 석방되게 해주세요."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대학생은 재판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곧바로 석방되었습니다. 학생의 어머니는 부처님의 은혜와 가피로 아들이 석방되었노라고 기뻐했습니다. 그러나 석방 3개월 뒤, 아들은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학생의 어머니는 저를 붙들고 "감옥에 그냥 있게 놔두었으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하면서 통곡했습니다. 아들이 석방된 것이 반드시 좋은 일만은 아니었던 것입니다. 오히려 나쁜 결과를 가져왔던 것이지요. 그러니까 우리가 원하는 것이 이루어진다고 반드시 좋은 일만은 아닙니다.

 

<기도> 법륜스님, 10p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만약 내가 그토록 바랬던 것이 모두 이뤄졌더라면,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직접 살아보지 못해서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분명 지금의 모습과 많이 다를 것이다. 어쩌면 더 나쁜 모습일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그때 바랬던 것이 이뤄지지 않은 덕분에, 얻을 수 있었던 성장과 배움이 정말 많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때의 실패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선택했던 길이, 새로운 기회가 되어 지금 나에게 큰 행운이라 생각되는 것도 많았다.


초등학교 4학년, 수학 시험을 앞둔 꼬마 아이의 소원이 이루어졌더라면, 그 아이는 요행만을 바라고 게으른 사람으로 자랐을지도 모른다. 만약 내가 대학교 입시에서 우연히 좋은 성적을 거두어 원하는 대학교에 갔었더라면, 실제로 내가 가진 실력이 모자라서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자퇴했을 수도 있다. 과에서 운이 좋게 1등을 하고 장학금을 받았더라면, 다음에도 또다시 행운을 바라며 노력하지 않는 내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가고 싶은 회사에 손쉽게 붙었더라면,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잘 할 수 있는지' 내 삶에 관하여 깊이 고민하고 성찰하는 시간을 가질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다른 삶을 직접 살아보지 않아서, 실제로 그럴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누군가는 정신승리라 비웃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정말 진심으로 그때 내가 원하는 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이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삶에서 경험하는 모든 실패는 내가 가진 문제점을 발견하여, 오히려 한단계 더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내가 못하는 것, 나와 맞지 않는 것'을 겸허히 인정하고 '내가 잘할 수 있는 것, 내가 좋아하는 것, 나다운 것'을 끊임없이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을 선물했다. 그로 인해 내 삶은 한층 더 자유롭고 행복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그런 경험 덕분일까, 스님의 말씀이 가슴 깊이 와 닿았다. 반드시 내가 원하는 대로 결과가 나온다 하더라도, 그게 반드시 내게 좋을 것이라 확신할 수 없다. 반대로 나쁜 결과라 하더라도, 그게 반드시 나에게 나쁜 것이 될지 알 수 없다. 오늘의 성공이 오히려 미래에는 내 발목을 잡기도 하고, 오늘의 실패가 오히려 미래의 성공을 가져다주기도 한다. 인생이란, 참 어렵고도 복잡 미묘한 것이다.

 

 

74b085b68229d754b9dee4c53a0f15a7.jpg

 

 

 

스님께서 말씀하시는 기도는 무엇일까?


 

 

내가 바라는 바가 성취되는 것이 '기도'라는 고정관념이 깨졌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 글을 씁니다. 그리고 종교나 종파와 관계없이 더 많은 사람이 '기도'하는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

 

<기도> 법륜스님, 11p

 

 

스님의 기도는 '마음을 비우는 것'이다.

 

보통 우리가 알던 기도의 개념과는 반대로, 무언가에 집착하고 욕심내는 마음을 내려놓기 위한 '기도'이다. 여기까지 들었을 때, 이런 의문이 들 수도 있다. 집착과 욕심이 반드시 나쁜 것인가? 때로는 그 욕심이 우리를 성장시키기도 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될 수도 있는데, 왜 꼭 욕심을 버려야 하는가?


그렇다. '무언가를 바라는 마음' 그 자체는 결코 나쁜 것이 아니다. 물론, 스님께서도 동의하시는 바다. 여기에서 '마음을 비우는 것'이란, 모든 욕구를 부정하고 바라는 마음 자체가 나쁘다는 의미가 아니다. 우리 자신을 망치는 헛된 욕망과 어리석은 집착을 내려놓자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욕망과 집착이 우리들의 삶에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괴롭게 하고 허황된 생각에 빠져서 앞으로 나아갈 수 없게 만들기 때문이다.

 

 

 

욕심과 원(願)


 

스님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셨다. '욕심'을 버리고, '원'을 세우라. 여기에서 '욕심'이란 노력은 하지 않고 바라기만 하는 마음을 의미한다. 열심히 운동은 하지 않으면서, 내일 살이 빠지고 복근이 생기길 바라는 것과 같다. 공부는 하지 않고 시험 성적은 100점 나오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

 

반대로 '원'은 결과를 바라는 마음보다 노력하는 의지가 더 큰 것을 말한다. 사람은 무언가를 진심으로 이루고자 한다면, 그것에 걸맞은 최선의 노력을 하는 것에 집중한다. 오히려 더 겸손해지고, 자신을 낮춘다. 목표를 위해 얼마나 노력해야 할지 그 과정을 먼저 생각하고, 그에 맞는 노력을 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한다. 욕심은 오지 않은 미래의 결과에 집중하고, 원은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한다.


욕심과 원의 가장 큰 차이는 실패를 맞닥뜨렸을 때 분명하게 드러난다. 욕심은 실패하면 할수록 좌절감과 자괴감이 늘어가지만, 원은 실패하면 할수록 오히려 열정이 끓어오르고 간절한 마음이 커진다. 왜 이런 차이가 있을까? 욕심은 지금 당장 나의 노력과 현실에 집중하기보다, 결과를 바라는 마음이 크기 때문이다. 결과를 바라는 마음이 커지면 커질수록, 그 이상과 현실의 간극에서 오는 괴리감이 더욱 커지고, 거기에서 오는 상실감이 우리를 괴롭게 만들기 때문이다.


반대로 '원'은 기본적으로 결과보다 과정에 집중하는 태도를 가진다. 현재 내 상태를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그에 걸맞은 노력을 하는 것에 집중한다. 목표를 이뤄가는 과정에 있다면, 아직은 현실의 내가 부족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실패와 시행착오의 과정은 당연하다. 이러한 자세로 실패 하나하나에 일희일비하지 않는다. 작은 실패를 통해서 오히려 자기 자신이 발전할 수 있는 부분을 찾는다. 자신을 성찰하며, 왜 실패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끊임없이 연구하고 탐구한다. 결국에는 그 실패를 통해 자신이 가진 문제와 단점을 파악하고, 그것을 극복함으로써 성장의 계기로 삼는 것이다.

 

그렇기에 '원'을 세운 사람들은 실패가 곧 성공의 지름길이라는 것을 알기에 실패해도 괴롭지 않다. 실패하면 할수록 내가 성장할 수 있는 포인트를 많이 찾은 것일 뿐이다. 그래서 실패하면 할수록, 오히려 열정과 의지가 불타오르고, 더욱 열심히 연구하고 탐구하는 자세를 갖추게 되는 것이 바로 '원'이다.


그래서 법륜 스님은 '이치에 맞지 않는 잘못된 욕심을 버리기 위한 기도'를 하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과정에 대한 노력 없이, '바라기만 하는 기도'는 오히려 욕심을 키운다. 그 욕심은 이상과 현실 사이의 간극을 넓히고 허황된 생각에 빠트려, 현실에 집중할 수 없게 만든다. 그로 인해 좌절감은 더욱 커지게 된다. 바라는 마음, 그 자체는 결코 나쁜 것이 아니다. 노력은 하지 않고 '바라기만 하는 욕심'이 나쁜 것이다. 허황된 욕심은 망상에 빠져 자신의 삶을 좀먹게 된다.


 

이 세상에는 노력하지 않고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또한, 사람마다 다 생각이 다르므로 세상일이 자기 생각대로 될 수도 없고, 자기 생각이 꼭 옳다고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노력하지 않고 쉽게 얻으려고 합니다. 자기 생각대로 되기를 원하고, 자기 생각이 옳다고 고집합니다.


모든 괴로움과 속박은 다른 사람 때문에, 어떤 물질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이런 나의 잘못된 생각에서 생겨납니다.


수행은 부처님이나 하느님 같은 절대자에게 빌어서 내가 바라는 바를 이루기 위해 하는 게 아닙니다. 잘못된 생각과 마음을 버리고 올바른 이치에 따라 행동함으로써 괴로움과 속박에서 벗어나 참 자유와 행복을 누리기 위해 하는 것입니다.

 

『기도』 법륜스님, 24p

 


스님께서 말씀하시는 기도의 핵심은 '내 마음을 닦는 것', 수행[修行]의 개념에 더 가깝다. 스님의 기도는 내가 가진 어리석은 생각을 자각하고 바꿔 나가는 과정이다. 경건하게 자기를 돌아보며 성찰하는 마음을 말한다. 법륜스님의 기도는 절대자인 하느님, 부처님께 대신 이뤄달라고 바라고 부탁하는 것이 아닌, 내 마음을 보고 허황된 욕심과 어리석은 집착을 내려놓는 시간이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더 이상 바라기만 하는 기도는 하지 않게 되었다. 이제는 조금 다른 기도를 열심히 하고 있다. 기도의 내용이 변한 덕분일까? 지금은 기도를 열심히 해도 이상한 죄책감이 들지 않는다.

 

 

img_main1.jpg

 

 

법륜 스님은 거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설령 신이 직접 나타나 내 소원을 들어주겠다 해도 정중히 거절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것은 내 삶의 온전한 주인으로서,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살라는 스님의 바람이었다.

 

 

"그동안 저의 기도들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저의 일은, 제가 스스로 책임지고 극복해 나가겠습니다. 안 도와주셔도 됩니다."

 


가끔은 삶에서 맞닥뜨리는 시련과 역경이 나를 너무 힘들게 할 때, 있을지 모르는 절대자에게 부탁하고 싶은 마음이 불현듯 찾아온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다시금 이 책을 꺼내서 스스로 다잡는다.

 

"그래, 지금 괴로운 것이 반드시 나에게 나쁘다는 보장이 없어. 또, 지금 잘 되는 것이 반드시 꼭 좋다는 보장도 없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오늘 하루에 최선을 다하는 것뿐이야. 허황된 욕심과 집착을 내려놓고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자."


그렇게 나는 오늘도 기도한다.

 

 

 

박철한.jpg

 

 

[박철한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이름
비밀번호
자동등록방지
65256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1.04.11, 22시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부일로205번길 54 824호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1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트(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