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하이틴을 바라보는 조금 다른 시각 [영화]

이토록 상처받기 쉬운 나이
글 입력 2020.11.23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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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구분짓는 표현은 다양하다. 청춘 영화, 레오나르도 디카프로의 얼굴 영화, 전기 영화 등의 수식어 중 가장 눈길을 끈 것은 '하이틴 범죄 영화' 라는 이름표였다. 극중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이틴이고, 그들이 범죄를 저지르는 영화이니 하이틴 범죄 영화라는 장르 구분은 형식상으로 <바스켓볼 다이어리>를 가장 잘 설명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내가 <바스켓볼 다이어리> 에 붙은 '하이틴 범죄 영화' 라는 타이틀이 그럴듯하다고 느껴진 것은 조금 다른 이유에서다.

 

우리나라에서 일컬어지는 '하이틴' 스타일이란 구세대 미국의 레트로 감성 등을 통칭하는 단어이다. 더불어 '하이틴'스러운 인물들이란 어딘가 빛바랜 색감의 영상 안에서 알록달록한 복고풍 차림을 한 채 철없는 미소를 보이고, 무슨 일이든 제멋대로 해치워 버리는 인물들로 묘사되며, 머릿속이 온통 꽃밭이다 못해 그자체가 판타지스러운 존재로 느껴지기까지 한다.

 

'하이틴'이라는 단어가 주는 이러한 어감을 고려하면, 짐(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이 반짝이는 청춘의 낯빛을 띄고 코트를 누비는 초반의 장면들은 몰라도, 마약에 중독되어 망가져 가는 짐의 모습을 보면 쉽게 '하이틴'의 이름을 들먹이기 어렵다고 느낄 것이다. <바스켓볼 다이어리>가 여타의 하이틴 영화, 그리고 중독자들을 그린 수많은 영화와 구별되는 지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많은 사람들이 중독의 이유를 결핍에서 찾듯, <바스켓볼 다이어리>의 주인공 짐이 중독자가 된 원인 역시 결핍이다. 누구보다 밤하늘과 별을 사랑할 정도로 예민하고 자유로운 영혼이었던 짐의 상처가 보통의 사춘기의 성장통으로 작용하기엔 엄마도, 학교 선생님도, 그 누구도 제 역할을 해내지 못했다. 스스로의 중심도 혼자의 힘으로 잡기 힘든 나이, 사랑하는 친구의 죽음과 억압적이고 폭력적인 학교의 환경, 잔소리로만 표현되는 엄마의 서투른 애정 등은 짐을 고통의 낭떠러지로 몰아붙였다. 어린 짐에게는 그를 이롭게 할 수 있는 모든 요소가 부족했다.

 

일탈의 원인을 고통에서 찾는 것이 누군가에겐 변명처럼 보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영화의 주인공이 '청소년'이라는 점을 잊지 말자고 얘기하고 싶다. 특히 짐은 마약을 접하는 계층들- 부유한 상류층 자제들, 중상층의 장년층들 등- 중에서도 가장 취약한, '거리의 아이들'에 속했다는 점 역시. 고통받는 인간이 대채재를 찾는 행위에 대해 우리는 대체 무슨 비난을 할 수 있을까?

 

많은 사람들이 버릇처럼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신다. 우리는 어린 짐이 마약에 중독되었고 그 때문에 청소년기를 완전히 파괴당했다는 사실 외에, 그가 마약을 선택하고 벗어나지 못했던 이유에 더 집중해 보자. 단지 마약을 피우는 행위가 법에 어긋나는 짓이기 때문에 옳지 않다는 법적 당위는 적어도 현실을 떠난 스크린 안에서 잠시 내려놓을 수 있지 않을까?

 

스크린 상에서 점차 피폐하게 무너지는 짐의 일상을 목격하는 것만으로 우리는 충분히 고통스럽지만, 혹은 이해가 되질 않지만, 거기서 멈추지 말고 한 걸음 더 나아가 보자는 말이다. 밤거리와 마약에 취한 상태로, 고등학교 농구대회에 출전해 인터뷰를 하는 친구를 TV 화면 너머로 지켜보는 짐의 흔들리는 눈동자에선 이미 너무 늦어 버렸다는 패배감이 읽힌다. 고작 열여섯에게 더 이상 인생을 돌이킬 수 없다는 선언 같은 좌절을 안긴 것은 과연 짐 자신인가, 우리는 질문해야 한다.

 

이것은 스크린 너머로 유리된 세상의 윤리에 대해 고민해 보자는 말이 아니다. 굳이 멀고 어렵게 생각해 보지 않아도 마약에 중독되며 고등학교에서 퇴학해 길거리를 누비는 짐의 모습은 우리나라의 '학교 밖 청소년'으로 자연스럽게 오버랩된다. 이 글을 쓰던 도중, 청소년 시절부터 마약을 복용해왔다는 모 래퍼의 자수 소식을 들었다. 개개인의 도덕성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여전히 수많은 아이들이 고통에 시달리고, 그 고통의 해답으로 결코 옳지 않은 선택지를 권유받는 세상이 어떠한지 우리는 질문해 볼 수 있다.

 

비록 레오나르도 디카프로의 연기력에 과도하게 기대며 후반을 비교적 손쉽게 연출해 버린 점은 아쉽지만, <바스켓볼 다이어리>는 하이틴의 스타일리쉬함에 가려진 상반된 유약함을 잘 그려냈다. 영화는 러닝타임 내내 관객을 결코 짐을 고통에서 구원해 줄 의도와 방편이 없는 목격자로 위치시키며 착잡한 생각의 더미 속으로 떠민다. <바스켓볼 다이어리>가 '리즈 시절'의 디카프리오로 유명한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듯하다.

 

원래의 형태를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일그러지기 이전 문자 그대로 천사 같은 한 청춘의 얼굴은 우리에게 그 자체로 속삭인다. 아직 채 성숙하지 못한 영혼은, 적어도 제 자신을 제외한 모든 것에서 상처를 입을 만큼 이토록 아름답게 무해하다고.



 

[김현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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