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n’t Try
애쓰지 마라
찰스 부코스키가 남긴 묘비명이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 짐작할 수 있는 명료한 설명이자 <음탕한 늙은이의 비망록>을 읽는 나에게 하는 말 같았다.

강렬한 표지가 맘에 들었다. 음탕한, 늙은이, 비망록. 어느 하나 강렬하지 않은 단어가 없는 책의 제목과 참 잘 어울렸다.
하지만 ‘잊지 않으려고 중요한 골자를 적어 둔 것. 또는 그런 책자.“의 뜻을 가진 비망록이라는 단어가 내용과 잘 어울리나 의심했다. 섹스, 자살, 똥, 엉덩이와 같은 단어가 반복되고 도대체 이게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다. 찰스 부코스키는 이런 단어들을 ’잊지 않으려고‘ 비망록을 작성한 것일까.
생소하고 이상했다.
그런데 ’중요한 골자‘라는 것은 어떤 것일까? 인생이나 교훈, 사랑 등 어떻게 보면 거창한 말들을 늘어놓는 것이 비망록의 조건이라도 되는 것일까. 그런 의미에서 찰스 부코스키는 살아가는 인생 자체가 비망록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음탕한 늙은이의 비망록>은 1969년 지하신문 <오픈시티>에 찰스 부코스키가 14개월 동안 연재한 칼럼을 엮은 산문집이다.
p.9
그에게 원고를 넘기면 그걸로 끝이었다. 덕분에 글을 쓰는 데 도움이 되었다. 나 자신에 대해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즐겁게 쓸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쓰는 완전한 자유가 생겼다. (중략) 알다시피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물론 시만의 문제가 아니다. 너무 많은 쓰레기가 시를 쓰고 출간하려 들기 때문이다. 반면 이 <비망록>은 맥주 한 병을 끼고 앉아 금요일 혹은 토요일 혹은 일요일에 타이핑하면 다음 주 수요일날 로스앤젤레스 전역에 글이 깔린다.
1920년 독일 출생인 찰스 부코스키는 어린 시절 로스앤젤레스로 이주했다. 독학으로 작가 훈련을 했으며 24살 때 우연히 취직한 우체국에서 12년간 일을 하고 시를 썼다. 잦은 지각과 결근으로 해고 직전에 있을 때, ’전업으로 글을 쓰면 매달 100달러를 지급하겠다‘는 출판사의 제안을 받아들였고, 평생 60여 권의 소설과 시집, 산문집을 출간했고 시나리오 작가로도 활동했다.
p.94
우리는 동네 술집의 남자 변소에서 술에 취한 놈들이 총질하듯 역사를 낭비해 왔다. 난 인류의 한 사람이 된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며 거기에 부끄러움을 더하고 싶지 않다. 오히려 부끄러움을 조금이라도 떼어 내고 싶다.
p.95
나이가 들고 보니 특히나 이 나이 대를 사는 것이 기쁘다. 별것도 아닌 인간이 그저 너무 많은 헛소리를 하는 데 지쳤다. 사방에서 이런 일이 일어난다.
글은 고민하고 계속해서 다듬어서 글쓴이의 생각과 표현들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행위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음탕한 늙은이의 비망록>은 예쁘게 다듬지 않은 ’날 것‘의 느낌이 강했고 본능 그대로의 글이었다. 처음에는 그 ’날 것‘의 느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몰랐다.
Don’t Try. 애쓰지 마라. 나는 그냥 제목처럼 음탕한, 늙은이의 비망록는 읽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독자라고 생각하며 읽었다. 그래서 아웃사이더, 이단아의 찰스 부코스키와 전 세계 독자들이 열광하는 찰스 부코스키. 그가 가진 두 모습이 동시에 느껴졌다.
p.138
2010년이 온다는 게 상상이나 되는가? 물론 그 모습이 어떨지는 폭탄을 어떻게 쓸 것인가에 따라 좌우된다. 그때가 와도 여전히 사람들은 아침에 달걀을 먹고 성생활로 고민하며 시를 쓰고 자살을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