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한 데 어우러지는 동서양을 듣는 즐거움, 한-러수교 30주년 기념 음악회 [공연]

언어로 음악을 잡아둘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한-러수교 30주년 기념 음악회(독도사랑축제)
글 입력 2020.11.20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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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회 가면 뭘 느껴야 해?", "약간 잠 오지 않아?"

 

음악회에 간다고 하면 자주 접하게 되는 친구들의 반응이다. 나 역시 음악 비전공자인 '음알못'이지만 나는 음악회나 연주회에 오는 것을 매우 좋아한다. 이번 리뷰는 위와 같은 의문을 갖고 아직 음악회와 친해지지 않은 이들을 위해 솔직하고 꾸밈없는 말로 내가 어떻게 음악회를 즐기는지 적어보려 한다.

 

(글은 프로그램 순서대로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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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 콘서트홀의 오르간. 정말 크고 멋지다.

언젠가 오르간을 연주하는 동생을 데려와야지 다짐했다.

 

 

 

차이코프스키는 들어봤어도 아렌스키는 처음 들어보는데


 

A. Arensky (1861~1906). Variations on a Theme by Tchaikovsky, Op. 35a

 

광활한 롯데콘서트홀에서 미친 듯이 헤매다 공연 시작 1분 전인 7시 59분에 숨을 헉헉 대며 자리에 앉았다. 다행히 시작 전 곡에 대한 설명이 이어지고 있었다. 아렌스키...? 차이코프스키는 아는데... 처음 들어보는 작곡가의 이름에 고개를 갸웃하며 자신 없게 앉아 연주가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겨우 가쁜 숨을 고르는 동안 음악이 시작되었다. 연주가 시작되자 나는 아, 하고 외마디 탄성을 속으로 지를 수밖에 없었다. 현악기들이 만들어내는 화음이 꼭 겨울날 정신없이 들어온 카페에서 한 모금 따뜻한 밀크티를 마실 때처럼 온몸을 확- 노곤하게 감싸 안는 느낌이었다. 그래, 이 맛에 연주회에 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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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보니 아렌스키는 무려 라흐마니노프 등 이름만 들어도 알 법한 걸출한 음악 제자들을 양성한 왕선배님(?)이었다. 이번 음악회에서 들려준 위 곡은 '차이코프스키 주제에 의한 변주곡'이었다. 그래, 어쩐지 이름이 비슷하더라.

 

곡은 러시아 곡인데 꼭 우리 곡 같았다. 넘실대는 바다 같기도 했고 모험심으로 가득 찬 상상의 나래 속 같기도 했다. 이 곡의 주제는 차이코프스키의 '어린이를 위한 16개의 노래' 중 5번째 'Legend'라고 한다. 찾아보니 아렌스키는 차이코프스키의 인정을 받아 작곡가로 큰 성장을 했다고 한다.

 

곡은 아렌스키가 차이코프스키에게 얼마나 좋은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느껴지게 해 줄 만큼 황홀했고 아름다웠다.

 

 

 

한국어로 불리는 성악


 

이영조(1943~ ), '환희(Jubilate for Soprano and String Ensemble'

 

다음 곡은 광복 75주년 기념 음악회를 위해 라메르에릴의 위촉으로 작곡된 곡이었다. 곡은 '1. Prologue-붉은 밭, 2. Jubilate-환희, 3. Epilogue-아.. 아리랑' 이렇게 총 3악장으로 구성되어있었다. 우리말로 된 성악은 처음 들어봐서 좀 생소하고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외국인들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이색적이고 신비롭게 들릴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사실 곡을 들으며 너무 전위적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쇤베르크의 음악이 떠오르기도 했다. 알고 보니 이 곡은 굴곡진 우리 역사를 나타내기 위해 1910.08.29-1945.08.15 등 날짜의 숫자가 음정 및 쉼표화 된 실험적인 곡이었다. 혼란한 시대상을 민속적인 선율과 함께 숫자로 표현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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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우리 가락 우리 소리


 

임준희(1959~ ), '소프라노, 대금, 해금과 현악 3중주를 위한 독도 환타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 이 음악회의 꽃이라 할 만한 곡이었다. <독도 판타지>는 라메르에릴의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특별 음악회"를 위해 위촉 작곡되었으며, 최정례의 시 <스스로 오롯이>를 바탕으로 구성된 작품이라고 한다.

 

1악장의 부제는 <독도 지킴이>로 비단 같이 부드러운 현악 3중주의 선율로 시작된다. 미끄러지는 듯 부드러운 현악의 음률은 안개 낀 쪽빛 바다를 연상시키게 하고 어디선가 끼룩끼룩 바다 새가 우는 것 같은 착시마저 느끼게 한다. 부드러운 현악 파도 위로 구슬프고 한의 힘이 가득한 대금이 탁 얹어질 때, 온몸에 전율이 쫙 끼친다.

 

대금의 선율이 얹어져 비로소 쓸쓸한 바다에 꿋꿋하고 의연한 독도가 그려지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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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출처_김회룡

 

 

2악장의 부제는 <몽돌의 춤>이다. 몽돌은 '모가 나지 않은 구르는 돌'이라는 뜻이다. 사실 몽돌이 처음부터 둥글지는 않았을 것이다. 수많은 세월에 구르고 깎여 둥그렇게 된 몽돌은 마치 나라를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구르고 깎였던 우리 민족의 희생을 보여주는 것만 같았다. 2악장에서는 현악 선율과 해금 선율이 어우러지는데 확실히 우리 가락과 우리 소리만이 낼 수 있는 '한의 정서'가 온몸으로 느껴진다. 듣고 들어도 또 듣고 싶은 절절한 가락이었다.

 

마지막으로 <자유의 섬>이라는 부제의 3악장은 현악 3중주와 대금, 해금 그리고 소프라노가 어우러진다. 개인적으로는 최정례 시인의 <스스로 오롯이>라는 시구절들이 소프라노보다는 판소리와 어울린다고 생각되었다. 그래도 우리말을 서양의 소리 기법으로 듣는 체험도 이색적이고 즐길만했다.

 

 

 

율+아시아의 매력


 

러시아는 참 독특한 매력이 있다. 유럽과 아시아의 중간 그 어디쯤. 그래서인지 음악도 상당히 독특하고 특색 있다. 함께 음악회를 간 지인의 말에 따르자면 '유학파 유교걸' 같은 느낌이랄까. 여하튼 남은 순서는 러시아의 음악들이었다.

 

S. Rachmaninoff(1873~1943), "Georigian Song" from <6 Romances>, Op. 4, No. 4

 

그 유명한 '라흐마니노프'의 곡이다. 비로소 소프라노가 제 길을 찾은 느낌이었다. 현악의 부드러움과 맑게 흐르는 물과 같은 소프라노가 기가 막히게 어우러졌다. 곡의 선율은 굉장히 애처롭고 동양적이 데가 있었다. 쓸쓸한 정서가 느껴졌다.

 

P. I, Tchaikovsky(1840~1893), Souvenir de Florence, Op. 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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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코프스키를 처음 접했던 건 디즈니 영화 <판타지아>에서였다. 호두까기 인형 주제곡에 맞춰 빙판을 가르는 요정들의 반짝임을 봐서 그런지, 차이코프스키 음악에서는 늘 특유의 얼음물을 통통 튀는 듯한 이미지가 그려진다.

 

곡은 총 4악장으로 구성되어있는데 앞서 말한 요정이 뛰는 부분(?) 말고도 말을 타고 눈보라를 헤쳐나가는 장면이라든가, 영화 <닥터 지바고>의 기차 씬이 생각나는 부분이라든가 평소 '러시아스럽다'라고 생각했던 장면이 연상되는 음률이 많았다.

 

*

 

이번 음악회는 특별히 동서양이 한 데 섞여 홍차와 우유가 섞인 밀크티처럼 조화로운 맛을 내는 연주회였다. 음악회를 즐기는 내내 생각했다. 언어로 음악을 잡아둘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이 감각을 고스란히 내 글을 읽는 이들에게 전달하고 싶다는 생각과 순간적이고 강렬한 감각의 체험을 과연 언어가 따라잡을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교차했다. 그래도 언어로든 이미지로든 음악을 잡아두려 노력하다 보면 음악이 가진 매력을 더 깊게 온 몸으로 느낄 수 있다는 사실만큼은 확실하다.

 

음악이 어려운 이들이라도 직접 악기 본연의 소리를 가까이서 들으며 떠오르는 심상들을 표현하려 한다면 어느새 그 매력에 흠뻑 빠지리라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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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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