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사랑도 나이가 든다 : '우리 둘(Deux)' [영화]

글 입력 2020.11.14 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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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종종 시간에 무뎌지고 마모된 삶을 성숙하다고 표현하곤 한다. 시간은 모든 것을 바꾸고 사람 또한 예외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가 나이 듦을 성숙함과 연관 짓는 것도 여기에서 기인할 것이다.

 

그렇지만 시간만이 우리의 마음을 완전히 자라게 하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조금 이르게, 또 누군가는 조금 느리게 세상과 마주하는 법을 배운다. 시간이 흐르면서 세상과 타협할 줄 아는 것을 현실적이라고 한다면, 현실적인 것이 성숙한 것일까? 나이 듦은 성숙함과 비례할까? 사랑은, 나이 들고 성숙하고 현실적인 사랑은 존재할 수 있을까?

 

현실과 이상의 괴리는 언제나 사람들이 이야기하기 좋아하는 주제다. 그 이상이 ‘사랑’일 경우에는 특히 더 그렇다. 사랑이란 현실과 타협해서는 안 되는 어떤 성역처럼 여겨지곤 한다. 그렇기에 수많은 매체에서 우리는 사랑 때문에 모든 것을 버리는 이들을 보고 그것이 이상적이라고, 또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만다.

 

하지만 어떤 이들에게 사랑은 단순히 ‘이상’을 좇는 것 이상의 무게를 지닌다. 영화 ‘우리 둘(Deux)’의 두 주인공 또한 누군가에게는 당연하게 여겨지는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지나친 대가를 치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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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사별한 ‘마도’와 관광 가이드로 일하다 은퇴한 ‘니나’는 오랜 시간 동안 연인으로 지내왔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그저 친한 이웃으로 보일 뿐이다. 둘은 ‘마도’의 아파트를 정리하고 같이 로마로 이사할 계획을 세우지만, ‘마도’는 자식들에게 자신과 ‘니나’의 관계를 밝히지 못한다. ‘니나’는 매번 같은 이유로 자식들에게 말을 꺼내지 못하는 그에게 화를 낸다.

 

‘마도’가 자식들에게 커밍아웃하지 못했던 것은 그가 너무 오랜 시간 동안 헌신적인 아내이자 엄마로 살아왔기 때문일 것이다. 폭력적이고 억압적인 남편이 죽을 때까지 그 곁을 떠나지 않은 ‘마도’를 두고 그의 딸 ‘앤’은 ‘어떻게 보면 대단하다’고 말한다. 그 말은 족쇄가 되어 ‘마도’를 옭아맸다. 그는 커밍아웃을 통해 자신이 실은 헌신적인 아내가 아니었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자식들이 더는 자신을 사랑하지 않을까 두려웠을 것이다.

 

‘니나’가 화를 내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마도’는 뇌졸중으로 쓰러져 말을 하지 못하는 상태가 된다. ‘니나’는 이 모든 일이 자신의 탓인 것만 같아 죄책감에 휩싸이지만 둘의 사이를 알지 못하는 ‘마도’의 가족들은 ‘마도’와 같이 있기 위해 애쓰는 ‘니나’의 행동을 수상하게 여기기 시작한다. 어느 날 ‘니나’는 ‘마도’의 침실에 몰래 들어가 잠이 들고 그 모습을 ‘앤’에게 들키고 만다. 이후 ‘마도’는 요양원으로 보내지고 이에 분노한 ‘니나’가 ‘앤’의 집 창문에 돌을 던지면서 일은 돌이킬 수 없이 나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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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에서 ‘마도’와 ‘니나’는 미련하리만치 낭만적이고 현재에 충실한 모습을 보여준다. 둘은 등장인물 중 가장 나이가 많지만 요동치는 감정을 고스란히 담고 생동한다. 우리가 중년의 여성에게서 기대하는 모습이 무엇인지 생각해본다. 삶에 치여 닳고 해진 얼굴만을 보느라 그들 안에서 살아 움직이는 감정과 생각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마도’의 두 자식 ‘앤’과 ‘프레데릭’은 영화 내내 지친 모습으로 일관한다. 두 사람이 가장 감정적으로 행동할 때는 오직 누군가를 향해 분노할 때뿐이다. 무모한 것이 젊음이라면 이 영화에서 가장 젊은 것은 ‘마도’와 ‘니나’일 것이다.

 

‘마도’는 말도 하지 못하고 거동도 불편한 상태에서 요양보호사들의 눈을 피해 ‘니나’에게 전화를 건다. ‘니나’는 적막한 수화기 너머에 ‘마도’가 있다는 사실을 단번에 알아차리고 요양원의 소재를 알아내 그를 다시 집으로 데려오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그사이 집은 도둑이 들어 엉망이 되고 둘이 이사를 위해 모았던 돈까지 전부 도난당하자 ‘니나’는 절망한다. ‘앤’은 ‘마도’가 ‘니나’와 함께 있음을 직감하고 ‘니나’의 집을 찾아와 ‘말로 하자’며 ‘마도’를 설득하지만 둘은 문을 열어주지 않고 어질러진 집 거실에서 행복했던 그때처럼 왈츠를 춘다.

 

‘이러지 말고 우리 말로 해결하자’던 ‘앤’의 모습은 말 한마디 없이도 ‘마도’를 이해했던 ‘니나’와 대조된다. ‘마도’는 말을 하지 못하는 상태였지만 어쩌면 자의로 말을 하지 않았던 것일지도 모른다. 눈빛과 숨소리만으로 ‘마도’의 생각을 읽을 수 있었던 ‘니나’와 달리 다른 사람들은 ‘마도’가 말을 할 수 있을 때도 그를 이해하지 못했다. ‘마도’는 뇌졸중으로 말을 잃어버렸지만 언어를 잃어버린 것은 아니었다. 단지 그 언어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오직 ‘니나’였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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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은 이웃으로 지내며 언제나 서로를 향해 문을 열어 두고 있었다. 하지만 활짝 열린 두 개의 문과 짧은 복도로 이루어진 관계의 끝은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향해갔다. 그들은 이웃이라는 이름으로 항상 함께할 수 있었지만 같은 문을 나누는 사이가 될 수는 없었고, ‘마도’는 결말에서 결국 스스로 문을 닫아버린다. 그러나 두 사람이 갇힌 것이라고는 느껴지지 않았다. 두 사람이 ‘앤’이 미친 듯이 문을 두드려 대는 소리를 배경 삼아 왈츠를 추는 장면에서 ‘마도’는 누구보다 행복하고 자유로워 보인다.

 

마지막 부분에서 ‘마도’와 달리 ‘니나’의 표정은 복잡미묘하다. 그토록 원하던 이와 함께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완전히 행복감을 즐기지 못한다. 이들의 사랑은 여전히 숨겨져 있고, 인정받지 못했으며 로마로 가고자 했던 계획도 완전히 물거품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나이 듦의 비참함과 잔혹한 현실 앞에서 낭만적이기만 했던 ‘니나’ 역시 ‘마도’의 마음을 헤아리기 시작하는 지점이다. 죄책감과 무력감 앞에서 ‘니나’는 ‘마도’가 지금껏 커밍아웃하지 못했던 이유를 깨닫는다. 사랑만으로는 이겨낼 수 없는 거대한 무언가 앞에서 ‘니나’는 비로소 성숙해진 것이다.

 

그들의 사랑이 나이 들고, 성숙하고, 현실적인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성숙한 것이 완전히 자랐다는 것이라면 그렇다. 현실적이라는 것이 실재하는, 혹은 실재할 수 있는 것을 의미한다면 그렇다. 우리는 사랑이 불변한다고 믿기를 좋아한다. 사랑이 언제까지나 고결하고 순수하게만 남아있을 수 있다면, 유한한 우리 삶에서 단 하나라도 영원한 것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속절없이 흐르는 시간과 날카롭게 벼려진 현실 앞에서 물렁하고 형태 없는 감정은 쉽게 상처 입는다. 물론 상처 입은 감정과 마음에는 굳은살이 배기고 흉터가 남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더이상 사랑이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다. 주름살이 자글자글한 사랑도 사랑이다.

 

 



[이고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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