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도서관, 나를 압도하는 공간이 내게 주는 안정감 [문화 공간]

나의 채플, 나의 모스크, 나의 사원, 나의 도서관.
글 입력 2020.11.12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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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별한 애정을 품고 있는 공간이 있는가? 애정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 공간을 떠올리고자 하면, 혹은 그 공간 속에 가만히 서 있으면 강렬한 감정을 가지게 되는 그런 공간 말이다.


 

"코스모스를 정관하노라면 깊은 울림을 가슴으로 느낄 수 있다. 나는 그때마다 등골이 오싹해지고 목소리가 가늘게 떨리며 아득히 높은 데서 어렴풋한 기억의 심연으로 떨어지는 듯한, 아주 묘한 느낌에 사로잡히고는 한다. 코스모스를 정관한다는 것이 미지 중 미지의 세계와 마주함이기 때문이다."


- 칼 세이건, <코스모스>, 홍승수 옮김, 사이언스북스, 36p

 


칼 세이건의 말마따나, 우주처럼 광활한 공간을 떠올리노라면 세상에서 ‘나’라는 존재는 너무나도 작은 것이 된다. 강력한 압도감에 사로잡힌다. 물론 코스모스보다 더 압도적인 공간은 존재할 수 없다.

 

하지만 너무나도 작은 존재인 나는, 지금 내가 서 있는 공간이 우주라는 것을 떠올리는 데에까지로 생각이 미치지 않아도, 경외심이 섞인 압도감을 느끼게 해주는 공간을 찾을 수 있다.

 

그 공간은 바로 도서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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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도된다’라는 느낌은 답답함, 긴장감, 가슴 떨림, 어쩔 줄 모르겠음과 같은 감정들과 함께 찾아온다. 비록 종교는 없지만,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종교적 체험’이라고 불리는 것을 체험할 때 경험하는 감정을 나는 도서관에서 경험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로 하여금 도서관에 매일같이 방문하고자 하는 열망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압도감이 한차례 지나간 후 찾아오는 안정감이다. 이 안정감은 일상 속 스트레스로부터의 도피처, 특히 복잡하고 어려운 인간관계와 사회생활로부터 달아난 나에게 기분 나쁘지 않을 정도의 적당한 고독감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오아시스이다.

 

이렇게 안정감을 느끼는 것도,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종교에서 제공하는 종교적 체험이 그들을 압도함에도 불구하고 그 후 안락함을 느끼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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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키보다 훨씬 높이 서 있는 책꽂이들이 끊임없이 늘어서 있다. 그렇지만 그것을 정복할 수 없는 것만은 아니다.

 

언젠가는 꼭 이 책들 하나하나를 끌어내려 끝없이 늘어선 높다란 책장들을 내 머릿속에 집어넣고야 말 것이라는 다짐을 할 때면, 왠지 모를 희열감으로 마음속이 벅차오른다. 하지만 이것은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라는 사실을 자각하게 되면, 무력감을 체험하게 된다. 그와 함께 겸손한 마음으로 다시금 책장을 마주할 수 있게 된다.


서가에 꽂혀있는 책 한 권 한 권이 내가 사랑하는 인물이나 나를 사색하게 만드는 문제를 다룬 것이라는 것을 인지하면, 당장에라도 그곳의 모든 책을 뽑아들고서는 그 자리에 앉아 온종일 그들과만 대화하고 싶다는 충동이 피어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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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이론을 배우는 것을 좋아한다. 많은 사람이 흥미를 느끼는 분야는 아니지만, 나는 그 분야를 공부하는 것의 매력을 느꼈고 꾸준히 미술 이론과 미술사를 다루는 책들을 읽어나갔다.

 

필자가 가장 자주 가는 도서관인 재학하는 학교의 도서관의 청구기호를 기준으로 700번대(예술), 그중 750번대(회화), 특히 759.XX 번대의 책장과 마주하면 마음속 흥분은 극에 달한다. 시공간을 넘어서 책 속의 인물들과 대화를 할 수 있을 것만 같아진다.

 

“안녕하세요, 이중섭 씨. 오랜만이네요, 반고흐 씨. 얼마 전에도 제 친구와 당신에 관한 토론을 해보았답니다. 유익한 시간이었어요. 뭉크 씨 오늘 기분은 좀 괜찮으신가요? 아 로스코 씨, 매번 뵈러 가야겠다고 마음은 먹는데 자꾸 깜빡하네요, 조만간 꼭 찾아뵐게요. 아 오늘은요? 칸딘스키 선생님을 뵈러 왔어요.”

 

‘당신들과 들숨과 날숨을 같이 하는 것은, 당신들과 동시대를 살아가지 못했던, 당신들과 대면하여 말 한마디 해보지 못했던 나의 아쉬움을 달래줍니다.’


마음속으로 이러한 말과 생각을 하며, 그들을 응시하며 어느 정도 가만히 있다가, 오늘 만나러 온 예술가와의 약속을 지키는 것이다.

 

나의 채플, 나의 모스크, 나의 사원, 나의 도서관. 항상 그의 생명력을 느끼며 그와 함께 숨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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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호용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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