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안티고네, SNS 시대의 영웅이자 이방인

글 입력 2020.11.09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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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포클레스의 비극 ‘안티고네’는 ‘오이디푸스 왕’과 이어지는 이야기다.

 

오이디푸스의 죽음 이후 왕위를 다투던 과정에서 안티고네의 오빠 폴리네이케스와 에테오클레스가 죽는다. 이윽고 왕위에 오른 안티고네의 외삼촌 크레온은 테베 밖에서 반역을 도모한 폴리네이케스의 시신은 짐승의 밥이 되도록 거리에 버리고, 에테오클레스의 장례만을 치른다.

 

이에 안티고네는 엄청난 처벌을 무릅쓰고 폴리네이케스의 시신을 수습하려 하다 크레온에게 붙잡힌다. 안티고네는 처형을 앞두고 스스로 목숨을 끊고, 그를 사랑한 크레온의 아들 하이몬도 그를 뒤따라 자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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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포클레스의 이 희곡은 브레히트, 아누이 등 현대의 극작가에 의해 재해석되기도 했고, 한국에서도 공연되기도 했다. 그리고 이 고대 그리스의 비극은 2020년, 난민 소녀의 이야기인 영화 <안티고네>로 재탄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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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초반 장면을 통해 관객은 금방 안티고네의 가족이 ‘이방인’임을 알 수 있다. 백인과 확연히 다른 모습을 한 유색 인종이며, 할머니가 독특한 옷을 입고 있고 프랑스어가 아닌 낯선 언어로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안티고네와 가족은 북부 알제리의 카빌리아(Kabylia) 출신으로, 안티고네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죽은 후, 안티고네는 할머니, 폴리네이케스, 에테오클레스, 이스메네와 함께 캐나다 몬트리올로 이주해왔다.

 

고국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명확한 사건은 묘사되지 않는다. 숨어 있던 안티고네와 남매들은 모두 살았으며, 밖에 있던 어머니와 아버지가 누군가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는 사실만 알 수 있을 뿐이다. 프랑스어도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는 안티고네의 할머니가 어린아이들을 이끌고 영주권을 획득할 수 있었던 것, 또 ‘그곳에선 사람들이 감옥에 살며 분변 위에서 뒹군다’는 할머니의 대사를 보면 알제리는 내전 등으로 불안정한 국가임을 알 수 있다.

 

안티고네는 고등학교에서 우수한 학생으로 성장하고, 언니인 이스메네는 미용실에서 일하며 자신만의 사업을 차릴 꿈을 키워가지만, 오빠인 폴리네이케스와 에테오클레스는 지역 갱단 ‘하비비’의 마약상이 되어 여러 범죄에 휘말린다. 에테오클레스는 마약을 하던 현장에서 경찰의 지시에 반항했다는 이유로 경찰의 총에 맞아 사망하고, 현장에 함께 있었던 폴리네이케스는 구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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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포클레스의 희곡에서 그러했던 것처럼, 안티고네는 가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 그는 폴리네이케스의 탈옥을 돕고, 대신 자신이 남장하여 감옥에 들어가 폴리네이케스가 도망갈 시간을 번다. 물론 얼마 못 가 간수들에게 들통이 나고, 안티고네는 탈옥을 도운 혐의로 재판에 넘겨지고, 소년원에 송치된다.

 

그러는 사이, 안티고네의 친구 하이몬은 안티고네의 석방을 요구하는 캠페인을 주도하고, 붉은 페인트로 안티고네의 얼굴을 곳곳에 그리고 다닌다. 안티고네는 그렇게 자신도 모르는 새 미디어에서 영웅으로 추앙받기 시작한다.

 

목적을 불문하고 뜻을 모아 하나의 생각을 전달하는 데는 아이콘, 즉 우상이나 상징물이 매우 중요하다. 영화 속 안티고네의 얼굴을 그린 그림을 보고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쿠바 혁명을 주도한 체 게바라의 얼굴이었다. 지금 봐도 멋스러운 콧수염과 모자는 인상적이고 곧바로 그의 이름을 떠올리게 한다.

 

그런 점에서 안티고네의 단호한 얼굴을 그림으로 그리고, 그가 했던 말 중 기억하기 쉬운 문구인 ‘심장이 시키는 일’을 구호 삼아 시위를 이끈 하이몬은 졸업 후 많은 마케팅 회사의 러브콜을 받게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영화에는 하이몬이 그린 그림 앞에서 많은 이들이 사진을 찍고, 그 그림을 티셔츠로 만들어 입고, 심장을 주먹으로 두드리는 동작으로 문구를 재현하는 SNS 화면이 그대로 나온다.

 

영화가 SNS가 모든 일의 해결방안이 된다는 식의 무책임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오히려 SNS 속 안티고네를 응원하는 수많은 메시지는 희망적이기보다는 과장되고, 부정적인 것으로 그려진다. 에테오클레스의 장례식 장면도 의도적으로 정신없고 화려한 SNS 속 그의 모습과 시끄러운 랩 음악과 함께 편집되어 슬픔을 반감한다.

 

또 이방인이라는 이유로 안티고네의 말은 왜곡되고, 사진은 자극적인 이미지로 편집되는 등 사이버 폭력이 행해지기도 한다. SNS 속 수많은 ‘챌린지’와 해시태그를 통해 재생산되는 유명인의 메시지가 수많은 사람을 거쳤을 때 정말 본래의 의미를 유지할 수 있는지 생각하게 하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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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네이케스는 안티고네에게는 둘도 없는 가족이지만, 사회악으로 여겨지는 갱단 구성원이자 마약상이고, 그가 저지른 범죄는 추방 조치가 거론될 만큼 심각한 범죄다.

 

그렇다면 과연 난민이 사회악임을 말하기 위해 영화가 만들어진 것일까? 전혀 그렇지 않다. 도리어 한 사회의 이방인이 사회 구조에 의해 영원히 이방인으로 머무를 수밖에 없음을 이야기하고, 사회를 법정에 세워야 한다고 말한다.

 

에테오클레스의 죽음을 보며 조지 플로이드 사건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휴대전화를 들고 있다가 총을 들고 있는 것으로 오인당하여 경찰의 총격으로 사망한 스티븐 클라크 사건과도 아주 비슷하다. 사실 이들이 겪은 일은 특별한 일이 아니다.

 

단지 유색인종이라는 이유로 과잉 진압하고, 법정에서 높은 형량을 부과하고, 감옥 내에서도 더 많은 처벌 조치를 내린다는 연구 결과는 수없이 많다. 의식적으로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하거나 행동을 하지 않는 사람조차도 무의식적으로 긍정적인 단어보다 부정적인 단어가 흑인과 짝지어져 있을 때 더 빠르게 반응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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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쩡한 집이 있고, 가족이 있고, 학교생활을 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는 안티고네의 가족이 정말 그 사회의 일원이 되었는가를 알 수 없다.

 

복잡한 절차 때문에 영주권만 있을 뿐 시민권을 획득하지 못한 안티고네와 가족들은 언제 추방당해도 이상하지 않은 존재다. 어린 나이에 캐나다로 이주해와서 히잡을 써본 적도 없는 안티고네에게 히잡을 씌운 이미지를 합성하고, 그를 테러, 마약과 연관 짓는다.

 

북미의 많은 도시 중 몬트리올을 배경으로 한다는 것도 이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영어를 쓰는 다른 도시와 달리 프랑스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는 몬트리올은 캐나다 안의 섬 같은 곳이다(실제로 섬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몬트리올이 ‘북미의 유럽’, ‘북미의 파리’라 불리기도 하기에 자연스럽게 유럽 내 난민과의 갈등도 떠올리게 되었다.

 

세계화 시대, 지구촌 시대라는 말이 등장한 지는 오래지만, 최근에는 자국의 이익을 최우선시하는 국가 차원의 이기주의가 더욱 심해지고 있다. 특히 올해는 코로나로 인해 그러한 경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자신보다 약한 이들을 돕는 주인공이 나오는 영화를 보며 나부터 달라지자고 다짐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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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만 들으면 우울할 것 같은 이 영화는 10대 특유의 무모한 용기와 밝은 에너지 덕분에 마냥 슬프지만은 않다. 또 처음에는 무모해 보이기만 했던 안티고네의 행동이 가정을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과 사랑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고 나서는 안티고네의 눈으로 사건을 바라보려 했다.

 

하이몬의 아버지인 크리스티앙은 유명 정치인으로 안티고네와는 대척점에 있는 캐릭터다. 그는 안티고네를 돕기 위해 학교에 나가지도 않고, 법정에서 난동을 피운 것으로 벌금까지 낸 아들을 한심하게 여겨 차고에서 먹고 자도록 한다. 반면 안티고네는 오빠가 마약을 거래하는 갱단의 일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에도 무조건 그를 지지하고 도우려 한다. 심지어는 오빠를 위해 다시 법을 어길 것이라고도 말한다.

 

‘모든 것이 헛수고가 되어버리면 어떻게 할 것이냐’는 크리스티앙의 물음은 지극히 당연하고도 이성적이다. 그러나 안티고네에게는 이 물음이 의미가 없다. 크리스티앙처럼 백인도 아니고, 안정적인 직업을 갖고 있지도 않은 안티고네는 가족을 잃으면 다시 한 번 세계에 이방인으로 남겨지고, 고대 그리스 희곡 속 안티고네가 그랬듯 ‘산 채로 갇히게 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영화는 안티고네의 가족과 할머니가 처음 캐나다에 왔던 때의 모습을 마지막에 다시 보여준다. 모든 일을 겪은 안티고네가 그 당시의 상황을 다른 사람을 보듯 스쳐 지나가는 인상적인 장면이다. 유모차에서 천진하고 불안한 눈길로 낯선 곳을 살피던 아이가 고등학생이 되는 동안, 많은 이방인이 같은 길을 지나쳐왔음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다. 이 영화를 통해 지금도 누군가는 겪고 있을 이 비극이 더 많은 이에게 전해졌으면 한다.

 

 

*

 

안티고네
- Antigone -
  
 
감독 : 소피 데라스페
 

출연

나에마 리치


장르 : 드라마

개봉
2020년 11월 19일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상영시간 : 109분

 

 



[김채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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