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위선과 학대를 가하는 자에게 연민을 [영화]

글 입력 2020.11.08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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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은 소중하고 필요한 것이지만 맹목적인 노력만이 가치의 척도는 아니다. 무엇을 위해 노력하는지 성찰이 먼저 필요하고, 노력이 정당하게 보상받지 못하는 구조에 대한 분노도 필요하다. 가장 위험하고도 어리석은 건 ‘노력해야 성공한다’를 넘어서 ‘성공한 이들은 다 처절하게 노력했기에 그 자리에 오른 것이다’ ‘그만큼 노력하여 성공한 이들이니까 괴팍하고 못되게 굴 만하다’ ‘강한 것은 아름답다.’ 등으로 끊임없이 가지를 치는 스톡홀름 증후군이다. - 도서 <개인주의자 선언> 발췌

 
 
 

영화 <위플래쉬>


 

교습.jpg

 
 
위의 글은 작가가 영화 <위플래쉬>를 본 후, 젊은 관객들의 영화평가를 읽고 내비친 의견이다. 이 영화의 대략적인 줄거리는 광기 어린 음악교수가 소위 ‘완벽한 연주’를 위해 제자를 극한으로 끝없이 몰아붙이는 내용이다. 대충 들어도 숨이 막힐 것 같은 이 영화에 대해 사람들은 어떤 평을 남겼을까? 가장 눈에 띄는 한줄평 ‘깨져서 나오거나 깨고 나오거나’ 교수의 지휘 아래 버티지 못하고 퇴출당하거나 혹은 한계라는 알에서 깨고 나와 최고가 되거나 둘 중 하나라는 것이다.
 
이에 작가는 젊은 관객들이 다소 위험한 생각을 한다고 말한다. ‘나는 저만큼 충분히 노력하고 있는 걸까? 미치지 않고는 미치지 미치지 못한다는데’라는 식의 자기계발 강박증으로 흘러갈 수 있는 사고를 꼬집는다. 필자 역시 이 영화를 그렇게 평가해왔다.
 
그렇다면 영화 위플래쉬의 어느 장면을 보고 스톡홀름 증후군을 떠올리는 것일까?
 
 

 

스톡홀름 증후군


 
스톡홀름 증후군은 범죄심리학용어이다. 심리학용어 사전에 따르면, 이는 자신보다 더 큰 힘을 가진 사람이 자신의 목숨을 위협하는 상황에서 가해자에게 심리적으로 공감하거나 연민과 같은 긍정적인 감정을 느끼는 현상이다. 스톡홀름 증후군은 1973년 8월 23일부터 28일까지 스웨덴 스톡홀름 노를 마름 이야기(Norrmalmstorg)의 크레디트반켄(Kreditbanke)에서 발생한 은행 강도 사건에서 유래했다.
 
당시 강도 두 명이 은행을 습격해, 6일간 세 명의 남자와 한 명의 여자 직원을 인질로 잡고 경찰과 대치했다. 은행 직원들은 강도들과 함께 금고실에서 지내면서 그들과 매우 친숙해졌고, 정서적인 애착 관계를 형성하게 되었다. 이들은 자신들을 인질로 잡은 은행 강도들을 위해 경찰과 직접 협상했으며, 강도들에게서 풀려날 때 그들과 포옹을 하고 키스를 하는 모습도 보였다. 더하여 감옥으로 이송되는 강도들을 향해 충성을 맹세하고 이후에는 이들의 안전과 운명을 걱정하기까지 했다. 이들은 은행 강도들이 항복하기로 한 후 경찰의 사살 기도를 저지하기 위해 인간 방패 임무를 수행하면서 은행 강도들을 보호했고, 법정에서는 이들에게 불리한 증언을 거부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스웨덴의 범죄 심리학자이자 정신의학자인 닐스 베예로트(Nils Bejerot)가 “스톡홀름 증후군(Stockholm syndrome)”이라 부르면서 이러한 명칭이 알려졌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유괴, 납치 상황에서 나타나는 현상뿐 아니라 가정폭력, 데이트폭력에서도 쉽게 나타난다.
 
이 증후군은 생존 위협, 벗어날 수 없다는 두려움, 다른 사회생활에서의 고립, 가해자에 대한 착각이 맞물릴 때 나타나며 영화의 주인공인 ‘앤드루’에게 해당한다. 교내 최고의 밴드의 메인 드럼연주자 자리에서 퇴출당할 수 있다는 생존 위협, 교수 플래처에게서 벗어날 수 없다는 두려움, 친구가 없기에 다른 사회생활을 할 수 없는 상황. 그리고 마지막으로 교수 플래처가 그에게 따스한 관심을 보이고 애정을 가진척하는 연기에 속아있는 것. 이 4가지와 둘의 정신적인 신경전이 큰 테마로서 이야기가 진행되기 때문에 처음에는 관람을 포기했었다. 집중해서 보기에 아주 벅찼고고 지쳐갔다. 그래서 두 번째로 시도했을 때 비로소 엔딩크레딧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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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연코 교수 플래처는 정신 이상적인면이 있다.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자라온 사람을 조련할 줄 알고 이용할 수 있다. 자신에게 해악이오면 갚아주는 성격도 지닌 인물이다. 더하여 그의 제자였던 션을 ‘우울증’으로 자살하게 하였지만 자신은 그런 적이 없다는 둥 눈물을 보이며 이야기하는 장면에서 충분히 정상적이지 않은 면모를 볼 수 있다.
 
그는 같은 방법으로 앤드루에게 인정과 관심을 제공하며 자연스레 자신의 틀에 가둔다. 물론 ‘너를 최고로 만들기 위해. 너의 한계를 뛰어넘기는 게 내 역할’이라는 말로 포장한다. 하지만 정말로 그랬다면 끝까지 앤드루를 이끌어주어야 한국에서 익히 그리는 스승과 제자의 관계로 보이지 않을까? 학대와 가까운 폭언과 폭력을 정당화하며 후반부에서는 앤드루에게 망신을 주려 하는 의도는 이상적인 스승의 모습으로 보긴 어렵다.
 
그렇게 학교에서 교수 플레쳐의 행동을 문제 삼고 앤드루에게 상담을 요청한다. ‘강요한 건 없었나요?’, ‘누가 증언을 하든 그는 알지 못하니 솔직하게 말해주세요.’ 등으로 물음을 이어간다. 하지만 그는 투명하게 말을 이어가지 않는다. 한편으로는 그를 감싸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런 걸 왜 해요?’, ‘강요한 건 없어요’라는 등. 이 대답을 듣고 도대체 왜라는 의문이 들었다. 그에게 연민의 감정을 느끼는 것이 당최 이해되지 않고 답답하기까지 했다. 자신의 뺨을 때리고 폭언을 하지만 ‘자신을 유일하게 인정하고 기회를 준 사람 ‘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작가와 대중들은 이 장면에서 스톡홀름 증후군을 떠올린 게 아닐까. 적어도 필자는 그렇다. 동시에 이런 의문이 든다.
 

 

“나라면 그 위선을 구분할 수 있을까?"

 

 
두렵게도 그러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없다. 동시에 초등학교 저학년 때 다니던 미술학원 선생님이 떠올랐다. 그녀는 생각이 어린 학생들을 휘두를 수 있었고 자신의 편으로 품을 수 있었다. 자신의 남편에게 맞았다며 멍을 보여주기도 했고 어린아이들의 상식선에서 이해할 수 없는 뒷담을 일삼기도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당시 어렸던 우리(필자와 친구들)에게 그녀는 보호해야 할 대상이었다. 그래서 학원의 벽 페인트칠을 비롯한 기타 노동을 하루 온종일 해주기도 했으며 이를 통해 마치 선생님의 정신적 지주가 되는 듯한 착각에 빠져있었다.
 
오랫동안 거짓된 이면을 알지 못했다. 일반적인 선생과 제자의 관계는 아니었다. 그녀에게 동정과 연민의 감정이 있었고 모든 것에 도움을 주려 했다. 아니 사실 그렇게 조종하기 쉽도록 만들어진 것이다. 부모님에게도 주위 사람들에게도 그 선생님을 좋게 포장하기 바빴다. 초등학생이었던 나에게 기대고 있는 이 어른에게 연민을 느꼈다. 그녀가 설치해둔 덫에서 나에게 무제한으로 준다고 느꼈던 신뢰와 슬픔을 착각했다. 마치 그녀의 편이 되지 않으면 그녀가 무너질 것 같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녀가 무너지는 것을 바라지 않도록 만들어졌다. 이 괴팍함을 깨달은 후에는 증오만 남을 뿐이다. 앤드루도 플래처를 보며 이와 같은 감정(연민)을 가졌고 앞으로는 필자와 같은 감정(증오)로 살진 않을지 그려본다.
 
필자가 본 이 영화는 절벽 끝으로 몰아세워 제자의 발전을 위한 선생님과 스승의 ‘성장이 이야기’가 아니다. 감독 데이미언 셔젤의 인터뷰를 빌려와 쓰자면 ‘영화의 마지막 무대에서 앤드루는 승리를 거둔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엉망진창의 비극적인 순간이다. 나도 두 사람은 언제나 서로를 싫어하며 살 거로 생각한다. 서로 미소 짓던 그 순간은 스쳐 지나가는 찰나 같은 순간이었고 앤드루가 입은 충격은 그에게 오롯이 남아있을 거다. 플래처는 언제까지나 본인이 승리했다 생각하면서 살 거고 앤드루는 슬프고 속이 텅 빈 채로 살다가 30대에 약물중독으로 죽을 거다. 난 영화가 끝난 후의 길은 정말 어둡다고 본다.’
 
 
우리는 ‘최고가 되기 위해 한계를 넘어야 한다’라는 교수의 말에서 영화의 메시지를 읽는다. 하지만 필자는 그 이후의 대사가 본 메시지라고 생각한다. ‘선은 지켜야죠’
 

 

 

컬쳐리스트 명함.jpg

 

 



[문소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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