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비건이 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프롤로그 - 아무튼, 비건 [도서]

지구를 위한 가장 효율적인 항생제, 비건
글 입력 2020.11.07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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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내가 작은 서점에 들러 이 작은 책을 선택한 이유를 말해야겠다.

 

책방에 가기 며칠 전 두 편의 영화를 연달아 봤다. 먼저 '동물을 먹는 것에 대하여'라는 공장식 축산업의 폐해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영화를, 두 번째는 원시적 농업방식을 사용해 농장을 꾸린 이들의 이야기가 담긴 '위대한 작은 농장'이라는 영화를 봤다. 책을 선정하는 것에 있어서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 작품들이었다. 한 줄의 감상평을 남기자면 마음속 잔잔한 일상에 큰 돌멩이가 떨어진 듯한 기분이었다고 말해야 할듯싶다.

 

두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는 것은 아니니 이제 각설하고, 영화를 본 후 내가 책을 읽기 전 가지고 있던 마음가짐을 말하자면 '나는 지구상 모든 생명체가, 보다 행복해졌으면 한다. 그리고 개인의 성향이 기피되지 않고 특별시 되지 않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나는 이러한 가치를 위해 앞으로 평생동안 기원하고 바랠 것이다.' 정도이다.

 

비건을 해야겠다는 다짐까진 아니었지만, 더 배워나가야겠다는 그런 생각에 아름다운 책방 속에서 책을 집어냈다. 붉은 노을이 잘 어울리는, 지난 따뜻한 기억을 무척이나 그립게 만드는 그 공간에서 첫 만남을 가졌다. 그리고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읽은 어젯밤, 이전의 마음가짐은 앞으로의 다짐이 되었다.

 

다들 개인만의 원칙과 가치관을 갖고 있으니 의식하지 않더라도 어렴풋이 각자의 삶의 방향성을 따라가고 있을 것이다. 결연한 다짐까지는 아닐지라도 스스로가 걸어가야 할 길의 좌표정도는 직접 찍고 싶어할테니깐 말이다. 윗 문단에서 내 다짐을 그럴 듯하게 길게 써놨지만 사실 이런 생각을 갖고 살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싶다. 위의 다짐은 지나치게 도덕적이고 보편적인 선(善)으로 느껴진다. 다들 읽으면 공감할 만한 문장이다. 우린 가족과 친구, 애인을 사랑하고 집에서 나를 기다리는 반려동물을 사랑하며 아마존의 밀림이 더 이상 파괴되지 않기를 바라니깐. 정상적인 사상을 갖고 있다면 쉽게 부정하기 힘든 문장이다.

 

개인이 다짐을 형성하는데 있어서 목표의식은 큰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한다. 무언가 변화해야한다고 느껴질 만한 것들은 장르를 가리지 않고 우리의 삶에 만연해있으니, 특별한 문제의식을 느끼는 기회는 생각보다 빈번하게, 그리고 직접적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문제를 내 시선에 담는 것은 온전히 다른 문제다. 책의 내용을 아직 언급조차 하지 않았지만, 내용에 대한 감상을 하기 전에 말하고 싶은 기억이 있다.

 

'아무튼 비건'이라는 책을 덮고 가장 먼저 한 행동은 무엇일까? 에필로그엔 비건 음식 레시피를 얻을 수 있는 사이트, 비건과 관련된 영화 정보 등이 있다. 그런데도 나의 호기심이 이끈 행동은 포털 사이트에 '비건'이라는 단어를 검색하는 일이었다. 뜻을 모르는 것도 아니었지만 왜인지 검색해봤다. 처음 나오는 게시물은 무엇인지, 연관검색어는 어떤 것이 뜨는지 궁금했기 때문이었을까, 대중들은 어떤 방식으로 공감하고 있는지 궁금했을 것이다. 첫 번째 검색결과로 등장하는 지식백과에'비건'이란 '영향 불균형을 초래할 수 있는 식이요법'이라 언급되어있다.

 

허무했다. 영화를 보면서,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죄책감과 책임감을 이렇게 한 문장으로 무너뜨릴 수 있는 것인지, 만약 책을 읽기 전 단순한 호기심에 그쳤던 나처럼 어떤 이들이 검색을 했다면 그들의 다짐을 태어날 수조차 없게 차단하지 않았을까.

 

*

 

이제 책을 읽어보겠다. 먼저 앞으로 우리가 이 주제에 대해서 이야기 할 때 염두해 두어야 할 말이 있다.



 

정신이 번쩍 드는 진실을 알게 되면서, 동시에 불편한 진실도 깨닫게 되었다. 사람들은 진실을 알게 되어도 여간해선 변하지 않는다는 진실이 그것이다.

 

p.37

 


말장난 같지만 책의 핵심과도 같은 말. 

 

비건과 관련된 콘텐츠를 보면 공통으로 느끼는 바가 있다. 정보가 새롭지 않다는 점이다. 정확한 수치나 과학용어는 그렇다 치더라도 대략적인 맥락과 상황은 어렴풋이 알고 있던 것이다. 어린 송아지는 어미의 젖을 먹기도 전에 어미와 떨어지게 된다. 어미는 젖을 짜는 기계로 전락하고 평균 수명에 한참 못 미치는 삶을 살고 죽게 된다. 어린 송아지는 암컷이라면 어미의 삶을 따라가고 수컷이라면 움직일 수도 없는 좁은 공간에 갇힌 채 부드러운 송아지 고기 되기 위한 짧은 삶을 살아간다.

 

우린 이런 상황을 알고 있었다. '동물을 먹는다는 것에 대하여'라는 영화에선 좁은 공장식 우리에서 지내고 있던 암컷 양이 수컷 양들에게 강간을 당해 골반과 엉덩이 뼈 쪽이 모두 함몰되는 장면이 나온다. 정말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고 있다고 확언하는 사람들이 있었을까. 아니라고 본다. 의무교육을 받는 학창 시절 동안 닭장 속에 갇힌 수백 마리의 생명체의 모습을 단 한 번도 매체를 통해 보지 않았다고 말한다면 모르겠지만 우리는 알고 있었다. 식탁 위에 자리 잡은 것들은 대부분 어떤 생명체들의 무가치한 희생으로부터 왔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저자는 또한 이런 말을 한다.

 

 

생각해보면 인도적인 도살이란 말 자체가 형용 모순이다.

 

p.27

 

 

이처럼 자기 합리화적인 말이 있을까. 인도적인 도살이라는 문장의 주체가 인간이라고 생각해보면 정말 소름 돋는 표현이다. 도살하는 입장에서의 상대적인 인도주의니 동물에 대한 배려는 찾아볼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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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배출량(탄소 배출)의 최소 18% 이상으로 추정하고 있는데, 비행기, 자동차, 기차, 선박 등 모든 교통수단을 합친 배출량(약 13% 추정) 보다도 많다.

 

p.28

 

 

산림파괴의 약 91%가 가출, 특히 소 때문이다. 우리가 햄버거를 먹지 않으면 일어나지 않을 일이다.

 

p.29

 

 

환경문제나, 사회문제는 수치로 접근했을 때 공감이 쉽게 된다. 거대한 수치를 놓고 보자면 압도당하는 기분이 들기 때문일까, 혹은 조금이나마 남은 퍼센트에 일말의 희망을 걸어보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막연하게나마 환경을 걱정하고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를 걱정하던 사람이라면 위의 수치를 보곤 큰 충격에 빠질 것이다. 생각보다 내가 끼치고 있는 영향력이 적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생각해보면 비건은 최소한이자 최선의 노력이다. 큰 움직임이 없더라도 언제나 어디에서 실천 할 수 있다. 조력자가 필요하지도 않고, 나의 의지만으로 실행이 가능하다. 병들어가는 지구를 살리기 위한 가장 현실적인 항생제가 아닐까.

 

하나의 믿음처럼 많은 사람들은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라는 신념을 갖고 있다. 나 하나로는 변하지 않는다는 것. 그런 사람들 중 몇몇은 비건이나, 사회운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발버둥 치지 말라며 핀잔을 주곤 한다. 글쎄 일단 그런 사람들은 세계가 멸망한다든지, 스포츠 경기의 승패라든지, 그런 가능성을 논할 때는 꽤 격정적으로 보이곤 하는 것 같다.

 

개인의 습관화는 다수의 실천으로 이어지고 곧 문화로 바뀔 가능성이 있다. 막상 내 주변에만 봐도 비건을 실천하는 사람들은 없다. 누구로부터 영향을 받지 못해 시작해보지 못한다는 것은 너무 슬프지 않는가. 우리들의 다짐은 큰 움직임을 만들어 낼 수 있다. 그리고 기왕이면 내가 먼저해본 후 주변 지인들에게 추천을 해주고 싶다. 생각만 해도 뿌듯한 일상이 될 것만 같다.


 

비건에게만 모든 부담을 지우고 완벽함을 요구하는 방향으로 가서는 진정한 변화를 이뤄낼 수 없다. ··· 완벽한 비건 몇 명을 만들려고 노력하는 것보단, 다수의 사람들을 더 '비건적'으로 만드는 것이 사회전체로 봤을 때 훨씬 효과적이라고···

 

p.53

 

 

독자로서 느끼기에 오늘날의 사회가 비건들에게 부담을 지고 있게 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비건에 대해 무지한 편이지 그들에게 영웅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완벽한 비건 몇 명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아 물론 그들이 선한영향력을 끼친다면 다른 이야기겠지만.

 

다수의 사람들을 '비건적'으로 만드는 것은 중요하다. 오랜 시간 육류가 문화와 전통의 기본이 되었던 것에서 벗어나 보다 건강한 삶을 유지해야한다. 전통은 혁신의 미래다. 비건적인 사람들이 증가하면서 하나의 자연스럽은 문화로 편입되어야 한다. 아직 '비건'은 우리나라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처럼 느껴지지만 이제 시작이다. 유럽과 미국의 비건 비율이 늘어나고 있고 우리나라도 젊은 층에서부터 조금씩 확산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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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물 단백질과 콩 단백질은 서로 부족한 아미노산인 라이신(lysine)과 메티오닌(methionine)을 상호보완해준다.

 

p.117

 

 

우유와 동물성 단백질을 적게 먹는 나라일 수록 주민들이 더 건강한 뼈를 가지고 있다. 이를 일컬어 세계보건기구는 '칼슘패러독스'라고 칭한 바 있다.

 

p.129

 

 

비건을 '영양 불균형을 초래하는 식이요법'이라고 정의할 순 없다. 곡류, 콩류, 과일류, 채소류 등을 골고루 섭취하면 영양 불균형은 일어나지 않는다. 스포츠 종목을 가리지 않고 비건을 실천하는 선수들도 많다. 축구만 해도 크리스 스몰링, 사무엘 움티티 등 적지 않은 선수들이 비건 식단을 먹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우유 섭취량이 많은 북유럽, 미국, 독일이 대퇴부 경부 골절 비율이 높은 것만 봐도 비건을 부정할 뚜렷한 이유가 생각나지 않는다.

 

책을 읽다 보면 가끔 삽화가 등장한다. 그림은 사진과는 다르게 사실적인 모습보다는 과장과 비유를 통해 의미를 전달한다고 생각했다. 어느 삽화 중 믹서기 안에 들어가 있는 병아리의 모습이 있었다. 과장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소름 돋는 장면이라 끔찍하다는 생각밖에 할 수 없었다. 과연 다음 페이지에 어떤 글이 있길래 이런 삽화가 등장하는 것일까. 허무하게 삶을 빼앗기는 상황을 표현한 건가 생각했다.

 

닭은 생체기계였다. 수탉은 아무런 쓸모가 없다. 수컷으로 태어난 병아리는 글라인더로 갈아버리던가 질식사를 시킨다. 공장식 축산업의 진실은 상상을 벗어났고 헛구역질이 나올 것만 같았다. 글을 읽으면서 제일 많이들었던 생각은 '이렇게까지 살아야 하나?' 였다. 인간의 창의력은 발명에만 머물지 않았다. 발전된 문명을 이룩하고 영위하겠다는 핑계로 우린 너무 많은 피를 희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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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비건이 아니다. 아직은.

 

서른 살이 되기 전 90% 이상의 비건을 하자는 다짐을 했지만 정말 쉽지 않은 길이 될 것이란 건 자명하다. 두렵기도 하다. 너무 힘든 길인 것처럼 느껴진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가 아닌 것이 대한민국 사회에서 음식은 사회적 활동이다. 나의 식탁에서 일어나는 일이 오롯이 나만의 것이 아닐 상황이 빈번하게 나타난다. 가정에서도 회사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내가 비건을 해야겠다는 꿈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주변 사람들이 안다면 웃어넘길 것만 같다. 평소의 난 전형적으로 육식과 유제품을 사랑하는 사람 중 한 명이었고 현재도 눈에 띄는 변화를 실천하고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급격한 변화로 개선되거나 하루아침에 이상향으로 가는 건 내 역량과 정신력이 미달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조금씩 변화하고자 한다. 다음 주에 있을 친구와의 약속은 비건 식당으로 잡고, 습관처럼 테이크 아웃하던 커피는 텀블러가 없으면 마시질 않는 습관으로 바뀌고 있다.

 

내가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고 싶은 건 '비건을 해라'가 아니다.(물론 하면 좋겠지만) 조금 더 관심을 갖고, 당신들의 선택지에 비건이라는 항목이 들어가있기를 바라는 것 뿐이다. 가족 모임으로 외식을 하던, 서점에서 책을 고르던, 혹은 마트에서 장을 볼 때도 건강한 생태계를 위한 고민을 위해 선택지를 추가해 달라는 권유를 하고 싶다.

 

무시하고 잊힌 채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삶을 살아가는 것보단, 어딘가 가깝고도 먼 어느 곳에선 누군가 우리 모두를 위해 조금씩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가는 게 낫지 않나 싶다. 우리 모두란, 사람만을 뜻하는 것이 아닌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를 위함이다.

 

아 식물의 고통은 소중하지 않냐는 글을 어느 기사 댓글에서 본 적이 있다. 글쎄 그렇게까지 식물의 고통을 진심으로 염려해서 하는 말인지는 모르겠다. 적어도 인간은 현재 상태론 식물이 없으면 생존할 수 없다. 또한 고통이란 통점에서 자극을 받아 중추신경계로 넘어와 뇌에서 고통을 인지하는 과정이다. 식물에 뇌가 있는가? 적어도 현재의 과학 기술론 식물이 고통이 느낀다는 생물학적 근거를 댈 수가 없다. 더 이상 다른 사람의 견해를 무턱대고 비난하지는 말자. 상대방이 강요하거나 협박을 하지 않는 이상.

 

이렇게 책 한 권을 읽었다. 생각은 다짐이 되었고, 시선은 조금 더 넓어진 듯 하다. 책 한 권의 영향력이라고 하기엔 생각보다 크다. 그전에 본 영화들, 그동안 살아오면서 축적된 경험들이 이 책을 통해 융합되고 반응이 일어나는 기분이다. 비건에 대한 이런 긍정적인 생각은 특별한 사명감이나 목표 때문은 아니다. 그저 묵혀온 생각 덩어리들이 쌓이고 쌓여 보다 답답해졌기 때문이다.

 

아무튼 비건, 신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건강한 우리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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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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