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글 속의 세상, 세상 속의 글

마음이 지칠 때마다 문학은 훌륭한 도피처가 되어주었다
글 입력 2020.10.31 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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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은 항상 다른 누군가의 멋진 글 덕분이었다. 마음이 지치고 슬픈 일이 있으면 좋아하는 책을 읽었고, 마음을 두드리는 문장을 만나면 나도 그런 문장을 쓰고 싶어서 펜을 들고 필사를 하곤 했다.

 

마음이 지칠 때마다 문학은 훌륭한 도피처가 되어주었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그랬다. 처음으로 읽은 소설이 무엇인지, 몇 살 때 읽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항상 방 책꽂이를 가득 채웠던 알록달록한 그림책들이 생각난다. 엄마가 새 책을 사주면 새 책 냄새를 맡으려고 책 사이에 얼굴을 묻고 킁킁댔던 것도.

 

나름 어렸을 때부터 애서가였던 나는 용이나 거인, 공주와 왕자가 나오는 판타지 소설을 가장 좋아했다. 오합지졸이었던 주인공들이 힘을 합쳐 적을 무찌르는 이야기나, 강력한 저주에 걸려 헤어져야만 했던 연인이 산 넘고 물 건너서 다시 만나 오래오래 행복하게 사는 이야기를 좋아했다.

 

그때는 나의 감상을 표현하기엔 너무 어려서 ‘엄청 재미있다’ 정도로만 생각했지만, 지금 돌이켜 보면 ‘이 세상 어딘가에는 정말 이렇게 아름다운 세상과 사람들이 있을 거야!’라고 믿으며 즐거워했던 것도 같다. 아주 친한 친구가 멀리 이사를 하게 되었을 때도 책 속의 주인공들처럼 언젠가 꼭 다시 만나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멋진 책을 읽을 때마다 막연하게 나도 소설을 쓰고 싶다고 생각했다. 읽는 것도 이렇게 재밌는데 쓰는 건 얼마나 재밌을까? 생각했던 것 같다. 초등학생 때는 컴퓨터를 배우고 키보드를 두드리는 일에 푹 빠져서 꽤 긴 분량의 소설을 쓰기도 했다. 강낭콩 가족이 은행 강도를 잡는 이야기, 농장에 사는 토끼가 자기가 사는 곳은 사육장이라는 것을 깨닫고 도망치는 이야기… 모험담을 좋아했으니 당연히 나도 모험담을 썼다.

 

당연히 내가 읽은 책들보다는 재미가 없었지만 (난 초등학생이었으니까) 언젠간 아주 재미있는 소설을 쓸 수 있을 거라 생각하며 글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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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아름답지만 비현실적인 모험담보다는 내가 발 딛고 있는 이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야기들이 마음에 콱 박히기 시작했다. 두려움의 대상이 허구에서 현실적인 것으로 바뀌고, 귀신이나 악당보다는 당장 내일 해야 하는 것들이 두려워지기 시작한 시기. 미래가 걱정되고,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되묻게 되는 시기부터 나는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등장하는 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고민이 많은 고등학생, 부모님과 다투고 집을 나온 대학생, 하루하루 쳇바퀴 돌 듯 단조로운 일상을 반복하는 직장인… 나와 같은, 또는 내가 될 수도 있는 얼굴들을 상상하며 그들에게 공감하고, 웃고, 눈물을 흘리면서 힘을 얻었다.

 

아직도 무시무시한 악당을 물리치는 이야기가 좋지만 이제는 부조리한 세상에 좌절하지 않고 자신의 몫을 묵묵히 해내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더 좋아졌다. 정말 내 주변에 있는 사람을 보는 것처럼 입체적인 인물을 만들어 내는 작가들이 부럽고, 멋져 보였다. 그 부러움이 글을 쓰게 하는 원동력이었다.

 

물론 무작정 쓰기 시작한다고 성공하는 건 아니었다. 한 학기 동안 글쓰기 강의를 들으며 처음으로 제대로 형식을 갖춘 단편소설 완성에 도전한 적이 있다. 최종 마감일까지 수정에 수정을 거듭했지만 결과물은 만족스럽지 않았다.

 

하지만 틈틈이 시간을 쪼개 소설을 쓰고, 함께 글쓰기를 배우는 사람들의 소설을 읽고, 감상을 나누며 소설 속 인물을 내세워 나의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글쓰기라는 ‘실천’, 내가 믿고 사랑하는 것들을 글로 풀어놓는 것만으로도 힘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어렸을 때처럼 소설 속의 아름다운 세상이 어딘가에 존재할 거라고 믿지는 않는다. 하지만 글쓰기가 가진 힘은 믿는다.

 

 

[도혜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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