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제망매가로 보는 환상계의 힘 [문학]

글 입력 2020.10.28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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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에 발붙여 살아가고 있으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현실은 녹록치 않다. 원하는 것을 얻기도 쉽지 않고 가지고 있던 것을 잃기도 한다. 부당한 일을 겪지만 해결할 수 없기도 하고 갑자기 찾아오는 사건들은 절망과 슬픔을 가져다주기도 한다.

 

안타까운 것은 그런 상황에서 개인이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으며 상황을 수용하고 다음으로 나아는 것에 국한된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이럴 때 자신의 순간적인 마음을 토로할 수 있는 문학은 자기 치유 방식으로 많이 사용되었다. 많은 작가들이 유년기를 다루는 자전적인 소설을 창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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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한국 고전 시가 작품들은 작품을 감상할 때 작가를 화자로 가정한다. 작품과 작품 외적 정보, 작가와 분리되지 않고 감상하는 것이 작품을 온전히 이해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각 작품은 정보전달, 훈계, 선전 등 다양한 목적을 지니고 있지만 장르적 전통으로 볼 때 작가 자신의 목소리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기도 하다. 노래가 창작되는 것이 일반적으로 부정적인 상황에 처해 있을 때라는 점을 생각하면, 고전 시가에는 작가의 고통이 담겨 있는 듯하다.

 

그 중에서 향가 <제망매가>는 누이와 사별한 슬픔을 다루고 있다. 죽은 누이와 화자가 재회할 장소인 미타찰은 불교적 이상향을 뜻한다. 구본기(1995)는 제망매가의 구조를 다음과 같이 분석하였다.

 

 

a

生死路는

예 있으매 젛이여서

 

b

‘나는 간다’는 말도

못다 이르고 가나닛고

A (a-b) 상황의 영탄적 제시

c

어느 가을 이른 바람에

이에 저에 떨어질 잎같이

B (c-d) 무상감의 이미지화

d

한 가지에 나고

가는 곳 모르온저.

 

e

아으, 彌陀刹에 만날 나는

道 닦아 기다리련다.

C (e) 주관적 의지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는 이 작품은 상황의 제시와 극복의 의지는 직설로, 시적 정서는 비유로 표현하고 있다. 즉 B의 정서를 바탕으로 이 노래를 해석하며 A와 C의 의미를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같은 글에서 구본기는 A와 C를 연결하는 핵심어로 길의 이미지를 제시하고 있다. ‘길’의 이미지를 통해 ‘떠나다’의 이미지를 형상화하고 있으며 사별을 이미지가 효과적으로 전달되는 것이다. 특히 사별이 누이와 자신의 시간이 더 이상 같이 흘러가지 않는 일이라는 것을 공간적으로 표현했다는 점이 두드러진다.

 

生死路는 누이가 저어하거나 머뭇거리는 길로, 이미 결정된 삶과 죽음의 경계이다. 두 사람을 갈라놓은 길(路)은 화자가 나아갈 길(道)로 이어지며 누이의 죽음을 애도한다. 예고 없던 헤어짐에 슬퍼하는 화자는 C에서 ‘아으, 彌陀刹에 만날 나는 道 닦아 기다리련다.’라는 말로 시를 마무리 짓는다. 미타찰은 아미타불이 머무는 극락세계로, 서방정토를 의미한다. 불교에서 깨달음을 얻어 윤회를 벗어나면 이를 수 있는 곳이 극락이다.

 

따라서 화자가 ‘도(道) 닦아 기다리겠다.’라는 것은 윤회를 반복하다가 서방정토에 이를 누이를 위해 준비하고 있겠다는 다짐이다. 불교에서 여성은 바로 해탈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므로 두 사람이 미타찰에서 바로 만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 점이 ‘가는 곳 모르온저’에서 표현되어 있다. 하지만 화자는 언젠가 두 사람이 극락왕생하게 되어 만날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대신 누이와 만날 수 있도록 자신의 길도 정진하고, 누이를 위한 기도를 이어가며 기다릴 것이다.

 

이 작품에서 지금의 슬픔을 미래의 만남을 가정하여 이겨내는 것은 상당히 강력한 애도다. 그리운 이를 다시 한 번 보고자하는 마음이 마음에서 머문 것이 아니다. 누이와 자신의 상황을 이해하고 재회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고민으로 나아갔다. 불교적 세계관에서 가장 확실한 재회는 두 사람이 극락왕생하여 서방정토에서 만나는 것이다. 윤회 과정에서는 만나더라도 서로를 알아본다는 확신이 없다. 그래서 두 사람이 극락왕생하기 위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하며 기다리겠다는 염원은 길(道)을 닦는 행위로 이어진다.

 

그리고 불교적 본원에 이르는 것은 사후세계가 아니라 현실에서도 가능한 것이다. 불교의 극락은 현실과 시공간적 거리를 둔 공간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해탈에 이르기만 한다면 지금 이 순간에도 자신은 미타찰에 이를 수 있다. ‘기다림’이 발생하는 이유이다. 이때 화자의 길(道)을 닦는 행위는 자신의 길뿐만 아니라 바로 해탈할 수 없는 누이의 길도 포함한다. 화자는 기다림과 길(道)을 닦는 행위로 누이와의 재회를 예비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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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망매가에서 미타찰은 적극적인 노력을 통해 실현할 수 있는 재회의 공간이자 재회 자체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죽음은 인간의 노력으로 해결할 수 없지만, 종교적 질서 아래에서 죽음 다음의 만남을 기약할 수 있다. 미타찰에서의 재회라는 비현실의 설정이 물리적 법칙과 일치하지는 않지만 화자의 노력과 다짐의 근거가 되어 사별의 슬픔을 이겨내는 힘이 되었다.

 

자신이 살고 있는 현실에서 문제를 해결하거나 욕구를 충족하는 것이 불가능할 때 등장하는 것이 비현실적 요소다보니, 비현실, 환상계의 설정은 회피의 수단으로 이해되는 경우가 많았다. 마치 행복한 가상 세계를 대체재로 여기는 것과 같이 이해되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등장하는 비현실은 작가의 극복 의지가 담겨 있다고 볼 여지가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비현실의 설정이 단순한 회피나 대안이 아니라 적극적인 자기 치유의 과정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비슷한 결의 이야기를 신영복 교수의 <강의>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동양 고전을 다루는 이 책의 2장 오래된 시와 언에서 작가는 ‘현실에 매달리지 않고 현실의 건너편을 보는 거시적 시각과 대담함이 곧 낭만주의의 일면이 아닐까’하는 의견을 제시한다. 낭만주의 문화가 남방 세력이 중국을 지배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는 것이 그의 분석이다.

 

환상계는 도피처일 수도 있지만, 적극적인 극복 의지를 드러내는 영역이기도 하다. 긴 세월을 지나더라도 만날 수밖에 없는 그곳에서 기다리겠다는 의지가 미타찰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삶의 영역을 확장시킨다면 지금 생의 헤어짐이 영원한 에어짐은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다. 삶과 죽음이라는 구분을 넘어서는 힘이 환상(fantasy)의 역할이다.

 



네임 태그 이승희.jpg

 

 

참고문헌

구본기, <祭亡妹歌>의 詩的) 構成과 意味 - 화자와 청자 사이의 인식론적 거리, 『한국고전시가작품론』, 집문당, 1995, 123-132쪽.


 

[이승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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