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맛'의 의미와 코드 이해

글 입력 2020.10.22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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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맛’은 더 이상 ‘병신같은 맛’이 아니다.



오늘날, 더 이상 만화의 완성도나 퀄리티가 작품의 인기와 비례하지 않는다. 그림판으로 그린듯한 허접한 그림-대표적으로는 엉덩국, 또는 네이버 웹툰의 오빠왔다, 공감툰 등-이더라도 재미만 있다면 독자들은 그에 열광한다.

 

 

엉덩국_만화공장.jpg
투믹스 웹툰, <엉덩국 만화공장>

 

 

이러한 문화의 정점에는 ‘병맛’이 있다. ‘병맛’은 등장한지는 몇 년이 지났고, 이제는 흔하게 대중화되어 쓰인다. 단어가 준말로 유행하면서는 본래적 뜻이 순화, 혹은 잊히는 경우가 제법 있다. (본래적 뜻이 욕을 포함하는 경우는 더욱 그렇다.) ‘병맛’도 이제 ‘병신같은 맛’이라고 읽히기 보다는 ‘병맛’ 그 자체로 ‘예측할 수 없으며 일반적이지 않고, 퀼리티는 낮고 다소 마니악한 면을 보이나 이를 이해하는 독자들에게는 (다소 어이없는) 웃음을 준다.’는 뜻으로 읽힌다.

 

‘병신’이라는 비속어는 대중들의 마음속에서 지워졌으며, 그렇기에 ‘병맛’이 널리 쓰이는 하나의 키워드로 떠오를 수 있었다. 비슷한 용어로 ‘존맛’이 있다. ‘존맛’의 뜻이 ‘존나(좆나) 맛있다.’라는 것은 대다수의 누구나가 알고 있지만, 더 이상 ‘존맛’에서는 비속어인 ‘존나’의 느낌은 들어가 있지 않다. 대신 ‘매우 맛있다.’의 느낌만을 담고 있다. 그렇기에 이를 더 순화한 'JMT'등의 말이 널리 쓰이는 것이다.


어떤 문화, 혹은 하나의 코드가 널리 유행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내포하는 언어의 존재와, 이것이 대중화 되어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대중화를 위해서는, 비속어 등의 ‘너무 강한’ 워딩은 순화되거나 약해져야한다. ‘마니악’함이 무뎌져야한다는 말이다. 옛날에는 대중화를 위해서는 TV나 신문 등, 대형매체의 도움을 빌리는 것이 필수적이었다. 그럴 때는 더욱 엄격한 검열을 받고, 적절한 단어인지를 더 고민해야 했고, 잘려나가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1인당 1스마트폰 시대와 함께 인터넷이 널리 퍼진 요즘, ‘유행’이나 ‘대중화’를 위해서는 인터넷 밈 자체만으로 충분하다.

 

그렇기에 예전보다는 조금 더 ‘마니악’한 단어들 역시 살아남아 유통될 수 있는 것이다. ‘병맛’은 그들의 코드를 충분히 잘 담고 있으며, ‘병신같은 맛’이 아닌 ‘병맛’으로 순화되어, 인터넷을 통해 대중화 된 단어다.

 

 

 

병맛만화의 코드를 이해하는 자만이 웃을 수 있다.



병맛만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고유의 코드가 필요하다. 그것은 대개, 인터넷의 밈이나 일본의 서브컬쳐로 대표된다. ‘병맛만화’의 주 이용자층이 커뮤니티 유저들인 것과 관련이 있다.그들은 (적게는 10대 후반에서) 주로 2,30대로 젊고, 신문물에 익숙하다. ‘오타쿠’적인 것에 심취해있지는 않더라도 그것들을 유머로 소비하고 이해하는 데까지는 무리 없이 능통하다.

 

오카타 토시오는 저서 『오타쿠 - 애니메이션 게임 영화에 미친놈들』에서 오타쿠의 특징으로 고성능적 레퍼런스를 설명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런 일을 모두 순간적으로 이해하고 '웃기'위해서는 상당한 오타쿠적인 사전 지식과 교양이 필요하다.’ 커뮤니티의 유저들은 인터넷의 밈이나 일본의 서브컬쳐에 대한 ‘사전지식과 교양’이 있기 때문에, 병맛만화의 작가가 던진 패러디를 이해하고 동질감을 형성하며 웃을 수 있다. 비록 서브컬쳐를 보지 않더라도, 인터넷을 많이 한다면 밈화 된 것만은 알 수 있다.

 

퀄리티가 낮은 그림체와 이러한 코드가 합쳐진다면, 결과적으로 그것이 일정 정도 이상의 완성도를 보장하더라도 우리는 무리없이 그것을 ‘병맛만화’로 받아들인다. 대표적인 예로 ‘부기영화’가 있다.


현재 카카오 페이지에서 연재하고 있는 영화 리뷰 웹툰인 부기영화는, 작품 소개부터가 ‘약쟁이들의 병맛 리뷰!’이다. 한 편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이것이 ‘병맛’임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고, 동시에 많은 내용을 담고 있는 ‘뛰어난 퀄리티’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소수의 오타쿠 -여기서는 커뮤니티 이용자- 들이나 이해할 수 있을만한 ‘드립’을 과감하게 던지며, 이를 영화의 내용과 자연스럽게 연결시킨다.

 

 

부기영화_테이큰.jpg
카카오페이지 웹툰, <부기영화>

 

 

‘테이큰3’을 리뷰하며 ‘친구들끼리 모여서 아빠 자랑을 해본 적이 있나요?’ 라는 컷에서는 기철이가 양갈래 머리모양을 한 채 ‘치요’라는 이름표를 달고 ‘이게 아부지도 없는 게 까불어!’라는 대사를 친다. 옆에는 고양이 인형이 ‘토마토를 먹거라’라며 작게 그려져 있다. 이 한 컷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배경지식이 필요하다. ‘검정고무신’의 등장인물 ‘기철’이가 반 친구인 희선이에게 ‘이게 아부지도 없는 게 까불어’라는 대사를 쳤던 에피소드의 전반을 이해해야하며, ‘아즈망가 대왕’에서 ‘치요’의 캐릭터와 친구인 ‘사카키’가 고양이 인형을 ‘치요 아버지’라고 멋대로 상상했음을 알아야한다. 빨간색을 싫어하는 치요 아버지가 작중에서 치요에게 ‘좋아하든 싫어하든 토마토도 먹어야한다.’고 건네는 대사까지 알아야 완벽하게 이해가 가능하다. 만약, 이 중 하나도 모른다면 웃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인터넷을 하는 커뮤니티 이용자라면 누구나 ‘기철이의 패드립’을 알았을 것이고, 만화를 조금이라도 봤다면 ‘아즈망가 대왕의 치요’를 알았을 것이다. 부기영화는 이 한 편에서만 다양한 것들을 패러디한다. ‘강철의 연금술사’에서 나온 (에드워드... 오빠...로 유명한) 나나의 ‘아빠 오늘은 뭐할거야?’, 드래곤볼에서 ‘크흑... 베지타... 꼭 춤을 추거라...’는 대사, 박진영의 ‘어머님이 누구니’, 홍진호의 ‘2’, 이말년의 시무룩 등 거의 컷마다 패러디 요소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알아야만 이해가 가능하고, 이해가 가능해야 웃을 수 있고, 웃을 수 있어야 이것을 좋아하고 열광하며, 인기를 가져다 줄 수 있다. 어느정도 마이너한 코드라면, 그것을 언급하는 것만으로 독자는 열광한다.

 

스토리가 있으며, 퀄리티가 있더라도 이렇게 이해 가능해야 웃을 수 있는 코드를 적절히 배치한다면, 그것은 이제 ‘병맛만화’라고 불릴 수 있다. ‘웃음코드’는 시대에 따라 자연히 달라질 수밖에 없고 (더이상 우리는 최불암 개그를 보며 웃지 않는다.), 병맛만화는 자연히 신세대의 전유물이 되었다.

 

병맛만화의 등장도 꽤나 오래된 지금, 병맛만화가 독자들과 함께 늙어갈 것인지(더 이상 신세대의 것이라고 볼 수 없게 된다.), 거듭된 변화로 계속해서 신세대를 겨냥하며 어리게 남을 것인지(나이가 들어가는 기존의 독자들은 따라갈 수 없게 될 것이다.), 한철의 유행으로 반짝 끝나고 사라질 것인지, 앞으로의 행보가 궁금해진다.

 

 

[안우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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