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한 줄 일기 속 '나'를 보며 [사람]

제발, 날 좋아하지마세요
글 입력 2020.10.18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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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2일부터 전국 거리 두기 단계가 1단계로 조정되었다. 1단계로 조정되었어도 나는 여전히 집안에만 머문다. 1단계가 되었다 해서 그렇게 좋아하던 카페에 출석체크한다거나 그러지 않는다. 그럼에도 많은 게 변한 느낌이다. 예전처럼 바깥바람을 자주 쐬지 못해도, 사람을 많이 만나지 못해도 나는 변했다. 늘 무언가로 꽉 차 있던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 것이 바로 그 증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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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나는 한 일기를 여러 번 읽고 있다. 다름 아닌 13년도부터 내가 썼던 일기들을 한곳에 정리한 일기장이다.

 

13년도부터 써왔다 하더라도 일기가 많거나 하진 않다. 꾸준히 써왔던 게 아니라 그때 느꼈던 감정을 한두 줄 짧게 쓴 거기 때문이다. 또한 이사를 자주 다녔던 터라 예전에 써둔 일기장은 이미 없고 개인 카페나 블로그에 짤막하게 쓴 걸 다시 모으고 있는 중이라 양이 적다. 카페나 블로그, 책 끄트머리에 적어둔 글을 모으고 손으로 직접 일기장에 써 내려가며, 오늘날에 도달하기까지 일주일조차 걸리지 않을 정도였다. 그리고 다시 첫 페이지부터 정리한 글을 읽어보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사람과 사랑을 어려워한다고. 13년부터 꾸준히 글에 언급된 것은 다름 아니라 사람과 사랑에 대한 것이었음에도, 나는 여전히 그것이 어렵다.

 

17살 때의 나는 '사랑을 하면 죄짓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 그리고 20살의 나는 '누군가 날 좋아하면 죄책감이 들고, 내가 누군가를 좋아하면 혐오감이 든다'라고 했고, 22살의 나는 '제발, 날 좋아하지 말아 주세요'라고 했다. 자존감이 낮아서, 당신이 날 좋아한다고? 왜? 같은 생각으로 한 말이 아니다. 그 생각은 어느 날 문득, 갑자기 찾아온 것이다. 갑자기 찾아왔기에 고민해보지도 않고 곧바로 수용하게 된 그런 것이다. 내가 쓴 글을 읽는데도 마치 타인의 일기장을 훔쳐보는 느낌이 들었다. 글 속에 있는 '나'가 낯설게만 느껴졌다.

 

내가 쓴 것을 이해할 때까지 여러 번 반복하며 일기장을 읽던 중, 알게 된 노래가 있다. 바로 '이적 - 당연한 것들'이다.

 

 


 

 

거리를 걷고, 친구를 만나고, 손을 잡고, 껴안아주던 모든 것들을 한순간에 잃어버린 오늘날. 소중한 것은 잃고 나서야 깨닫게 된다고 다시금 알려주는 노래. 이 노래를 듣자 눈물이 나왔다. 그래서 새벽 내내 울다가 다음날 아침 퉁퉁 부은 얼굴로 일어났다.

 

 

우리에게 너무 당연한 것들

처음엔 쉽게 여겼죠

금세 또 지나갈 거라고

 

 

어쩌면 나는, 내 옆에 있는 이 사람이 언제까지나 내 곁에 있을 거라고 자만했던 건지도 모른다. 옆에 있는 게 너무 당연하다는 생각 때문에 말이다. 그렇기에 그 이상으로 누군가 내게 다가오는 걸 피해왔는지도 모른다. 나는 욕심이 많기에 모든 사람을 잃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러나 사람이 떠난 가는 걸 막을 순 없었고, 그렇기에 제발 날 좋아하지 말았으면 하고, 배부른 소리를 한 것이다. 또한, 다가오는 인연도 금세 지나갈 거라며 옆으로 비켜섰던 이유도 아마 그런 이유에서 그런 게 아닐까 싶다.

 

노래를 들으며 침대에 웅크려 울고 일어난 아침, 나는 마음이 개운하다는 걸 느꼈다. 그 느낌은 마치, 지나간 사람들을 마음껏 그리워하기로 마음먹었던 예전과 같았다. 딱히 뚜렷한 대상도 없이 늘 그리움에 허덕이는 스스로가 이상하다고 생각해 억지로 참고 웃어왔던 때가 있었다. 그리고 그건 19살 어느 날, 스스로를 인정하면서 사라졌다. 마음 놓고 그리워하기로 하고, 내 추억의 조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잊지 않기 위해, 마음 놓고 울기로 다짐한 19살의 어느 날. 나는 개운함을 느꼈다.

 

나는 아직 어리숙하다. 배워야 할 게 많으며 깨달아야 할 게 많다. 그것은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하지만 조급한 마음은 들지 않는다. 오히려 이렇게 오래 붙들었던 것을 깨닫고 인정한 날이 되면, 난 몇 배는 더 성장한 느낌이 들기에, 그러니 늦어도 괜찮단 생각이 든다. 한 줄 일기 속 '나'를 마주하고 알아가며, 오늘도 성장하고 있는 것. 그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당신은 어떤지 묻고 싶다. 당신도 나처럼 인정하지 못하는 자신의 어느 부분이 있지 않은가? 있다고 했을 때 조급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 또한 13년부터 지속적으로 궁금해했던 '나'를 알게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당신도 괜찮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

 

 

[김승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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