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변화하고 성장하는 덕질 [사람]

글 입력 2020.10.21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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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덕질을 ‘한 분야에 몰입하는 활동, 혹은 팬 활동’으로 생각한다.

 

예전에 이 ‘덕질’과 관련한 넋두리를 쓴 적이 있었다. 휴학을 하고 인턴 출근을 하는 시기에 든 생각이었다. 그렇게 써 내려간 글의 내용은, 확실했었던 과거 나의 취향에 관련한 이야기였다. 항상 좋아하는 대상이 있었고, 그 대상을 ‘덕질’하느라 매우 바쁜 시기를 보냈었다.

 

최근에 이것을 복기하게 된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새롭게 좋아하게 된 아티스트가 생겨서이다. 하지만 예전만큼 불타는 열정으로 덕질을 하기보다는 대상을 관조하게 되었고, 이 아티스트를 찾아보면서 그들을 훨씬 더 열정적으로 응원하는 사람들을 보고, 나의 과거를 떠올렸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예전의 사색을 돌아 보고 싶어졌다.

 

그 사색을 읽고, 지금의 나에게 취향과 취미, 그중 특히 하나에 매몰되는 ‘덕질’은 무엇인지 써내려가보려 한다. 어디서부터 그 열정이 식게 되었는가? 그럼 과연 순수한 덕질은 절대적으로 긍정적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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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질의 중요성에 대한 유명한 트윗

 

 

난 취향이 확실했다.

 

페스티벌과 이디엠을 좋아하고, 이비자와 투모로우 랜드를 가는 것이 내 인생 목표였다.

좋아하는 아이돌은 빅뱅으로 유일했다. 그들의 미친 듯이 웃긴 감성이 좋았고, 그중에서 제일 엉뚱한 멤버인 탑을 좋아했다.

더 웃긴 무한도전이 제일 좋아하는 예능이었고.

아 거기서 더 개그 소재가 다분한 은혼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이었고,

제일 좋아하는 드라마는 셜록,

웹툰 중에서는 내가 너무 아끼는 판타지 장르인 신의 탑이 원픽이었다.

근데, 이젠 다 과거에 묻혀버렸다.

 

덕질로 인생을 향유하였는데, 이제 그렇다 할 나의 구심점이 없다.

내 취향이 올드한 걸까?

뒷북이라도 꼭 미친 듯이 좋아하는 것이 있었는데.

그때에 정신 못 차리면서 은혼 피규어를 찾아다니고 빅뱅 스탠딩석 티켓팅에 성공하고,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에 삼 일 내내 머물거나 울면서 셜록 시즌 3와 4를 기다렸던 열정이 부럽다.

 

출근할 때에 무의식적으로 든 생각.

아,

빅뱅 노래 듣고 싶다.

빅뱅 노래 참 좋았는데.

라이브 방송도 다 챙겨 봤는데.

새해도 같이 맞이하고.

탑 빙구춤도 똑같이 다 외우고,

랩 부분은 다 따라 부를 수 있었는데.

전시회, 영화도 봤는데.

직캠도 다 남아있고 나 진짜 좋아했었는데.

너희들이 LAST DANCE 부를 때 불안하긴 했었다.

탑 일이 터지고 나서 앨범을 다 판지 오래된 이 시점에서 급작스럽게 생각나 서러워지는군.

 

- 본인 노트

 

 

지극히 개인적이기도 한 이 노트는 내 덕질의 역사가 꽤 깊었던 것을 보여준다. 어쩌다 보니 좋아했던 아이돌을 추억하는 결론을 맺게 되긴 했지만, 내가 애정 했었던 다양한 장르의 것들을 돌아 보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저 글을 쓴 당시와 마찬가지로, 지금도 저 때의 내가 부럽다.

 

그럼 지금은 내가 덕질을 제대로 향유할 수 없게 된 것일까? 윗글에서는 ‘덕질로 인생을 향유하였는데, 이제 그렇다 할 나의 구심점이 없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의 나는 보다 낮은 질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일까?

 

이전의 덕질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다. 덕질의 대상들은 하나같이 선물처럼 맞닥뜨린 것이었다. 그렇게 우연히 마주쳤지만 꽤나 큰 충격이나 쾌를 불러일으켜 자연스레 그것에 푹 빠지는 루트를 계속 탔었다. 어떻게 보면 참 본능적인 동시에 운 그 자체였다. 그렇기 때문에 더 이상 덕질을 하지 않는 시기에는, ‘요즘 집중할 것이 없다.’고 불행해 하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본능적인 취미와의 맞닥뜨림이 줄어들자, 의도적인 취미의 발견을 꾀하게 되었다. 직접 발 벗고 나서기 시작한 것이다. 덕질할 것을 찾아 나서는 것은 고된 일이었다. 발굴에 서툰 나는 좀 더 나은 것을 향유해야 한다는 생각, 예전에는 없었던 현실에 대한 염두(나의 미래에 도움이 되는 유익한 것을 찾자는 생각) 때문에 대상 자체에 집중할 수 없었다. 그렇게 찾은 취미에는 잔잔한 음악 듣기, 브런치 글 읽기, 영화 보기였다. 찾은 것들 중 다수는 중간에 포기하였지만, 잔잔한 음악 듣기만큼은 아직도 내가 사랑하는 대상으로 남아 있다.

 

그렇게 성공과 실패를 반복하다 최근에 좋아하는 아티스트가 생겼다. 하지만 이는 자연스럽게 맞닥뜨린 대상이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만난 만큼 덜 인위적이고 나에게 꼭 맞는 대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자세히 살펴보면, 이 아티스트는 아이돌이기 때문에 예전에 좋아하던 1차원적이고 오락적인 대상들과 비슷하다. 누구나 좋아할 만한, 놀고 웃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하지만 그를 대하는 나의 태도는 사뭇 달라져 있었다. 마치 의도적인 취미를 찾은 것과 같은 관조의 자세를 취하게 된 것이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과거에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아티스트의 인간미, 나와의 연관성, 음악 시장에 대한 고찰로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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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 없이 페스티벌과 여행을 전전하였을 때 모아둔 티켓


 

의도적인 취미의 찾음과 우연적인 취미와의 만남, 이 둘 중에 옳은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지금 좋아하는 아티스트를 예전만큼의 화력으로 덕질을 굳이 하지 않는 나의 모습도 싫지가 않다. 객관적인 시선으로 아이돌이라는 대상을 바라보게 되었고 그와 비슷한 시선으로 나 자신을 관조하게 되었다.

 

단지 내가 과거를 그리워하는 감정을 느낀다면, 그것은 저학년일 때 그저 본능적이고 오락적인 것들을 자유롭게 쫓을 수 있었던 당시의 여유가 그리운 것일 가능성이 높다. 나는 아직도 무엇을 순수하게 좋아할 만한 화력과 의지가 있다. 하지만 많이 차분해진 동시에 ‘덕질’의 다른 가능성을 시행착오를 계속 연습 중인 것이다.

 

 

 

노지우 태그.jpg

 

 

[노지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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