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따뜻한 웃음 - 이를테면 에필로그의 방식으로 [문학]

글 입력 2020.10.15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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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문예지 《Littor》에 실린 가수 장기하의 인터뷰를 읽었다. 《Littor》의 ‘읽는 사람’이라는 인터뷰 코너에서는 유명인들의 독서에 대한 이야기를 나는데 장기하가 인터뷰이로 등장한 것이다. 그는 성인이 돼서 늦게 시작한 독서가 자신의 음악적 색채에 영향을 주었다는 이야기를 했고, 그 이야기 다음에는 최근에야 한국 소설들을 비로소 읽기 시작했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의 말에 따르면, 한때 단편 소설들이 다루는 사회의 어두운 면들을 읽는 것이 버겁게 느껴졌던 반면, 최근에 들어서는 가볍고 유머러스하게 작품을 풀어내는 젊은 작가들의 매력에 빠졌다는 것이다.

 

장기하는 김초엽 작가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을 언급했지만, 그의 인터뷰를 읽으면서 유머러스하고 편안한 글쓰기를 선보이는 수많은 작가들을 떠올릴 수 있었다. 그리고 나에게 있어서 최근에 있어서 독서의 즐거움을 가장 많이 주는 작가는 바로 송지현 작가이다. 가수 장기하 이야기에서 송지현 작가의 이야기로 넘어오는 것이 일종의 비약처럼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이 글을 통해 《자음과 모음》 2020년 여름 호에 발표된 송지현 작가의 단편 소설 「여름에 우리가 먹는 것」을 소개하고자 한다.

 

송지현 작가는 2013년에 동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하였으며, 등단작은 「펑크록 스타일 빨대 디자인에 관한 연구」(제목에서부터 범상치 않은 명랑함이 느껴진다.)였다. 그녀는 작년에 첫 소설집 『이를테면 에필로그의 방식으로』를 출간했는데, 여기에도 재밌는 작품들이 정말 많으니 읽어보길 추천한다. 최근에 정말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하고 있어 여러 문예지에서 송지현이라는 이름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올해 역시 《현대문학》 1월 호에 「손바닥으로 검지를 감싸는」, 《문학과 사회》 여름 호에 「오늘의 가족」을 발표하는 등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데, 이 글에서는 그 중에서 가장 인상 깊게 읽었던 「여름에 우리가 먹는 것」을 다루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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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음과 모음》. 2020년 여름 호


 

‘나(미주)’가 ‘먼고’를 보는 것으로 소설은 시작한다. ‘나’의 방은 휴먼고시원의 창문이 있는 방이다. 그나마 있는 창문도 ‘휴먼고시원’의 ‘먼고’ 두 글자가 붙어 있는 방이라 창문을 바라보거든 항상 ‘먼고’와 마주하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고향에 계신 이모가 당분간 가게를 봐달라고 부탁한다. 유럽 여행을 떠나는 동안 뜨개방을 봐줄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를 계기로 ‘나’는 잠시 서울의 고시원을 떠나 고향에 내려가서 생활하게 된다. 고향에서 ‘나’는 이모가 여행을 떠나기 전까지 조용하고 평범한 날들을 지낸다. 이모에게서 사슬뜨기를 배우기도, 건너편 건물의 ‘핫도그가게’ 사장과 친해지기도 하고, 중간중간에 서울에 머물고 있는 고교 동창 b와 연락을 주고받기도 한다. 사소한 농담을 주고받기도 하면서, 서울을 떠난 새로운 일상을 보내게 되는 것이다.

 

상술한 부분이 소설 줄거리의 전부일 것이다. 하지만 곳곳에 송지현 특유의 장면 포착이 자칫 평범할 수 있는 인물들을 특별하게 만들어준다.


 

―호적에 오른 이름은 원래 미화였고, 집에서 부르던 이름은 미정이었고, 철학관에서 지은 이름이 미주예요.

―와. 미화였던 미주 씨는 상상이 안 가네요. 그런데 이름에 다 미가 들어가네요.

―예쁘라고. 태어났을 때 못생겨서.

그는 아무런 대꾸도 안했다. 보통은 지금은 예쁜데요, 라든가 어릴 때 못생기면 어쩌구 이런 종류의 이야기를 하기 마련인데. 그는 생각에 잠긴 채로 걸었다.

 

(《자음과 모음》 2020 여름 호. p175)


 

곧 이모의 출국일이었다. 막상 날짜가 다가오니 이모 혼자 잘 다녀올 수 있을지 걱정이 됐다. 이모는 굳이 시장에서 복대를 사 왔다.

-요즘은 그런 거 필요 없다니까.

그러면서 나는 유럽의 강도에 대해 말해주었다. 유럽에서 강도를 만나 골목으로 끌려가서, 노 머니, 노 머니, 라고 말했더니 강도가 뒷주머니에서 꼬깃꼬깃한 종이를 펼쳤는데 거기에 ‘복대 내놔’라고 쓰여 있었다는 얘기였다. 이모는 그게 웃겼는지 한참을 복대 내놔, 복대 내놔, 하면서 웃었다.

 

(p178)


 

―힘을 빼.

―아무리 빼도 안 돼.

―네가 힘을 빼야 실도 힘을 빼지.

―그게 내 맘대로 안 된다니까.

―실이 네 손에서 빠져나가도 괜찮다는 생각으로 쥐어. 그럼 실에 자연스레 공간이 생겨나. 그 사이로 바늘을 통과시키면 돼.

―…….

―꼭 쥐면 오히려 놓치는 거야. 대충해.

 

(p170)


 

그러게, 뭐 하러 만들까. 모든 게 팔려고 만들어지는데, 안 팔리는 것은 문제가 있는 것 아닐까. 이왕 이런 시대에 태어난 거 잘 팔리는 걸 만드는 능력이 있으면 좋을 텐데. 능력의 문제가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이건 뭐랄까, 안목이랄까, 선택이랄까, 애초에 그런 게 잘못된 느낌이다. 매번 실패하는 투자자처럼 시장성이 없는 것에만 자신을 투신하는 안목. 그것을 알면서도 다른 선택지를 고를 기회에서 같은 선택을 한 번 더 하는 사람.

 

(p171)


 

작품 내에서 가장 재미있게 읽은 부분들을 발췌해 보았다. 네 부분 중에서 위의 두 개는 읽으면서 실소를 금치 못한 부분이다. 작가의 문장을 읽는데 인물의 실제 목소리가 들리고 표정이 보이는 것처럼 생생하게 느껴졌다. 저렇게 생각하고 저렇게 말하는 인물이 어딘가에 살고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작가의 재치를 통해서 독자의 현실적 시간과 무게는 모두 사라지고 소설 속 인물의 발화만이 오롯이 남게 된다. 송지현 작가의 작품을 읽을 때는 그녀가 만들어 놓은 소설 세계로 이동하는 기분이다. 예술이라는 것은 대단한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 벗어나 세상을 다시 바라보게 하는 모든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송지현의 소설은 비유와 상징으로 가득한 어떠한 문학 작품보다도 독자에게 예술적 경험을 쉽게 전달해 준다.

 

인용한 네 부분 중 아래의 두 부분은 일종의 메시지성이 느껴지는 부분들이다. 「우리가 여름에 먹는 것」은 작품 전체적으로 쉽고 재미있게 구성돼서 읽는 내내 웃음이 멈추지 않았는데, 이 경쾌한 문장들 사이로 묵직함이 느껴지는 구절들이 있었다. “꼭 쥐면 오히려 놓치는 거”라는 의미심장한 발언(p170)과 매번 실패하는 주인공의 처지(p171)는 문제적인 상황을 보여주게 된다. 이는 작품의 주인공들의 처지와 고민을 함께 담고 있는 것이다. 작품이 전개되면서 주인공에 대한 정보들이 더 많이 공개되는데, ‘나(미주)’의 경우에는 밴드 생활을 하다가 현재 특별한 직업 없이 작은 고시원 방에서 생활하고 있는 처지이고, ‘핫도그가게’ 사장은 서울에서 하던 일을 접고 고향에 내려와 핫도그 장사를 시작했다. 작품의 가볍고 재미있는 무드 속에 각 인물의 고민과 작가의 문제의식이 묻어나고 있는 것이다.

 

표면적으로 이런 인물들이 화기애애한 이야기를 만들어내지만, 표면 아래에서는 사회적으로 자리잡지 못한 인간으로서 이들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미주는 이직에 성공한 친구 b의 연락에 씁쓸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핫도그가게’는 장사가 개선될 여지가 아무래도 없어 보인다. 이러한 장면은 어떤 독자에게는 불안감을 전달해 줄 것이며, 또 어떤 독자에게는 현실과 유사한 장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불안이 송지현의 문학적 상상력 속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작품이 전개되며 ‘나’와 ‘핫도그가게’ 사장은 사이가 가까워지고 서로의 솔직한 모습들을 긍정하게 된다. 있는 모습을 그대로 보아주고 공감하는 것. 작가의 정성스러운 표현들 속에서 두 인물이 통합되는 느낌이 든다. 작은 재치와 공감 속에서 두 인물이 내일을 기대할 수 있게 된다는 점에서 나는 이 작품이 유독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

 

「우리가 여름에 먹는 것」을 읽으면서는 소리내어 웃으면서 작가의 재치에 감탄하였는데, 다 읽고 나서는 내 마음에 작품의 온기가 꽤 오래 남아 있는 느낌이었다. 이전 송지현의 작품들에서는 작가의 재치의 반대편에 죽지 못해 사는 처절한 인물들이 마음에 꽤 밟혔었는데, 이번 작품에서는 인물들의 상호작용이 마음에 들었다. 왠지 송지현 작가의 수많은 미주들이 (송지현 작가의 주인공 이름으로 ‘미주’가 자주 등장한다) 시행착오를 통해서 드디어 따뜻한 인간 관계를 형성한 것만 같아 기분이 좋다. 송지현의 ‘미주’가 새로운 지점에 도달할 수 있었던 것처럼, 송지현의 독자들 역시 송지현의 유머를 통해 자신의 삶을 웃음과 행복으로 견인할 수 있을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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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지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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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지현 소설집. 『이를테면 에필로그의 방식으로』

 

 



[한승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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