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작은 세상에서 헤엄치는 아이들을 봐주세요! - 조의 아이들 [도서]

글 입력 2020.10.10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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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은 조작되기 마련이다. 내 추억 속 이야기는 항상 꿈과 희망으로 가득 찼다. <작은 아씨들> <키다리 아저씨> <비밀의 화원> <빨간 머리 앤> 등 아동 필독서라고 치부하는 문학들을 읽으며 나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부풀어오는 기대감에 잠을 설쳤던 시절이 있었다. 매력 있는 캐릭터의 향연과 설레는 로맨스에 자연스레 홀려 언제든 꺼내 읽고 싶은 소설이었다. 나에게 <작은 아씨들>은.

 

16년 만에 소설 <작은 아씨들>이 영화화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개봉하면 꼭 영화관으로 달려가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만큼 <작은 아씨들>은 내겐 소중한 보석함 같은 존재였고 책을 읽고 놀던 시절에 많은 영향을 주던 책이었다.

 

막상 코로나19의 두려움을 이기고 영화관에서 영화를 봤을 때는 많은 사람이 극찬했던 영화였음에도 불구하고 크게 감흥이 오지는 않았다. 조작된 추억과는 다른 설정과 이야기와 낯선 장면이 조금씩 배치되어 있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겉핥기식으로 좋아했나? 단지 나는 단란하고 화목한 가족의 모습에 부러움을 느껴서 그랬을지도. 그것만으로도 <작은 아씨들>에 가지는 애정은 넘쳐났으니까. <작은 아씨들>이 4부작 대하드라마라는 것도 조와 로리는 친구로 남게 되고 에이미와 로리가 결혼을 하게 되는 것도 몰랐던 거 보면 진정한 팬은 아니었나 싶어 괜히 고개를 떨어뜨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은 아씨들>에 쏟아부은 내 추억 속 애정에 미련이 남아 다시 도전했다. 고집불통에 말괄량이지만 가족을 위해서 거침없이 행동하고 누구보다도 따스한 마음을 가진 조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나와 닮았다고 생각했다. 책 읽기와 글쓰기를 어떤 환경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나아가는 그 행동이, 고집이, 추진력이 어딘가 나와 같다는 동질감을 느꼈다.

 

사실 애착이 갔던 인물은 4자매 중 가장 연약하고 유약했던 베스였지만 조가 지닌 매력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평생 결혼을 하지 않을 거라는 조가 결혼을 했다. 독자들의 성화에 못 이겨 루이자는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조를 결혼시켰다. 아쉽긴 했다. 비혼으로 살아가는 조의 삶도 충분히 멋있을 것 같았는데.

 

그래도 남편이 멋있는 사람 같다. 아이들을 대하는 남편의 태도를 보면 엄지척 해주고 싶다.조는 남편과 함께 학교를 세웠다. 그 이름은 ‘플럼필드’다. 처음에는 소년들을 위한 학교였고 한둘 씩 여자아이들도 모이면서 서로에게 선한 영향력을 주고받는, 학교라기보다는 피 한 방울 안 섞인 대가족이 모인 공간 같았다.

 

그 안에서 펼쳐지는 아이들의 눈부신 성장스토리와 이제는 부모가 된 마치 가 자매들의 이야기까지. <조의 아이들>은 독자들의 니즈를 충족하는 루이자의 센스와 재치가 돋보이는 소설이었다.

 

거리의 악사 냇이 ‘플럼필드’를 방문하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한다. 낯설고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냇은 이 학교가 좋았다. 조가 말한다. “이상한 학교지?” 이상한 학교라기보다는 이상적인 학교였다. 괜스레 내가 이런 학교에 다녔으면 나의 인생에 커다란 변화를 안겨주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을 할 정도로.

 

아이들의 행동과 말 하나하나 지나치지 않고 귀 기울여 주며 스스로 역경을 헤쳐나갈 수 있도록 묵묵히 도와주는 조와 바에르 교수의 모습은 진정한 어른의 면모를 보는 듯하다. 어른의 정의는 제각각이고 착하고 올바른 어른의 기준이란 모호하지만 이 소설 속 어른들은 모두가 그런 건 아니지만 적어도 아이들에게 좋은 어른처럼 보여 따스했다.

 

3부 마지막 챕터에서 로리와 조의 대화는 감회가 새로웠다.

    

 
“도대체 무슨 마법을 쓴 거야, 조?”

“난 이 가족을 작은 세상이라고 보고 있어. 아이들에게 사랑을 주고, 내가 사랑한다는 걸 그 애들이 알게 해줬을 뿐이야. 나머지는 프리츠가 했고.”

“훌륭해! 넌 ‘사랑을 줬을 뿐’이라고 하지만 그게 쉽지만은 않은 일이야.”

로리는 조가 어린 소녀였던 때 대하던 것보다 더 소중한 존경심을 갖고 바라보면서 야윈 뺨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냇의 변화에 놀라며 로리가 조에게 묻는 장면이다. 로리와 조가 소년과 소녀였을 때 어울리던 장면이 오버랩 되면서 그들이 이제는 아이들이 쑥쑥 크는 과정에 감탄하는 나이가 되었다는 걸 실감했다.

 

뒤이어 조는 여자아이들이 서로에게 얼마나 좋은 영향을 주고받는지 기뻐하며 그걸 지켜보는 게 즐겁다고 했다. 이 작은 세상 속에서 서로에게 자극이 되고 긍정적인 반응을 일으킨다는 것은 이 학교를 운영하는 거에 있어 조에게 큰 축복이지 싶다.

 

 

작은 아씨들 연극 소니픽처스코리아.jpg

 

 

이들의 이야기에는 항상 예술을 품고 있다. 배우가 되고 싶었던 메그, 작가가 되고 싶었던 조, 클래식 음악가 되고 싶었던 베스, 화가가 되고 싶었던 에이미까지 영화 <작은 아씨들>에서 조의 주도하에 집에서 연극을 하던 장면이 인상 깊었다.

 

플럼필드의 아이들도 연극을 한다. 연극에 참여하는 건, 연극의 배우로 서본다는 건 또 하나의 작은 세상을 마주하는 경험이다. 자신이 어떤 감정인지 알아차리기도 하고 세상을 지혜롭게 나아갈 수 있는 용기를 주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조는 아이들과 자주 연극을 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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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자 메이 올컷

 

 

<조의 아이들>이 루이자 메이 올컷의 자전적 소설인 만큼 그녀의 생애도 궁금해졌다.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고 여성의 권리에 힘주어 주장했던 그녀의 삶 또한 이 소설만큼이나 다사다난해 보였다. 출판사 월북이 루이자 메이 올컷 시리즈로 낸 <고집쟁이 작가 루이자>도 읽어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세상이 변할수록 페미니즘에 주목한다. 21세기의 입장에서 이 소설을 페미니즘 문학이라 칭한다. 페미니즘의 용어 등장은 1837년이다. 1868년에 발표한 이 책에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여성상을 등장시킨 루이자의 대담함이 놀랍기만 하다. 이상주의 교육자였던 아버지의 영향과 당시 많은 철학자와의 교류가 그녀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앞서게 해준 게 아닐까 추측한다.

 

길고 긴 여정이었다. 2세대에 걸친 대장정은 “다들 어떻게 되었나요?”라는 질문의 답변으로 끝난다. 자연의 순리에 따라 만남과 이별을 반복하고 자신들의 목적에 따라 최선의 삶을 살았던 아이들을 끝으로 마치 가족의 이야기는 영원히 끝났다.

 

훌륭한 가족을 보여주는 표본이었고 여러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햇살 같은 이야기였고 자꾸만 들여다보고 싶은 매력 부자 소설이었다. 망설이지 말고 이 책을 읽어보는 것만으로도 여러분은 흐뭇한 엄마 미소를 짓고 있을 것이다. 작은 세상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헤엄치고 있는 아이들의 이야기에 풍덩 빠져보시기 권한다.

 

 

조의 아이들.jpg

 

 

[이지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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