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김지영의 이야기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될 수 있을까? [영화]

영화 <82년생 김지영>
글 입력 2020.10.08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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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가 영화 <82년생 김지영>을 2020년 추석 특선 영화로 10월 3일 안방극장에 선보였다. 성별화된 명절 노동이 여전히 만연한 상황에서, 공중파가 명절 특선 영화로 <82년생 김지영>을 상영한다는 것은 뜻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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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던 회사를 관두고 육아 중인 30대의 김지영은 자신의 주변 여성들의 인격에 쓰인 듯한 모습을 보인다.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김지영과 다르게, 그의 몸을 매개하는 여성들은 저마다의 소리를 내고 돌출하며 지영을 대변한다. 지영의 이러한 자기 분열적 모습은 ‘빙의’로 표현된다. 영화는 빙의의 원인을 스크린 위에 차곡차곡 쌓아 펼친다. 할머니, 엄마, 그리고 지영으로 이어지는 세 여성의 삶과 그 주변 여성들의 일상은 서사 내에 설득력 있게 녹아든다.

 

여성의 수난사를 주 소재로 다루는 멜로드라마 장르가 ‘여성 영화’로 폄하되고, 주류 시장이 이에 대해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려는 상황 속에서 <82년 김지영>이 상업 영화로, 동시에 ‘보편성’을 내세우며 개봉 당시 큰 관심을 받았다. 개봉이 1년 정도 지난 현시점에서도 <82년생 김지영>의 의미는 유효하다.

 

공연히 잔재되어 있었지만 동시에 은폐되어 있던 목소리들이 <82년생 김지영>을 통해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동시에 질문할 수 있다. 영화 <82년생 김지영>은 대중과 시장이 허락한 최선이 아니었을까? 정말 김지영의 이야기는 보편적일까?

 

 

 

너무나 안전한 방식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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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82년생 김지영>은 문제를 스크린 위에 펼치고 몰입과 공감을 얻어낸다. 공감과 연대를 통해 지영의 아픔을 치유하고 미래에 대한 희망과 가능성을 제시한다. 달리 말하면 영화 속 김지영은 너무나 쉽게 용서하고 성장하며, 또 안전하고 희망적인 결말을 맞이한다.

 

그리고 이러한 결말의 중심에는 다정한 남편, 정대현이 있다. 영화는 원작 소설과 다르게 대현을 비중 있게 등장시키며 남성 관객의 동일시와 공감을 얻어냈다. 하지만 영화 속 대현은 무심하다. 지영을 그 누구보다 사랑하고, 걱정하지만 그가 실질적으로 하는 건 없다.

 

대현이 내린 결정이나 보이는 행동은 ‘다정한 남편’이라는 믿음에 균열을 낸다. 지영을 돕겠다고 매번 나서지만 결국에 그는 ‘남성’이라는 특권적 위치를 점하고, 그 속에서 지영은 분열한다. 대현이 육아휴직을 내기로 하고 지영에게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말하지만, 대현의 어머니가 지영을 비난하는 순간 대현은 그에 대항하지 않는다. 지영이 복직을 포기하자 “그래, 더 쉬어”라고 말한다. 그는 지영이 아픈 원인을 구체적으로 포착하지 못한다. 이는 원작 소설에서 정신과 의사의 위치와 유사하다.

 

원작 소설에서 에필로그는 남성 정신과 의사의 시점으로 진행된다. 그는 “김지영 씨와 정대현 씨의 얘기를 바탕으로 김지영 씨의 인생을 거칠게 정리하자면 이 정도다.”라고 말하며, 자신이 김지영을 이해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동시에 동료 의사인 아내의 경력단절을 방관하고, 육아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여직원은 곤란하다고 생각한다. 정신과 의사는 김지영의 생을 구조적으로 이해하지 못하고, 김지영의 이야기를 김지영 개인의 문제로 환원시킨다.

 

이는 독자들에게 ‘여태 읽었던 이야기는 과연 김지영의 온전한 이야기였을까?’라는 온당한 의심을 심어준다. 영화를 보면서도 비슷한 의문이 생겨났다. 영화는 누구의 시선을 담지하고 담보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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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 지영에게 하염없이 다정한 대현 또한 ‘지영’을 보고 있는 것이지, 지영을 그렇게 만든 ‘구조’를 보고 있지는 않다. 이러한 대현의 무심함은 카메라가 두 인물을 함께 비출 때 가시화된다. 시종일관 다정해 보이는 남편 대현이 지영을 도와 가사노동을 하는 모습은 크게 두드러지지 않지만, 지영의 가사노동은 끊임없이 일방적으로 진행된다. 김지영과 정대현이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에서도, 대현은 맥주를 마시고 있지만 지영은 계속 빨래를 개고 있다.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대현이 울음을 터뜨리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그에게 저절로 연민의 마음이 느껴진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 해결은 너무나 안전한 방식의 감정적 봉합이다. 놀랍게도 그 이후부터는 일사천리다. 지영의 성장과 되찾은 목소리, 손에 느껴지는 펜대의 감촉, 그리고 써 내려가는 “82년생 김지영”. 여성들의 보편적인 경험을 이야기하려 하지만, 이 결말이 과연 보편적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현실의 여성들이 자신의 ‘이름 붙일 수 없는 병’을 김지영처럼 해결할 수 있을까?

 

영화 <82년생 김지영>에서 구조로 인해 목소리를 잃은 여성은 결국에 작가로 성장하며, 자신의 목소리를 찾는다. 그렇다면 현실의 구조 속에서 실재하는 여성들은 어떻게 자신의 목소리를 찾을 수 있을까. 영화는 우리 사회 내의 차별적 구조와 원인을 차근차근 보여주지만, 그 해결 방식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온건하다.

 

대중문화 속에서 여성들의 목소리가 가시화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이는 대중, 시장, 체제에 친화적인 경우에만 부분적으로 허용된다. 영화 <82년생 김지영>이 우리에게 전하는 연대와 공감은 굳건한 구조 아래에서 이뤄진다. 이는 허용된 방식으로, 허용된 만큼, 구조를 아주 조금 유연하게 만들 뿐이다.

 

 

 

다시 한 번 되묻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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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년생 김지영>은 보편성을 내세우고 있지만, 다양한 사회 구성 범주에 따라 여성 개개인이 실제로 경험한 것은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누군가에게 김지영은 엄청나게 운이 좋은 여자일 수도 있고, 운이 좋지 않은 여자일 수도 있다.

 

하지만 영화가 대중의 많은 공감을 얻은 건, 개개인의 경험 이면에 동일한 기저가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82년생 김지영>은 동일한(보편적인) 구조 아래에서의 여성 경험을 대중적인 언어로 담아낸다.

 

이 과정에서 그간 대중 상업영화에 만연했던 모성 신화를 해체하고, 여성(지영)이 자신의 언어를 펼쳐나감을 지지한다.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성과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보편'이라는 이름 하에 선택되고 배제된 것에 대해 반드시 다시금 되물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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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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