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작은 아씨들, 그 이후의 이야기 - 조의 아이들

글 입력 2020.10.07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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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초 겨울, 머리를 잘랐다. 머리가 길든 말든, 평소에는 시간이 흐르는 대로 내버려두는 편인데도 그땐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 영화 <작은 아씨들>을 봤던 것이다. 그리고 극중의 조가 너무 좋았다. 얌전하게 자라서 좋은 집안의 남자에게 시집을 가는, 아직도 여자들에게는 삶의 선택권이 많지 않았던 그때 조는 자신을 위한 삶이 무엇인지 쉬지 않고 고민했다. 어려서부터 창의적이고 주체적이었던 조. 그녀는 늘 세상의 기준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때로는 고집 센 말괄량이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아버지의 병간호를 위해 제 머리를 싹둑 잘라다 팔 정도로 사려 깊고 따듯한 마음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 조가 너무 멋있었다. 그녀의 단발은 단순히 스타일링으로 치부할 수 없는 큰 결심이 깃들어 있었으므로 그저 예쁜 단발로 소비하고 싶진 않았다. 그렇기에 아무도 모르겠지만 나홀로 의미부여하고 의지를 다지며 헤어샵을 찾았던 기억이 난다.

 

영화 <작은 아씨들>의 마지막은 작가로 데뷔하기 위해 도전하던 조가 성공을 위한 인위적인 이야기가 아닌 진솔한 자전적 이야기를 써내려가며 성장해가는 모습과, 아이들이 평등하게 교육받을 수 있는 플럼필드 학교를 설립하는 것으로 끝이 난다. 윌북에서 이번에 출간한 <조의 아이들>은 <작은 아씨들> 원작의 3, 4부에 해당하는 도서로, 바로 그 뒷이야기를 다룬다. 작은 아씨들의 이야기는 아직 끝난게 아니었던 것이다.

 

화려하게 포장하기보다 자매들의 삶을 담백하게 드러내는 특유의 스토리텔링은 <조의 아이들>에서도 이어진다. 하지만 좀더 이상적이고 의지적인 삶의 모습이 나타나 감명깊었다. 작가의 자전적 소설이기도 한 만큼, 플럼필드 학교에는 작가 루이자 메이의 가치관과 그녀의 아버지이며 교육자였던 브런슨의 이상이 녹아들어 있다.


 

"여긴 정말 좋은 학교예요!" 냇이 감탄하며 말했다. "이상한 학교지." 조는 웃었다. "우리는 너무 많은 규칙을 만들거나 공부를 강요해서 아이들을 힘들게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하지 않아." - <조의 아이들> p.38

 

"자, 얘들아. 다 준비됐으니 모두 갈 수 있어." 조는 서둘러 돌아와 말했다. 조는 모두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어서 마음이 놓였다. 조는 어린아이들의 마음에 먹구름이 낄 때 항상 마음이 아팠다. 아이들의 희망과 계획이 아무리 사소해 보여도 어른들은 그것을 존중해야 한다고 믿었다. - <조의 아이들> p.279

 


플럼필드 학교는 '이상한 학교'라 불린다. 규칙을 강요하던 다른 학교와는 다르게 토요일 밤이면 베개 싸움도 마음껏 할 수 있었다. 학교가 추구하는 교훈도 남달랐다. 성적보다 정직과 배려의 가치를 강조했던 것이다. 무엇보다 재력이나 성별, 신체적 특징에 구애받지 않고 모든 아이들을 평등하게 포용했다. 작가는 이 플럼필드 학교를 통해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져야 할 교육의 기회를 강조했다.

 

 

"얘야. 그건 옛날 생각이란다. 바뀌려면 아무래도 시간이 좀 걸리겠지. 하지만 할아버지는 여성의 시대가 다가왔다고 생각한단다. 남자아이들은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안 돼. 이제는 여자아이들도 뒤처지지 않아서, 먼저 목적지에 도달할 수도 있으니 말이지." 마치 씨는 그 자리에 있는 여러 젊은 여성들의 생기 넘치는 얼굴을 만족스럽게 바라보면서 대답했다. 이 여성들은 이곳 대학에서 가장 우수한 부류였다. - <조의 아이들> p. 569

 

"자, 모두 잘 들어!" 낸과 생각이 같은 앨리스 히스가 소리쳤다. 앨리스는 용감하고 분별력 있는 젊은 여성답게 벌써 자기 직업을 직접 정했다. "먼저 세상이 우리에게 기회를 주고, 우리가 최선을 다할 때까지 기다려야 해. 지금은 우리가 남성보다 현명하지 못하다고 하잖아. 남성들은 여러 세대에 걸쳐 도움을 받아왔고 우린 거의 도움받은 게 없는데도 그런 취급을 당해. 우리에게도 똑같은 기회가 있으면, 몇 세대가 지난 뒤에 어떤 판단을 내리게 될지 두고 보라지. 난 공정한 게 좋지만, 공정한 대접을 받은 적은 한 번도 없었어." - <조의 아이들> p. 663

 


특히, 작가 루이자 메이는 그 시절, 배움의 기회를 박탈당했던 수많은 어린 여자 아이들에게 새로운 길과 꿈을 심어줬다. 새로운 세상을 맞이할 용기와 기회를 전했다. 실제로 작가는 결혼이 필수이던 1850년 비혼주의자로 살았으며 남북전쟁에 간호사로 지원해 전쟁을 직면하기도 했다. 그녀의 실제적인 삶과 가치관이 담긴 이야기를 통해 능동적이고 독립적인 여성상이 생생하게 드러난다. 그 시절 이 이야기에 나오는 인물들의 주체적인 삶은 정말 충격 그 자체였을 것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나는 배움이 특권이라거나 삶의 방향과 역할이 암묵적으로 정해져 있던 옛 시대가 낯설다. 하지만 내가 지금 누리고 있는 당연한 것들은 그런 보이지 않는 족쇄와 경계에서 벗어나 쟁취한 노력의 결과물이다. 오늘날 내 이름을 단 명함을 가지고 한 사회에 소속돼 일할 수 있다는 사실이, 투표권을 가지고 한 시민으로서 세상에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 감사하고 놀랍다. 그리고 변화의 시작은 어린 아이들이 읽어내려갔던 <작은 아씨들>이었을지 모른다.

 

한 권의 책이 세상을 바꾼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아마 이 책이 당대에도 베스트셀러였을 뿐 아니라 계속 리메이크되며 다양한 방식으로 재생산된 이유에는 이야기 자체가 지닌 가치와 영향력이 대단했기 때문일 테다.

 

어렸던 자매들이 자라나 어른이 되고, 어른들의 따스한 시선 아래 아이들이 자라난다. 어른들과 아이들의 마음 따듯한 성장기를 담은 이야기. 더욱이 책장을 덮으면 크리스마스처럼 마음이 포근해지는 표지가 눈에 들어온다. 1, 2부 합본인 <작은 아씨들>과 함께 놓으면 그 자체로 선물 상자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여담이지만 돌이켜보니 크리스마스도 얼마 남지 않았고, 이번 겨울에는 고마운 이들에게 <작은 아씨들>과 <조의 아이들>을 선물하며 서로의 성장을 응원하고 격려하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신은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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