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씬(Sinn)의 혁명] 도시인의 우울에 관하여 - 영화 '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블루'

내면 죽이기의 일상화
글 입력 2020.10.02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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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울을 버려야 서울로 돌아올 수 있다는 말은 그럴듯하게 들렸다.


 

서울을 버려야 서울로 돌아올 수 있다는 말은 그럴듯하게 들렸다. 도시에서 자란 인간은 결코 자신의 내면에서 도시를 죽이지 못한다. 염증이 자욱한 도시인에게, 서울을 둘러싼 혐오감은 도시인으로서 자신에게 부여된 정체성을 재확인하는 일로 환원될 뿐이다. 빽빽한 아파트, 아파트보다도 많은 자동차, 자동차보다도 많은 인파. 한 친구는 지방에선 구할 수 없는 브랜드 가방이나 의류를 쇼핑한 직후에 내게 그런 푸념을 늘어놓곤 했다. 회색빛 아스팔트와 정돈된 번화가. 지하철역을 넘나드는 어지러운 인파. 그 모든 게 지겹고 어지럽다고 말하면서도 우리는 지긋지긋한 도시에서 좀처럼 발을 뗄 수 없었다. 친구와 비슷하게, 서울에 소재한 특정 커피숍에서만 구할 수 있는 원두로 커피를 내려 마시면서 나는 생각했다. 우리가 도시가 아닌 시골에서 살고 있었더라면 이런 푸념을 내뱉을 수 있었을까.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인간의 시선은, 달리 생각하면 보고 싶지 않은 것은 굳이 보지 않으려 한다는 점을 내포한다. 일종의 기만이었다. 도시에 사는 사람이 역설적으로 부릴 수 있는, ‘나는 도시에 산다’라는 사실이 전제된, 체념을 가장한 여유. 당사자는 모른다. 어쨌건 자신이 도시에서 경험한 지난한 감정들, 지친 심정들은 거짓말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도시에서 불안정한 노동자로 살아가는 개인은, 그 와중에 자연적으로 경험하는 주변부의 향락을 자주 잊어버리곤 한다. 도시에 뿌리를 내린 인간은 도시의 비인간적인 면모를 혐오하면서도, 도시가 제공하는 풍족한 물질과 환경을 그 누구보다도 사랑한다.

 

친구와 내가 그랬다. 명동의 극악한 물가를 비난하면서도 비싼 디저트를 사 먹는 사람들이 그랬다. 월세가 비싸다고 토로하면서도 가로수길의 편집샵에서만 판매하는 한정판 의류를 사 입는 사람들이 그랬다. 우리는 모두 도시에 살아감으로써 역으로 도시에 대한 불만을 표출할 수 있는 자들이었다. 서울을 수십 번, 수백 번 포기하면 포기할 때마다 서울의 사람들은 또다시 서울로 돌아온다. 힘들지만 그래도, 서울이 아니면 어디에서 이런 것들을 즐기면서 살아. 양가적인 목소리들이 도시를 가득 메운다. 도시에 인격을 내맡긴 채 내면의 자살을 맞이하는 사람들로, 서울은 여전하다.

 

 

 

2. 도시인의 내적 자살, ‘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블루’


 

“도시를 사랑하게 된 순간 자살하는 거나 마찬가지야.”

 

영화 ‘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블루’에서 미카는 이처럼 읊조렸다. 그녀의 시선은 언제나 허공을 좇았다. 낮에는 간호사, 밤에는 걸즈바의 종업원으로 일하던 그녀는 대도시 도쿄에서 철저히 소외된 존재였다. 무엇이든 할 수 있다던 도쿄에서 미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젊은 나이부터 인격을 내던진 대가로 값싼 임금을 손에 쥐는 것. 그뿐이었다. 그런데도 그녀는 도시를 사랑한다고 기꺼이 말했다. 그녀는 마음속으로 수천 번 도쿄를 버렸다. 동시에, 버린 만큼이나 도쿄가 안겨주는 향락으로 자신의 속을 채웠다. 그렇게 미카는 인격을 죽이는 한이 있더라도 도쿄에 머무르기를 결정했다. 기숙사 단칸방에 불과했지만, 도쿄에 소재한 그 공간에서만 그녀가 누릴 수 있던 것들. 반려 거북이, 좋아하는 연예인의 포스터로 도배된 벽, 펑퍼짐한 침대. 부양할 가족이 존재하는 지방으로 돌아가는 순간 박탈당하는 자유. 우리도 마찬가지였다. 서울의 삭막한 열기에 숨이 막히면서도, 인프라가 집중된 서울의 한복판에서 우리는 각자의 욕망을 마음껏 채웠다.

 

미카는 사랑을 믿지 않았다. 사랑을 믿는다는 건 그녀에게 사치에 가까웠다. 도쿄에서 자신의 숨을 유지하기에도 하루가 벅찬 와중, 자신의 감정을 다른 타인과 공유하는 일은 유흥가의 술집에서 사람들이 단발적으로 나누는 웃음만큼이나 소모적인 것에 불과했다. 특히나 가끔 방문하는 고향에서 넉넉지 않게 살아가는 아버지를 볼 때마다, 그런 아버지의 속도 모르고 천진난만하게 도쿄에 상경해 낭만을 펼치려는 여동생을 볼 때마다 그녀는 더욱이 그런 류의 생각을 확고히 굳혔다. 신지에게 본능적인 끌림을 느꼈으면서도 줄곧 방어적으로 굴었던 이유 역시 이 때문이었다. 무엇하나 안정적이지 않은 도쿄라는 도시 공간에서, 감정적 유대라는 불확실성을 구태여 인생에 끌어들일 타당한 명분을 찾지 못했던 것이다.

 

일용직 노동자로 입에 풀칠하며 매일을 버티는 신지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인정이 많은 남자였다. 세심하진 않았다. 하지만 현장에서 일하는 동료들을 조금이라도 신경 쓸 줄 알았다. 몸이 불편해 현장 작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은 동료에게 술을 사주며 위로를 건넬 줄 알았다. 퍽 순수한 심성을 지니기도 했다. 허세를 잔뜩 부리며 걸즈바에 방문한 와중에, 맥주만 홀짝이다 이내 자리를 뜨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에게도 일상적인 체념이 몸에 배 있는 상태다. 일용직 노동자로 도쿄에서 하루를 버티며 살아가는 모습이 가장 자신답다며, 인생에 별다른 기대를 걸지 않는 모습에서 미카와는 다른 층위로 삶의 고난을 일상화한 그의 체념 어린 심정이 엿보이곤 한다. 미카와의 애프터를 앞두고 급작스런 질병으로 세상을 떠 버린 직장 동료를 마주하면서도, 가급적이면 일하는 도중 현장에서 죽지 말라는 상사의 말을 들을 때도. 그는 감정적인 동요를 크게 보이지 않았다. 애초에 대도시의 한복판에서 그가 인간적으로 타인에게 기대했던 것들은 딱히 없었던 셈이다. 애도하기에도, 타인에게 충분한 공감이나 보살핌을 건네기에도 삭막했던 삶의 반경이었다.

 

그런 사람들 두 명이, 그토록 비인간적이고 잔인한 도시에서 사랑에 빠진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로맨스 영화에서 예상하곤 하는 격정적인 사랑은 전혀 아니다. 정상에서 이탈한 것처럼 보이는 두 인물이 만나 처음부터 삐걱였던 만남을 계속한다. 매사에 공격적으로 임하는 미카. 무심한 태도로 미카를 대하면서 그녀를 밀어내지 않는 신지. 둘의 만남에는 그 어떤 조미료도 첨가돼 있지 않다. 그래서 밋밋하다. 둘 간의 감정적인 교류가 직접적으로 영화상에서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혹자는 저들이 애매한 기싸움을 벌이는 것인지, 서로에게 조금이라도 성애적인 호감이 있지만 그것을 애써 부정하려는 것인지 정확히 구분하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 그만큼이나 주인공 둘의 감정선은 싱거운 면이 있다. 하지만 그들의 싱거움이 내적 자살을 종용하고 도시의 향락과 삭막함에 동요하길 강요하는 도쿄에서 발현되는 것임을 고려하면, 그들이 이미 내적으로 도시에 굴복해 자신의 내면을 한 번 이상 죽인 상태임을 고려하면, 그들의 애매한 감정선에서 슬픔이라는 ‘블루’를 읽어낼 수 있게 된다. 이미 스스로 자신의 인격을 어떤 방식으로든 도시에 걸맞게 죽여버린 상황에서, 그들이 나누는 감정적 교류란 ‘항상 가장 짙은 블루’에 가까울 정도로 삐걱대고 불안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결국 사랑의 감정을 공유한다. ‘힘내’라며 빼어나지 않은 노래 솜씨로 도쿄 길가를 가득 메웠던 무명의 여성 가수의 목소리에서 감명을 받고, 기적적으로 그들은 화해한다. 어쩌면 그간 보여왔던 싱거운 감정선만큼이나 싱거운 이유로 평생을 함께하고자 마음먹는다. 자살을 감행했던 그들의 내면이 다시금 부활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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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도시가 안고 살아가는 일상적인 우울


 

그만큼이나 잔인한 공간이다. 도시라는 곳은 그렇다. 서로 간에 주고받는 온기조차 언제나 불완전한 형태로 오갈 수밖에 없게끔 환경을 강압적으로 통제한다. 통제 아래에서 개인은 무력하다. 말로 형용하기 어려운 우울을 기저에 깔고 살아갈 수밖에 없게 된다. 누군가가 기분이나 감정의 상태를 물어볼 때, 괜찮다거나 좋다고 말할 때조차도 무의식적으로 들춰볼 수밖에 없는 밑바닥을 필연적으로 만들게 된다. 그걸 나는 일상적인 우울이라고 부르고 싶다. 너무나도 일상적이어서 그것을 없애려는 노력마저도 무기력하게 만들어버리는 종류의 것이라고 말이다. ‘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블루’에 등장하는 사람들 역시 그런 우울에 시달리며 살아간다. 더 발버둥 친다 한들 지금보다 삶이 나아지리라는 보장이 전혀 없는 절망적인 나날들의 반복. 하지만 당장 의식주를 해결하지 못해 아사할 위기에 처하거나, 생명의 위협을 받을 정도로 급박한 처지에 처하진 않았기에 쉽사리 불만을 제기하기에도 무력해지는 상황. 영화 속 인물은 모두 이런 상황에 처해 있다.

 

결국 자신의 실존을 죽여야만 하는 필연을 직면한다. 도시에서 벗어날 수도 없는 기구한 삶이어서다. 도시에서 도망쳐 지방이나 농촌 어딘가로 피신을 가듯 향한다고 하더라도, 도시에서 누렸던 주변부의 풍요로움과 그곳에서 보냈던 영겁의 시간이 자신을 괴롭히는 탓이다. 살기 힘들다고 도시를 마음껏 비난하다가도, 나아지지 않는 자신의 궁핍한 처지를 비난하다가도 도시만큼 자신의 욕망을 충족해줄 공간이 마땅치 않기에 개인은 자신의 실존을 깎아 도시에 머무르게 되는 결과를 맞이할 수밖에 없다. 영화의 핵심이 바로 이런 뫼비우스의 띠를 보여주는 것에 있었다고 느꼈다.

 

자살이라는 것은 그래서 생각보다 입에 담기 어려울 정도로 거창한 차원의 단어가 아닐지도 모른다. 규정만 달리한다면, 밥을 먹고 잠을 자는 것만큼이나 우리에게 일상적인 일로 다가올지 모르는 일이다. 절망적이지만 말이다. 사회가 요구하는 도시인의, 보편 구성원상에 걸맞게 자신의 구성 요소를 하나둘 깎아가는 과정에서 우리는 일상적으로 자살을 시도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는 셈이다. 꽤나 오랫동안 영화의 여운에서 발을 떼지 못했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일상적인 사회화. 일상적인 내면 죽이기. 일상적인 동화되기. 이 모든 과정이 대도시의 공간에서 당연하다고 치부되는 와중, 우리에게는 인격의 자살 외에 어떤 유의미한 선택지가 주어질 수 있을까.

 

이런 생각으로 상념을 채운 채 하늘을 바라보니 영화에서의 도쿄가 그랬던 것처럼 서울의 하늘 역시 짙은 파랑으로 뒤덮여 있었다. 어쩌면 짙은 파랑보다는 흑색에 가까웠다. 우울을 겪는 것에서 한발 더 나아가, 우울에 잠식되는 차원으로 세상이 물들고 있음을 하늘 색깔이 말해주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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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그래서 괜찮아야만 하는 것일지도


 

“네가 가엾다고 생각하는 너 자신을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 동안은, 세상을 미워해도 돼.”

 

그래서 더욱 괜찮아야만 하는 것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아무리 실존이 실시간으로 깎여나가는 와중에라도, 도시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인생인 이상 합리화에 불과할지라도 자신에게 ‘괜찮다’라고 정체감을 부여해주는 행동이 최선이라면. 가시적인 변화가 없더라도 괜찮다고 스스로를 다독여야만 한다. 혹은 타인의 온기를 빌려서라도 그렇게 해, 가까스로 도시에서 견디며 또다시 자신을 깎아내리고도 존재할 수 있게 안간힘을 써야 한다.

 

한 푼도 벌지 못하고 길거리를 전전할 것이리라 여겨졌던 무명 가수가 자신의 이름과 얼굴이 광고로 장식된 전용 트럭을 몰고 다니며 확성기로 자신의 노래를 홍보했을 때. ‘힘내라-’라는 문구가 하필 후크송마냥 후렴구를 장식했던 그 노래가 시내 한가운데에 울려 퍼지는 모습을 본 순간. 신지와 미카는 비로소 결혼을 결심한다. 같은 시간을 공유하고자 마음먹은 후, 그들은 도시 속에서 죽어간 사람들의 열기와 상흔을 기억하고자 결심한다. 자기 자신의 숨을 강제로 소모 당하던 와중 쓸쓸하게 죽음을 맞이한 사람들에게 연대의 감정을 표현하기 시작한다. 그런 방식으로 괜찮아지고자 노력했다. 씁쓸했지만, 역시나 그것이 최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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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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