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흔들리는 삶의 불완전한 윤곽일지라도 - 윤곽 [도서]

도서 '윤곽'을 읽고.
글 입력 2020.09.24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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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전혀 일면식도 없는 타인에게 내 깊은 이야기를 툭 터놓고 싶을 때가 있다. 나를 너무 잘 아는 지인도 아닌, 사랑하는 내 가족도 아닌, 오늘이 아니면 두 번 다시 볼 일 없을 철저한 타인. 그러한 사람에게 내 이야기를 털어놓는 상상을 가끔 한다. 그래서 오늘이 지나면 우리가 나누었던 깊은 이야기들은 모두 허상이었던 것처럼 더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게 되는듯 말이다.

 

이 책도 그러한 관점에서 시작한다. 생전 처음 비행기에서 만난 노신사에게 불현듯 몇 해 전 겪었던 자신의 이혼에 관하여 털어놓게 된다. 그저 자신이 못나서 완벽하지 않은 삶을 원망하고 탓하며 글쓴이의 불완전한 낯면을 이야기한다. 주인공의 이야기에 노신사의 이어진 답변은 의외였다. 거의 일생에 걸친 자신의 결혼생활과 한 번도 아닌 세 번씩이나 이혼한 자신의 경험을 들려준다.

 

요즘 말마따나 TMI같기도 한 노신사의 길게 이어진 이야기는 처음에는 멀 굳이 처음 본 사람에게 이렇게까지 구구절절 자신의 얘기를 들려주지? 하는 어수선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결과적으론 주인공이 자신의 삶에 관한 완성되지 않은 윤곽을 찾아가는 보탬이 되는 자양분이 된 것 같기도 하다. 중간마다 책에 수놓아진 아테네의 눈부신 풍광들은 지금 여행할 수 없는 이 시기에 상상의 나래를 마음껏 펼칠 수 있었다. 노천카페에 앉아서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묘사하는 부분에선 가만히 눈을 감고 그 장면을 그려보기도 했다.

 

노신사의 이야기는 아테네에 도착한 글쓴이가 그를 다시 만남으로서 계속해서 이어진다. 마냥 풍족하고 행복할 것만 같았던 첫 번째 결혼이 깨지고, 점차 행복하지 않은 고된 삶에 녹아들게 된다. 그 과정에서 첫 번째 부인이 얼마나 자신에게 좋은 부인이었는지를 깨닫게 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녀와 다시 만났다면 자신을 여전히 같은 결정을 내렸을 것이라 말한다. 두 번째 이혼과 세 번째 이혼을 경험하게 되고 자신에게는 더 이상의 풍족한 삶을 없지만, 여전히 그는 사랑을 다시 만날 것이라 믿는다.

 

내가 읽어도 아이러니했던 노신사의 이야기는 결국 그 스스로도 평범치 않은 굴레와 여러가지 상황에 얽매여버린 자신의 모습에서 본능과 이성이 끝없이 충돌하다 결국엔 본능이 이끄는대로 스스로 자유로워지고 싶어했다는 것을 인정하고 깨닫게 됐다는 것이었다. 아직 상처가 아물지 않은 주인공은 노신사를 통해 이미 세 번의 이혼을 겪었음에도 여전히 사랑을 그리는 그를 보면서 두렵지만 자신 안에 완전하지 못했지만 조금이라도 만족하고 싶어하는 자신의 감정에 대해 어렵지만 조금씩 다가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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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에 읽어본 책 중 굉장히 독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목차도 없을뿐더러, 처음에는 주인공의 이름조차 알 수 없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타인의 이야기를 주인공은 그저 우리에게 들려줄뿐이다. 다른 사람을 묘사하면서 문득문득 주인공의 감정과 그녀가 놓인 현실을 이야기한다. 무엇을 이야기하기 위해 현재의 이야기를 들려주는지 처음에는 알 수 없을 정도로 불친절하다.

 

모든 것을 드러내는 듯하다가도 철저히 감추고 절제한다. 동료인 라이언의 이야기를 떠올려 보면 ‘생략’이란 단어의 그리스 어원에 대한 그들의 이야기는 결국 “침묵 속에 무언가를 감추다”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요즘은 이혼을 밥 먹듯이 한다는 그 흔한 말들이 주인공에겐 커다란 어둠이 되어 그녀를 통째로 집어삼킨 듯 하다. 이혼 탓에 자신의 일부분의 삶이 지워지고 생략된 듯한 그녀는 서서히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들의 이야기에 자신의 모습을 투과시켜 어쩌면 괜찮을 지도 모를 자신의 삶과 본질에 대해서 생각에 잠긴다.

 

마지막에 등장하는 “아고라의 여신상들”은 그녀의 윤곽을 드러나게 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전쟁과 재건, 반복과 파괴로 말미암은 상처가 표면에 극명하게 드러난 건축물인 아고라는 그녀 자신을 뜻하기도 한다. 불완전하고 부서졌지만, 여전히 반복해서 재건할 수 있다. 그녀 역시 이혼 탓에 자신의 존엄성과 상실의 아픔에 흐릿해졌지만 “아고라”의 장면을 통하여 다시 자신을 스스로 일으키고 자신만의 윤곽을 만들어가게 되리라는 것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읽다가 앞으로 돌아가고 다시 읽다가 앞으로 돌아가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이 책을 읽어나갔다. 쉽지 않은 책인데 이상하게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 시간을 두고 다시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휘뚜루마뚜루 읽어선 안 되는 책인듯하다. 속 시원하게 결론을 내고 정확하게 이 책의 줄거리는 딱 이것이다! 라고 설명할 수 없는 이 책에 묘한 매력이 있다.

 

더불어 나 역시 불현듯 현재의 내 모습은 어떠한지, 타인의 이야기를 통해 내가 혹시 좀 더 완성하고 이해받고 싶은 나의 윤곽은 어떠함을 지향하고 있을지 고민해보게 된다. 여전히 자신의 상실을 보듬고 이해하는 것은 어렵다. 남의 상처엔 그 누구보다 위안을 잘하지만 정작 자신의 상처와 상실에는 굳게 차단해버린 채 그저 내버려 두는 일이 허다하다.

 

기억해야 할 것 같다. 스스로에게 어쩔 수 없이 불친절하더라도 상실과 단절의 상처를 그대로 내버려두지는 말자. 내 삶의 윤곽이 좋든 싫든 나 스스로 만들어가고 완성해나가는 것이기에 조금은 너그러운 마음을 지니고 살아가는 것은 어떨까. 안 그래도 지금 우리의 세상은 살아가기에 너무도 각박하지 않은가.

 

 

“그래도 저는 사랑을 믿습니다. 사랑이 거의 모든 것을 회복시켜주니까요. 그리고 사랑이 그렇게 회복시켜주는 동안은, 아픔도 사라지니까요. 지금 슬프다고 해도 사랑에 빠지는 순간 그 슬픔은 멈추는 겁니다.” - P35

 

"나 또한 내 바깥에 있는 대상에서 나 자신의 두려움과 욕망을 보기 시작했고, 다른 사람들의 삶에서 내 삶에 대한 평가를 읽어내기 시작했다." - P91

 

"그 안에서 시간이 멈추고 도시의 미로같은 골목들도, 더 이상 빛과 그늘로 나뉘지 않고, 오후의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그 골목들도 꿈속의 장면처럼, 비범한 색조와 밀도를 지닌 분위기 속에 그대로 멈춘 것만 같았다." - P109

 

“옆자리 남자가 이야기를 하는 동안 그녀는 자신이라는 하나의 형태, 윤곽을 그려볼 수 있었다. 그 윤곽을 둘러싼 바깥의 세부적인 면들은 모두 채워졌는데, 정작 윤곽 자체는 텅 비어 있었다. 그 형태 덕분에, 비록 그 내용물은 알지 못했지만, 사고 이후 처음으로 그녀 자신의 현재 모습을 인지할 수 있었다.” - P281

 

"종종, 인생이란 그렇게 알아차리지 못하고 지나갔던 순간들에 대한 형벌의 연속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어떤 사람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그가 알아차리지 못했던 일, 혹은 공감하지 못했던 일들일 거라고, 그가 모르는 것 혹은 이해하려고 애쓰지 않았던 것들을 언젠가는 억지로 알게 될 수밖에 없는 거라고 말이다." - P112

 

"어쨌든 진실은 남는 겁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두려워하지 말고 진실을 마주하세요.” - P156

 


 

윤곽
- 삶의 윤곽을 그려나가는 이야기 -
 

지은이 : 레이첼 커스크
 
옮긴이 : 김현우

출판사 : 한길사

분야
영미소설

규격
128*188

쪽 수 : 304쪽

발행일
2020년 08월 10일

정가 : 15,500원

ISBN
978-89-356-6854-0 (03840)

 

 



[정선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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