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개인의 기억을 공동의 기억으로, 자전문학 [문학]

글 입력 2020.09.23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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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역사는 비슷한 점이 많다. 진실을 갈구하며 시공간을 뛰어 넘어 이해되고, 홀로 알 수 없는 것을 알 수 있게끔 한다. 물론 문학에는 다양한 유희적인 목적이나 언어 자체의 질료성을 탐구하는 모습도 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인간의 본질이나 세상의 진실을 파헤치려고 했던 문학의 시도가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세간의 인식이나 기대를 보면 ‘진실을 갈구하는’ 비중이 더 상당하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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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사실'과 '허구'


  

허구에서 진실을 찾는다는 것,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다. 객관적이고 물리적인 사료를 둘러싼 해석도 분분한데 인간의 기억이라고 다를 바 없다. 기억하려는 시도에서 왜곡과 변형이 발생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실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어 진실을 밝히려는 열망이 실현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또한, 한 개인이 겪은 경험의 역사적, 사회적, 정치적 맥락을 다 드러낸다고 해서 개개인들이 지닌 기억의 크기를 가늠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기억과 경험의 크기와 강도는 개인마다 무한한 ‘차이’를 갖기 때문에, ‘나’의 기억이 ‘너’의 기억이 될 수 없을 때가 많으며, 나와 너의 기억이 하나의 공감대를 형성하여 ‘우리’의 기억으로 이전되는 것도 쉽지 않다.

 

역사로 치면 사료도 확실하지 않은 상황이다. 그러나 문학, 특히 허구적인 이야기들은 그런 사료를 재료 삼아 오랜 세월 읽히고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작품들을 내놓는 데 성공했다.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그리고 그 재료가 아주 개인적인 경우에도 가능하다. 바로 자전적 소설이다. 작가의 체험을 토대로 쓰인 작품들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읽고 공감한다. 허구와 사실이 결합했을 때 사실을 넘어서는 모종의 힘이 발휘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본고에서는 그 모종의 힘, 그 중에서도 자전적 소설 작품 속에서 작가 개인의 경험이 어떻게 개인을 넘어 타인과 공명하고 공동체의 기록이 되는가에 관해 살펴보고자 한다.

 

사람들이 읽는 순간에 그들의 머릿속에 펼쳐지는 이야기는 현실과 다름이 없다. 거짓인 것을 알지만 몰입하게 되고 믿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텍스트를 읽는 동안 독자의 일상이 문학의 사료가 된다. 우리의 삶이 허구를 ‘있을 법한 것’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왜냐하면 문학의 ‘삶다움’은 일상생활의 세부사항의 조합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작가는 일상의 세부 사항을 선별하여 계획적으로 이야기 전개의 유관한 것과 무관한 것을 배치한다. 중요한 것은 ‘잉여적인 것’이나 ‘여백’을 독자들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그러한 여백이 삶에도 존재하기 때문에 소설에서 나타나는 여백이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즉, 독자들은 문학 작품에 배치된 세부사항들, 각 요소들을 일상의 문법에 맞게 독해한다. 작가의 적절한 조합과 독자의 일상 경험이 합쳐져 개연성을 만들어내는 셈이니 문학의 ‘삶다움’은 픽션과 팩트의 화합물이라고도 볼 수 있다.


 

 

자전문학의 작가와 독자


  

이렇게 생각보다 적극적인 읽기 과정을 거치며 독자들은 문학 작품을 통해 ‘간접 경험’을 하고 다른 이의 입장에 ‘공감’하고 그의 처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작가가 자신을 녹여낸 자전적인 작품에서는 이러한 경험이 어떻게 나타날까?

 

 
글쓰기는 결국 뒤돌아보기 아닌가. 적어도 문학 속에서는 지금 이 순간 이전의 모든 기억들은 성찰의 대상이 되는 거 아닌가. 오늘 속에 흐르는 어제 캐내기 아닌가. 왜 내가 지금 여기에 있는지 알기 위해서, 지금 내가 여기에서 무얼 하려고 하는지 알기 위해서. 오늘은 또 어제가 되어 내일 흐를 것이다. 문학이 언제나 흐를 수 있는 것은 그래서가 아닌가. 정리는 역사가 하고 정의는 사회가 내린다. 정리할수록 그 단정함 속에 진실은 감춰진다. 대부분의 진실은 정의된 것 이면에 살고 있겠지. 문학은 정리와 정의 그 뒤쪽에서 흐르고 있다고 생각한다. 해결되지 않은 것들 속에. 뒤쪽의 약한 자, 머뭇거리는 자들을 위해, 정리되고 정의된 것을 헝클어서 새로이 흐르게 하기가 문학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해본다.

- 신경숙, 『외딴방』, 문학동네, 73쪽, 1999.

 


자전적 소설은 작가의 경험을 다루고 있는 이야기인 만큼 작가는 서술자와 동일시되기 쉽고 이야기는 ‘고백’으로 느껴진다. 이는 곧 ‘나’가 스스로 나의 이야기를 하는 자전적 서술 기법이 독자로 하여금 매우 깊은 수준의 공감을 이끄는 효과적인 서사 방식이 된다는 점을 의미한다. 자전적 서사는 서술적 이야기에 공감을 유도하는 데 있어 매우 효과적인 서술 전략이자 기법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작가가 설정한 서술자이며 오히려 자전적 기법을 통해 고백적인 분위기를 조성할 수도 있다. 이런 점을 보면 자전적 작품에서 독자의 몰입은 치밀한 작가의 전략과 내용 배치에 따른 결과로 얻어진 것이다. 작가들은 자전적 작품에서 진실과 허구를 뒤섞어 자신의 이야기를 펼치고 자아를 드러낸다.

 

따라서 자전적 글쓰기는 불가피하게 기억과의 대화를 전제로 한다. 현재의 내가 과거에 일어난 일에게 이야기를 걸고, 이러한 과정에서 글쓰기는 과거에 대한 해석과 해석 등의 단계를 거쳐 실행된다. 그 속에서 기억은 과거의 ‘나’를 현재의 ‘나’에 연속시켜 줄 통일적인 자아상을 만들게 되고, 자전적 기억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자아에 대한 생각을 재편성하고 정립하는 것, 즉 자아규정의 역할”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무엇인가를 기억한다는 것이 완전히 개인적인 생각이나 감정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종종 사회적 상황이나 정치적인 요소에 의해 영향을 받게 된다. 따라서 자전적인 글쓰기에서 ‘사실’을 논하는 것은 그다지 생산적이 못하다. 오히려 사실이 아닌데도 ‘진실’로 수용되는 경우는 빈번하다. 이때 그 속에 담겨있는 ‘내용’을 ‘진실’로 만드는 것은 바로 그 내용을 담아내는 ‘컨텍스트’라고 할 수 있다. 만델의 말을 빌리면, “컨텍스트라는 것은 작가가 진실을 얘기하고자 하는 ‘의도’를 의미한다. 이는 한 단어 한 단어의 선별을 통한 비준의 절차 뿐 아니라 그의 목소리, 스타일, 구성 등을 말하며, 독자가 자신의 경험에 기초해서 공감할 수 있는 목소리를 담아내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러한 배경에서 만델은 자전문학이 진실일 수 있도록 하는 이 컨텍스트를 공유하며 공감하는 것은 바로 독자의 의지라고 주장한다. 자전문학은 결국 이야기하는 작가와 읽으려는 독자의 상호작용이 보다 밀접하게 이루어지는 장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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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과 상상력의 구분을 넘어


 

근래에 이르러 사실을 완벽하게 말하는 것이 불가능한 반면 완벽하게 거짓말을 하는 것도 불가능하다는, 이중적인 불가능성을 인식하게 되었다. 즉, 과거에는 일반적으로 기억과 상상력이 이분화 되어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소설은 온전한 상상력에 의해서, 그리고 자서전은 온전한 기억력에 의해서 구성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팩트와 픽션의 영역은 명확했다. 그러나 현대에서 기억이 차지하는 위치는 팩트보다는 픽션에 가깝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의 기억을 토대로 하는 자전적인 작품들은 구멍 뚫린 역사적 기록의 빈 곳을 채울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역사적 고통에 대해 고통의 해결이나 제거가 아니라 고통을 주었던 부정적 역사와의 간격을 지탱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의 고통이 변질되지 않도록 애쓰는 것, 그리고 그것을 다시 반복해서 겪지 않으려는 눈뜬 성찰이다.

 

자전적인 작품의 가치는 역사적 사건을 생생하게 구현해냈다는 것에 있지 않다. 소재로 보이는 역사적 사건은 우연하게 작가의 원체험이 되었거나 작가의 삶을 지나친 것일 뿐이다. 초점은 작가가 허구의 힘을 빌려 구현한 섬세한 요소들이다. 감정, 기억, 느낌, 다른 사람과의 관계와 같이 미시적인 것들이 바로 자전적인 문학에서 주목해야 할 요소이며, 그것이 읽고 있는 ‘나’와 작품을 쓴 ‘나’와 텍스트를 서술하는 ‘나’가 공명할 수 있는 근거이다. 그리고 이 세 주체의 관계를 통해서 다른 이의 목소리를 섬세하게 들어볼 수 있다는 점이 바로 자전적 소설의 매력일 것이다.

 

그런 매력들을 바탕으로 개인의 기억들이 모여 공동의 기억을 생성해내고, 개인의 역사의 궤적이 모여 공동체의 역사로 확장될 수 있게 하는 것, 세상에서 잊힌 개인의 기억도 공동체의 일부임을 자꾸만 상기시키는 것이 자전문학이 지닌 힘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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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제임스 우드, 『소설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창비, 2011.

강유정. 「자전적 서사의 서술기법과 공감의 문제」, 『현대소설연구』 제67호, 한국현대소설학회, 2017.

문지희. 「자전문학, 그 혼종성에 관한 이론적 고찰」, 『외국문학연구』 제45호, 한국외국어대학교 외국문학연구소, 2012.

이가야. 「자서전 이론에 대한 몇 가지 고찰」, 『프랑스문화예술연구』 제 23집, 프랑스문화예술학회, 2008.

한순미, 「감성의 형성 : 고통, 말할 수 없는 것: 역사적 기억에 대해 문학은 말할 수 있는가.」, 『호남문화연구』 45권, 전남대학교 호남학연구원, 2009.

 

 

[이승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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