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당신] 박이소, 20년의 기억

"벽에 걸린 그림이란 게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하여
글 입력 2020.09.13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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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이소의 본명은 ‘박철호’이다. 그는 서양화과를 졸업 후, 1982년 유학길에 올랐다. 뉴욕에서 ‘박모’라는 예명으로 활동했으며, 1995년 한국에 돌아와서는 ‘박이소’라는 이름으로 작가 생활을 이어갔다. 개념미술 작가였고, 한국에서 선생님이었다. 권위적인 것과 형식적인 것을 싫어하고, 재즈를 좋아하던 사람이었다.


 

박이소(1957~2004)의 예술 활동은 미국유학길에 오른 1982년과 귀국한 1995년을 기준으로 뉴욕시기와 서울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 작가는 뉴욕 프랫 인스티튜트를 졸업한 후 ‘박모’라는 이름으로 작품 활동과 사회적 활동을 활발히 펼쳐나갔다. 특히 브루클린에 대안공간 ‘마이너인저리(Minor Injury)’를 설립한 후 뉴욕 미술계에서 소외된 이민자, 소수자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젊은 리더로서 주목 받았다. (…) 1995년 새로 설립된 SADI(삼성디자인교육원)의 교수직을 맡아 귀국한 후에는 ‘박이소’라는 이름으로 개명하고 새로운 방식의 미술교육을 정립하고자 애쓰는 한편 작품 활동 또한 활발히 전개했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박이소: 기록과 기억> 전시 작가소개 중

 

 

박이소는 20년간 21권의 작가노트에 드로잉, 일기 등 자신에 대한 꼼꼼한 기록을 남겼다. 아래 글은 <박이소: 기록과 기억>의 작업과 큐레이터 토크 등을 참고하여 쓴 가상의 일기다. 이를 통해 그 당시 그가 했을 생각들의 흔적을 더듬어보고자 했다. 사실과 픽션이 섞인 글이다. 박이소의 생애를 객관적으로 서술하기보다는 박이소의 생각에 대해 또 다른 생각들을 풀어냈다.

 

*

 

1982년 xx월 xx일

귀에 들리는 낯선 말들. 커다랗게 휘적휘적 걸어가는 다리들. 한 손에 전화기를 붙잡고 바쁜 듯 뛰어다니는 발소리를 들으니 미국에 온 것이 조금은 실감이 난다. 벌써부터 부드럽게 흐르는 모국어가 그립다. 숙소로 걸어 들어오는 길에는, 나보다 키가 두 배는 되어 보이는 남성이 자신의 커다란 주먹으로 내 어깨를 밀쳤다. 무슨 연유인지는 몰라도 몸이 딱딱하게 굳는 것이 기분이 영 별로였다. 걸리적거리는 물건 취급 당한 듯했다. 질문이 밤새 끊이지 않는다. 나는 왜 미국에 왔을까? 한국은 무엇이며, 미국은 무엇일까? 여기서 나는 도대체 무엇인가?


1984년 xx월 xx일

미국에는 추수감사절이라는 게 있다고 했다. 학교는 나처럼 오갈 데 없는 학생들에게 휴일을 함께 보낼 수 있는 미국의 가정집을 소개했다. 분명 한국에서 먹던 것과는 모양도 맛도 냄새도 다른 것들이었지만 온기가 녹아있었다. 힘든 유학길에서 오랜만에 먹는 배부른 식사다. 충족함은 내가 가진 부족을 더욱 느끼게 한다. 나는 배고플 때마다 이 배부름과 음식들을 떠올릴 것이다. 이렇게 배고프고 외로운 길을 계속해서 걸어가고자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내가 작가로서 밥 벌어먹고산다는 건 무엇인가? 다들 이야기하는 ‘밥값’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나는 추수감사절의 식사에 대한 밥값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그 후로 나는 4일간 단식을 했다. 그리고 단식 마지막 날, 목에 밥솥을 걸고 브루클린 다리를 건넜다. 동료 강익중이 사진을 몇 컷 찍어줬다. 내 목에 매달려 나를 끌고, 내가 끄는 밥솥. 밥값은 계속해서 나에게 매달린다. 걸을 때마다 목을 조여 내 목은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한다. 무겁게 끌어당기는 밥솥을 달고 나는 뉴욕의 다리를 건넜다. 달리려고 할수록 밥솥은 내 목을 졸라맬 것이다. 그렇지만 가만히 멈춰서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천천히 걷는 동안 나는 나의 배부름과 배고픔, 목을 겨냥하는 밥솥을 매 순간 느낀다.

 

그것을 보고 단식을 왜 했느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각기 다른 대답을 내놓았다. 죽음에 대한 고민으로부터의 시작, 밥에 대한 고민 등. 그 이유를 모두 말한 것은 아니기에 진실이라고 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거짓말을 한 것도 아니기에 거짓이라고 할 수도 없는, 모호하지만 모호하지 않은 말들을 대답으로 대신했다. 나는 명확한 정답이라 하는 것을 내리기보다는, 내 밥솥이 저마다의 생각을 떠올리게 하기를 원했다. 밥이라는 것이 누군가의 목을 조르는 것이라면, 또 누군가에게는 따뜻한 온기 같은 것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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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xx월 xx일

뉴욕의 지하철 광고 포스터가 눈길을 끌었다. ‘CREATIVITY=CAPITAL’ 1983년, 조셉 보이스의 작업이다. 보는 순간 웃음이 났다. 내 생활에 대한 자조적인 웃음이기도 하고 자본이라는 것에 던지는 비웃음 같은 것이기도 했다. 오히려 ‘자본=창의력’은 말이 된다. 그래서 내가 번역했다. 창의력이 자본이 될 수 있다면, 자본은 곧 창의력인가? ‘자본’ 글씨는 누구보다 청렴하고 정직한 듯 커다랗게 솟아있는 것처럼, 금색으로 그려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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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xx월 xx일

나는 분명 그대로인데, 이곳에서는 다른 맥락으로 읽힌다. 나는 미국에서 소수민족이고, 동양인이고, 이민자이자, 이국적이다. 범주화되고 규정지어지는 시선 속에서 내가 누구인지 나조차도 헷갈릴 지경이다. 내가 가진 민족성, 전통성은 무엇이기에 그토록 나에게 그것을 요구하는가? 때로 ‘한국적’이라고 하는 것들은 나에게 자긍심을 주고 내가 누구인지 알게 한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한국적’으로 타자화되고 정형화되어버린 내가 낯설다. 미국 주류 미술계에 한국미술을 알리는 중요한 일인 한편, 그들이 편견의 눈으로 ‘한국적’에 대해 판단 내려버리게 한다. 도대체 그들이 바라는 동양적인 한국의 모습은 어떤 것인가?

 

나는 ‘그냥 풀’을 그렸다. 그리고 아래에 썼다. ‘그냥 풀’. 입이 닳도록 이야기하는 사군자, 난초의 아름다움. 그 전통이란 게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을 담아보고 싶었다. 그냥 풀에 ‘전통적’ 의미를 부여하는 시선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먹으로 다른 생김새의 풀 그림을 그리고 그 옆에 ‘잡초도 자란다’라고 썼다. 붉은 도장까지 찍고 나니 꽤 만족스러웠다. 한글을 모르는 이가 보았을 때 그것은 전형적인 ‘한국적’ 그림일 것이다. 그러나 그 의미를 알고 나면 ‘그냥 풀’을 바라보는 자신의 시선이야말로 아무것도 모르는 눈이라는 걸 깨닫게 될 것이다.

 

얼마 전에는 뉴욕에서 한국의 민중미술 전시를 열었다. 걸개그림을 뉴욕에 걸고 나니 뿌듯하다. 특히나 상업성으로 돌아가는 미국 미술계에서 한국이라는 ‘소수민족’ 전시를 하게 된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새롭고 신나는 일인가. 이것이 또 한편으로는 한국을 바라보는 또 다른 시각이 되기를, 다층적이고 다면적으로 바라보는 시간을 제공하기를…


1995년 xx월 xx일

한국에 돌아가는 것은 약 10년 만이다. 한국에 돌아와서는 가르치는 일을 하기로 했다. 내가 대학에서 공부를 했던 4년 동안은 시간만 허비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 후로 몇십 년이 지난 지금이지만 여전히 미술 교육은 별다른 변화가 없는 듯하다. 지금의 미국 미술계는 어떤지, 작가란 무엇인지, 작업이란 무엇인지, 이에 대한 수업 자료들을 끝없이 정리하고 정리했다. 기록으로 남은 생각들은 계속해서 누군가와 함께 흐르기를.


2004년 xx월 xx일

나는 내 그림들이, 내 작업들이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한다. 벽에 걸리고 미술관 건물 안에 놓인 저 작업들은 어떤 변화들을 함께 할 수 있을까? 예술이라는 것은 꼭 변화를 동반해야 하는가? 그 ‘변화’라는 것은 무엇인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들은 또 어떻게 흘러가게 될 것인가? 나는 그저 나의 실없는 농담이 좋다. 이 농담을 던지는 순간만큼은 세상이 살아 꿈틀거리고, 내 머릿속도 덩달아 휙휙 돌아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

 

박이소는 한국에 돌아온 지 10년째 되던 2004년, 작업실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한다. 그는 20년 동안 미국에서, 그리고 한국에서 많은 생각들을 남겼다. 그의 수많은 기록 중 "벽에 걸린 그림이란 게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는 그의 말이 계속 맴돈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답에 조금이나마 다가갈 수 있음을, 어쩌면 그의 20년을 통해 깨닫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장소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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