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소외된 자를 바라보는 예리하고도 따뜻한 시선에서 - 고요한 인생 [도서]

책 '고요한 인생'을 읽다
글 입력 2020.09.11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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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인생

소외된 존재들에 대한 예리한 시선을 담은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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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고요한 인생』을 만나다.


 

한동안 비가 자주 왔다. 다른 동네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내가 사는 동네 만해도 이른 오후 즈음만 되면 한 번씩 비가 세차게 내리곤 한다. 『고요한 인생』책도 비가 세차게 내리던 어느 날 받게 되었다. 어지러운 날씨와는 달리 내 손에 있는 『고요한 인생』의 책표지는 참으로 평화로웠다. 듬성듬성 나있는 나무와 아무도 없는 드넓은 들판에서 걷는 한 소녀와 고양이 그리고 그 위에 적힌 고요한 인생이라는 책의 제목까지. 사실 책의 분위기는 이와 상반된 느낌이 강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말이다.

 

책 뒤표지를 보면 제일 먼저 눈에 띄는 한 줄이 있다. ‘떠돎과 실패와 절망의 서사들!’ 사실은 그렇다. 마음속의 안정을 가져다주는 초록색으로 겉표지는 둘러싸여 있지만 실상 소설 속의 인물들은 평화와 안정과는 거리가 멀어보인다. 희망을 함부로 말하지 않고 그렇다고 자신의 현실을 어떻다고 말하지 않는 이들. 개인적인 생각이기는 하지만 어쩌면 소외되고 외로웠던 소설 속 인물들을 포근히 감싸주고자 하는 의도는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삶의 희망과 거리를 둔 사람들


 

한 사람이 희망을 잃어버리는 것은 단숨에 일어나지 않는다. 아니라고 부정도 해보았을 것이고 회피하고 다시 마음을 다잡으려고도 노력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소설 속 인물들처럼 말이다.

 

<언니의 봄>에서 난희언니는 봄 날 이 세상과 작별했다. 봄에 죽음을 선택한 난희언니에게 봄은 사실 어느 계절보다도 의미가 있는 계절이었다. 난희언니에게 봄은 희망임과 동시에 좌절이었기 때문이다. 난희언니는 매년 봄마다 이사계획을 세웠다. 자녀의 교육을 위해 좋은 환경에서 자라도록 해야 한다는 열망이 있었고 테라스가 있는 집에서 살 날을 기대하며 살았다. 난희언니에게 이사계획은 하나의 희망이었다. 하지만, 남편의 회사 사정이 어려워졌고 한 해를 거듭할수록 세웠던 이사계획은 매번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소설에는 난희언니의 일생이 나온다. 난희언니는 가족을 위해서 살아왔고 가족을 위해 좋은 집안에 결혼을 하였지만 난희언니는 쉽사리 운이 따라주지 않았고 가난을 피할 수는 없었다. 결혼 전에는 집안이 가난해 집안의 가장으로서의 역할과 엄마의 병간호를 맡았던 딸이었고 결혼 후에는 기업체 대표직을 맡는 남편을 만나 가난을 벗어나는가 싶었지만 시아버지의 병간호를 맡아야 했으며 설상가상 회사마저 기울게 되었던 것이다. 자신을 위해서가 아닌 타인을 위해서 살았던 난희언니지만 현실은 참 가혹했다. 자신의 유일한 희망이었던 이사계획마저 저버렸을 때 이제까지 가지고 있던 삶의 희망이 꺾었을 것이고 결국에는 자신의 삶마저 놓고 싶은 게 아니었을까.

 

한편, <그 집 앞>에서는 한 남자가 등장한다. 소설에 등장하는 남자의 모습은 검은색 여행가방을 들고돌층계에 앉아있는 모습이다. 처음에는 집이 없는 사람인가 생각했다. 하지만, 소설을 조금 더 읽다보면 남자는 자신의 집도 있는 사람이다. 그를 밖으로 내몰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가 밖으로 나가 된 사건은 전화 때문이었다.

 

혼자 사는 그의 집 전화는 자신의 본분을 잊어버린 듯 조용했다. 자신을 찾는 이는 아무도 없고 안부 전화를 해주는 사람 조차도 없는 존재. 처음에는 남자도 의심했다. 나에게 연락하지 않는 것은 무슨 일이 있어서 라고 어떠한 이유가 있고 피치 못할 사정이 있어서 그런 것이라 생각한다. 시간이 지나도 아무런 반응 없는 전화를 바라보다 남자는 주변 사람들에게 안부 전화를 걸어본다. 하지만, 자신의 예상과는 달리 전화 받는 이들은 아주 잘 살고 있다. 결국, 남자는 자신을 찾는 이는 없었다는 현실을 자각한다.

 

남자는 주변 사람들에게 전화 한 통을 걸 때마다 그동안 자신이 가지고 있던 생각과 믿음이 하나씩 꺾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현실을 마주한 순간에는 전화벨에 대한 병적인 집착이 시작되고 신경증성 환청으로 이어졌다. 희망은 의문이 되고 의문은 부정으로 부정은 자기검열과 좌절 그리고 절망이 된 것이다. 자신을 찾는 이들이 없는 이유의 결론은 자신이 못난 탓이라는 것으로 이어지고 생각의 화살을 자신에게로 쏜다. 자신과 타인을 비교하며 자신을 비하하고 자기연민에 빠진다. 울리지 않는 전화벨이 울린다는 생각과 전화기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집착은 그가 집 밖으로 나오게 된 결정적인 이유가 된 것이다.

 

 

어쩌다 보니 아내도 얻지 못했고 따라서 귀여운 아이도 없다. 가족조차 만들지 못했는데 이제는 안부를 궁금하게 여기는 사람마저 없다! 이대로 변고가 생겨 죽는다 해도 쉬이 발견되지 못할 것이다. 남자도 한때는 친구가 있었으며 세상이 필요로 하는 존재였다. 업무능력도 나쁘지 않았다. 남자는 베란다에서도 자꾸만 전화기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자신을 느껴야 했다. 벨소리가 들린 것 같아서 보면 전화기는 조용히 초기화면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었다. 진땀이 났다.

 

<그 집 앞>, 169p-170p

 

 

아예 희망을 말할 수도 없고 기대할 수도 없는 자신의 인생에서 희망을 잊어버린 인물도 있다.

 

<아들> 속 주인공인 아들은 유년시절 어머니의 죽음과 아버지의 부재를 마주한다. 그에게 희망은 애초에 없었으며 기대할 수도 없는 것이다. 아들에게 너의 유년시절은 끝났다고 말하는 아버지는 아이가 아이답지 못하게 살도록 만들었다. 더군다나 아버지는 아들에게 아무 말도 없이 어느 날 떠나버린다. 어떻게 살라는 한 마디의 말도 없이 유년 시절 사라져버린 아버지. 아들은 아버지가 떠나고 이 세상에 홀로 설 방법을 찾아야했다.

 

아버지는 언제 돌아올 것이라는 약속도 없이 떠났지만 아들은 아버지를 잊지 못한다. 한 해를 거듭할수록 아버지가 돌아올 것이라는 믿음 또한 흐릿해가지만 말이다. 세월이 흐르고 마을도 변해간다. 하지만, 아들은 언젠가는 돌아올 것이라는 생각에 혼자 살면서도 습관처럼 아버지의 밥을 준비하고 아버지와 함께 머물던 빈민촌 동네를 떠나지 못한다. 시간이 지나 그곳에 살던 거주민들도 떠나고 아들은 마을의 최장기 거주자가 될 때까지 말이다.

 

 

 

공유되지 못한 부재의 시간


 

앞서 언급한 소설을 살펴보면 소설 속 인물들 사이에는 '공유되지 못한 부재의 시간'이 있다.

 

<아들>에서는 아들과 아버지 사이에 오랜 부재의 시간이 있다. 유년 시절 어떠한 말도 없이 떠난 아버지는 세월이 흘러 서른이 넘는 나이가 되어서야 나타난다. 노인이 된 아버지는 자신이 떠난 이유에 대해 쇠약해진 자신의 몸이 자신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아들에게 해가 될 것 같았기에 떠났다고 말한다. 그리고 다시 돌아온 것은 기다림을 종식해주고자 함이라는 말을 덧붙인다.

 
아버지는 아들을 생각해서 한 일이었다 말하지만 함께하지 못한 채 지나왔던 부재의 시간은 아들에게는 상처로 남았고 하염없는 기다림이었다. 오히려 아들의 자유로움을 막은 셈이다. 아버지에게 아들이 소중했다면 홀로 두지 말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든다. 아들은 아버지가 떠난 그 순간부터 아버지가 돌아온 시점까지 아버지를 잊지 못한 채 살아왔기 때문이다. 안타까웠다. 차라리 어떠한 말이라도 해주고 떠났으면 어땠을까. 회피해버리는 것은 정체될 뿐 해결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상처의 골만 깊어질 뿐이다.

 

 

얘야. 나는 겁이 났다. 겁이 난다는 것은 잃고 싶지 않은 소중한 것이 있다는 얘기지. 잃을 것이 없는 사람한테 겁이란 있을 수 없을 테니까. 내게 소중한 것은 바로 너였다. 내 육신이 네게 거추장스런 존재가 될까 봐 나는 그것이 정말 겁이 났다. 너를 자유롭게 해주기 위해 떠났으며, 또한 네 기다림을 종식시켜주기 위해 돌아왔다. 다 너를 위해 그랬다.

 

<아들>, 66p

 

 

<언니의 봄>에서는 난희언니와 그 가족들이 공유되지 못한 부재의 시간이 있다. 난희언니가 죽기 전 난희언니와 가족 사이에는 그렇다할 왕래가 없었다. 심지어 친했던 난희언니의 동생조차도 마지막으로 언니를 본 것은 6개월 전이다.

 

가족은 모두 각자의 삶을 살기에 바빠보인다. 언젠가 도와줘야지 라고 생각했던 가족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난희언니의 불행한 삶을 팔자라고 생각했고 언젠가 괜찮아지겠지 라며 넘겨버리기 때문이다. 서로가 공유되지 못한 채 살아가는 부재의 시간 속에서 누군가는 영원한 부재가 되었다.

 

 

언젠가는 도와야 해, 때가 되면 말이야. 우리 형제들은 마음속으로 그렇게 다짐하곤 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저러다 포기할 거야, 우리를 부담스럽게 만드는 헛된 소망을 단념하고 제 분수에 맞춰서 살 날이 올 거야, 제 팔자가 그런 걸 어떡해, 남들도 다 그렇게 사는데 저라고 못할 게 뭐람. 차마 말로 하지는 않았지만 우리는 내심 그렇게 생각했는지도 모르겠군요.

 

혹시 훗날 우리는, 우리를 마음 쓰이게 했던 어떤 인물 하나가 스스로 사라져버린 것에 대해 홀가분하게 여기지나 않을까요. 그 생각을 하노라니 어쩐지 등골이 오싹해집니다. 다시 생각해보니 언니는 그녀 자신의 말처럼, 더 이상 죄 짓기 싫어서 이 세상을 하직했을 수도 있어요.

 

<언니의 봄>, 89p

 

 


소설 『고요한 인생』을 덮으며


 

현실 속 놓인 세상과도 맞닿아 있는 부분이 있어서 일까. 소설은 참으로 아프고 쓰라렸다.

 

특히, 소설은 우리가 사는 자본주의 사회와 그 이면을 생각하게 했다. 우리는 누군가가 성공하면 누군가는 실패를 맞을 수 밖에 없는 자본주의 세상에서 살고 있다. 이것은 마치 의자뺏기게임과 같다. 누군가는 의자를 차지하지만 누군가는 의자를 차지하지 못한 채 바라봐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소설 속 인물들은 의자를 차지하진 못한 위치와 가깝다.

 

경쟁 구조를 만들어내는 자본주의 세상은 인간을 물질만능주의와 개인주의로 만든다. 돈만 있으면 된다는 사고와 나만 잘 살면 된다는 식의 사고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우리는 주위를 돌볼 힘을 잃으며 경쟁에서 도태된 소외된 사람들을 봐주기는 커녕 오히려 사회적 소외를 경험하게 할 뿐이다.

 

글을 쓰는 있는 지금, 밖은 여전히 비가 내린다. 고요하면서도 요동치듯 내리는 빗소리가 꼭 『고요한 인생』 을 닮은 듯하다. 비가 내려 앞이 뚜렷하게 보이지 않는 하늘처럼 여전히 인물들의 삶은 뚜렷하게 어떻다 말 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예전 같았다면 마무리를 짓는 말로 그럼에도 희망은 언젠가 찾아올 것이라고 말했을 것 같다. 하지만, 왠지 희망을 강요하는 것 같아 이 조차도 의미없게 느껴진다. 다만, 말하고 싶은 것은 그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여기 있다는 것이다.

 

 

*

 

고요한 인생

- 먼지 같은 관계 속에 소멸되는 시간과 공간 -

 

 

지은이 : 신중선

 

출판사 : 내일의문학

 

분야
한국소설

 

규격
134*200

 

쪽 수 : 204쪽

 

발행일
2020년 07월 27일

 

정가 : 15,000원

 

ISBN
978-89-98204-76-1 (03810)

 

 



[정윤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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